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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0 07:50
[한국사] 병자호란 후 환양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6,635  

많은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군에게 끌려 갔다가 도망치거나, 가족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데려오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아는데요

청나라인의 아이를 벤 여자들은 거의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는데 어느정도였죠???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였죠? 그냥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나요?

아니면 아이를 강제로 유산시킨다거나

우리 조상님들 고생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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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16-08-20 09:30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 몽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가 유명하죠

그 전 역사는 역사서 소실 등으로 추정만;;;

(고구려 멸망후 유민 몇십만명 당나라 끌려감 / 대진국(발해)건국후 환향했는지는 잘;;;)

병자호란 때는 그나마 청나라 황제가 우리나라를 같은(?)조상을 두었다는 의식이 있어서

많이 봐주었다고~!

서울대 등 식민사학류 말고 비주류 대학 역사학자들은

금나라 청나라를 한국사에 편입해야 한다고들 하네요;;;

(헉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0-;;;;;)
     
mymiky 16-08-20 13:02
   
청나라 황제가
우리나라를 같은 조상을 두었다는 인식이 있어서 많이 봐주었다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낭만적인 미화담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병자호란 자체가, 조선의 점령 지배가 아닌
후방안전과 대기근에 시달리는 당시 후금의 형편상,  대규모의 약탈이 목적이였습니다.

후금은 요동의 한족들과 조선인들을 납치해 농장을 경영하는
약탈경제 시스템이였고, 명과 전쟁중이라,,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여진족 자체가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사람들을 끌어와야 했죠.
          
Marauder 16-08-21 19:23
   
그당시 만주가 농장을 지을만한 기후였나요? 그런데 왜 농장이 정착되지 못한걸까요?
기파랑 16-08-20 10:04
   
유부녀는 이혼당하고 나머지역시 손가락질에 그냥 매장이었죠.  이런저런 일들로 남자없는 여자입장이되어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고. 우리 사극에 이런장면이 묘사된것이 있었음. 강인가 호수인가 거기서 목욕을하면 더이상 환향녀가 아니다 이런식의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는데 별 소용없었다네요. 끌려간 사람들중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국경에서 다시 내쫓기도 했답니다.(받아주다가 외교문제로 번졌음)  결국 조선으로 못돌아간사람들은 다시 청나라로 갔는데 이때 뒷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네요. 이렇게 형벌이 무서웠어도 배고파 굶어죽는거 보다 낫다며 돌아갔다고 함.. 도망중에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흑흑 ㅠ 청나라에서 꽤나 사는 집안의 첩이된 여인들은 본부인에게 시기 질투를 당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문제가 커지자 청조정에서 직접 조치를 취했음...
루리호 16-08-20 11:43
   
이것때문에 화냥년이라는 비속어가 생길정도였죠

정말 비참하고 창피한 역사라고생각합니다.

다만 그시대는 어느나라든 다 똑같았죠
mymiky 16-08-20 13:09
   
환양녀가 아니라, 환향녀(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를 뜻한다는데,
당대에 쓰인 말은 아닙니다.
실록에도 안 나온다고 그러더군요.

당시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피로인(포로)란 단어가 쓰여졌고요,
환향녀는 후대에 나온 말로 추측됩니다.

병자호란때 환향녀가 유명하다지만..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 어느 전쟁기간동안에도, 그런일은 인류 역사상 많았을 겁니다.

전란중에, 적군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을 터부시하는 경우는 흔하죠.

현대사회야, 인권이 중요해져서, 그런걸 가지고 죽인다거나 하진 않게 되었지만..
옛날엔 가문의 수치같이 여겨지고 뭐, 지금도 무슬림들은 명예살인도 여전하고요.
촐라롱콘 16-08-20 14:07
   
일반평민이하 집안에서는 환향녀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던 반면에.....

양반 사대부 가문에서는 당시 인조가 돌아온 환향녀와의 이혼을 불허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문에서 칠거지악 등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 이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설령 이혼은 면했다 하더라도 투명인간처럼 구석진 별당에서 평생을 숨죽여 지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 사례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가문이 신풍부원군 장유집안입니다.
장유는 인조반정 공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판서의 반열이었고, 그의 동생 장신 또한 강화도수비를
책임지는 수뇌부에 해당하는 주사대장의 직위에 있었을 정도로 당시 조선에서 내노라하는 가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장유의 딸은 봉림대군의 부인으로 훗날 봉림대군이 국왕(효종)의 지위에 오름에따라
왕비(인선왕후)가 됩니다.

이렇게 대표적인 조선의 명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장유집안 또한 병자호란의 비극을 피해가지는 못했는데,
장유의 어머니가 강화도로 피난하던 도중에 목숨을 잃었고, 아들인 장선징의 처(장유의 며느리)가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청나라에 끌려가게 됩니다.

약 1년후 장유의 며느리가 환향녀가 되어 조선으로 귀환하기는 했지만, 장유집안에서 받아들이려하지 않았고
인조의 반대로 인해 이혼만은 면한 상태였지만 결국 장유가 죽은 후 투기 등의 명목을 붙여 결국 이혼시키고
말았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장유집안 같은 명문집안이 이런 행태였으니 나머지 사대부 가문이야 두말할 것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의 그릇이 얼마나 옹졸한지 알 수 있습니다.

몽골의 칭기스칸 같은 경우 그의 부인,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었다가 1년만에 임신한 상태로
귀환했을때 칭기스칸이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메르키트족의 피가 분명한 장남 주치를 자신의
장자로 인정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역시 큰 인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ymiky 16-08-20 14:28
   
님의 말씀처럼 일반 평민이하은, 현실적인 이유로 걍 데리고 산다고 해도,

상류층일수록 체면이나 예법같은데 더 민감하고 엄격하기 때문에
그런 면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경우엔 명예롭게 자결하라고 하지..
포로되어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런 경우를 께름칙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죠.

몽골의 칭기즈칸과 비교하는건 좀 에러인듯 한데..
원래부터 몽골족들은 약탈혼의 풍습이 있던 민족입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같은데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알고 있고요.

칭기즈칸 본인만 해도, 원래 어머니가 다른 부족장의 아내였다가
아버지 예수게이가 납치해온 여자였습니다.
칭기즈칸 생부가 예수게이인지? 생모의 본래 남편인지? 의견은 분분하죠.

사실, 주치의 경우도, 받아주긴 했지만, 칸의 지위까지 물려주진 않았습니다.
칭기즈칸 본인도 인간적으로 걍.. 묻어두긴 했지만, 큰 아들을 다 믿진 않았죠.
          
촐라롱콘 16-08-20 14:41
   
본래 몽골족이나 투르크족 같은 유목민들에게는 장자상속이 아닌 말자(막내)상속의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아닌 다른 부족의 씨라고 해서 주치에게 칸의 지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견해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구나 주치는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초창기 몽골제국 권역의 북방변경에 해당하는
바이칼과 예니세이강 하류 일대에 분포하는 오이라트같은 삼림부족을 정벌하는데도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칭기스칸의 호라즘원정에도 상당한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칭기스칸을
성실히 보좌했고, 칭기스칸 또한 주치에게 장자에 걸맞는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더구나 주치의 아들이자 칭기스칸의 손자인 바투는 러시아-유럽원정을 주도했고,
툴루이가문의 몽케가 칸의 지위(중국식 묘호로는 헌종)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로..... 주치와 그의 후손에 대하여 별다른 차별이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mymiky 16-08-20 16:55
   
일단, 유목민들이 말자상속을 한다는데, 뭔가 오해가 있으신듯 합니다.

유목민들이 말자상속을 한다는 의미는, 경제적인 부분을 말하지.
칸위상속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말자가 부모의 재산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순번이 막내라
가장 오랫동안 남아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치의 경우엔, 둘째 차카타이와 당대에도,
혈통문제로 싸웠을 정도고, 칭기즈칸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둘다 눈밖에 나서, 어부지리로 3남인 오고타이가 칸위를 물려받게 되었죠.

물론, 유목민족들은 유교식의 적장자 최우선주의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말자상속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주치가 혈통문제를 겪지 않았다면, 당연히 칸위를 이었을 겁니다.
정실부인인 보르테가 낳은 적자, 보르지긴 가문의 장남이라는 프리미엄과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배운 군사적 재능, 무엇하나 빠질게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위를 못 이어받은건,
항상 그에겐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치는 표면적으로 칭기즈칸의 장남이였고,
이후로도 몽골왕족으로 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북방변경을 봉지로 받아, 어느정도 먹고 살 걱정도 없었고
걍.. 딱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사는게 주치일가로써는 최우선이라고 봐야죠.

주치일가는 조선왕조로 따지면,  양녕대군? 포지션과 비슷합니다.
나중에 세조옹립에도 양녕대군이 기여하고, 막후에서 원로급 대우를 받았죠.
물론, 주치는 양녕과 달리 본인 잘못은 아니였으나..
왕좌에서 멀어진 곁가지-라는건 부정할수 없지만요.
두부국 16-08-20 14:39
   
환양녀는 어원은 말그대로 모릅니다 당대에 쓰던 말도아니고 기록에도 안나온다고 하더군요
nation 16-08-21 10:14
   
"화냥년의 어원이 되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던 단어. 다만 병자호란 이후 당대에 환향녀라는 단어가 사용된 증거는 전혀 없다. 화냥년이라는 단어에 맞춰서 뒤에 억지로 가져다 붙여 만든 단어인게 분명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된 단어인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아예 사용되지 않고 일제시대나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단어일 가능성도 다분하다. 조선시대에 실제로 환향녀라는 단어가 사용된 예를 보신 분은 추가 바람. 당대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는 돈을 주고 데려온다는 뜻으로 속환(贖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속환이라는 개념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냥년의 어원 중 하나로 추측되는 설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폐기되었다. 화냥년의 어원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해당 항목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호로자식이란 말이 있다. 어원에 대한 여러가지 설 중 하나가 병자호란때 끌려간 여인들이 낳은 사생아를 말한다지만 역시 사실이 아니다. 호로(胡虜)는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니 호로자식은 그냥 오랑캐에 빗대어 욕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밑은 실제 당시 속환되어온 조선 여성들이 겪었던 불편한 진실. 가부장적 태도의 끝판왕. 그리고 스스로의 무능으로 벌어진 사태를 피해자들, 약자들에게 떠넘겨버린 후안무치의 끝판왕.[1] 일단 잘못된 어원이긴 하나 이 문서에선 '청에게 끌려갔다 속환되어 돌아온 조선 여성들'에 대한 서술을 한다."

http://namu.mirror.wiki/w/%ED%99%98%ED%96%A5%EB%85%80


아래는 흔히 화냥년의 어원이라고 알려진 잘못된 이야기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비롯한 사건이 있었을 때,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를 비롯한 타국으로 끌려갔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주로 북쪽에 살던 여인들이 많이 끌려갔다고 한다. 이런 여인들은 대부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돌아온 여인들이 있었다.

문제는, 겨우 돌아온 여인들을 본 남편들이 절개를 잃었다고 그녀들을 내친 것. 그래서 이 여인들의 남편들이 단체로 왕에게 몰려가 이혼을 청구했다고 한다. 억지로 끌려갔다가 겨우겨우 고향에 돌아온 여자가 무슨 죄를 졌다고...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이건 남자들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여성보다는 남성의 권위가 높았고, 또 여성의 정절에 민감한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던 듯.[1]

이렇게 돌아온 여인들은 환향녀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조선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또한 환향녀라는 말을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칭하는 말로도 사용했다. 이 환향녀라는 발음이 세월이 지나면서 화냥년으로 변했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이 화냥년이 환향녀(還鄕女)에서 변화하였다고 아나,[2] 이건 어디까지나 민간 어원설일 뿐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납치로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화냥년이라는 욕설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전에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위의 정설을 억지로 끼워맞춰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한자어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환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금의환향(錦衣還鄕) 정도가 있다. 만약 실제로 그 여인을 칭하는 단어가 만들어진다면 귀환병녀 내지는 귀향녀라고 불러야 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글로든 한자로든 환향녀를 검색해도 환향녀라는 단어가 전혀 안 나온다. 즉, 조선시대에는 환향녀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위의 사례에서 왕에게 이혼을 청구한 것 역시 후대에 덧붙여진 말로 보이는데, 당시 민간에서는 이혼이 허가를 얻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이혼이 드물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대의 왕이었던 인조는 최명길의 주장에 동감하며 몸값을 내어 여자들을 데려오는데 힘썼고 남편들이 아내를 내치는 것을 막기 위해 명을 내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미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뒤라 지켜지지가 않아서 문제였지.

학계에서의 정설은 창녀를 뜻하는 중국어 화낭(花娘)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전래할 때 중국식 발음인 '화냥'을 차용하였고 굳어진 것으로 본다. 화낭이라는 말은 이미 당, 송대부터 기녀, 창기라는 말로 쓰였다. 가령 당대 시인인 李賀가 지은 申胡子觱篥歌에는 "삭객은 크게 기뻐하며 잔을 들어 일어서고 화낭에게 막에서 나와 배회하며 배알하도록 명한다(朔客大喜‧擎觴起立, 命花娘出幙, 徘徊拜客.)"[3] 라는 구절이 있고, 송나라 때 매요시가 지은 花娘歌에는 "화낭은 12세에 가무를 할 수 있고 대단한 명성은 악부에 머무룬다(花娘十二能歌舞,籍甚聲名居樂府.).[4]"라고 되어 있다. 원말명초에 쓰여진 남촌철경록에 이미 창부를 화낭(花娘)이라고 부른다는 구절[5]이 있는 것을 보면, 당, 송 이후에도 계속 쓰인 듯하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성종실록에도 시중에서 몸파는 여인을 화낭이라고 부른다는 부분을 보면 당, 송대에 기녀, 창기로 쓰인 화낭(花娘)이 조선시대 떄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식 발음은 huāniáng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어 표기는 화냥이다. 이 만하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http://namu.mirror.wiki/w/%ED%99%94%EB%83%A5%EB%85%84

"환향녀"는 당대에 쓴 말 같지 않고,
현대에..... 1990년대쯤에 누군가 끼어맞춰 말을 만든 것 같습니다.
나가라쟈 16-08-21 13:13
   
갠적으로 환향녀는 한반도 남성성이 숨기고싶은 "최악의 민낯"이 아닐까 합니다.
지들이 약하고 무능해서 지켜야할 여성과 약자를 뺏기자 그 "분함"을 천신만고끝에 돌아온
여성들에게 화풀이했던 비열한 짓거리의 표본이 바로 "환향녀"에 얽힌 여러가지 사례라고 봅니다.

자기걸 빼앗은 상대에 대한 보복이 아닌 뺏긴뒤 돌아온 자기것에 대한 가학성...참으로 창피한 사례.
     
Marauder 16-08-21 19:26
   
바로 위에서... 흠흠... 그리고 자기거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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