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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8 02:22
[한국사] '마한'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3,239  

어제오늘 여기저기서 역사 글을 읽다가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한반도 서남부를 차지했었던 마한에 대한 글들을 많이 읽어봤는데요

궁금한 점이 많네요.

원래 한반도의 서남부를 장악하고 있다가 백제에 밀려 전라도를 중심으로 존속한 나라로 알아요.

그러다가 백제 중기에 완전 먹힌 게 정설이었는데 최근 고고학적 사료를 바탕으로 설이 뒤바뀌었는데,

백제 후기인 6세기 말까지 전라남도 지방을 독자적으로 마한이 차지하고 있었고 전라남도 해안가와 내륙에

독자적이고 거대한 고분들이 6세기까지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궁금한 건 마한이라는 나라가 고구려/백제/신라와는 뿌리가 다른가요?????

마한에 대한 기록을 보니 제가 아는 한민족의 조상과는 풍습이나 문화가 많이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고구려/백제/신라는 그 뿌리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발현하여 한반도 전체로 퍼지게 된 거고

마한은 한반도 남부의 토착 세력인 건가요? 아니면 남방계 민족이 한반도에 흘러들어와 마한을 세운 건가요?

중국의 기록에서도 그렇고 고구려/백제/신라는 문화도 비슷 의복도 비슷하다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마한에 대한 기록을 보면

"영주는 보물로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거나 목과 귀에 걸기도 하지만 금은과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중략) 상투를 트는데 그 모습이 경병(炅兵)과 같다. 베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ㅡ 《삼국지》위지 동이전



 《삼국지》에는 "남자는 늘 문신(文身)을 한다."

 《후한서》에는 "남쪽에 왜(倭)와 가까이 있는 자들은 문신을 했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기록을 보면 남자들은 문신을 한다고 나와 있고, 또 다른 기록은 남쪽에 왜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문신을 했다고 나오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고구려/백제/신라인들은 몸에 문신 같은 걸 하지 않은 걸로 알거든요?

마한에 왜인들이 많이 건너와서 살며 마한과 왜 서로 인적 교류가 많아서 저랬던 건지 (일본 토착민들이 문신하는 풍습이 있는 걸로 압니다)

아니면 마한의 원래 풍습이 문신하는 거였는데 그게 왜로 건너가서 왜인들이 오랫동안 문신하는 풍습을 간직한 것이고 마한인들은 백제에 흡수당하며 그 풍습이 없어진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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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도도 있는데, 이걸 보면 왜인들이 전라남도에 많이 건너와 살며 서로 섞여서 저렇게 전라남도와 규슈 북부에만 저런 유전자가 나오는 건지

아니면 마한인들이 일본에도 건너가서 저런 유전자 지도가 나오게 된 건지

아니면 남쪽에서 올라온 민족이 전라남도와 일본 동시에 정착한 건지


마한인들은 도대체 뿌리가 어떻게 되는 거죠?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과 뿌리가 같지만 그냥 풍습만 저런 건지 아니면 원래 뿌리가 다른 민족인데 후에 그냥 백제에 흡수당해 자연스레 한민족의 한 갈래가 된 건지.

문신은 원래 우리도 했던 건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신하는 풍습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마한이 원래 고구려 백제 신라와는 뿌리가 달라 문신하는 풍습이 있던 건지

여기저기 다 찾아봐도 마한만 유독 다르더군요.

역사 고수님들 답변 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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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붓 16-12-28 03:55
   
제가 알기론 문신 퐁습이 마한이 아니라 왜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변한인가 진한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요미지훈 16-12-28 03:58
   
문신은 원래 동남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왜구 등에서 해온거라는데
아래쪽에 왜구들이 좀 살았었나보네요.
귀요미지훈 16-12-28 03:59
   
     
흑요석 16-12-28 09:57
   
좀 옛날 자료 같아요! 근초고왕이 4세기에 전남 지방의 마한을 병합했다는 설은 이제 뒤집힌 걸로 압니다.

6세기까지도 전남엔 독자적으로 마한이 존재했다고 사료를 통해 바뀌었더군요.

나머지 부분은 잘 읽었습니다.

마한,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ㅋㅋ
          
비좀와라 16-12-28 10:26
   
마한의 존립여부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 귀찮아서 관여를 하려하지 않았지만...

일단 우리 기록에는 온조가 마한을 제압한것이라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논쟁은 종결되었는데 이걸 다시 불붙인것이 이병도로 한국의 기록을 부정하고 외국의 기록을 중시해서 나온 이론입니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왕성터가 발굴되지 않기에 마한이 온조대에 병합되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지만 이병도의 학설을 부정하는 것이 금기시 되는 기존의 강단사학 때문에 마한이 존재 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왕성터나 기타 왕성에 관한 유물이 발굴되지 않기에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고 저들은 온조대에 병합되어 백제의 세력으로 편입되어 존재 했다는 것이 맞는 추론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마한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 이 학설에서 임나 일본부나 김현구의 남조선 경영설이 나오는 것 입니다. 이병도가 채택한 외국의 사료 중에는 일본서기의 기록도 있기 때문이죠.
               
흑요석 16-12-28 15:18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학자들도 부정적으로 보는 걸로 압니다.

전라도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고분들과 왜인들의 유골은 그들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게 아니라

백제가 왜의 귀족들을 데려와 관료로 부렸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그 왜인들은 정착해서 살다가 죽어서 그런 고분들과 유골을 남긴 게 아닌가 해요.
               
꼬마러브 16-12-28 15:26
   
예. 저도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만
일단, 삼한은 남한의 토착민족이 아니라 북쪽에서 이주한 세력입니다. 중국기록을 보면 초기삼한의 위치는 만주지역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삼국유사 마한조 중..

위지에 이런 말이 있다. 위만이 조선을 치니 조선왕 준은 궁인과 좌우에서 모시는 가까운 신하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다. 남쪽으로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했다.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라 했다.

남한지역에 위치하였던 마한의 뿌리는 조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이들은 온조왕시기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하였고, 근초고왕시절 정벌하였다는 마한은 일본열도로 이주한 마한으로 보아야함이 타당합니다. 즉 이는 근초고왕시기 백제가 일본열도로 진출하였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서기가 그 증거입니다
ㅓㅏ 16-12-28 07:32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광주본 천자문에 보면 '님금王'이 '긔자王'으로 나옵니다.
周書에 기록된 '鞬吉支'는 '큰긔자(大王)'의 중국식 취음표기인 것이지요.
술사가 송악산 왕륭의 집앞을 지나가며 ''긔자를 심을 곳에 삼을 심었구나'하니까 왕륭이 버선발로 좇아나옵니다. 결국 술사의 훈수대로 '긔자(王) 왕건'를 낳아 고려왕조를 열게 되지요.
 '긔자(王)'의 어원은 '箕子'입니다.
마동(薯童)이 체발(剃髮)하고 찾아간 경사(京師)는 경도(京都) 서라벌이 아니라 대륙의 왕검성, 즉 검터(險瀆)이지요. 
선화공주는 진평왕이 아니라, 장평왕(章平王) 기윤(箕潤)의 세째 딸이고, 말통대왕(末通大王) 마동(薯童)은 무왕이 아니라 무강왕(武康王) 탁(卓)입니다.
대륙에서 기자조선(箕子朝鮮)에게 개발려서 도망친 진한의 망국노들이 신라이고, 대해모수와 야합해서 단군조선 갈라 먹었다가 위만에게 개발려서 제 2의 검터(險瀆), 즉 한반도 검마터(金馬渚) 익산으로 도망친 것이 바로 무강왕(武康王) 탁(卓)의 '(中)마한'이지요.
대륙에 남은 세력들이 姓을 갈고 북쪽으로 달아나서, 신라처럼 '濊王之印' 얻었다고 뻥카치며 세운 나라가 바로 蔚仇台, 依慮의 '부여'인 것이고....위만조선이 漢에게 망한후 단군조선의 옛강토를 수복하는 건 孤竹의 후예인 동명성왕과 주몽의 고구려인 것이고....
     
구름위하늘 16-12-28 07:50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백제가 대륙에서 내려왔다는 설은 많이 들었는데,
신라도 대륙에서 내려온 것은 주장하는 것은 처음들어서요.

혹시 참조 자료나 링크가 있는지요?
          
흑요석 16-12-28 09:49
   
백제를 세운 온조왕이 고구려를 세운 부여계 인물 추모성왕의 아내 소서노의 아들이니 그 뿌리가 북부에서 내려온 거라고 한 것이고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온 추모성왕이 세운 나라이니 역시 북부에서 내려온 거라고 한 거고

신라도 고조선 멸망 후 잔존 세력이 세운 걸로 알아서 그 뿌리가 북쪽에서 내려온 거라고 적은 건데

대륙이라뇨? 중국 대륙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 그런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구름위하늘 16-12-28 12:50
   
흑요석님의 글에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ㅓㅏ님의 댓글에 질문은 한 것입니다.

"마동(薯童)이 체발(剃髮)하고 찾아간 경사(京師)는 경도(京都) 서라벌이 아니라 대륙의 왕검성, 즉 검터(險瀆)이지요"는 백제의 마동과 신라의 선화공주를 의미한다면 신라가 대륙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요.
                    
흑요석 16-12-28 15:02
   
아 모바일이라 잘 못 보고 저한테 한 질문인 줄 알았네요 죄송합니다 ㅎㅎ
          
볼텍스 16-12-28 11:54
   
우선 대륙의 개념을 현재의 중국이 위치한 중원만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한반도 북부, 만주,간도등을 모두 포함하셔야 합니다.

신라의 경우 왕성이 3개 입니다. 박,석,김이죠.
우선 가장 유명한 박혁거세 설화를 보시면, 6촌 촌장이 알천에 모여 나라세울 의논을 하던 중
양산 밑 나정의 우물에서 백마가 절을 하는걸 보고 알을 찾고..등 입니다.
6촌은 선주민이고, 박혁거세의 세력은 말을 숭상하는 또는 기마세력인거죠.
석탈해 설화의 경우는 탄생설화라기 보다 석씨 세력이 서라벌에 유입된 흔적을 보여줍니다.
<아이(석탈해)는 말을 마치자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의 종과 더불어 토함산에 올라가 거기다 돌무덤을 파고 7일 동안 머물렀다. 그런 뒤에 산을 내려와 성 안을 살펴 살 만한 곳을 물색하던 중 호공(瓠公)의 집에 다다랐다.
 그는 호공의 집 곁에 남몰래 숫돌과 숯을 묻고서, 이튿날 아침 관가에다 그 집은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었는데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호공이 들어와 차지한 것이라고 송사를 제기하였다.
 그는 숫돌과 숯을 증거물로 제시하여 그 집을 차지하게 되고 그 소문이 나자 남해왕은 이 사람(탈해)이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맏공주와 배필이 되게 하였다> 입니다
해상을 통해서 들어온 세력이란 것인데, 개인적 의견으로 서라벌의 위치를 고려하면 동남아나 왜보다는 북쪽, 현재의 러시아 쪽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실 겁니다.
고구려의 팽창에 밀려서 남하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 김알지의 경우는 왕성의 설화로는 매우 독특합니다. 우선 본인이 왕은 못되구요.
알지의 뜻의 어린아이란 뜻입니다. 김은 알시다시피 금에서 변화한 것이구요. 여기서 중요한건 김알지의 경우 발견된 곳이 시림이란 곳인데, 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김알지를 찾았다하여 계림으로 바꿔 부릅니다. 박혁거세의 부인은 닭을 토템으로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즉, 김알지 세력의 경우도 외부에서 유입되어 내부세력중 박혁거세의 비를 배출한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뜻이겠죠. 김알지는 워낙 유명하니 ...
               
구름위하늘 16-12-28 12:54
   
아... 신라도 사람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나라 위치도
북쪽에서 남하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군요.
                    
볼텍스 16-12-28 12:57
   
아뇨..잘못 이해하셨어요. 지배세력인 박,석,김이 선주민이 아닌 이주 세력이란거죠.
나라 위치가 남하했다는 글은 어디에도 적지 않았습니다.
                         
구름위하늘 16-12-28 17:55
   
아... 그럼 ㅓㅏ님과는 다른 의견이시군요.

ㅓㅏ님 의견은 무왕(으로 오해받는 무강왕)과 선화공주의 소속 국가를 백제/신라로 각각 보는 건지 아니면 다른 국가에서의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ㅓㅏ 16-12-28 19:46
   
길고 복잡한 역사를 짧게 서술하긴 어렵지요.
조선삼한의 분조관경(分朝管境) 체제에서 한반도 전역은 마한입니다.
마동(薯童)은  이 마한의 왕공귀족, 즉 池龍(거시)의 아들로서 BC 3세기경의 인물이며. 박혁거세 보다 2백여년전 사람입니다.
마동(薯童)이 찾아간 경사(京師)는 당연히 신라도 백제도 아니고 바다 건너 대륙의 연나라 동쪽 기자조선을 말하는 것이지요.
신라나 백제 고구려는 '경사(京師)'라는 표현을 안 쓰고, 또 남자와 정분났다는 동요(추문) 하나로 공주를 귀양 보낼만큼, 경직된 남근윤리가 지배하는 사회도 아닙니다.
대륙의 기자조선이 망한 후에도, 마한 출신 마동의 영솔하에 한반도로 이동하여 (中)마한을 세우고 2백여년간 남삼한(南三韓)을 지배하다가 결국 온조에 의해 멸망 당하지요.
진한 유민으로선 수백년간의 기자조선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셈이랄까.....
               
가남 16-12-28 13:48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092&content_id=rp070310920001&print=Y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시조 혁거세거서간(始祖 赫居世居西干)조에서는,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六村)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6촌 집단의 기원이나 성격에 논의들도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일찍이 6촌을 6개의 씨족(氏族)이며, 그 자체 부족동맹(部族同盟)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6촌 중에서 박(朴), 석(昔), 김(金) 부족의 3촌은 경주의 토착족으로 경주 지역에, 나머지 경우에는 기타 지역에 있었는데, 부족사회의 틀을 바탕으로 완만한 부족 연맹체 사회를 구성한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인류학과 고고학의 성과가 축적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들이 제기된다. 우선 기원전 10세기경에 경주 지역에 이주한 집단이 촌(村)을 형성하였고, 사로국(斯盧國)이 형성될 무렵에는 촌장(村長)이 중심이 된 사로 6촌사회(기원전 7세기-기원전 2세기)가 성립되었는데, 이를 추장사회(酋長社會, Chiefdom) 혹은 촌락사회(村落社會)로 설정한 견해가 있다.

6촌을 포함한 사로의 지배층은 위만조선의 멸망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유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 연구도 주목된다.
     
ㅓㅏ 16-12-28 17:48
   
《北夫餘紀》에 기록된 '燕遣將秦介侵我西鄙至滿番汗爲界(연나라가 장수 진개를 보내 우리 서쪽 변경을 침공하여 만번한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 요 기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기사는 해모수가 기자조선과 야합해 단군조선을 갈라먹을때 기자조선의 영역을 기술한 것으로서 이 때로부터 76년전의 사건인 '한개(韓介)의 침공'을 '진개(秦介)의 침공'으로 살짝 바꿔 곡필 기록한 것입니다.
보을 단군 46년(-315)조의 '韓介率須臾兵犯闕自立(한개가 수유병을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즉위했다'라는 기사가 바로 그것이지요.
'한개(韓介)'의 '개(介)'는 '왜인은 백제의 개(介)이다(倭人百濟之介也)'와 마찬가지 의미로 이해됩니다.
즉 '한개(韓介)'는 당시 '번한(番韓) 기욱(箕煜)의 꼭두각시'로서 '須臾兵(기자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만번한(滿番汗)' 즉 '번한 가득(滿番韓)‘..’번조선 전체’를 먹었다'라는 얘기지요.
이 사건에 앞서 연나라는 번한의 법통을 찬탈하고 진한조(眞韓朝)까지 위협하는 기자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쳐들어왔다가 오히려 패배하고 연공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고 강화합니다. 이 연공자가 바로 '한개(韓介)'인 것이죠.
76년후의 해모수와 기준 원년조의 기사는 이 때의 사실(기자조의 번조선 점령)을 공식화한 것인데, 사관이 차마 이실직필할 수 없으므로 '燕將 秦介'라는 꼼수 곡필로 역사를 호도 은폐한 것이죠.
箕씨 자손들이 箕씨를 쓰지 못하고 奇씨 韓씨 鮮于씨로 성을 갈고, 箕子 胥餘(須臾)가 아닌 奇首 徐于餘(眞奇首可汗)의 후예를 자처한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동화 16-12-28 12:59
   
DNA 와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추론한다면,
원래부터가 한반도 남부(전남.전북일부 , 경남.경북일부지역 , 제주) 이렇게 3지역은 북방계가 아니라고 봐야 된다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가 심심찬게 있어요. 남방계라는거죠.

지금이야 북방,남방계가 다 섞여 있는 상황이고 그게 오랜기간 한반도에서 토착화 된거고요.
북방계라함은..우리가 다 알다시피 고조선을 모태로하여 갈라져 나온 세력들과 이주민들을 말하는것이고,
남방계라함은..고조선이 존재하던 시절 내지 그 이전부터 줄곧 한반도 남부에 살고 있던 부족국가단위의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에요.

그러니까..남방계와 외모가 가장 비슷한 나라 또는 지역은 대만,일본의 관서-관동-규슈-중국의 상하이 이남지역 홍콩주변지역, 베트남지역..들은 다 남방계 동아시아인이라 보시면 되요.

그 남방세력이 아주 오래전 한반도 남부에서도 터를 잡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보는것이죠.

마한이란것은 남방계세력의 근거지와 일부 북방계 세력의 근거지의 연합체 정도로 보이고요.
올리신 그림에서처럼.. DNA상 일본규슈와 비슷한것은..과거 남방계핏줄이었기 떄문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겠죠.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뭔가 혼동하는게 있는데..
우리는 북방계 세력의  자손이다..라고 배웁니다. 그런데 이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말이에요.
고조선을 모태로 내려온 조상의 후손일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수도 있는반면, 그렇지 않고, 남방계적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도 분명 있거든요.

다시 말하면 북방계들이 한반도로 내려올떄, 무슨 대거이주를 하는게 아니라..그 왕족과 귀족 그리고 그들이 거느리는 노비 및 신하들이 같이 내려오는거에요. 그러면 그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대략 어림잡아 수십명 남짓이에요. 많으면 100여명 정도라 보는거고요.
원래 한반도 남부쪽에 살던 토착민인 남방계 사람들은 그거보다는 숫자가 많다는거죠.
그래서 우리나라 DNA 가 전체적으로 일본과 닮아 있는 이유에요.

일본 역시 남방계가 토착민이고, 북방계가 유입이된(도래인) 상황의 국가거든요.
단지, 그 비율이 한반도보다 남방계가 더 높을 뿐이죠.

그러니까 한반도의 원래 주인은 북방계는 아니에요. 남방계가 기본근간이죠. 단지, 북방계의 힘이 있는 세력이 밀고 내려와서 남방계를 점령한거라 보면 되요. 그리고 힘 있는 남방계들은 귀족이 되었고요.
물론, 북방계출신 귀족들도 있고요.

이렇게 보시면 된다고 봐요.
고조선이 존재하던 무렵..한반도는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아니에요. 특히, 서울 이남지역의 한반도는 이미 씨족 내지 부족국가 단위로 남방계들이 터잡고 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그 일본과의  DNA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보네요.
     
아비요 16-12-28 15:03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중간에 수십에서 백명 남짓이라는데서 황당하네요. 중국에서 고구려로 이민온 사람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걸 봤는데 한번에수천호를 거느리고 왔답니다.
역사에 나오는 북방민 남하도 마찬가지에요. 작게 수십 혹은 백명이 내려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요. 오히려 중간에 전부 죽거나 노예될 가능성이 너무크죠.
그런 소규모의 이동은 삼국이 커가면서 주변 국가들을 점령한후 점령지에 임명된 귀족의 이동이나 그정도 규모겠죠. 그런 귀족들은 이미 정복국이 지위를 보장해주니 숫자와 개인적인 힘이 문제가 아니니까요.

여기서 나오는 이동이라는건 적어도 씨족 혹은 집성촌 부락단위의 대이동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작게잡아서 수백 혹은 수천명이 내려와야 적어도 소국을 세우고 나중에 정복활동이 가능하거든요. 내려가는 사람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소수가 내려가서 나를 섬겨라하면 섬겨주는줄 아세요..ㄷ
          
동화 16-12-28 22:44
   
그 역사적 기록이란걸 저는 잘 안믿습니다.
특히, 1000년도 더 지난 고대사의 기록은 100%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봐요.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100만대군을 거느리고..등등 수천호를 거느리고 이주했다던지..등등

고대사의 기록에는 과장이 섞여 있다고 보기 떄문이에요.
숫자에 대한 기록..어떤 인물의 크기에 대한 과장이 가장 많다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100명남짓이란건 큰 의미가 없고 ..그냥 그 정도 수준..그러니까 세자리숫자 정도의 사람들이 한반도로 넘어왔다. 정도로 인식하는게 정확하다고 보기 떄문이에요.

왜냐하면, 멸망한 왕조의 모든것이 다 넘어오는게 아니기 떄문이에요.
떠나지 않고 거기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떠나더라도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중원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시절 한반도로 가는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기 떄문이죠.
그모험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정예요원이라 보는 관점도 있어요.
그 정예요원들이 가진 식솔들과 노비..왕족을 따르는 신하와 그 주변 참모들..또 그 사람들의 식솔들과 노비들..등등 하면 그 정도 숫자가 나온다고 보기 떄문이에요.

그리고, 섬기는게 아니에요. 정복하는거지, 뭔가 잊고 있는게 있으신거 같은데..
그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 인구가 아주 많다고 보기 어려워요. 그 인구들이 모두 똘똘 뭉쳐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결정적으로 청동기문화와 세련된 신석기식 문화가 조합된 상황이 한반도 남부에 터 잡고 살던 남방계들의 일상생활이라 봅니다.

그러면 북부 대륙의 찬란한 철기문화를 가진 세력이 그 숫자가 다소 적더라도..힘이 월등하기 떄문에, 상대가 안되었을 가능성을 염두해 두어야 하죠.  각개격파식으로 그 세력을 한반도내에서 얼마든지 넓혀가고 힘을 기를수 있다고 판단이 되는 상황이죠.

철기문명을 가지고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흑요석 16-12-28 15:08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원래 한반도 남부엔 남방계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걸쳐있던 예맥계과 기타 북방계 민족들이 고조선에서 떨어져 나와 한반도 남부까지 퍼진 게 아닌가 하는.

그리고 중원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한 유이민들은 한 번 일어날 때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씩 되는 걸로 아는데.

어느 때 기록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보면 배 타고 와서 서쪽 해안가에 정착한 유이민들도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방계 남방계의 구분이 외모로 되는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동화 16-12-28 22:52
   
한반도로 이동한 유민들이 수백명은 어느정도 가능해도..수천~수만명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대륙으로 이동하는것도 한계가 있고요, 더더군다나 서해바다를 통해서 이동할려면 그만한 배가 수십 수백척이 존재하거나..아주 무지막지하게 큰 배가 2,3척 존재하거나 해야 가능한데, 그런것도 아닙니다.
결국, 기록이 어느정도 과장이 되었다 보고..실제 고대..특히 고조선 무렵에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많아야 수백명내외로 판단하는 쪽입니다.
북방 남방계의 구분은 생물학적으로 DNA로도 하지만..외모상으로도 불가능한건 아니에요.

 어느 대학의 교수분은 한국의 북방계와 남방계의 비율이 6:4 정도라 한 걸 본적도 있으나..그 연구가 2000년대 중반의 기록이라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인거 같네요.
     
구름위하늘 16-12-28 18:07
   
100명 수준은 너무하다는 것에 저도 한표.
옛날 부족은 같은 씨족이고,
옛날 왕이라는 것은 소수의 지배자가 아니라 다수의 대표 입니다.

신화로 치부되지만 환웅도 3천의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저도 최소 수천명으로 생각.
          
동화 16-12-28 22:55
   
고대사의 기록을 온전히 다 믿기에는 어렵습니다.
               
하늘아아 17-03-28 01:36
   
안믿는다면서 수십~수백명의 지배계층이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오히려 수만 수십만씩 내려왔을수도있지않을까요?
유전적으로 말씀하신부분도 있기에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직접쓰신글에도 6:4비율로 북방계쪽이 더많다고 하셨는데요
이미 수많은 토착세력이 존재하는과정에 수십~수백명수준으로 지배계층을 형성했는데
어떻게 인구비율이 그렇게 나타나는거죠??
동화님이 글쓰신내용대로라면 한반도내 북방계 인구비율은 5프로도 못넘을수준이라고 봅니다.
햄돌 16-12-28 15:53
   
영산강 유역 마한인들이

훗날 열도로 건너가서 더 큰 세력으로 확장한거죠

전방후원분 떡밥은 이미 밝혀진지 오래고요
덜덜덜 16-12-29 00:43
   
대한민국 뿌리가 거의 마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한은 진한(신라) 변한(가야)를 지배했던 나라이고 같은 뿌리를 두고 한반도 남쪽(현 남한)을 점령했습니다

맏형의 마........한

삼한의 한

대한의 한


그리고 마한의 중심지는 경기도 한강유역입니다.

호남, 호서지역이 아닙니다.



동이전 번역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有城柵. 其言語不與<馬韓>同,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有似秦人, 非但<燕>·<齊>之名物也. 名<樂浪>人爲阿殘; 東方人名我爲阿, 謂<樂浪>人本其殘餘人. 今有名之爲<秦韓>者. 始有六國, 稍分爲十二國.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옛날 '秦'의 사역을 피하여 온 망명인이 '진한'에 왔다.

 '마한'이 진한사람에게 동쪽 (경북) 땅을 나누어 주었다.

진한땅의 왕'은 항상 '마한'사람이 하며 대대로 잇는다.

'진한은 이주민에게 있어 고로 마한의 제도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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