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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8 16:40
[한국사] 호위대장이 된 한국 근대건축의 아버지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758  

대한제국의 근대건축과 사바틴

 사바틴(Seredin Sabatin)1883년 제물포의 개항에 맞추어 우리나라에 온 러시아인 건축 기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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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틴은 근세초기에 세워진 이 나라의 서양식 건축물(洋館), 기념물, 공원등의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지금도 이 사람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적어도 건축공학을 전공하거나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꼬르브지에" "가우디"를 논하기에 앞서서 이 나라 서양건축물의 태동기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이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바틴이 우리 나라에 온 것은 조선정부의 통상과 외교를 담당하던 뮐렌도르프의 발탁에 의한 것 이었다.
뮐렌도르프의 1차적인 임무가 개방된 항구를 통하여 들어오는 교역품에 대하여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부두와 해관(海館)을 세우는 것이었으므로 건축 및 토목공사 전반에 대하여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절실했다.


제물포.png
개항당시의 제물포의 모습



1. 사바틴의 입국


이리하여 1883917사바틴은 제물포를 통하여 입국하니 당시 나이 23세의 젊은이 였다


그는 뮐렌드르프에 의하여 입국한 다른 외국인 동료와 함께 제물포에 머물면서 제물포항의 부두를 축조하고 개축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다. 당시 제물포항의 조건은 열악하였고 년간 예산도 부족하여 공사는 느리게 진척되어 갔으므로 그는 시간을 내어 제물포에서 이름을 남길 건축물의 설계및 시공을 되었다.

2. 제물포 해관

제물포 해관.jpg

사바틴이 설계한 인천
(제물포) 해관 청사


3. 세창양행 설계  


사바틴은 해관에 재직하면서 우선 해관 청사를 설계한 후 독일의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독일이 직원들이 머물 사옥을 설계했는데 이 곳이 만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이 세워진 곳 이다.


세창양행.jpg

세창양행 사옥


이 세창양행 사옥은 역시 응봉산 언덕에 세워진 인천각과 더불어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해방후에는 도서관으로 활용되었으나 6.25 전쟁의 포화로 사라지고 바로 그 자리에 맥아더 동상이 세워졌으니 안타깝다.

세창양행2.jpg


4.러시아 공사관


러시아가 1884년에 조선과 수교함에 따라서 서울 정동에 대규모의 공사관을 신축하게 되는데 사바틴은 1885년에 이 공사관의 설계에 착수한다러시아 공사관은 18962월에 고종이 친일파 내각의 횡포와 민비시해의 충격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 "아관파천"을 감행함으로서 역사의 한 복판에 서게 되었다. 


위용을 자랑하던 공사관은 폭격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탑 일부만 남아있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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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공사관


5.인천의 만국공원


만국공원2.jpg
 
    만국공원...1888

1885년에 러시아 공사관을 설계한 후 1888년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응봉산 언덕에 공원을 만들기로 하였으니 이 공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바로 만국공원 이다.  이 공원의 설계도 사바틴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 이다.

세창양행 사옥과 멀리 보이는 죤스턴 별장(인천각)..두 건물 사이의 공간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서울(한양) 시대>

1885년에 뮐렌도르프가 면직된 후에도 그는 계속 제물포에 남아있다가 18884월에 인천시대를 마감하고 서울로 올라온 후 조선정부의 궁궐의 증축이나 보수를 담당하는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6. 조계지의 측량...1888

1883년 제물포에 외국인의 거주구역을 나누는 각국 조계지가 만들어 졌는데 사바틴은 이 조계지의 측량에 나서 188872일 정밀한 조계지도(大朝鮮仁川濟物浦各國組界地地圖를 완성한다. 
 119일에 미국,일본,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 및 청국이 서명한 지도에는 사바틴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조계지도.jpg


7. 파고다 공원(탑골 공원)의 조성

탑골공원은 사비틴이 설계한 서울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다..다만 제물포에 조성된 만국공원보다는 늦게 만들어졌다.
만국공원을 설계한 사바틴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시공 책임자는 궁내부 토목국장 남궁억 였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그런데 사비틴은 189510월에 전혀 예기치못한 사건에 끼어들어 그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바로 그가 시해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사바틴이 도맡아서 시공하기로 한 공사에 관문각(觀文閣)공사가 있었는데 이 공사는지금까지 외국인이 발주한 공사를 시공하던 것과는 달리 조선정부에서 발주한 공사이고 당연히 조선인 관리들과의 협조가 요구되었다.
그런데 조선인 관리들과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고 봉급마져도 받지못하여 재정적 곤란을 크게 받는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었다

결국 사바틴은 귀국을 결심하지만 귀국여비마져도 문제가 되어 결국 1893년도에 이르러 해관에 복직하게 된.

 과정에서 사바틴에 대한 고종의 신임은 변함이 없어 해관에 근무하던 그를 불러들여 경복궁의 궁궐 호위대장으로 임명한다. 여기에는 궁궐안에 외국인을 많이 두는 것이 열강, 특히 일본의 돌출행동을 견제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작용한 것 같다.

여하튼, 졸지에 호위대장이 된 사바틴은 1년 후에 민비사건의 현장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근대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폭도들이 정문으로 돌격해 들어오자 나의 지휘하에 있던 시위대 병사들은 총을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함께있던 미국인 '다이" 장군도 저항하였으나 중과부족이었다
결국 혼자가 된 나는 살길을 찾아 헤메다가 일본인 폭도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가 나를 해치지 말 것을 간청하였다....."

시해사건이후에 사바틴은 시위대 부대장직을 그만두었는데 다시 해관(海館)의 세무사 자리로 돌아가지는 않았으며 우선은 자신이 예전에 설계한 러시아 공사관의 수리공사를 맡아 시공하면서 정부기관에 고용되지 않고 좀 더 자유스럽게 건축의 설계와 감독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8. 독립문...1896~1897


독립문도 사바틴의 작품이다. 
서재필이 주관한 독립협회의 주문으로 1896년에 설계하여 18971120일에 완공하였다.   
이 때에 현장시공은 심의석이 하였는데 이 사람과는 덕수궁 석조전 공사까지도 인연을 이어진다.

9. 홈링거 양행

독립문의 완공후 사바틴은 다시 제물포로 가서 "홈링거 양행"의 사옥을 건설합니다.
"홈링거 양행" 영국인 사업가 "홈링거"가 세운 회사로서 "세창양행" 과 더불어 제물포의 가장 큰 무역회사 였다.

10. 동청해상기선회사(東淸海上汽船會社)


 "홈링거 양행"은 러시아와 청국(淸國) 양측에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의 동청해상기선회사(東淸海上汽船會社)의 인천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바틴은 홈링거 양행의 건축이 인연이 되어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인천 지점장으로 취직하게 된다.

동청.jpg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로부터 몇년 후 1904년의 러일전쟁의 시초인 제물포 전투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이었을까...하는 것이다. 190428일 제물포에 주둔하던 러시아 군함 "바략" "카레예츠가 공격을 받았을 때 사바틴이 속한 동청해상기선회사의 여객선 "슌가리 도 제물포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전투에서 후퇴하고 돌아온 "바략" 의 함장 "루든예프"는 자침을 결심하고 동청해상기선회사와 협의끝에 "슌가리" 호에도 자침(自沈)을 권고 한.


결국 "슌가리"호는 배에 불을 질러 자침하는데....루든예프 함장과 이 배의 운명을 결정한 당사자가 "사바틴"이 아닐까...라는 설이 있다

어찌되었건 그는 제물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후의 서울의 건축공사....덕수궁의 중명전, 석조전, 정관헌 및 손탁호텔의 건설에도 참여했다.


그림1 시바찐이 설계한 건축물 비교.jpg



11. 덕수궁 중명전...1900

1900년도에 지어진 중명전도 사바틴의 작품이다.


중명전.jpg


원래는 덕수궁 안에 있었는데 도로가 나면서 덕수궁 밖에 위치하게 된 것이지요고종의 집무실로 쓰였으며 190511월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진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12. 덕수궁 석조전...1900

사바틴은 1900년에 착공된 석조전 기초공사에 독립문 공사에서 함께한 궁내부 기사 심의석과 함께 참여하였다다만 석조전 본 공사는 영국인이 주관했으므로 참여하지 못했다

13. 덕수궁 정관헌

같은 덕수궁안에 있는 정관헌은 1900년도에 만들어진 사바틴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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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가 커피를 들며 잠시 세상의 무거움으로 부터 벗어나던 곳이다. 

14. 제물포 구락부

제물포 구락부는 인천에 거주하는 외교관과 상인들이 친목을 위하여 만든 건물로서  사바틴의 설계로 1900년에 완공되었다. 초기회원은 미국인과 영국인등이 십여명, 일본인이 이십여명 정도 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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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Master 18-04-28 17:23
   
진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나오는 굵직한 건물들마다 다 관여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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