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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07 00:12
[한국사]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 서라벌 3D 복원도.jpg
 글쓴이 : 샤를마뉴
조회 : 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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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왕조가 하나의 수도에서 1000년을 지속한 경우는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아주 드문 경우인데요, 그중 하나라 신라의 서라벌입니다. 

당연히 당시 통일신라 전체가 저렇게 기와집 투성이는 아녔습니다.

이건 당시 수도의 3D 상상도입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수도 금성에서 비가 오는 날 

가가호호의 처마 밑만 따라 걸으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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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거버거 17-07-07 08:28
   
100년전 조선 한양보다 훨 낫네요
사진보면 초가집 90프로에 길거리엔 오물 천지던데
역사가 퇴보할수도 있다는 좋은 예 같네요
서양에서도 로마때 건축 위생상태가 회복되는데
천년이상 걸렸다던데
     
호랭이해 17-07-07 09:43
   
90%초가집이란건 당시 사진을 제대로 본게 맞나 싶구..
길거리에 오물천지인건 조선만 그런게 아니라 개,소,말 같은거 키우다보니 어쩔수 없구요 설마 사람이 한양 길바닥에 똥을 싸고 다녔겠습니까
          
징거버거 17-07-07 10:41
   
구한말 선교사 제이콥 무스는 서울의 80프로가 초가집이었다고
했습니다 90프로는 전국적인 비율 얘기였네요 80프로로 수정하죠
길거리 오물천지인건 진짜 길에 노상방뇨해도 잡질 않았습니다
하수도가 없어 개천에 변을 뿌려 온 개천이 똥물이었고요
서양도 18세기까지 길에다 변 뿌려서 길가던 사람이 맞고 그랬습니다
19세기에도 정화조없이 템즈강에 하수도 써서 수많은 런던시민들이 콜레라로 죽었죠
구한말 외국 탐방자들이 공통 지적하는게 거리와 개천의 똥입니다
지들도 100년전 겨우 치우기 시작했으면서 더럽네 ㅉㅉ 이렇게 쓰죠
그런면에서 사극은 진짜 판타지입니다
실제 타임슬립해서 조선시대로 가면 아 더런놈들 하면서 욕이 한사발은
나올거에요
               
내일을위해 17-07-07 12:24
   
다 맞는말인데 개천에  똥을 뿌렸다는건 맞지않습니다.  똥은 당시로는 귀한 거름입니다.  여름부터 두엄에  묵혔다가 겨울지나  봄에 밭에 뿌렸죠.  개천에 버려진건 하수물에요.
               
호랭이해 17-07-07 13:44
   
80%; 분명히 초가집 비율도 많지만 80%는 에바인거 같습니다

인터넷에 구한말 사진 넘쳐나니 한번 쭈욱 보고오세요
일단 사진 하나 보여드릴게요

                    
징거버거 17-07-07 14:13
   
▲1899년 서울에는 모두 4만2천8백76채의 집이 있었는데이중 69.6%가 초가집이었으며 30.4%는 기와집 또는 반기와집이었다.

통계청 자료니 70프로가 맞겠네요 근데 반기와집도 절반은 짚으로 덮여있으니 사진속 기와집은 아닙니다 반기와집 합치면 선교사가 80프로 말한것도 그닥 틀리진 않는데 에바랄게 있나요?

북한 평양사진 들이밀면서 북한전체가 이렇다는거랑 뭐가 다른지?
참 한심한 거 다보겠네
                         
호랭이해 17-07-07 15:20
   
제가 잘못알고 있었군요 70%네요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기분 상하시게 한것 같아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한데 통계청 자료 링크좀 알려주실수 있나요?
                         
징거버거 17-07-07 19:44
   
아닙니다 날이 더워서 예민한가봅니다
통계로 본 개화기의 경제 사회상ㅡ94.7.29
통계청 자료원문은 단행본이라 도서관에서 열람하거나
DBPIA 접속권한 있으셔야되고 위 구문은 중앙일보에서 기사로
발췌해 놓은 것입니다
     
shrekandy 17-07-07 20:28
   
조선 말기랑 비교를 하몀 되나요 다 망해가던 상태였는데...조선도 전성기 시절 그림이나 중국 기록보면 기왓집도 많고 그런디...
정욱 17-07-07 08:33
   
밑에서 3번째 - 혹시 고조선 마차?
conelius2030 17-07-07 09:16
   
멋지네요
네발가락 17-07-07 11:58
   
멋지긴한데
저게 어떤 고증을 거처서 작업을 한건지 모르겟네요
그냥 상상속의 이런 멋진 모습이엿을 거라고 만든것인지 ㅋ
     
TheCosm.. 17-07-07 13:02
   
건물 구조나 양식에 대한 고증은 어느 정도 배제되었다고 감안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목조 건축물은 오랫동안 유지되기가 힘든데, 그마저도 여러 환란으로 인해 어지간히 파괴된지라 복원에 참고할 자료가 제한적이긴 합니다.(설계도나 건물의 설계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그림, 기록 등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있어도 매우 부분적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주요 유적(왕성, 능, 절 등)을 제외한 민가의 규모나 배치 등도 세세한 맥락에선 고증과 맞지는 않습니다. 주요 도로와 구역의 고증은 감안하여 나름대로 배치한 것이겠지만, 이 또한 아시다시피 경주의 대부분 유적들 위에는 현대의 건축물들이 있고, 또 옛 건물 위에 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는 등(신라->고려->조선 사이에서 있었을 반복적인 건축)으로 인해 집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건 해외의 어느 고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니 크게 게의치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도시 자체가 보존된 경우는 제외.)

이런 3D 고증은 현대인들이 과거 도시나 건축의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라, 대략 '저 정도 도시 규모는 되었겠지.'하고 생각하시면 편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을위해 17-07-07 12:16
   
실제 우리 역사상 가장 사치한 시절이죠. 금성내에는 일반인들은 집을 지을수없었고 전부  귀족들이었다네요. 그들의 사치는 어마어마했다합니다.  장작을 안쓰고 숯만  고집했다하니 대단한거죠. 금성전체가  기와지붕으로 덮여있고요.
홀로장군 17-07-07 14:11
   
누가보면 경주가 서울 만한줄 알것네

이거 복원한답시고 들이대는 넘들은 무조건 사기꾼이다
bluewolf 17-07-07 18:42
   
삼국이 합쳐진 후(물론 불완전 통일이지만) 통일 신라 때 금성(서라벌)의 인구가 백만이었다고 하던데

중국에 있던 낙양 이나 장안 만큼 번성했다는게 거짓말이 아니죠~

오히려 조선의 한양은 이 당시의 경주와 비교한다는게 우스운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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