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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18 17:46
[한국사] 발해 멸망과 동단국 사민의 전말(顚末)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789  

※ 요사를 중심으로 발해의 멸망 과정과 그후 동단국이 요양으로 이치됨과 동시에 동단국민(발해인)이 사민되기까지의 전말을 본인이 직접 사서 원문을 해석하여 간추려 봤습니다. 해석에 문제가 있으면 댓글로써 알려주십시오.


1. 발해 멸망과 동단국민 사민의 전말(顚末)



《遼史 卷一本紀第一 太祖上》


神冊四年春正月丙申,射虎東山。

二月丙寅,修遼陽故城,以漢民、渤海戶實之,改為東平郡,置防禦使。

夏五月庚辰,至自東平郡。


신책 4년, 919년 2월(음력, 이하 ‘음력’ 생략) 병인일, 요양(遼陽)의 옛성을 수리하여 동평군(東平郡)으로 삼고 쭝궈린과 발해인으로 민호를 채우고 방어사를 설치했다. 여름 5월 병오일에 (태조 야율아보기가) 동평군(東平郡)에 이르렀다.


天贊三年夏五月丙午,以惕隱迭里為南院夷離堇。是月,徙薊州民實遼州地。渤海殺其刺史張秀實而掠其民。


천찬 3년, 924년 여름 5월ㅡ생략ㅡ, 이 달에 계주 백성들을 이주시켜 요주(遼州)의 민호를 채웠다. 발해가 그(요주) 자사 장수실을 죽이고 그 백성들을 빼앗았다.


《遼史 卷二本紀第二 太祖下》


天贊四年十二月乙亥,詔曰:「所謂兩事,一事已畢,惟渤海世急未雪,豈宜安駐。」乃舉兵親征渤海大諲譔。皇后、皇太子、大元帥堯骨皆從。


(천찬 4년, 925년) 12월 을해일, (야율아보기가) 조서를 내려 말하길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이미 하나(해, 즉 장가구시 일대에 있던 서해 병합)는 마쳤으나 오직 발해와 대대로 원수진 일만은 설욕하지 못 했으니 어찌 말을 쉬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병사를 거느리고 발해 대인선을 친히 정벌하러 나섰다. 황후, 황태자, 대원수 요골(야율아보기의 차남, 즉 훗날 요 태종) 등이 모두 따랐다.


閏月壬辰,祠木葉山。壬寅以青牛白馬祭天地於烏山。己酉,次撒葛山,射鬼箭。丁巳,次商嶺,夜圍扶餘府。


윤달 임진일에 목엽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임인일에 청우와 백마를 바쳐 오(환)산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냈다. 기유일에 살갈산에 이르러 귀전을 쏘았다. 정사일에 상령에 이르렀는데 밤에 부여부를 포위했다.


天顯元年春正月己未,白氣貫日。庚申,拔扶餘城,誅其守將。丙寅,命惕隱安端、前北府宰相蕭阿古只等將萬騎為先鋒,遇諲譔老相兵,破之。皇太子、大元帥堯骨、南府宰相蘇、北院夷離堇斜涅赤,南院夷離堇迭裡是夜圍忽汗城。己巳,諲譔請降。庚午,駐軍於忽汗城南。辛未,諲譔素服,稿索牽羊,率僚屬三百餘人出降。上優禮而釋之。甲戌,詔諭渤海郡縣。

丙子。遣近待康末怛等十三人入城索兵器,為邏卒所害。丁丑,諲譔復叛,攻其城,破之。駕幸城中,諲譔請罪馬前。詔以兵衛諲譔及族屬以出。祭告天地,復還軍中。


천현 원년, 926년 (음) 1월 기미일(0), 흰 기운이 해를 꿰뚫었다. 경신일(1)에 부여성을 함락시키고 그것을 지키던 장수를 죽였다. 병인일(7)에 석은 안단, 전 북부 재상 소아고지 등에게 명을 내려서 1만 기를 선봉으로 삼았는데, 대인선의 늙은 재상(또는 노상)의 군대와 만나서 깨뜨렸다. 황태자이자 대원수 요골(훗날 요 태종), 남부 재상 야율소, 북원 이리근 사녈적, 남원 이리근 질리가 그날 밤에 홀한성을 포위했다. 기사일(10)에 인선이 항복을 청했다. 경오일(11)에 홀한성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신미일(12)에 대인선이 소복(거친옷)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고 흰 양을 끌며 관리 300여 명을 데리고 나와서 항복했다. 황제는 도타운 예로써 (대인선을) 맞으며 그를 풀어줬다. 갑술일(15)에 발해의 군현에 조유를 내렸다. 병자일(17)에 근시 강말달 등 13 인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서 무기들을 수색하도록 했는데, 수비병에게 해를 입었다. 정축일(18)에 대인선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서 그 성을 공격해서 깨뜨렸다. (야율아보기가) 성 안에 행차했다. 대인선이 말 앞에서 죄를 청했다. 명을 내려서 병사들로 하여금 대인선과 그 족속이 나가도록 했다. 제사를 올려서 (발해를 함락시켰음을) 천지에 알렸다. 다시 군영으로 돌아왔다.


二月庚寅,安邊、鄚頡、南海、定理等府及諸道節度、刺史來朝,慰勞遣之。以所獲器幣諸物賜將士。壬辰,以青牛白馬祭天地。大赦,改元天顯。以平渤海遣使報唐。甲午,復幸忽汗城,閱府庫物,賜從臣有差。以奚部長勃魯恩、王鬱自回鶻、新羅、吐蕃、黨項、室韋、沙陀、烏古等從征有功,優加賞齎。丙午,改渤海國為東丹,忽汗城為天福。冊皇太子倍為人皇王以主之。以皇弟迭刺為左大相,渤海老相為右大相,渤海司徒大素賢為左次相,耶律羽之為右次相。赦其國內殊死以下。丁未,高麗、濊貊、鐵驪、鞨霫來貢。


2월 경인일에 (발해의) 안변부, 막힐부, 남해부, 정리부 등 여러 도의 절도사, 자사들이 내조하자, 노고를 위로하고 돌려 보냈다. 노획한 재물을 장병들에게 하사했다. 임진일에 청우와 백마를 잡아서 천지에 제사를 올렸다. 대사면령을 내리고, 천현으로 연호를 바꾸었다. 사신을 보내 발해 평정한 일을 당(후당)에 알렸다. 갑오일에 홀한성에 행차해서 창고의 물건을 검열하고 뒤따른 신하들에게 차등을 두어 내렸다. 해(奚)의 부장 발로은, 왕욱 및 회홀, 신라, 토번, 항, 실위, 사타, 오고 등이 (발해) 정벌에 참전하여 공이 있었기에, 후한 상을 내렸다. 병오일에 발해국을 동단(東丹)으로, 홀한성을 천복(天福)으로 개칭했다.황태자 배(야율배)를 인황왕으로 삼아 동단국 왕의 지위를 주었다. 황제(야율아보기의 형제, 또는 동생) 야율질자를 좌대상으로, 발해 로상을 우대상으로, 발해 사도 대소현을 좌차상으로, 야율우(=야율우지, 야율아보기의 사촌형제)를 우차상으로 삼았다(임명했다). 정미일에 고려, 예맥, 철려, 갈습이 조공하여 왔다.


三月戊午,遣夷離畢康默記、左付射韓延徽攻長嶺府。甲子,祭天。丁卯,幸人皇王宮。己巳,安邊、鄚頡、定理三府叛,遣安端討之。丁丑,三府平。壬午,安端獻俘,誅安邊府叛帥二人。癸未,宴東丹國僚佐,頒賜有差。甲申,幸天福城。


3월 술오일, 견이리필 강묵기와 좌부사 한연휘가 장령부를 공격하였다. 갑자일, (태조가) 하늘에 제를 올렸다. 정묘일, (태조가) 인황왕궁에 갔다. 기사일, 안변부, 막힐부, 정리부 등 3 부가 반란을 일으켜서 안단을 보내어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정축일, (태조가) 3부(안변, 막힐, 정리)가 평정되었다. 임오일, 안단이 포로로 잡아 헌상한 안변부 반란군 두 사람을 베어죽였다. 계미일, (태조가) 동단국 벼슬아치들에 잔치를 열어주고 (발해 정벌과 동단국 성립에 이바지한 바에 있어) 차등을 두어 (재물을) 나누어주었다. 갑신일, (태조가) 천복성에 갔다.

五月辛酉,南海、定理二府復叛,大元帥堯骨討之。


5월 신유일, 남해부, 정리부 등 2 부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六月丁酉,二府平。


6월 정유일, 2부(남해부, 정리부)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秋七月丙辰,鐵州刺史衛鈞反。乙丑,堯骨攻拔鐵州。庚午,東丹國左大相迭刺卒。辛未,衛送大諲譔於皇都西,築城以居之。賜諲譔曰烏魯古,妻曰阿里只。盧龍行軍司馬張崇叛,奔唐。甲戌,次扶餘府,上不豫。是夕,大星隕於幄前。辛巳平旦,子城上見黃龍繚繞,可長一里,光耀奪目,入於行宮,有紫黑氣蔽天,逾日乃散。是日,上崩,年五十五。天贊三年上所謂「丙戌秋初,必有歸處」,至是乃驗。壬午,皇后稱制,權決軍國事。


가을 7월 병진일, (발해의) 철주자사 위균이 반란을 일으켰다. 을축일, 야율요골이 철주를 공격해 무너뜨렸다. 경오일, 동단국 좌대상 야율질자가 죽었다. 신미일, 대인선을 황도(상경) 서쪽까지 호송하여 성을 쌓고 그곳에 거주하게 하였다. (태조가) 대인선에게는 오로고, 그 처에게는 아리지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노룡행군사마 장숭이 배반하고 당(후당)으로 급히 달아났다. 갑술일, (태조가) 부여부에 이르렀을 때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 저녁 큰 별이 (장막의) 휘장 앞으로 떨어졌다. ㅡ 하략(야율아보기의 죽음을 미화한 구절).


八月辛卯,康默記等攻下長嶺府。甲午,皇后奉梓宮西還。壬寅,堯骨討平諸州,奔赴行在。乙巳,人皇王倍繼至。


8월 신묘일, 강묵기 등이 장령부를 공격하여 굴복시켰다. 임인일, 야율요골이 이곳저곳을 분주히 살피며 다니면서 (발해의) 여러 주를 평정하였다.




2. 동단국민(東丹國民) 사민(徙民)



《遼史 卷三本紀第三 太宗上》


(天顯三年) 十二月癸卯,祭天地。庚戌,聞唐主復遣使平聘,上問左右,皆曰:「唐數遣使來,實畏威也。未可輕舉,觀釁而動可也。」上然之。甲寅,次杏堝,唐使至,遂班師。時人皇王在皇都,詔遣耶律羽之遷東丹民以實東平。其民或亡入新羅、女直,因詔困乏不能遷者,許上國富民給贍而隸屬之。升東平郡為南京。


(天顯三年 928년) 12월ㅡ생략ㅡ인황왕(야율아보기의 장자, 동단국왕)이 황도(상경)에 있을 때에 야율우지를 보내어 동단국 백성들을 옮겨 동평(요주 동평군)의 민호로 채우는 것을 보고하였다. 그 백성(동단국)들이 혹은 신라(고려)로, 혹은 여진으로 유입됨(도망감)에 그것을 옮기는 데에 역부족이 되었으므로 상국(요나라)의 허락을 받아서 종속됨으로써 백성을 보존하였다(의역). 동평군을 승격시켜 남경으로 삼았다.


《卷六十七 列傳第五》


太宗即位,上表曰:「我大聖天皇始有東土,擇賢輔以撫斯民,不以臣愚而任之。國家利害,敢不以聞。渤海昔畏南朝,阻險自衛,居忽汗城。今去上京遼邈,既不為用,又不罷戍,果何為哉?先帝因彼離心,乘釁而動,故不戰而克。天授人興,彼一時也。遺種浸以蕃息,今居遠境,恐為後患。梁水之地乃其故鄉,地衍土沃,有木鐵鹽魚之利。乘其微弱,徙還其民,萬世長策也。彼得故鄉,又獲木鐵鹽魚之饒,必安居樂業。然後選徒以翼吾左,突厥、黨項、室韋夾輔吾右,可以坐制南邦,混一天下,成聖祖未集之功,貼後世無疆之福。」表奏,帝嘉納之。是歲,詔徙東丹國民於梁水,時稱其善。


태종(야율덕광)이 즉위하자 임금께 표를 올려 아뢰기를 “우리 대성천황(태조 야율아보기)께서 처음에 동쪽 땅을 소유하게 되시어 어진 사람들을 택하여 백성을 어루만져 다스리도록 하셨으나 신하들이 어리석어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 하였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손해에 있어서 감히 아뢸 수가 없습니다. 발해가 옛날에 남조(당나라를 이름)를 두려워하여 홀한성에 거하며 멀고 험한 지형으로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지금 (천복성, 즉 홀한성은) 상경까지 멀고 아득하여 방비로 삼을 것도 아니요 또 방비를 그만둘 것도 아니니 과연 어떻습니까? 선황제(태조 야율아보기)께서 민심이 이반된 틈을 타 수레(군사)를 움직여 싸우지 않고 이겼습니다. 하늘(황제로 볼 수도 있다)이 사람(백성으로 볼 수도 있다)으로 하여금 창성하게 하니 한 시대를 덮었습니다. 오랑캐(발해 유민을 이름)가 번식하여 씨를 뿌리며 번져가는데 지금 거주하는 곳(동단국 수도 천복성, 즉 발해 홀한성을 이름)은 먼 변경에 있어서 후환이 두렵습니다.  양수가 있는 땅은 곧 그들(발해인들)의 고향(본적지)로서 땅이 넓고 토양은 기름지며 나무와 철과 소금과 해산물의 이득이 있는 곳입니다. 그 백성(발해유민)을 (양수 일대에) 옮겨 살게 하는 것은 그 미약함(?)을 헤아리면 만세에 이르는 계책입니다. 저들은 고향을 얻고 또 나무와 철과 소금과 해산물의 넉넉함을 얻으니 반드시 즐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ㅡ 해석 역부족 ㅡ.” 라 하니 황제(태종)가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해(928년)에 동단국민(발해인)을 양수 일대로 이주시키니 이 때에 이를 두고 훌륭하다 칭하였다.




3. 양수(梁水)의 위치



《遼史 卷三十八志第八 地理志二 東京道》


遼河出東北山口為範河,西南流為大口,入於海;東梁河自東山西流,與渾河合為小口,會遼河入於海,又名太子河,亦曰大梁水;渾河在東梁、範河之間;沙河出東南山西北流,徑蓋州入於海。有蒲河;清河;浿水,亦曰泥河,又曰蓒芋濼,水多蓒芋之草。


요하는 동북쪽 산어귀로 나아가 범하가 되고, 서남쪽으로 흘러 대구(大口)가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동량하(東梁河)는 동쪽산에서 서쪽으로 흘러 혼하(渾河)와 합하여 소구(小口)가 되어 요하와 만나 바다로 들어가니, 태자하(太子河)라고 하며 또한 대량수(大梁水)라고도 한다. 혼하는 동량하와 범하 사이에 있다. 사하(沙河)는 동남산에서 서북쪽으로 흘러 개주(蓋州)를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또 포하(蒲河), 청하(淸河), 패수(浿水)가 있다. 패수는 니하(泥河) 또는 한우력(蓒芋濼)이라고도 하는데, 강에 한우초가 많은 까닭이다. (다시 쓰는 유기 해석본)


《武經總要前集》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


동경은 요동의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에는 즉 대요하가 있고, 성의 서쪽에는 즉 소요하가 있다.


遼水,在漢樂浪玄荒之地,東西四百八十里。《水經》云:大遼水源出靺鞨國西南山,南流會白槍水,至安市城。今號東京小遼水,源出遼山西南。流與天梁水會,在國西也。


요수는 동서 480 리의 전한 (시대) 낙랑(군)의 거친 땅에 있다. 수경에서 말하기를 “대요수가 말갈국의 서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백창수와 모여서 안시성에 이른다” 하였다. (요수는) 지금의 이름은 동경 소요수로 요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천량수와 더불어 모이는데 땅(동경)의 서쪽에 있다. (今號東京小遼水,源出遼山西南。流與天梁水會,在國西也。는 두 문장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해석해야 옳다고 본인이 지난 고찰문에서 설명한 바 있다.)


#관련글 : 무경총요(武經總要)의 요하(遼河)와 요수(遼水) 기록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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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史 卷五本紀第五 世宗》


八月壬竿朔,尊母蕭氏為皇太后,以太后族刺只撒古魯為國舅帳,立詳穩以總焉。以崇德宮戶分賜翼戴功臣,及北大王窪、南院大王吼各五士,安摶、楚補各百。的、鐵刺子孫先以非罪籍沒者歸之。癸未,始置北院樞密使,以安摶為之。九月壬子朔,葬嗣聖皇帝於懷陵。丁卯,行柴冊禮群臣上尊號曰天授皇帝。大赦,改大同元年為天祿元年。追謚皇考曰讓國皇帝。以安端主東丹國,封明王,察割為泰寧王,劉哥為惕隱,高勛為南院樞密使。


안단을 동단국 왕(主)으로 삼고 명왕(明王)에 봉하였다.


《武經總要前集》


白川州,築城在遼澤之中,東距醫巫閭山,西至營州地。宜桑柘,民知織之利,歲奉中國幣帛,多書白川州稅戶所輸雲。東至黔州七十里,西至中京四百三十里,東南至宜州百里,西南至霸州七十里。


백천주(현 조양시 동쪽 북표현 - 베이파오시 일대), 요택 가운데에 성을 쌓았으며 동쪽으로 의무려산과 떨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영주(흥중부, 즉 현 조양시를 이름)땅에 이른다.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마땅함이 있고, 백성들이 옷감 짜는 이로움을 알아서 매해 중국에 비단을 바쳤으며 많은 책을 백천주의 집집마다 세금으로 보내게 했다(의역, 비단과 책을 생산하였다는 의미). 동쪽으로 검주까지 70 리이고, 서쪽으로 중경까지 430 리, 동남쪽으로 의주까지 100 리, 서남쪽으로 패주까지 70 리이다.


《遼史 卷三十九志第九 地理志三 中京道》

川州,長寧軍,中,節度。本唐青山州地。太祖弟明王安端置。會同三年,沼為白川州。安端子察割以大逆誅,沒入,省曰川州。初隸崇德宮,統和中屬文忠王府。統縣三:弘理縣。統和八年以諸宮提轄司戶置。


천주(川州) 장령군(長寧軍), 절도(節度)를 두었다. 본래 당나라 청산주(青山州) 땅이다. 태조의 동생 명왕(明王) 안도(安圖)가 설치하였다. 회동(會同) 3년(940년)에 조서를 내려 백천주(白川州)로 하게 하였다. 안도(安圖)의 아들 찰극(察克)이 대역죄를 지어 목을 베어 죽임을 당하였고 (주를) 몰수한 뒤 간략하게 천주(川州)라고 하였다. (다시 쓰는 유기 해석본)



4. 숙여진(熟女直)과 생여진(生女直)의 구분과 그 거주 및 활동지역


《金史 本紀第一》

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거란의 호적에 있으면서 남쪽에 거주하는 자들을 숙여진이라 불렀고, 북쪽에 거주하면서 거란의 호적에 있지 않는 자들을 생여진이라 불렀다. 생여진의 땅에는 혼동강, 장백산이 있는데 혼동강 역시 흑룡강이라 불렀던 바 이를 일컬어 백산흑수라 칭하였다.

#거란 성종 때인 1024 년에 성종의 명에 따라 압자하를 혼동강으로 개칭하였다. 현 길림성을 서부를 종단하여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송화강의 남류 수계(남송화강)를 가리킨다. (太平四年春正月庚寅朔,宋遣張傳、張士禹、程琳、丁保衡來賀。如鴨子河。二月己未朔,獵撻魯河。詔改鴨子河曰混同江,撻魯河曰長春河。《遼史 卷十六本紀第十六 聖宗七》) 금사의 거란 공략 기사에 따르면 완안아골타는 황룡부를 혼동강을 건너서 공략하고 있다. (收國元年八月戊戌,上親征黃龍府。次混同江,無舟,上使一人道前,乘赭白馬徑涉,曰:「視吾鞭所指而行。」諸軍隨之,水及馬腹。後使舟人測其渡處,深不得其底。熙宗天眷二年,以黃龍府為濟州,軍曰利涉,蓋以太祖涉濟故也。九月,克黃龍府,遣辭剌還,遂班師。至江,徑渡如前。丁丑,至自黃龍府。己卯,黃龍見空中。癸巳,以國論勃極烈撒改為國論忽魯勃極烈,阿離合懣為國論乙室勃極烈。《金史 本紀第二》)


《武經總要前集》

其國東南界新羅熟女真,東際生女真,東北控黑水靺鞨,西抵夏國,西南距河東岢嵐、火山、寧化軍、代忻並州,南濱真定州西山界,泊保雄水食州東南泛海至京東登、萊州。

그 나라(거란, 즉 대요)의 동남쪽에는 신라(고려)와 숙여진이 있고, 동쪽으로는 생여진과 만나며(닿으며) 동북쪽으로는 흑수말갈을 감싸고, 서쪽으로는 하국을 막아서며 서남쪽으로는 황하 동쪽의 산줄기(岢嵐)와 떨어져서 염산, 영화군, 대주, 흔주(삭주), 병주 등을 포괄하고, 남쪽으로는 정주의 서산 경계와 가까우며 泊保雄水食州 동남쪽에서 바다에 (배를) 띄우면 경사의 동쪽 등주와 래주에 도달한다.

東至熟女真界約五百里,西至遼河百五十里

(동경에서) 동쪽으로 숙여진 지역까지 약 500 리, 서쪽으로 요하까지 150 리이다.

今附契丹者,為熟女真。置一十八州:耀州、賓州、海州、銅州、教州、崇州、興州、荊州、荷州、朝州、盧州、賓州、郵州、鐵州、定理州、懷北州、麓州、廣州。居於東京三面,皆僑立州立名,民籍每州千戶至百戶,餘依山林。不服從者,謂之生女真。

지금 거란의 호적에 등록된 자를 숙여진이라 한다. (숙여진에) 18 주를 설치했(으니 다음과 같)다. 요주, 빈주, 해주, 동주, 교주, 숭주, 흥주, 형주, 가주(하주), 조주, 로주, 빈주(반복돼 기술됐는데 실수거나 다른 비슷한 한자의 오기로 보인다), 우주, 철주, 정리주, 회북주, 록주, 광주 등이다. (숙여진은) 동경의 3면(동, 남, 북)에 거주하는데 모두 임시로 설치한 주 이름이며(비록 호적에 등록돼 있더라도 거주 및 활동상이 자유로웠다는 말) 호적(민적)은 각 주마다 1천 가구에서 백 가구에 달한다(대략 5백 ~ 5천 명 규모). 나머지 산림에 의지하여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생여진이라 칭한다.  (餘依山林。不服從者,謂之生女真。는 한 문장으로 해석해야 한다.)


《遼史 卷三十六志第六 兵衛志下五京鄉下》

邊境戍兵又得《高麗大遼事跡》,載東境戍兵,以備高麗、女直等國,見其守國規模,布置簡要,舉一可知三邊矣。 東京至鴨淥西北峰為界:黃龍府正兵五千。 咸州正兵一千。 東京沿女直界至鴨淥江:軍堡凡七十,各守軍二十人,計正兵一千四百。 來運城宣義軍營八。太子營正兵三百。 大營正兵六百。 蒲州營正兵二百。 新營正兵五百。 加陀營正兵三百。 王海城正兵三百。 柳白營正兵四百。 沃野營正兵一千。 神虎軍城正兵一萬。 大康十年置。 右一府、一州、二城、七十堡、八營,計正兵二萬二千。


변경수병에 관한 일에 대한 기록을 <고려대요사적>에서 얻었는데 동쪽 경계에 수병을 세워서 고려와 여진 등의 변경 군사의 규모를 살펴 대비하게 함으로써 간료(간편)하게 두어서 한 번에 세 방면(변경)을 알 수 있다. 동경에서 압록강 서북봉에 이르는 경계는 황룡부 정병 5천, 함주 정병 1천, 동경에서 여진의 경계를 따라 압록강에 이르는 곳은 군보 70에 각 수군 20인, 합계 정병 1천 4백. 내운성선의군에 령이 8개, 태자영 정병 3백, 대영 정병 6백, 보주영 정병 2백, 신영 정병 5백, 가타영 정병 3백, 왕해성 정병 3백, 류백영 정병 4백, 옥야영 정병 1천, 신호군성 정병 1만. 대강 10 년(1084년)에 설치했으니 1부, 1주, 2성, 70보, 8영으로 총계 정병 2만 2천을 두었다.




4#. 요사 지리지 동경도 분석과 취합을 통해 간략화한 동경도의 군사 지휘 체계와 그 소속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8) ㅡ 요 주/현의 교치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558&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2)



1) 동경통군사


개주 진국군(開州 鎮國軍)

보주 선의군(保州 宣義軍)

내원성(來逺城)

호주 흥리군(湖州 興利軍)

발주 청화군(渤州 清化軍)

순화성(順化城 嚮義軍)

영주(寧州觀察)

연주(衍州) 안광군(安廣軍)

연주 덕창군(連州徳昌軍)


2) 동경도부서사(東京都部署司)


현주 봉선군(顯州 奉先軍)

건주 광덕군(乾州 廣徳軍)

귀덕주 영원군(貴徳州 寧逺軍)

심주 소덕군(瀋州 昭徳軍)


3) 동경유수사(東京 留守司)


진주 봉국군(辰州 奉國軍)

개주 진국군(開州 鎮國軍)

정주 보녕군(定州 保寧軍)

녹주(淥州) 압록군(鴨淥軍)


4) 황룡부(黃龍府) 도부서사(都部署司)


용주 황룡부(龍州黄龍府)

용주 속주 ㅡ 익주(益州), 안원주(安遠州), 위주(威州), 청주(淸州), 옹주(雍州)

신주 창성군(信州 彰聖軍)

빈주 회화군(賔州 懐化軍)

상주 서성군(祥州瑞聖軍)


5) 동북통군사(東北統軍司)


영강주 혼동군(寧江州混同軍)


6) 북여진병마사(北女直兵馬司)


요주 시평군(遼州始平軍)

요주 속주 ㅡ 기주(祺州)

한주 동평군(韓州 東平軍)

쌍주 보안군(雙州 保安軍)

은주 부국군(銀州 富國軍)

동주 진원군(同州 鎮逺軍)

함주 안동군(咸州安東軍)

영주 창성군(郢州 彰聖軍)

숙주 신릉군(肅州 信陵軍)

안주(安州)


7) 남여진탕하사(南女直湯河司)


노주 현덕군(盧州 玄徳軍)

진해부(鎭海府)

귀주(歸州)

소주 안복군(蘇州 安復軍)

복주 회덕군(復州 懐徳軍)


8) 북병마사(北兵馬司)


동주 광리군(銅州 廣利軍)


9) 남병마사(南兵馬司)


속주(涑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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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4-19 07:46
   
※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여부는 현 송원시 남쪽, 사평시 북쪽, 장춘시를 중심한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다. 이 부여부의 치소인 부여성이 야습을 당하여 함락된 뒤에 단 3일 만에 발해 상경성인 홀한성에서 대인선이 항복한다. 부여성에서 홀한성으로의 진군 과정에서 거란군은 발해군과 단 1차례 접전했을 뿐이다.

구글 지도를 열어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부여성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춘시에서 상경성 자리로 학계가 통설로서 비정하는 목단강시까지 1천여 리에 달한다.

이 1천여 리를 다 3일만에 그것도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쾌속 진군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한양 입성도 보름가량 걸렸다. 부산과 서울의 거리가 1천 리를 다소 상회한다.

하루에 120km 이상을 이동했다는 것인데 사람은 커녕 말조차도 이렇게 움직일 수 없다. 구글에서 말의 계속 이동 가능 거리를 검색해 보라.

그런데 해당 기록을 자세히 보면 대인선이 항복한 게 3일째 되는 날이고 거란군이 홀한성을 포위한 것이 그 전날이었으므로 부여성에서 홀한성까지 2일 안쪽으로 도달한 것이다

학계 비정대로 현 목단강시 일대를 상경용천부로 볼 경우 거란군은 단 2일 만에 1천여 리를 주파한 것이다 그것도 한 차례 대전을 치르고 말이다

다음으로
각부에서 항전이 계속되는데 이는 비록 수도가 함락됐어도 발해의 국가로서의 생물학적 기능이 온전했음을 뜻한다.

이는 홀한성 내부에 황제 대인선에 반대하며 은밀히 거란과 내통하는 세력이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장령부의 항전에 주목하여 보라.
장령부는 상경용천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가탐도리기 제 1도에서도 안동도호부에서 동북쪽으로 개모성, 신성을 경유하고 장령부를 통과하여 발해 왕성에 도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주원류고에서는 장령부가 서경압록부의 별칭인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어찌되었든 상경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장령부를 통과해야 하며 그밖의 여러 부와 주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남해부, 정리부, 막힐부뿐만 아니라 마지막의 장령부까지 뒤늦게 항전하였다는 것은, 그리고 발해 홀한성 점령 과정에서 이들과의 전투가 없었다는 것은 이들 지역의 군사력과 그 체제가 고스란히 기능하고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즉 발해 상경용천부는 현 장춘시를 종단하여 북류하는 남송화강(=압자하=혼동강) 서쪽에 위치한 부여부에 바로 붙어있었다는 말이다

금나라의 상경 회령부는 금사~명일통지~만주원류고에 이르는 사서들이 발해 상경 용천부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만주원류고는 이 회령부가 목단강시 일대에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어서 이는 본인이 향후 고찰해 보일 것이다

독사방여기요는 산동8과 산동9에서 회령의 위치를 현 길림 북쪽과 목단강시 일대로 상이하게 기술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하얼빈 남쪽 길림성 북쪽은 길림합달령이 횡으로 천여 리 뻗어있다
이 길림합달령과 남쪽의 용강산맥의 사이 공간이 거란쪽에서 동여진으로 가는 길이었다
감방친구 19-04-19 07:58
   
2)

926년을 발해 멸망의 해로 서술하는 것은 불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본문에 제시한 사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926년은 발해 부여부와 홀한성이 함락된 해일 뿐으로

동단국은 발해 각지의 항전으로 끝내 버티지 못 하고 요주 동평군의 요양으로 치소를 옮기고 동단국민(발해인)을 량수 일대로 사민하는 것으로 퇴각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발해는 비록 남송화강 서쪽의 땅을 잃었으나 거란을 몰아내고 나머지 국토를 회복하였으며 지휘부를 망실한 상황에서도 홀한성(올야성)을 중심으로 2세기 가량 국권회복 운동을 군사적, 외교적 양면에서 정체성을 이어갔으며

이 재생을 위한 분열, 분열을 통한 새 정체성의 획득이 흑수말갈을 전신으로 하는 완안여진에 의해 완수되면서 새로운 형질을 갖춘 대금국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동시에 고려는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거란에 대해 적대적 행동과 태도를 취하면서 천산산맥 동쪽, 길림합달령 남쪽에 이르는 발해의 영토를 흡수하면서 남북국시대의 정통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감방친구 19-04-19 08:08
   
3)

양수의 위치는 요사 지리지를 보면 현 태자하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무경총요를 보면 의무려산 서쪽에서 서남으로 흘러 대릉하로 흘러드는 시허강(細河, Xihe River)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

한서로부터 사기를 거쳐 후한서, 그리고 역대 사서를 종합 고찰하여 보면

전한이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요동군은 현 요동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서쪽에는 요서군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요동군과 요서군의 경계를 뜻하는 요수(요하)는 현 요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들인 토착세력의 항전 활동으로 임둔군과 진번군이 폐지되고 현도군과 더불어 요동군이 서쪽으로 밀려간 것이 한사군이 설치된 지 몇 십 년 안 되어서이다

이미 후한서 군국지의 상황이 되면 현도군이 현 요하의 서쪽으로 쫓겨가 있다

따라서 요수의 위치 역시 변하여 현 요하에서 대릉하로 바뀌게 되었고 이것이 이후 고구려와 발해 시기까지 유지되었다

동단국이 요주 동평군으로 쫓겨와 그 중심지 요양이 남경으로 승격된 928년의 시기는 아직은 5대 초기로서

동단국왕 야율배가 의무려산 산정에 살다시피 한 것이나 후에 동단국왕에 봉해진 안단이 현 북표현(베이파오시)에 백천주를 설치한 사실에서

이치된 동단국의 관할 영역과 그 중심지가 현 의무려산을 중심으로 하였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또한 요주가 현 북진시 방면에서 신민시 방면으로 옮겨간 사실정황 등을 살펴볼 때에 량수가 현 태자하가 아니라 시허강일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둔다 하겠다
감방친구 19-04-19 08:25
   
4)

무경총요는 1040년에 착수하여 1045년에 완성한 것으로 요사보다 2백여 년 앞섰을 뿐만 아니라 거란 전성기 당시에 쓰여졌으므로 사료적 가치가 귀중하다

그런데 이 무경총요에는 특히 동경을 중심으로 한 지리기술에 있어서 동일 대상을 두고 상이하거나 다소 다른 정보를 기술하는 면이 다소 있어서

본인은 거란 동경 이치의 가장 중요한 근거 사료로 삼고 있다

본인의 주장을 거듭 말하자면
거란 동경과 그 주변 행정지는 993년 이후(993~1020)에 현 북진시 방면에서 현 요양시 방면으로 이치되었다는 것이다

송나라에게 있어서 적국인 거란의 지리상과 교통, 물산, 군사 등의 정보는 거란의 대외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무경총요의 거란 정보는 여러 시기, 여러 경로를 거쳐 입수된 정보를 정밀하게 취합한 것으로서

거란 동경의 이치 전 시기 정보와 이치 후 시기 정보가 다소 섞여 있다고 판단된다

바로 이 모순이 요사 지리지, 금사, 명일통지, 독사방여기요 등과 교차 분석할 시에 거란 동경과 동경도의 전말의 실체를 알려주는 절묘한 근거가 된다고 본인은 보고 있는 것이다

무경총요에서는
동경에서 숙여진 지역까지 500여 리라고 적고 있는데
동시에
숙여진 지역에 해당하는 18주를 거명하고 있다

동경을 현 요양시로 볼 시에 500여 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현 압록강의 북안 일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숙여진에 설치된 18주의 면면을 보면 모두 현 요양시, 심양시 등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다

그 중 한 곳인 해주만 하더라도 현 요양시 남쪽 인근의 안산시 현급시인 해성현 자리에 있었다

본인이 본문에 첨부한 중국역사지도집 지도를 보고 살펴 보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동경~숙여진 지역 거리 500여 리는
독사방여기요 기준 현 북진시에 있었던 광령위와 현 요양시에 있었던 요동도사성의 거리에 일치한다

생여진은 당시 압록강인 현 동요하 바깥의 지역으로 혼돈강인 현 남송화강과 하얼빈시, 그리고 목단강시 일대이다
감방친구 19-04-20 12:02
   
발해 부여부가 있었다 학계에서 비정하는 농안에서 역시 학계 통설에서 발해 상경성(홀한성)이 있었다 하는 목단강시 령안현까지의 현대 도로를 적용한 거리를 구글지도에서 확인해 보시라

제일 짧은 거리가 494km이다
1도 ㅡ 494km
2도 ㅡ 531km
3도 ㅡ 658km

거란군이 부여성에서 출발해 홀한성에 도달한 시일은 단 2일이었다
감방친구 19-04-20 12:16
   
거듭 말해왔지만 학계에서 발해 상경성으로 비정한 목단강시 영안현 고지는 본래 옛부터 동경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온 곳이다

한민족문화대백과 '상경 용천부'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573528&cid=46620&categoryId=46620

저 자리는 발해 상경, 즉 홀한성 자리가 아니라 발해 동경성, 즉 동경용원부 중심지이다

신당서에서 말한 "발해 동경 동남쪽은 일본도이다"의 그 동경성 말이다

지도를 보라
목단강시 영안현 동남쪽은 바다이다

역대 사서에서 회령은 총 3곳 나타난다
ㅡ 하얼빈시
ㅡ 목단강시
ㅡ 함경북도

이는 금나라 이후 여진족의 중심세력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생긴 지리상의 혼동일 뿐이다
감방친구 19-04-20 12:17
   
이곳은 발해 상경성이 아니라 동경성 자리이다
이 동남쪽이 신당서가 말한 일본도이다

ㅡㅡㅡㅡㅡㅡ
貃故地為東京,曰龍原府,亦曰柵城府,領慶、鹽、穆、賀四州。龍原東南瀕海,日本道也。

(예)맥의 옛땅은 동경으로 삼았으니 용원부라 하며 또한 책성부라고도 하는데 경주, 염주, 목주, 하주 등 4주를 거느린다. 용원부 동남쪽은 바다에 접하는데 (이는) 일본도(일본으로 가는 길)이다. <신당서 발해전>
ㅡㅡㅡㅡㅡㅡ


닝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무단장 시
https://maps.app.goo.gl/bf2LxqGNEBbirSvQ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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