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과전법을 시행하기 위해 1391년에 전국 양전의 결과는 120만결
그리고 세종대왕이 지리지 작성을 위해 다시 30년후에 전국 양전한 결과 173만결
그중에서 함경도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6%내외군요. 다만 조선건국 초기에는 함경도를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극악의 낮은 숫자가 나오고요.
이때 1등전 1결의 넓이는 고려 하등전 1결의 넓이의 2/3으로, 주척 477.5척 사방의 정방형(9,859.7m2)으로 하였다. - 위키백과
누가봐도 산지의 1결라면 최하니까 1결의 넓이는 대략 1.5만m2 이나오는군요.
만약 평야라고했을땐 평균 1.1 ~ 1.2만정도로 추정하면될듯하구요.
밑에 분 추정한걸 다시 살펴보면 300km2 = 2 ~ 3만결이라고 나옵니다.
(1결이 0.01 ~ 0.015km2)
위에 보면알수있듯이 조선 초에 경작한 결수가 최대 13만이네요.
도량형의 변수 x 고려 - 조선으로 변하면서 생긴 변수등을 계산했을때...
고려때는 전체를 약 80만으로 치고
함경도를 13만의 절반인 6만이라고 하고
함흥과 같은 주요도시를 이미 고려가 소유했다고 쳐서
그 절반만 치면 딱 3만이나와서
2~ 3만결이라는게 그렇게 의미있는 비중을 차지하진않군요.
뭐 결론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