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초판1쇄 2001., 3쇄 2007., 도서출판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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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은 어떻게 전략을 짜서 수백만의 적군을 물리쳤던 것일까.
수나라의 군대는 지금의 북경 지방에서 군대를 출발시켰다. 여기서 고구려의 방어선이 있는 요동까지는 무려 2천 리. 을지문덕은 적의 식량 보급을 차단하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아무리 대군이라고 하더라도 굶주려 싸울 힘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옛부터 만리장성 남쪽에 사는 사람들에게 요동은 아주 먼 별천지 같은 곳이었다. 수나라 군대는 이 먼 곳에 와서 빨리 전쟁을 끝내야만 했다. 요동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그때까지 전쟁을 치렀다가는 수나라 군사들이 다 얼어죽기 때문이었다.
612년 1월 북경 지역을 출발한 수나라 군대는 3월 중순 회원진에 이르러서 요하를 건너기 위한 준비를 했다. 고구려군은 요하 동쪽에 방어 진지를 만들고 요하를 건너오려는 적을 맞이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첫 번째 싸움인 요하전투가 벌어졌다.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군을 피하여 요하 하류지역에 서둘러 뜬다리를 만들어 강 동쪽에 대놓고 강을 건너려 했다. 이들을 향해 고구려의 궁수들이 화살을 쏘았다. 고구려 궁수부대는 수나라 1군 총사령관 맥철장을 비롯해서 전사웅, 맹차 등 여러 장군들을 요하싸움에서 잇달아 활로 쏘아 죽였다.
첫 싸움에서 요하를 건너지도 못하고 크게 패배한 수나라 군대는 일단 후퇴하고 뒤에 오는 부대를 기다렸다. 이 사이 을지문덕은 방어태세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4월 중순 수양제가 직접 요하 서쪽에 와서 지휘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적이 압도적인 병력으로 강을 건너는 작전을 시도하자, 고구려군은 일차 목표인 적의 진격속도를 늦추었던 것에 만족하고 요동성으로 퇴각하였다.
난공불락의 요동성
고구려 서쪽 방어망의 중심은 요동성이었다. 요동성은 현재의 요양시 지역으로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는 웅장한 성이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2개의 문뿐이어서 적군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했다.
을지문덕은 고구려군에게 성을 굳게 지키고 나가서 적과 싸워 빨리 이기려고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적군은 요하를 건너자 곧 요동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적군은 반드시 고구려를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만든 새로운 무기들을 총동원했다. 높은 요동성을 넘기 위한 운제와 성문을 부수기 위한 충차, 불을 지르기 위한 화차, 돌을 던져 성벽을 부수는 발석차 등 최신 무기는 요동성의 고구려군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이에 맞선 고구려는 마름쇠를 성벽 주위에 집중적으로 뿌렸다. 마름쇠는 밤송이처럼 뾰족한 쇠촉이 사방으로 나 있어 보병들이나 기병들이 마름쇠에 잘못 찔리면 큰 상처를 입는다. 따라서 적들의 성벽진입을 막는 무기다. 또 성에 접근하는 적군을 향해서 돌덩이를 날려 보낼 수 있는 포차를 성벽 곳곳에 배치했다. 또한 활을 잘 쏘는 고구려인답게 화살부대가 적군을 향해 활을 쏘았다.
수나라 군대가 아무리 공격해 와도 강인한 고구려군의 반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4월 하순부터 시작된 수나라 군대의 요동성 공격을 고구려군은 6월 초순이 될 때까지 잘 막아내고 있었다. 수나라의 수백만 대군은 고구려의 성을 단 한 곳도 함락시키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요동성의 고구려군은 너무나 잘 싸우고 있었다. 다만 이때 고구려의 요동성주가 누구인지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가 없다. 이때 을지문덕은 적이 요동성을 지나 다른 성을 공격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