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의 대응과 고구려 옛 지도
만주·한반도의 예맥족이 고구려 건국" 정부의 中 고구려史 왜곡 반박보고서 요약
교육인적자원부가 작년말 완성한 중국의 고구려사 귀속문제 대처방안 연구 보고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모두 8개항에 걸쳐 반박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만들어진 뒤 정부는 보고서 건의 등을 참조해 올해 3월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었으며, 보고서 내용은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중요 대응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은 이 보고서에 실린 중국학계의 주장과 그 문제점을 요약한 것이다.
◆동북 고대 종족 및 고조선 연구동향
<중국 학계> 고조선을 중국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단군신화를 화하(華夏)·한(漢)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점> 기자조선은 실재하지 않았던 허구적 존재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청동기 문화와는 다른 이 지역의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족속기원과 건국과정
<중국학계> 고구려의 선인(先人)을 중국 전설상의 인물인 전욱( 頊)고양씨(高陽氏)의 후예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고는 노합하~대릉하 유역의 홍산(紅山) 문화를 전욱고양씨 집안의 산물이라고 한다.
<문제점> 고구려의 적성총 문화와 홍산 문화는 약 3000년 가량의 연대 차이가 있는 문화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민 집단은 중국에서 이주해 온 집단이 아니라 본래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해오던 예맥족의 일원이었다.
◆고구려와 중국의 조공·책봉 관계
<중국학계> 고구려 왕이 중원왕조에 조공을 하고, 중원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며 이는 고구려 왕이 중원 정권의 관리임을 뜻한다는 것이다.
<문제점> 조공과 책봉은 당시 중국과 고구려 사이에 나타난 외교형식의 하나였을 뿐이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백제, 신라, 왜(倭)의 역사도 모두 중국의 역사가 될 것이다.
◆고구려의 영역과 평양천도문제
<중국학계> 중국, 북한에 나뉘어 있는 고구려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중국학계는 논리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과거 중국 영토 안에서 세운 고구려가 지방할거 정권이므로 나중에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중국사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했다.
<문제점> 중국학계의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바탕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폐기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하는 것이다.
◆고구려의 대(對)수·당 70년 전쟁
<중국학계> 수·당과 고구려 간의 전쟁을 국제전이 아닌 내전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당이 고구려에 대해서는 영토의식, 수복의식, 통일의식이 있었던 반면에 백제, 신라에 대해서는 종번(宗藩)관계만 있었다고 파악하기도 한다.
<문제점>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은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는 고구려의 대륙 정책과 수·당 제국의 세계정책이 충돌하면서 빚어낸 동아시아의 국제전쟁이었다. 고구려는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군사적 팽창 정책에서 나름대로의 대륙정책을 관철해 나간 것이다.
◆고구려 붕괴 후 유민거취문제
<중국학계> 고구려 멸망 후 주민 상당수가 중국으로 들어가서 한족으로 흡수되었기에 중국학계는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점> 고구려 멸망 후 상당수의 고구려인들이 중국으로 흘러갔으나, 신라로 내려와 한국사의 흐름 속에 융화된 수많은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망국민(亡國民)인 그들이 자의적으로 택한 길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발해의 고구려 역사계승
<중국학계>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보지 않고, 말갈국으로 파악한다. ‘신당서’에 발해 건국세력 다수가 말갈족이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또, 발해라는 국호를 중국에서 받았고, 발해 왕은 당에 조공하고 당의 책봉을 받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
<문제점> ‘구당서’라는 중국사서에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라는 인물은 고구려의 별종이라는 기록이 있다. 발해는 황제를 자칭하였거나,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발해는 또 고구려와 비슷한 풍속을 유지했으며, 주거문화 또한 고구려의 것을 계승했다.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계승성
<중국학계>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왕건이 세운 고려는 서로 계승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고구려는 중국 역사상의 국가인데, 고려는 조선역사상의 국가로 오늘날 조선족의 선인(先人)이 세운 국가라는 것이다.
<문제점> 고려인 스스로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었으며, 중국인들도 그런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고려가 발해 멸망 후 발해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준 것도 그들이 고구려의 후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淸)·남송때 고(古)지도 "고구려는 한반도 국가" 고구려가 신라·백제와 함께 한반도의 고대국가였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이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옛 중국 지도들이 공개됐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우준 교수는 고구려가 한반도 안에 표기된
‘우공구주급금주도’(禹貢九州及今州圖·1209년 제작),
‘동남양각국연혁도’(東南洋各國沿革圖·1852년 제작),
‘동진단지리도’(東震旦地理圖·1260년경 제작) 등 5점을 공개했다.
이들 지도는 중국 문물출판사가 2000년에 출간한 ‘중국고대지도집’(中國古代地圖集)과 하얼빈지도출판사가 1998년 간행한 ‘중화고지도진품선집’(中華古地圖珍品選集)에 실려 있다.
▲ 연세대 김우준 교수가 고구려(고려라고 표기)를 한반도의 고대 국가로 인식한 중국 옛 지도들을 설명하고 있다.
* 2004년 자료 발췌입니당...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동북공정은 추진되고 있겠죠..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