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교과서 세대라 국사, 그러니까 한국사를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 볼 겨를이 없었다. 당시 우리 세대 아이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아, 신라 나쁘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만주가 다 우리 땅이었을 테고, 거기 천연자원도 다 우리나라가 가졌을 텐데.' 뭐 이런 상상 말이다.
고구려는 유목 국가였다. 화하족(한족)이 고대부터 두려워하던 북방의 여러 유목 민족이 혼합된 제국 체제를 유지했다. 이들이 신라의 통일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변한(한반도)의 사람들과 섞여 장기간 단일 체제로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고, 한민족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대강 이 정도의 역사 인식을 하고 있다.
고구려가 정말 삼국을 통일했다면? 일단 그 당시는 강력한 단일 제국 체제를 유지했을 공산이 크다. 당시 중국은 삼국 시대부터 수백 년간 이어진 내분을 끝내고 막 당 제국 체제로 들어선 시기였다. 오랜 기간 중국과 싸워온 고구려는 통일한 후, 힘을 기른 중국과 맞서기 위해 국방력을 서쪽에 집중시켰을 것이다. 고구려만큼 강력한 북방 국가 체제가 좀처럼 수립되기 힘들었음을 고려하면, 어쩌면 고구려도 요, 금, 원, 청처럼 중국 본토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 중국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왕조를 세웠던 북방 계열 국가 중 자기 문화를 여태 간직한 나라가 있던가? 거란, 여진, 돌궐이 사용하던 문자, 언어 체제를 그대로 간직하고 현재까지 남은 독립국 체제가 있나? 몽골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고구려가 강성했다면, 오히려 우리 민족이 중국에 흡수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무리가 아닌 셈이다.
고구려가 유목국가라니 참 어이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