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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30 07:22
[한국사] 406년, 모용희와 형북(陘北)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696  

※ 본인의 앞의 글 <3 ~ 5 세기 모용선비와 고구려 중심 동북아 정세>를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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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시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15년 기사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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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서기 406) 가을 7월, 메뚜기떼가 출현하고 가뭄이 발생하였다.
겨울 12월, 연나라의 왕 모용희가 거란을 공격하기 위하여 형북(陘北)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거란의 병사가 많은 것을 겁내어 돌아가려 하다가, 수레의 무거운 군수품을 버리고 가벼운 몸차림을 한 병사들을 데리고 우리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연나라는 3천여 리를 행군하여 왔기 때문에 병사와 말이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는 병사들이 길에 줄을 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목저성(木底城)을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十五年 秋七月 蝗 旱 冬十二月 燕王熙襲契丹 至陘北 畏契丹之衆 欲還 遂棄輜重 輕兵襲我 燕軍行三千餘里 士馬疲凍 死者屬路 攻我木底城 不克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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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모용희의 후연이 형북(陘北)에서 거란을 공격하려다 그 군사수가 많아 접전을 포기하고 퇴각하려다가
2) 고구려를 공격하기로 하고는 지니고 있던 군수물자를 다 버려서 기동을 가볍게 한 후에
3) 3천여 리를 행군하여 고구려 목저성을 공격했으나 패배하였다

이 15년 기사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형북(陘北)의 위치
2) 목저성의 위치
3) 3천여 리를 행군하였다는 것이 그 이동 경로가 ‘형북~목저성’을 말함인가 ‘용성~형북~목저성’을 말함인가?

사실 형북(陘北)은 중국 역사상 너무도 빈번히 등장하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명이어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바로 산서성 대현 서북쪽의 형령을 기준으로 하여 그 북쪽을 형북, 그 남쪽을 형남이라 불러왔다.

그런데 한국 사학계에서는 유독 삼국사기 광개토대왕 15년 해당 기사를 설명하며 이견을 내고 있다.

한국역사데이타베이스 상에서 삼국사기의 해당 기사에 달린 주석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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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DB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406년 기사 주석

冷山의 북쪽이다(《자치통감(資治通鑑)》 권114 晉紀 安帝 義熙 2년 정월조 註). 冷山은 현재의 중국 길림성 農安의 북쪽에 있었다.

農安
눙안 현
중국 지린 성 창춘 시
https://goo.gl/maps/1iV9rxXyG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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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의 동일 사건 기사에 달린 주석을 근거로 형북을 중국 길림성 농안현 북쪽에 ‘있었던’ 냉산의 북쪽으로 설명하고 있다.

갑자기 ‘냉산’과 ‘길림성 농안현’을 툭하고 꺼내어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하게 한국역사DB 상에 있는 자치통감 권114 晉紀 安帝 義熙 2년 정월조에 달린 주석이 어떠한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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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데이터베이스 자치통감 해당 기사
陘北, 冷陘山之北也. 陘, 音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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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DB가 자치통감이라 하고 있는 것은 자치통감이 아니라 남송의 호삼성이 자치통감에 주석을 단 <자치통감주>이다.

어찌됐든 해당 원문에는 ‘냉산’이 아니라 ‘냉형산’이라 돼 있고 형북은 이 냉형산의 북쪽이라고 주석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머저리들이 우리 학계의 통설을 조성하고 있는 자들이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형북을 어느 곳으로 보는지 다음의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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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금지명대사전


陘北

山西代縣西北句注山之北也。句注一名西陘山。又曰陘嶺。山南謂之陘南。山北謂之陘北。西晉時拓跋猗盧。徙居陘北之地。即今山西舊大同寧武朔平三府。及代州西北之地。


雁門山

在山西代縣西北三十五里。卽句注山。〔爾雅釋地〕北陵。西隃、雁門是也。〔郭璞注〕卽雁門山也。〔山海經〕雁門山者。雁飛出於其間。亦曰陘嶺。自雁門以南謂之陘南。以北謂之陘北。漢中平以後。陘北之地皆爲荒外。魏晉中並以此爲塞。分別内外。實南北巨防。⦿在山西陽高縣西北。〔山海經〕碣石之山。又北水行五百里至於雁門之山。郭璞曰。在高柳北。水經注云。雁門水出此。⦿在江蘇江寧縣東南。〔建康志〕山勢連互。類北地雁門。因名。山東北有温泉。能治冷疾。〔李白詩〕「緑水向雁門。」卽此。⦿在四川梓潼縣南三十餘里。〔輿地紀勝〕有東西兩嶺。突起如門。雁從中過。故名。


바이두백과

雁门山古称勾注山、陉岭、西陉山陉。这里群峰挺拔、地势险要。

https://wapbaike.baidu.com/item/%E9%9B%81%E9%97%A8%E5%B1%B1


다이 현
중국 산시 신저우 시
https://goo.gl/maps/PBCyk9x15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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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론의 여지 없이 현 중국 산서성 대현의 북쪽 산령을 형령으로, 그 형령의 북쪽을 형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학계에서는 형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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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넷 중국정사외국전 주석

# 陘北: 雁門 以北을 지칭한다. 陘은 陘嶺, 즉 句注山(雁門山이라고도 함)을 지칭한다. 현재 山西省 代縣 북쪽에 있었다. 역대로 북방을 방어하는 중요한 屛障이었다. 雁門 이남을 陘南, 雁門 이북을 陘北이라 칭하였다.

http://contents.nahf.or.kr/search/itemResult.do?levelId=jo.k_0017_0218_0090&setId=57157&position=3

#陘北:雁門 以北을 지칭한다. 陘은 陘嶺, 즉 句注山(雁門山이라고도 함)을 지칭한다. 현재 山西省 代縣 북쪽에 있었다. 역대로 북방을 방어하는 중요한 屛障이었다. 雁門 이남을 陘南, 雁門 이북을 陘北이라 칭하였다.

http://contents.nahf.or.kr/search/itemResult.do?levelId=jo.k_0004_0030_0010_0010&setId=57157&position=7

# 陘嶺: 산의 이름으로 西陘山이라고도 하는데, 漢代에는 雁門山이라고도 했다. 지금 山西省 代縣 서쪽에 있는 句注山을 말한다. 산의 남쪽을 陘南이라고 하고, 산의 북쪽을 陘北이라고 한다.

http://contents.nahf.or.kr/search/itemResult.do?levelId=jo.k_0012_0050_0010_0100&setId=57157&position=4

# 陘嶺: 산의 이름으로 西陘山이라고도 하는데, 漢代에는 雁門山이라고도 했다. 지금 山西省 代縣 서쪽에 있는 句注山을 말한다. 산의 남쪽을 陘南이라고 하고, 산의 북쪽을 陘北이라고 한다.

http://contents.nahf.or.kr/search/itemResult.do?levelId=jo.k_0015_0099_0010_0080&setId=57157&position=5

다이 현
중국 산시 신저우 시
https://goo.gl/maps/PBCyk9x152o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함에도 모용희가 406년, 거란의 군대와 마주한 형북은 호삼성의 주석을 근거로 하여 냉형산의 북쪽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아니 이 병신 같은 학계 통설 조성자들은 냉형산이 아니라 냉산으로, 그 냉산을 길림성 농안현 북쪽에 있었던 산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용희의 406년 기사에 단 호삼성의 주석은 호삼성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이 의견이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학자들의 역할이고.

과연 406년 모용희의 후연 병력이 간 곳이 호삼성의 주석 대로 냉형산의 북쪽이 맞는가?

자치통감주를 샅샅이 살펴보면 형북이 13회 정도 등장하는데 모두 현 산서성 대현 북쪽의 형령 북쪽을 가리킨다고 호삼성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호삼성은 모용희 406년 기사에서만 유독
陘北,冷陘山之北也。陘,音刑。
라 하여

현 파림좌기 방면에 있던 냉형산의 북쪽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형북陘北이라는 말 자체가 형령의 북쪽을 이르는 말로서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한 지명이자 고유명사인데

갑툭튀 ‘냉형산 북쪽’의 준말이라는 설명이 납득이 되는가?

이걸 또 병신 같은 학계는 왜곡 근성을 발휘하여 냉산의 북쪽이라고 콩을 까고 있는 것이다.

냉형산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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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넷 중국정사외국전 주석

冷陘山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扎魯特旗 남쪽의 奎屯山을 말한다. “奎屯”은 몽골어로 “冷”의 뜻이다. 산이 높고 서늘해 거란인들은 한 여름이면 이 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바이두백과
冷陉山
古山名。一说即今内蒙古巴林右旗西北高原上的坝后;一说即今内蒙古扎鲁特旗南的奎屯山(“奎屯”:蒙语“冷”的意思)。唐时为契丹、奚霫三部族的界山。其地高凉,盛夏时,可避暑于此。

扎魯特旗
짜루터 기
중국 내몽골 자치구 퉁랴오 시
https://goo.gl/maps/6goFnTp2sfB2

巴林右旗
바린 우기
중국 내몽골 자치구 츠펑 시
https://goo.gl/maps/KDvi2QWvQ6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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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406년, 모용희의 형북 기사를 다룬 삼국사기, 진서와 자치통감, 그리고 그 형북만 유독 ‘냉형산 북쪽’이라고 한 자치통감주에서의 호삼성의 주석만을 놓고 보면

이 기사의 형북이 ‘냉형산 북쪽’인 것처럼 보인다.

모용희가 이곳에 갔었어야 현 학계 통설에서 보는 고구려 목저성으로 이동하기 용이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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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DB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15년 기사 주석

현재의 중국 요녕성 新賓 木奇鎭 서북 15리에 있는 五龍山城이다. 이곳은 중국 방면에서 渾河를 지나 蘇子河로 들어오는 요해지라 한다(王綿厚, 《東北古代交通》, 瀋陽出版社, 1990, 40쪽).

Muqizhen
중국 랴오닝 성 푸순 시 신빈 만족 자치현
https://goo.gl/maps/nunnMB4Bqi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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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용희는 이미 이곳에 군대를 몰고 가서 거란을 대파하였다.

즉, 모용희가 형북에서 고구려 목저성으로 온 그 사건이 있던 직전 해, 그것도 한달 전에 모용희는 냉형산의 거란 본거지에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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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2년 광개토대왕, 후연 숙군성 빼앗음
× 402년 광개토대왕, 평주 함락
× 404년 광개토대왕, 연군 타격(연군은 현 북경시로, 모용황의 사당이 있음)


熙北襲契丹,大破之(405년 12월)。

昭儀苻氏死(407년),偽謚愍皇后。贈苻謨太宰,謚文獻公。二苻並美而艷,好微行游宴,熙弗之禁也。請謁必從,刑賞大政無不由之。初,昭儀有疾,龍城人王溫稱能療之,未幾而卒,熙忿其妄也,立於公車門支解溫而焚之。其后好游田,熙從之,北登白鹿山,東過青嶺,南臨滄海,百姓苦之,士卒為豺狼所害及凍死者五千餘人矣。會高句驪寇燕郡(404년 11월),殺略百餘人。熙伐高句驪,以苻氏從,為衝車地道以攻遼東(405년 1월)。熙曰:「待刬平寇城,朕當與后乘輦而入,不聽將士先登。」於是城內嚴備,攻之不能下。會大雨雪,士卒多死,乃引歸。
擬鄴之鳳陽門,作弘光門,累級三層。

熙與苻氏襲契丹,憚其眾盛,將還,苻氏弗聽,遂棄輜重,輕襲高句驪,周行三千餘里,士馬疲凍,死者屬路。攻木底城(406년 1월),不剋而還。

《晉書 載記第二十四 慕容寶慕容盛慕容熙慕容雲》


安皇帝己義熙元年(405년)
十二月,燕王熙襲契丹。

安皇帝己義熙二年(406년)
春,正月
燕王熙至陘北,畏契丹之眾,欲還,苻后不聽,戊申,遂棄輜重,輕兵襲高句麗。

燕軍行三千餘里,士馬疲凍,死者屬路,攻高句麗木底城,不克而還。夕陽公雲傷於矢,且畏燕王熙之虐,遂以疾去官。

《資治通鑑 卷第一百一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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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연은 고구려와 북위의 공통의 적이었다.
거란은 이미 광개토대왕의 392년과 395년 정벌로 인하여 고구려에 복속된 상태였다.

특히 광개토대왕비문이 전하는 395년 비려 정벌은 염수, 즉 현 시라무렌강 상류에까지 이른 경로였다.

형북의 거란은 거란의 독자적 세력이 아니라 북위, 또는 고구려가 배후에 있는 세력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후연의 모용희는 분명히 405년 12월에 북쪽으로 가 거란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런데 그 한달 후인 406년 1월에 다시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러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모용희는 비록 황후인 소의부씨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내정을 개판치고 있었지만 서쪽으로는 북위, 동쪽으로는 고구려와 맞서 후연의 옛 영역을 되찾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모용희는 404년, 광개토대왕의 연군(현 북경시) 타격에 대한 복수로 405년 1월, 요동성을 공격하려다 실패했고

405년 12월 북쪽으로 가서 거란을 크게 격파했다.

모용희의 다음 공격은 당연히 북위로 향해야 하는 정황이다.

북위는 애초 후연의 도움으로 건국한 나라이며 후에 하북의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다 후연이 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북위와 고구려에게 후연은 공통의 적이었다.

이 두 나라 사이에 모종의 연합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후의 436년 북위의 북연 정벌 과정을 보면
ㅡ 북연 정벌 전에 고구려에게 정벌할 것임을 사전고지하였고
ㅡ 고구려군이 먼저 화룡성에 들어가서 재물을 모두 쓸어담고 주민들과 지배층을 모두 데리고 고구려로 가면서 화룡성을 모조리 불태우는데도 가만히 지켜봤으며
ㅡ 풍홍을 비롯한 북연의 지배층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고구려가 응하지 않았음에도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았으며
ㅡ 이미 435년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도독요해제군사 관직을 내려 요해(에 대한 고찰은 본인이 이미 게시하였다) 일대에 대한 군사권내지 지배권을 인정하였다

모용희의 후연은 고구려에 의해(사방합진) 초토화돼 멸망하고 고구려의 기미국이라 할 수 있는 북연이 건국되었으며

북연은 북위와 고구려에 의해 나눠먹기의 희생양이 돼 결국 멸망하게 된 것이다.

결 ㅡ

406년, 모용희 기사의 형북은
냉산 북쪽이나 냉형산 북쪽이 아니라
형령 북쪽,
즉 현 산서성 대현 북쪽의 형령 북쪽이 맞다

다이 현
중국 산시 신저우 시
https://goo.gl/maps/PBCyk9x152o

자치통감에 주석을 달아서 자치통감주를 쓴 호삼성이 보기에

황수, 즉 시라무렌강 북쪽, 냉형산(현 파림좌기 일대) 북쪽에 본거지를 둔 거란이 진서 모용희 406년 기사에서 형북에 출몰을 하였으니

형북은 냉형산의 북쪽이라고 억지스럽게 주석을 단 것인데

설사 406년에 현 대현 북쪽의 형북에 있던, 모용희가 상대하려다 군사 수가 많아 회피한 그 세력이 거란이 아니었고, 단지 거란으로 잘못 적은 것이라 할 수는 있어도

406년 1월에 모용희가 간 곳은 현 대현 북쪽, 즉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해서 다른 곳에 비정할 수 없는 그 형북이 맞다는 결론이다


부가 ㅡ

무경총요에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蔚州安邊郡,有胡盧河,即《周禮》並州漚夷川也。漢塞飛孤之口,言其隘也。有松子口,即古之松陘嶺也。

여기에서 말하는 송형령은 산서성 대현 북쪽에 있는 형령과 일치한다

이 문제는 후에 다룰 것인데

무경총요의 이 내용은
ㅡ 해의 냉형산이 규주의 서북쪽과 마주한다 한 신당서의 기록
ㅡ 해가 영주 치소의 서쪽, 유주의 서남쪽에 수백 리 떨어져 있다고 한 신오대사의 기록

과 일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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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2-30 07:25
   
冷山은 송막기문에 등장하는 산 이름이다

ㆍ寧江州去冷山百七十里,地苦寒,多草木,如桃李之類,皆成園。

ㆍ冷山去燕山三千里,去金國所都二百餘里,皆不毛之地。

ㆍ長白山在冷山東南千餘里,蓋白衣觀音所居。其山禽獸皆白,人不敢入,恐穢其間,以致蛇虺之害。黑水發源於此,舊云粟末河。
관심병자 18-12-30 09:15
   
현 주류사학의 위치 비정이 다 이런식입니다.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동에서 서로 흘렀다고 기록된 고조선 패수를 반대로 흐르는 강이라고 하질않나,
중국에서 유명하고 기록도 많은 갈석산을 근거도 없이 한반도내의 산이라고 하질않나,
이렇게 대충 비정한걸 넘어서,
조선시대에 한반도 역사에 대해 기록한책(해동역사)에 지리비정해 놓은걸 한글로 번역하면서,
지명을 다 일본서기에 적혀있는걸로 교체해서 번역해 놓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조선시대 한반도에 살던 조선인이 알던 한반도 지명이 정확하겠습니까?
바다건너 일본에서 알던 한반도 지명이 정확하겠습니까?
일제시대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짓을 저질러 놓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죠.
     
감방친구 18-12-30 09:41
   
욕만 나올 뿐입니다
우리 강단의 통설을 조성하고 옹위하는 수구세력들 모두 후쿠시마로 내쫓아버렸으면 좋겠어요
반민족 집단입니다, 그 개종자들은
     
관심병자 18-12-30 14:24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댓글내용 수정
사서 기록상 고조선 패수가 연나라와 고조선의 경계를 이뤘고,
이는 연나라가 고조선의 북쪽에 있는 나라가 아니니 이강은 연, 조선 경계 지점에서 남북으로 가로지른다는 얘기고,
기록상에도 위만이 패수를 건너 동쪽 조선으로 갔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말은 연나라는 고조선 서쪽에 있었다는거죠.
또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적혀있습니다.
주류사학이 이 패수라고 추측, 비정해 놓은게 전부 기록과 반대로 흐르는 강들입니다.

고조선 평양인근에 패수가 있었다는 기록 한부분만 가지고,
그와 연관된 다른 기록은 다 무시하고 어거지로 끼워맞춰 놓은 것입니다.
패수가 한반도 강이라는 주류사학의 어거지가 맞다면 연나라도 한반도에 있었어야 하고,
갈석산도 한반도에 있어야 하고, 요동도 한반도 지명이어야 하고 그렇게 끼워맞춰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것이 한반도안에 한사군이 있었다는게 결론이죠.

한사군은 고조선 수도 평양에 세웠고 이 평양옆으로 패수가 흘렀고,
패수는 연나라와 고조선의 경계고,
이 평양에 세운 한사군 주변에 갈석산이 있었고, 이 갈석산이 만리장성의 시작점이었다고 사서들에 적혀있죠.
기록이 그렇게 나와있으니 갈석산이고, 만리장성이고 패수고 모두 한반도안에 집어넣고 그에 더해 한반도안에 요동이라는 지역이 있었다는 개소리까지 했지만,
자신들도 부끄러움을 아는지 연나라가 한반도안에 있었다는 얘기는 하지않는거 같더군요.

거기다 기자, 위만조선 동쪽에 있었다고 기록된 진국을 한반도 남부라고 얼토당토않게 비정해 교과서에 실어놨죠.
1천년전이건 1만년 전이건 동서남북 방위는 바뀌지 않습니다.
해가 뜨는곳이 동쪽이고 지는곳이 서쪽입니다.
관심병자 18-12-30 15:13
   
거기다 더해 진국과 고조선을 별개로 취급해버리는 치명적인 왜곡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진국과 고조선이 별개로 되버리면 문제가 뭔가하면,
후에 진국(JIN)이라고 칭한 나라들의 위치와 특징이 어떠했는가.

진국이란 단어를 쓴게 마한도 있지만,
후고구려 궁예 역시 진이란 단어를 국명에 넣었던적이 있고,
고구려의 후신 발해도 스스로 쓴 국명은 대진국이라고 했었습니다.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 백제 왕족의 묘비에 자신들을 진한, 진조라고 적어놨죠.
후에 JIN이란 국명은 만주지역에서 여진, 거란등이 세운나라에도 붙습니다.
즉, 진이란건 조선 동쪽 만주쪽을 얘기하는거고,
사서기록상의 위만조선 동쪽에 진국이란것도 일치합니다.
사서기록과 유물(고구려, 백제 왕족 묘비), 이후 국명의 연속성을 봤을때,
고조선의 진국이란것은 부여라는거죠.

당시 진국에 대한 기록에 삼한이 진국이고,
다른 기록엔 진한이 진국이라고 했습니다.
한반도 남삼한만 생각해서 진국은 한반도 남부라고 간단하게 비정했지만,
부여계의 왕족들이 진한, 진조(진조선)을 칭한것을 보면 고조선이 있던시대의 진국, 진한은 부여쪽(만주)을 칭하는것입니다.
남삼한의 진한, 변한은 이주민 집단이라고 삼국사기 기록에 나와있죠.
그럼 한반도 남부의 진한, 신라를 세운 세력의 원 출발지가 만주쪽(부여) 이라는것을 알수있게 되는겁니다.
그럼 한반도의 마한왕은 왜 진이라는 글자를 썼나,
이에 대한 설명도 사서에 나와있습니다.
"삼한이 진국이고, 진한이 진국이다."
즉 삼한의 중심은 진한, 진국이기 때문에,
한반도내의 삼한에서 중심은 마한이니 마한이 삼한의 진국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럼 부여 후예들이 집착한 진한, 진국이란 무언가.
고조선 삼한의 중심이 진국이란 것이고,
고조선이 건재할 시기의 진국이란 바로 부여를 말하는것이고,
진국이란 바로 고조선의 중심을 말하는것입니다.
위만조선과 부여는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던 나라들입니다.
위만조선만이 고조선이다 라는 식민사관에 더해,
고조선과 한반도는 별개의 세력이었다는 더욱 발전된 식민사학을 현재 재생산해내고 있는것입니다.

현 주류사학의 고조선 위치비정(위만조선)과 한반도 진국의 위치비정으로 생겨나는 문제가 뭐냐면,
그럼 원래 진국인 부여가 공중에 떠버리게 됩니다.
부여의 후신인 고구려가 고조선의 후예가 아니게 되버리는것이고,
그 후신인 발해도 고조선과는 관련없는 나라가 되버리는것이죠.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중국역사라는 중국 동북공정 왜곡을 합리화해버리는것이죠.
고구려라는 나라의 정식국명은 고려입니다.
고려의 옛땅을 내놓으라는 거란과 고려(왕건)는 전쟁까지 해서 나라이름과 영토를 지켜냈습니다.
한국의 영어국명이 Korea(고려)입니다.
조상들이 피흘려지킨 나라이름과 역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는꼴이 되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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