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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8 14:12
[한국사] 낙랑군이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겨졌다? 교치설 반박 모아봄.
 글쓴이 : 식민극복
조회 : 1,339  

 『자치통감』진기(晉紀)10 민제(愍帝) 건흥(建興) 원년(313) 4월조
"요동(遼東)의 장통(張統)은 낙랑·대방의 두 군(郡)에 대하여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구려왕 을불리(乙弗利=미천왕)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였으나 여러 해가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낙랑군의 왕준(王遵)이 장통을 설득하여 그 백성 1천여가(家)를 거느리고 모용외(慕容[廟-朝+鬼])에게 귀복(歸服)하였다. 이에 모용외는 (자기가 지배하는 영역 안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장통을 낙랑태수로, 왕준을 참군사(參軍事)로 삼았다."

이걸 근거로 낙랑군이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겨졌고, 태강지리지 및 중국 사료들은 이걸 참고해서 낙랑을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한거라는게  주류사학계의 입장입니다. (이른바 교군설, 교치설)

그래서 반박을 모아봤습니다.


1. 중국 사료들은 낙랑군 조선현이 있던 자리를 지금의 하북성 노룡(蘆龍)현이라고 말한다. 교군설은 개인으로 말하면 평양 대동면에 살던 ‘조선’이 하북성 노룡현으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조선’의 주민등록등본에 지금은 하북성 노룡현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는 평양 대동면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북성 노룡현에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많지만 그 전에 평양 대동면에 살았다는 사료는 없다는 사실이다. 교군설 자체가 사료로는 입증할 수 없는 공상이란 뜻이다.


2. 이 사료는 고구려 미천왕 때 장통이 점거했다는 낙랑군과 대방군은 평안남도나 황해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천왕 때라면 고구려가 이미 요동반도는 물론 그 서쪽 상당 부분까지 차지한 상태였다. 낙랑군이 평양지역에 있었다면 장통이 1000가구를 거느리고 자국 영토를 지나 지금의 베이징 부근인 고대 요동에서 활동하던 선비족 모용씨에게 가는 것을 눈 뜨고 구경하고 있었겠는가?


3. 1000가구의 낙랑인이 이주한 것을 가지고 낙랑군 전체가 이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낙랑군의 인구에 대해 ‘한서지리지’ 낙랑군 조는 “6만2812호에 40만6748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략 한 가구의 구성원이 7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즉, 장통이 거느리고 간 1000가구는 7000명 정도라는 뜻이다. 40만7000여 명의 낙랑인 중에 7000명이 이주한 것을 낙랑군 전체가 이주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나머지 40만 명은 어디로 갔나?


4. 『태강지리지』는 위‧오‧촉 삼국을 통일한 서진 초대황제인 무황제 태강(太康, 280~290)년간에 편찬된 지리서이므로, 한나라 낙랑군이 요서(창려)로 이동한 서기 313년 보다는 30여 년 전에 편찬된 책이다. 따라서 『태강지리지』의 낙랑군 관련기록을 313년 요서로 교치된 후의 낙랑군 관련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연대가 맞지 않는다.

5. 황순종: 이번에 같이 간 강단주류사학을 대표해서 온 사람들은 낙랑군 수성현이 갈석산에 있었다는 기록을 믿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낙랑군은 원래 평양에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측에서 갈석산에 수성현이 있었다는 자료가 쏟아져 나오니까 슬그머니 평양의 낙랑군이 나중에 대륙으로 이치(교치=교군), 즉 이사 왔다는 식으로 하는 이치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근거로 삼는 사료에 나오는 것은 요동에서 요동근처로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확한 문헌적 근거도 없이 슬그머니 평양에서 요동으로 이치 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낙랑군의 왕준이 장통에게 얘기해서 모용외에게 낙랑군 1천 가구를 들어 귀부했고 모용외가 이 1천 가구를 가지고 새로 낙랑군을 설치했다. 이것을 평양에서 요동으로 낙랑군이 옮겨왔다고 한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바다로 이동했다는 얘긴데 당시 고구려의 해군이 막강해서 불가능하다. 더구나 하나의 군이 몇 십만 명이 되는데 몇 천명가지고 군을 설치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6. 문성재: 교치론은 근거가 박약하다. 교치주장의 근거를 <자치통감>에 나오는 것 가지고 하는데 거기에는 ‘교치, 이치, 교군’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1천호 정도가 옮겨갔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치라기보다는 안치라고 봐야 한다. 오늘날 시리아 난민들의 안치와 같은 경우다. 수용소와 같은 것이다. 1천 가구를 아무리 늘려도 7천여 명밖에 안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군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안치한 수준을 가지고 교치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교치설 자체가 평양에 낙랑군이 존재했다는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굉장히 박약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강단주류사학의 주장 근거가 고고학유물, 교치설, 갈석산 정도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근거는 객관적으로 볼 때는 없다고 본다.


출처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63869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4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Print.html?idxno=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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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6-28 15:01
   
식민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 마치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이 '정당하고 합당한 통설' 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사실 한사군의 위치는 학계에서도 아직 확정짓지 못한 문제입니다. 여러 가지 설들이 격하게 충돌하지요. ( 정확히는 충돌할 이유도 없는 것을.. 식민사학자들이 억지를 쓰며 학계를 장악하고 있어.. 부딪치는듯한 양상을 보이는 거지만...)

1990년 이후에는 교과서에서도 삭제된 이야기입니다.
뭐..앞으로도 점점 수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식민사학은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낡아빠진.. 한사군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 뉴라이트 등.. 모두 쓰레기통에 넣을 차례입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거지요.
비상식의 상식화 말입니다.
     
도배시러 17-06-28 15:45
   
정부예산으로 논문 발표한 사람들은 강제로 공개토론회 참석을 시켜야 합니다.
          
꼬마러브 17-06-28 16:17
   
동의합니다. 학자들의 연구비 대부분은 우리의 세금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학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학문적 성과를 알려줘야할 의무를 갖습니다. 이는 대중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의무이기도 합니다.

만약 대중이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금으로 호위호식하는 학자들이 도리어 대중들을 멸시하는 양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권리를 넘어 의무적 성격을 갖는 겁니다.

학자와 대중이 이러한 의무를 착실히 이행하면.. 진실은 저절로 밝혀질 것입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문제가 되는 대다수의 부분은.. 학자들이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거지요.

빨갱이 때려잡기식의 관행과 환빠몰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대중 눈가리기와  대중 멸시, 자신과 다른 의견은 철저히 뭉개버리는 학문적 폭력과 발전이라곤 찾을 수 없는 학문적 태만.. 이제 더이상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정욱 17-06-28 17:59
   
죄다 지나사서에서는 지금 하북지방에 낭락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징기스 17-06-29 11:05
   
일설에 의하면 교치설도 사실은 천관우 작품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 작품이랍니다. 천관우가 자기 작품인 것처럼 떠들고 강단놈들도 진상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천관우 앞세워서 계속 이용해 먹는 중이라고 하네요 ㅉ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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