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로 표시.
-["내가 풍질을 얻은 까닭을 경은 반드시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경복궁에 있을 적에 그때가 바로 한창 더운 여름철이었는데, 한낮이 되어 잠시 2층에 올라가서 창문 앞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더니,..." ]세종실록에 나온다는데요. 경복궁에 2층 구조물이 있었다는.
[조선 전기의 근정전의 좌우 측문이 2층 문. 지금 남아있는 경복궁은 대원군이 고종 시절의 양식으로 아예 새롭게 만든 근대의 건축물입니다.]
남한산성에 경복궁 근정전 보다 큰 건물이 있었다는 것은 남한산에 대규모의 사찰이 존재 했던가 아님 왕궁이 존재 했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 입니다.
아무리 신라의 건축 규모가 조선보다 크다고 해도 본문에 실린 정도의 건물은 왕궁이나 대 가람의 크기지 절대 일반 건물은 아닙니다.
건물은 짓고 땡이 아니라 지속적인 보수 관리 유지를 해야 하므로 건물의 크기 맞는 적정 인원수를 배치해야 합니다. 당연히 저 정도의 건물이라면 상당수의 인원이 상주 해야 관리가 되는 것 이고 이 인원을 보급하기 위한 다른 건물과 설비 또한 존재 했었을 겁니다.
이 정도의 인원과 건물은 왕궁 이외에는 없습니다. 기존의 학설과 배치되는 발굴 결과로 그래서 신문에 보도되는 것 이고요.
유교가 검소와 소박함을 미덕으로 삼은것은 맞으나 그것이 건물의 단층을 유발 했다고는 보지 않고요. 건물을 단층으로 지은 것은 온돌 때문이라 보여 집니다.
온돌의 여러 장점이 있으나 그 중에서 온돌은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복사열에 의한 난방 시스템이라 여타 다른 민족이나 지역의 난방 시스템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최첨단의 난방 시스템 입니다.
외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 겨울에 온풍기나 벽 난로에 의한 난방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아픕니다. 이것은 이들 난방 체계가 대류현상을 일으켜서 집안의 온갖 먼지를 다 일으키기에 목에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온돌은 그런 현상이 없기에 건강에 일대 혁신을 가지고 온 최첨단 난방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것 이고요.
근세조선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초기에 경제적인 호황을 누린것이 분명 합니다. 보통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 기득권 들은 자신들의 부를 자랑 하기 위해 건물을 화려하게 치장 하느라 돈을 씁니다. 그것이 지금은 인테리어 산업으로 남아 있는 것 이고요.
근세조선 초기에 경제 붐이 일어나서 저마다 건물의 치장을 했었던 것 같고 왕실에서 이를 망국의 병으로 인식하고 건물의 크기를 규제한 것이 바로 신분에 따라서 건물의 규모를 지정 한 것이라 보여 집니다. 모든 역사를 보면 그 나라가 망해가는 징조로 사회의 지배층의 화려한 건물 치장을 꼽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마씨의 진 나라가 통일 후에 망해가는 징조로 황후 가씨 집안의 집안 화려한 건물 치장을 예로 들곤 합니다. 물론 다른 나라 역시 마찮가지로 디즈니 랜드의 모델인 독일의 성을 쌓기 위해서 독일의 영주는 돈을 너무 쏟아 부어서 결국 망했습니다. 타지마할 역시 타지마할을 지은 왕 역시 몰락 했고요.
그래서 유교에서는 건물의 화려한 치장을 싫어 합니다. 망국의 병이라 생각해서고 조선이 일본 건물의 화려함을 찬양 했다는 말은 왜곡 입니다. 찬양이 아니라 비난이고 비아냥으로 유학자들은 화려함을 그리 좋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근세조선의 경제적 호황으로 외부에서 큰 돈이 들어오자 일종의 건축법을 제정해서 확대 또는 화려하게 건물을 짓는 것을 규제 한것이지 사대주의 종속적인 사고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과 똑 같은 것이 네덜란드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엄격한 건축 규제법을 가진 나라 이고요.
가로 53미터 세로18미터 세계최대 기와 벽뚜께 2미터 짜리 건물입니다.
군수창고로 추축하고 있어요
더 발굴하면 이런 군수창고가 몇개가 있고.. 사령부 건물도 나올거라고
당다라에 대항애서 남한상성이 신라 총사령부였다고 하네요
성을 쌓고 몇만명이 사용한 산성이라는데요
이번에 이게 신라유물이 발굴되면서 남한산성의 1500백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산성이라고 밝혀졌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제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