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궁의 5대손 유(劉)가 진(晉) 나라 영가(永嘉 307~312) 연간에 요서(遼西)의 선비족(鮮卑族)인 모용외(慕容廆 전연(前燕)의 무선제(武宣帝))와 이웃하였는데, 모용외도 억제하지 못하였다. 강제(康帝) 건원(建元) 초에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이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가 크게 격파시켰는데, 뒤에 백제에게 멸망되었다.
최근에 황당한 주장들이 연이어서 올라오다보니 이것 역시 같은 유형이라 생각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고려도경 내용이구만..
이런 유형이라면 충분히 알릴수 있는 정보로.. 위에서 막말한 것에 사과 하지요.
고려도경이라면 책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전혀 새로운 내용이지만... 송나라 사람이 쓴 것이니 객관성에서 충분히 참고할만 하다는 생각인데 (중국인들이니 믿을만하고 객관적으로 정확한 역사 서술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 3자가 남의 역사를 포장하고 띄어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나 역시 대륙백제설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전연을 멸망시킬 정도의 세력이라는 주장은 조심스럽지요(사전에서도 전진의 부견에게 망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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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가 선비족의 나라가 아니라고요???
님 주장처럼 하면 중국인은 여기저기 다 섞였습니다..
지배층이 선비족인게 아니라고 하고 싶은건가요???
또 당나라 이야기 할때 노예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저 위에 중국인이 본인 스스로 욱해서 말을 막하니까 같이 동조하는건가요???
흉노는 안섞였나요?? 또 고구려 백제인들은 안섞였나요????
그렇게 역사를 주장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당나라는 선비족의 '역사' , 선비족의 '나라' 두가지 단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거 아시죠? 은글슬쩍 물타기 하시려는건가 ㅋㅋ
당나라 지배층이 100%순혈 선비족으로만 이루졌습니까? 그래봤자 다 한족이랑 섞인 사람들이지. 님이 하고 싶은 말은 당나라가 한족 역사랑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거 아님 ? 그렇게 선긋고 싶은거 아님 ?
물타기요????
무슨 물타기를 했다고 하는지 본인이 하지도 않은 내 말을 물타기 해놓고
내가 당나라때 한족이 노예라고 했나요???
본래 당나라가 선비족의 나라고.. 추후 동화되었죠..
님과 같은식으로 말하면 청나라도 한족의 나라가 됩니다..
만주족이 세웠지만 결국 한족과 동화되었죠..
안그렇나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일관성이 있어야지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주다 보면 결국 부여계는 중국인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볼땐 지금 님이 동북공정을 지지하는듯 보일뿐이네요.
님 참 순진한게요..
그 당시에 북중국에서도 북쪽지방 일부가 북방 유목민들의 땅이었다는것은 알고 있나요?
또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집안이 본래 선비족이고 선비족국가를 신봉하던 집안입니다.
그리고 한족이 노예라고 한적도 없는데 왜 있는 사실을 이야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을 내는지 이해 못하겠네요..
속지주의사관과 속민주의사관의 차이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역사들은 속민주의를 따릅니다.
그런데 중국만 속지주의사관을 따르죠..
전 이것을 지적하는겁니다.
당이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긴 하나 한족화 된 영향이 매우 큰 만큼
한족의 나라라 보는데 맞다고 생각합니다
청나라나 몽골제국시절의 지배당하던 시기는 확실히 한족에 대한 차별과 구분이 확실했기에 한족의 역사로 인정할 수 없으나, 수나라와 당나라는 한족문화에 물든 한족왕조라 보는게 맞죠
국가의 계승은 핏줄도 중요하지만 문화와 계승성같은 정신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다만 선비족을 몽골에 소속된 민족이라 봐야할지 중국이라 봐야할지는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할듯 합니다
북위(北魏, 386-534)는 서위(후에 北周가 됨)와 동위(후에 北齊가 됨)로 갈라 졌다. 변경지역의 한족들 대부분은, 초원 지역에서 왔건 삼림 지역에서 왔건 그 당시에 우세한 종족에 빌붙어서 삶을 영위하였다. 이들 한족들의 전형적인 처신을 확인해주는 중국의 자료들이 있다. 북제 (550-77) 시대에 쓰여진 기록 중, “조정의 사대부(士大夫) 하나가 나에게 어느 날 ‘내게는 이미 17살이 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서신과 공문서 작성을 꽤 잘한다. 나는 지금 그에게 선비족의 언어와 비파 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 아들이 이런 것들을 잘 배워 조정의 공경(公卿)들에게 쓸모가 있게 되면 그들의 덕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 아들이 이런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는 기록이 있다.
거의 천년 가까이나 지난 당대의 역사기록이 아니니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러니 고려도경 저자 서긍이 잘못 기록했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후대의 기록은 닥치고 다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저렇게 오래된 후대의 기록인데다가 저런 종류의 기록은 이른바 사서간 교차검증이 되야하는데 백제가 전연을 멸망시켰다는 기록은 지금까지는 오직 저기록 밖에 없으니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나도 앞에서 전연은 전진의 부견에게 망했다고 알려져서 조심스럽다는 말을 했지만..
그럼 서긍이 전혀 없는 말을했다는걸까?
오늘날에도 책을 쓴다고 마음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인데..
당시에 기록물은 대단한 사치품 귀중품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돈의 투자인데 ..
무엇보다 생소한 고려라는 나라의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서는 많은 조사와 노력이 있을거라는 것을 짐작 가능하지요.(오늘날보다 노력이 열배 이상이지 않을까?)
헌데 지금 알려진 내용과 다른 내용이 발견되었다고.. 잘못 기록했다?( 송나라사람이 고려역사를 미화하고 뻥티기 한다?! )
서긍에게 그리 인식하게 만들 정도로 백제가 전연을 망하게 만드는데 큰 역활하였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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