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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3 02:19
[한국사] 우리나라 청동기, 철기 상한 연대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696  

우리나라 청동기 상한 연대가 어떻게 되나요?
이곳 게시판에서 검색을 해보려 하니 글이 너무 많아서 찾기가 어렵네요

한반도에서는 bc 17세기인가 15세기 연대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만주와 요동에서는 20 세기를 전후한 것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거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비파형 동검 자체의 연대는 bc 10 세기를 크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아는데 사실인가요?

청동기 관련 고고물질 문화 발굴 성과, 기사문 등을 종합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봐야 우리 상고사를 이해하는 게 수월할 듯 싶습니다

철기의 경우도 만주도 아닌 한반도에서 중국보다 이른 6~7 세기의 선철, 단조철기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ㅡ 청동기 문화가 중국보다 후지다
ㅡ 철기는 중국에서 전래됐다

는 기존의 상식, 통설과 다른 사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역사대중에게는 전파가 더딘 것 같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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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07-13 02:48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됐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절대연대가 기원전 11~13세기로, 기존에 출토된 청동기 유물보다 약 2~3세기 정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774814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최근 20여년사이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들의 발굴이 거듭되면서 시작 시점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과거엔 중국 북방 고대 오르도스 지역 청동기와의 연대 비교를 통해 기원전 7세기께부터 시작한다고 보았지만, 근래 10세기로 올렸고 최근엔 기원전 10~15세기, 심지어 북한 학계처럼 기원전 20세기 이전으로 시작 연대를 더욱 끌어올리는 경향도 나타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342131


중도는 국립박물관의 집자리 발굴(1980년) 이후 건드리면 터질 수 있는 ‘유적의 화약고’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해(2013년) 11월, 중도 내의 레고랜드 조성부지에서 그 화약고가 터졌다.

1차 조사에 불과했는데, 무려 1400여기의 청동기 시대 유구가 쏟아진 것이다. 고인돌 101기, 집터 917기, 구덩이 355기, 바닥 높은 집터 9기와 마을을 지키는 긴 도랑 등….

고고학적인 의미는 대단했다. 우선 강원도 지역에서 고인돌이 이처럼 무더기로 발굴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집자리에서 ‘둥근 바닥 바리 모양토기’(원저심발형토기)와 ‘덧띠새김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가 확인됐다. 이것들은 유적의 최고(最古) 연대가 조기 청동기시대(기원전 14~12세기)임을 알려주는 지표유물들이다.

게다가 고조선 시대의 대표유물로 알려진 비파형 동검과 청동도끼 등도 출토됐다. 이 또한 남한지역 집터에서 처음 확인되는 유물들이다. 또 짐승이나 적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둘레 404m의 도랑(환호·環濠)도 확인됐다. 이밖에 농사를 지었음을 알려주는 경작 유구까지….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는 이 완벽한 세트의 청동기 마을 유적을 보고는 “마치 역사 시대의 궁성 같은 세계적인 유적”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513718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 위치한다. 1972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팔당댐 수몰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5기의 고인돌〔支石墓〕을, 2001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2기의 집자리〔住居址〕를 발굴하였다.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하중도(河中島)이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양수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대규모 취락과 그 당시의 무덤들이 한 곳에 함께 있어 중부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 밑 15㎝되는 무덤방에서 찾아진 숯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3900±200 B.P.로 밝혀져 주목된다.
 
목포대 박물관이 발굴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은 수집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교정연대가 2630년, 2365년 무렵이 된다. 발굴자들은 이 연대가 지나치게 높게 나왔기 때문에 이용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방사성탄소측정연대는 과학적으로 얻어진 연대이므로 이 연대를 기준으로 종래의 연대들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윤내현 교수가 근거로 삼고 있는 서기전 2500년경의 청동기 문화유적이 한반도에도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두 개의 유적이 바로 양수리 유적과 장천리 유적이다.
 
청동기 문화 = 고조선 이라는 도식이 윤내현 교수에게 있는 듯 하다.

http://m.blog.naver.com/kayche/220681969863

13점의 영암 독천리 거푸집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립박물관이 아닌 숭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1960년대 초, 한 골동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와 거푸집을 살 것을 제안하지만 예산이 없던 중앙박물관은 그 거푸집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 유물은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김양선 박사가 구입해 국외 유출은 막을 수 있었다. 골동품상은 출토지가 영암 독천리라고 했지만, 김 박사는 끝내 그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다. 영암 거푸집에 가끔 전(傳)자가 붙는 이유다.

이 거푸집은 영암에 지금의 광양제철소와 같은 청동 주물공장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2003년 화순 백암리에서도 2점의 청동 유물이 출토된다. 출토된 청동창은 국보 제 231호인 영암 거푸집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그동안 거푸집으로 만들어진 청동 유물을 찾는데 번번이 실패했지만, 전남대박물관이 화순 백암리 청동창이 영암 독천리 거푸집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했다. 청동창과 거푸집이 2000여 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한 셈이다. 청동창과 거푸집의 입체 사진을 맞춰보았을 때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청동창날의 길이가 거푸집에 비해 1.4㎝가 짧을 뿐이었다. 이는 청동창을 실생활에 직접 사용하여 닳아 없어진 결과로, 청동창이 의례용이 아닌 실생활에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http://m.jnilbo.com/article.php?aid=1478098800509718010
TheCosm.. 17-07-13 02:49
   
청동기에 대한 국내의 연구자료가 상당히 방대한 만큼, 학자나 연구자에 따라서 수많은 연구와 주장이 얽혀있다보니 이를 정리하여 데이터 베이스화 하는 노력이 필요하기는한데... 그러고보니 이런 작업을 하시는 개인이나 사이트가 있었던가 싶네요. 각자의 주장과 연구만을 어필하시는 경우가 많다보니, 찾아보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아, 그리고 많이들 혼동하시는이야기이지만. 청동기가 주류였던 시대에도 철은 같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세계사 관점에서보면 아예 청동기를 건너뛰고 철기부터 시작한 지역도 있을 만큼, 철기 자체는 매우 흔하였습니다. 단지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발달이 청동기보다 늦어져서 시대적 구분을 임의로 청동기, 철기로 나누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런데, 기존에 청동기 문화가 중국보다 후지다라던가 철기는중국에서 전래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주류였었나 싶긴 합니다. 매장량이 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 사용처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는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권력 집단 또는 일부 전사 집단에 한정되어있었기에 비교우위를 따지기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비율의 합이나 불순도를 두고서 따질 수는 있겠지만... 청동은 그 제조방식이 주조에 치우쳐 있어서 제 용도에 맞게 잘 만들만큼의 기술력만 있어도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세계사적으로 청동기 발달이 미약하거나 뒤쳐진 지역은 상당히 많기에 말입니다.

철기 자체는 우리나 중국이나 청동을 가지고 주물럭주물럭 하던 때부터 만지고 있었다는 건 앞서 이야기하였고,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건 아마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전래를 의미하는 것일 것같습니다. 철기는 청동기와 달리 단순히 주조에서만 끝나는 제품이 아닌지라, 가공 등의 기술에 따라 활용도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는데.

전래되었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난감하긴 합니다. 불순물이 적고 가공이 잘된 철기를 무기화하는 시점에선 중국이 빠른 것은 사실이기에, 이에 대한 자극이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라고 해석해야 할지. 좀 더 자료를 찾아봐야겠습니다.
     
감방친구 17-07-13 02:57
   
중국 철기 시대 bc 5세기(회주철)
한국 전래 bc 3세기
ㅡ 이게 기존 학설

함북 무산군 유적 bc 6세기 쇠도끼, 쇠창, 쇠끌 등 출토(선철)
특히 쇠창의 경우 버들잎 모양으로 우리 청동기 문화가 이 시기 철기 문화로 연계됨을 보여줌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청동기 시대 주거지에서 '단조 철점 출토' bc 7세기
          
TheCosm.. 17-07-13 03:14
   
북한이 이것들을 토대로 한반도의 철기 역사가 bc 10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중국쪽은 bc 5세기가 맞나요? 제가 본 자료에는 bc 8세기즈음부터라고 있던데 말입니다.
               
감방친구 17-07-13 03:23
   
님 말씀대로 철기 상한 연대는 낯짝에 철판 깔았다면 올리기 나름이고 중국은 역사왜곡을 숨쉬듯이 하는 족속이라

어찌됐든
중국것보다 앞선 그것도 당시 중심지 요동도 아닌
한반도에서 선철, 단조철기 유물이 발굴됨에 따라

"한나라의 우수한 철기에 위만조선이~" 어쩌구 하는 개소리는 설자리를 잃은 것이죠
                    
TheCosm.. 17-07-13 03:33
   
저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철기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좀 더 연결고리가 많이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앞서 함북쪽 철기는 주조 철기로, 강원쪽 철기는 단조 철기인데. 주조 철기는 청동기 때의 주조방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사용하였다고 감안해도 무방하지만, 단조의 경우엔 단조 기술과 밀접한 고경도, 강도의 작업 도구가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단조 철기가 발견된 지역에서는 이러한 모루(또는 모루 역할을 하던 받침대)와 가공 도구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단조 공정이 이루어졌는가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청동기 시대에 '주물'을 기술적 연결고리로 중요시 여기며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기의 단조 기술은 이러한 작업 도구들이 중요시 되긴 합니다.
                         
감방친구 17-07-13 03:38
   
그래도 아예 유물조차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우리 학계나 일반인들은 이상하게도 우리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든 낮추고 후드려 까고 보는 습성이 있어요
                         
도배시러 17-07-13 03:41
   
단조 이전에 주물작업 과정이 연결됩니다.
기술적으로 잘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주조전 용해 작업이나 단조전 용해작업이 동일하게 보이죠.
단조전 용해는 순도 높은 철을 얻는 과정이라 주로 조개패총 주변에서 작업합니다.
                         
TheCosm.. 17-07-13 04:02
   
주물 작업과 마찬가지로 단조 작업도 상당히 고된 작업이기에, 작업 도구와 별개로 보통 이러한 철제 제품들을 다루던 기술자 집단의 장소(터)가 있었을 탠데 말입니다. 이를 보다 면밀하게 확인하려면 북한쪽을 확인해봐야 하는데... 지금은 갈 수 없으니 여러모로 아쉽네요.
꼬마러브 17-07-13 06:41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한창균 교수는.. 비파형동검의 개시 연대를 서기전 16세기까지 올려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비파형동검유적에서 나오는 질그릇이...
여대시 장해현 상마석 유적에서 동일한 것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적의 방사성탄소측정 교정연대는 서기전 1555년이지요.

실제로도 길림성 영길현의 성성초유적의 연대는 (가장 오래된 비파형동검 유적)
기원전 1275년 입니다.

따라서 비파형동검의 개시연대는 최소한 13세기까지는 올라가야 타당하지요.

또한 하가점하층문화 중 하나인 적봉시 지주산 유적의 연대는 서기전 2410년 입니다. (청동기문화유적임)

사실 만주까지 갈 것도 없이 한반도에서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유적의 교정연대는 2325년입니다. 이 역시 청동기문화 유적이지요.
또한 목포대학 박물관에 의해서 발굴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유적의 연대는 2630년,2365년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주류사학에서는 이 연대가 지나치게 높게 나왔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과학이 거짓말을 하니?)

북한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가 기원전 30세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있습니다. 뭐 신뢰는 개인의 자유지요.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한반도 - 만주의 청동기문화 개시연대는 최소한 기원전 25세기로 잡아야 합당합니다....!
(이는 중국의 개시연대보다 조금 빠른 것입니다.)

청동기문화가 개시된 이후 약 170여년 후 고조선이라는 최초의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꼬마러브 17-07-13 06:47
   
다만 이런 유적들이 발굴된지 수십년이 넘었으나..

희안하게도 우리나라학계에서는 수동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청동기개시연대가 중국이 것보다 빠를리 없어! 라는 사대주의적인 관념 때문일지
아니면 단순히 식민사관일지..

이러한 사료들을 전부 무시한채 고조선의 건국 연도(서기전 2333년)가 과장됐다고 말하는 주류학자들

저 유물을 발굴한 연구진들과 대학의 교수들도 전부 환빠가 되겠지요
징기스 17-07-13 07:16
   
우리나라 청동기와 철기는
초기에는 무조건 시베리아를 통해서 들어온 거지 중국 하고는 무관하죠.
중국은 나중에 추가로 수입된 것일 뿐이에요.


이렇게 보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나라 갱단 학자들은 이런 주장도 '유사사학'임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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