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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12 19:43
[몽골] 몽골 대제국의 세계지배하의 고려의 지위
 글쓴이 : 막걸리한잔
조회 : 6,186  

6. 한국과 몽골의 정체성 문제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한국의 드라마와 소설과는 반대로 세계를 무력으로 짓밟은 원나라가 이상하리만큼 고려에 우호적이고 관대하였다. 몽골이 전쟁을 거쳐 정복한 나라를 부마국(駙馬國)으로 삼은 경우는 없다. 대부분 몽골의 통치자들은 사신을 죽이거나 자기들에게 대항한 군주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복하는데 고려처럼 부마국으로 삼고 국체(國體)를 유지시켜준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같은 경우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을 때는 대량 학살과 전국토의 초토화(焦土化)를 시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행태를 보인다.

1990년 세계적인 몽골인 학자 하칸추루(한촐라)교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 몽골과 코리아(高麗)는 함께 몽골세계 제국을 창업했습니다. !”라고 해 한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제 이 말의 비밀들을 찾아가 보자.

 

113) 木下禮仁 五世紀以前倭關係記事 -三國史記中心として倭人傳, 森浩一 編, (中公新書 :1982)

 

<!--[endif]--> 

1) 몽골 대제국의 세계지배하의 고려의 지위

 

고려군과 몽골군의 첫 만남은 121812월 강동성(江東城)에 웅거한 거란족을 격퇴하기 위해 연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고려군과 몽골군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는데 이후 고려와 몽골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특수 관계를 유지했다.

몽골은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고려에 대해서 국체를 유지하여 준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이 부분은 원 황제 무종(武宗)이 지대 3(1310) 고려에 보낸 제서(制書)에 잘 나타나 있다. 무종은 짐이 보건데 지금 천하에서 자기의 백성과 사직을 가지고 왕위를 누리는 나라는 오직 삼한(三韓)뿐이다. 선왕 때부터 생각하면 거의 100년 가까운 기간에 부자가 계속 우리와 친선관계를 맺고 또 서로 장인과 사위관계가 되었다. 이미 공훈을 세웠고 또한 친척이 되었으니 응당 부귀를 누려야 할 것이다.”114)라고 하였다.

몽골학자 B.하과(Лхагва)의 연구에 따르면, 대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로 무력 정벌을 통한 직접 지배(금나라, 위구르, 콰레즘, 페르시아의 일부분, 남송), 일부 대칸과 그들의 가계 소유지에서 기원해 정권을 수립하는 형태(오고타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 일 칸국), 영토나 독립된 권력을 그대로 남기고 자신을 대변하는 기구(다루가치)나 그 나라의 왕을 통해 지배하는 방식 등의 세 가지의 형태로 분류된다.

고려는 위의 형태 중 세 번째에 속 한다.115) 그러나 결혼동맹이 성립한 후 원 세조는 고려에 굳이 다루가치를 둘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하였고,116) 그래서 1278년 경에 이르면 다루가치의 존재는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고려왕은 세계 제국인 원나라 전체 종친(宗親) 서열의 4위에서 7위에 해당하는 강력한 세력이었다.117) 특히 충선왕(忠宣王, 1308~1313)은 세계 권력의 2인자로 군림하였다.118) 충선왕은 원 무종(武宗)의 옹립으로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심양왕(瀋陽王)으로 봉해졌다(13085). 무종이 충선왕에게 아아! 그대, 추충규의협모좌운공신(推忠揆義恊謀佐運功臣)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 좌승상(左丞相) 부마(駙馬) 왕장(王璋 : 충선왕)은 세조(쿠빌라이칸)의 외손자요, 전대부터 귀한 사위(貴壻)로서, 짐이 선조의 사직을 계승하는 위업[纘承]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짐을 크게 도와주었도다[參翊贊之功]. 가히 개부의동삼사 태자태부(太子太傅) 상주국(上柱國) 부마도위(駙馬都尉)를 특별히 수여하고 심양왕을 진봉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중서성(中書省)에 들어가 정사에 참의하게 하고 김호부 옥대 칠보대 벽전금대 및 황금 500량 은 5000량을 하사하였으며, 황후나 황태자도 또한 충선왕을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게 하여 보물과 비단 등 귀한 하사품들은 이루다 헤아리지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119)

여기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충선왕이 도대체 무슨 지위를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충선왕이 심양왕과 고려왕(이 즈음 충렬왕이 사거함)이 다시 됨으로써 한반도와 요동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서성(中書省)에서 원나라의 각종 국사에 참의하게 함으로써 원나라 조정의 실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충선왕이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는 것은 황태자의 스승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이다. 개부의동삼사는 황제 다음 가는 지위이기 때문에 충선왕이 세계 권력의 제 2인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120)

원사(元史)에는 세조(世祖) 쿠빌라이칸이 서거한 뒤 그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오직 몽골인과 고려인만이 출입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 기록은 그대로 고려사에도 나타난다. 또 원나라 성종 테무르 황제(成宗, Temü)고려와 몽골의 관계가 왜 이토록 특수한가라는 것을 주변 신하들에게 반문한 적도 있다. 요수(姚燧)는 그의 문집(목암문집(牧庵文集))에서 몽골과 고려의 관계와 같은 특수한 밀착관계는 만고에 유래가 없다.”고 적었다.121)

 

114) 朕觀今天下有民社而王者惟是三韓. 及祖宗而臣之殆將百載厥父菑而子復肯播曰我舅則吾謂之甥.旣勳以親宜貴與富(高麗史忠宣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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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한잔 15-10-12 19:57
   
원나라 시기에 몽골인들만 황제가 될수 있었지만 유일한 예외는 고려인과의 혼혈이 황제가 되었다는것..
또 중원을 통일한 쿠빌라이칸의 장례를 치를때 오직 몽골인과 고려인만 출입이 가능했다는것..
     
성시리 15-10-12 20:00
   
그래서 그때가 좋았다?뭐 이런 뜻인가요?
          
막걸리한잔 15-10-12 20:05
   
무슨소리 하는겁니까.. 역사를 왜곡해서 민족적 비굴함만 강조하려는 세력들이 있어서 올린겁니다.
또 중국의 역사 왜곡에도 지적하고 싶은게 있어서죠..

실제 사실은 이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원나라가 지들 나라이고..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속국으로 거느렸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의 노예다 뭐 이런논리를 항상 떠들어대죠..
이건 일본인들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팩트는
몽골은 고려와 혼인동맹관계이고 중국인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한겁니다.
               
성시리 15-10-12 20:35
   
님 뭔가 잘모르시는거 같은데 현재 기준으로 고려- 몽골관게를 보지 마시고요 당시기준을  생각하시면서 글을 올리거나 글올리실때 한번더 생각하시고 글올리시기 바랍니다.읽어 보니 위의 글은 사대 사관이 많이 반영된 글입니다.
                    
막걸리한잔 15-10-12 21:04
   
사대사관이라뇨 그냥 당시의 역사를 해석하는게 무슨 사대사관입니까..
당시에 고려가 원나라를 지배한것도 아니고..
동등한 동맹관계인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몽골에게서 나라를 지켜낸 유일한 나라라고 봐야하죠.. 전세계가 노예로 전락할시기에 말이죠..
                         
성시리 15-10-12 22:02
   
이분 뭔가 착각이 심하시네 ........님이 올린글 잘보세요 원나라 부마국이 자랑스럽습니까?
다른 나라는 없어졌는데 고려는 안 없서져서 자랑스럽습니까? 몽고애덜한테 존나게 쳐맞고 게들 꼬붕노릇한게 자랑스럽냐구요 ...그리고 작위 몇개 주면서 대우좀 받으니까 야~~기분좋다!!! ~~~  밑에 백성들은 개착취당하다 못해 딸래미들 공녀루 몽고애덜한테 개강간당하고 등등 그렇게 100년을 넘게 전국토가 착취당했는데 몽골하고 동질성이 그렇게나 느껴 지세요? 그래서 님이 사대사관에 빠져 있다는거에요.(왜놈한테 35년 털린건 개거품 물면서 100년 넘게 털리면 동질성이 생기는 거에요? ... )
                         
막걸리한잔 15-10-12 22:11
   
성시리.//자랑스럽다고 말한적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쪽바리들처럼 미개하지도 않았고..
짱꼴라들처럼 노예가 되지도 않았죠..

왜 고려가 노예가 안돼서 기분 상하셨습니까????

그래서 쪽바리들이 가르쳐준 역사대로 고려는 몽골에 노예다 이렇게 말 안해서 기분 상했나요????
                         
성시리 15-10-12 22:45
   
어이쿠 그러셔요? 이제할말없으니까 말꼬리잡기하는거에요? 고려에 대해서 잘모르시네요. 그당시 고려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면 글 이렇게 퍼오지 못할겁니다. 그리고 님이 올린 글 대로라면 중,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대몽항쟁 이나 공민왕의 쌍성총관부,동녁부 탈환 같은 내용은 없어야 정상이겠죠.
왜놈들이 미개하다,짱꼴라들이 노예다.이런말 함부로 쓰지마세요.님이 그럴수록 사대주의에 빠진 환빠로 보이네요.
                         
막걸리한잔 15-10-12 23:38
   
아이쿠 짱꼴라 쪽바리 욕하니까 기분 상했어요???
되게 욱하시네 ㅋㅋㅋ
참 웃기네 정말..
짱골라 쪽바리 비하했다고 환빠 소리 하는것 보니 딱 화교출신인듯 싶군요..
당신 나라 환타지 소설역사나 공부하십시요..
                         
성시리 15-10-13 09:23
   
나는 대한만국 국민이지 님처럼 사대주의에  빠진 몽고빠는 개는 아닌데요.그리고 님같은분들이 아직도 가생이에서 짱꼴라/쪽빠리 드랍치면서 사람 몰아세우는 종자들이 아직도 있다는게 개탄스럽네요... 추석때 제사는 지냈나요? 밥은 먹고 사십니까? 님이 뭐라 떠들던 마지막 댓글이였습니다.
                         
막걸리한잔 15-10-13 15:35
   
대한민국 국민????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노예가 아니었다니까..
자꾸 쪽바리 짱골라들이 왜곡하고 다니는 노예설을 들고 나와서 한국인들이 노예였다 주장하고 있나요???
대한민국 국민???
왜곡해서 반민족 사관 주장하는게 대한민국 국민???
그냥 외국인인듯 싶은데 앞으로 어디가서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지 말길..
쪽바리 짱골라 욕했다고 발끈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어딨나????
쪽바리 짱골라 드립??
내가 쪽바리 짱골라들보다 낫다고 했더니..
본인이 발끈 해놓고 드립????
                    
뚜리뚜바 15-10-12 21:33
   
주관적인 해석이 강한글이 아닌거같은데; 그리고 남한테 뭔가 잘모르신다고 말할 정도로 님의 학식이 대단한지도 의문스럽소 고작 댓글 2줄로 뭘 생각하라는 건지 글이나 작성하시고 그런소리 하십시오
          
스코티쉬 15-10-14 12:44
   
학살당하고 노예생활했던 한족짱깨들 생각하니 고려가 받은 대접에 부아가 치미시나봐요

댓글마다 읽어보니 내용도 없고 뭐도 없이 깐죽거리다가 뜬금없이 감정만 드러내시네
한량011 15-10-12 20:18
   
원나라 황실과 통혼한 고려국왕과 부원배들에 한해서 호위호식했던 시절이죠.
 그렇다고 고려국왕이 힘이 있었느냐? 마누라인 원나라 공주에게 뺨까지 쳐맞는 왕도 있었고
원나라에 찍혀 충선왕인가 충렬왕이 티벳까지 귀양갔다가 거기서 객사까지 당하고.

원치않은 일본원정으로 고려백성과 고려재정은 파탄 그자체.

몽골의 5,6차에 걸친 침공중 3차인가 4차에선 고려인 수십만명이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수많은 고려인들이 몽골군에 의해 살육당하고..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고..

해마다 수많은 처녀와 남성들이 몽골에 끌려가 궁녀 창녀 환관이 되고///

사실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간쓸개 내줄 정도로 비굴해진게 바로 몽골침공 이후입니다.
그전에 고려가 요나라 금나라에 사대는 취했어도 고려의 자주성과 존엄성은 지키는 선에서 실리적인 사대를 취했었지만 몽골의 침략을 당한 이후 고려사람들은 강대국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한 탓인지 조선에 접어들어서도 강대국에 바짝 조아리는걸 실리외교로 인식하게 됩니다.
 
남북국시대 신라나, 고려도 각각 당에 대해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해 그들의 인준이 있어야 왕위계승이 가능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시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세자 책봉의 명나라 인준 장면들은 몽골 침략이후입니다.
 
 그전에 요나라 금나라 그리고 송나라에 대해서 고려는 그저 외교에 있어 태자 책봉과 왕위 계승에 있어 사후에 통고해주는 그런 수준에 그쳤으나 원나라 이후 명나라 청나라에선 이들 강대국의 인준이 있어야 우리나라 왕위계승의 정통성이 확보되는 시대로 전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한 나라의 자주성에 있어 엄청난 문제거든요.
우리가 인정하기 싫지만 원나라 이후 우리나라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왕과 신하 조정에서는 명나라 청나라의 책봉 인준 그러니까 고명을 받아내는데 혈안이 되있었죠 이와 관련해서는 용의 눈물 드라마를 보시면 잘 나옵니다.

물론 정도전의 요동정벌시도처럼 맞짱뜨는 패기를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아주 잠깐이었고
시도도 못해보고 좌절됬죠.;;;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에 걸친 근 백년간 몽골이 우리역사에 끼친 해악이 어마무시합니다.

물론 문화교류 등등 긍정적 요소도 있었지만 해악이 훨씬 큰 시기였습니다.

몽골의 침공이후 우리민족의 기상이 상당히 많이 꺾였다고 봅니다.

몽골 트라우마에 심각하게 시달린이후 원나라 흉내내는 주원장의 명나라에도 그대로 넙죽 엎드리죠

그럼 조선후기 신흥강호 만주족에 대항했던 인조와 서인의 패기는 뭐냐구요?

그건 세상물정 모르는 유약한 우물안 개구리의 개굴개굴 외침일뿐.

결국 삼전도의 치욕.

결론은 14세기 이후 강대국에 눈치보고 엎드리는 자세는 본격적으로 몽골트라우마 이후입니다.
     
mymiky 15-10-12 20:58
   
<그렇다고 고려국왕이 힘이 있었느냐? 마누라인 원나라 공주에게 뺨까지 쳐맞는 왕도 있었고
원나라에 찍혀 충선왕인가 충렬왕이 티벳까지 귀양갔다가 거기서 객사까지 당하고>

- 원나라 공주에게 뺨맞은 왕은 없는데;; 아마도  님이 말하시는 왕은?
제국공주가 홧김에 몽둥이로 때렸다는 일화를 남긴 충렬왕을 말하시는듯?

공주가 어려 철이 없던데다가, 성격도 강했던거 같고,
자기 맘에 안들면 땡깡부리는? 고집이 있던건 기록상 확실함;;

그렇다고, 충렬왕이 매맞고 우는 남편은 아니였고 -.- 그분도 한 성깔 했는데;;

문제는, 충렬왕뿐만이 아니라, 아들인 충선왕, 손자인 충숙왕
3대가 내리, 몽골공주와 관계가 파탄지경이였음..

특히 손자인 충숙왕은 몽골공주랑 부부싸움 도중 공주를 구타해 죽였다는 오명을 들었고-.-

티벳에 유배간 왕은 충선왕이구요.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줄을 선 쪽이 아니라, 안 선쪽에서 황제가 되어서..
그 바람에 정치숙청을 당하셔서, 티벳에 갔다

충선왕의 처남(충선왕비 계국공주 오빠)인 태정제가 쿠테타로 새 황제에 오르는데 성공해서,
다시 충선왕을 불려들이죠.

유배갔다가 객사한 왕은 충혜왕입니다. 기황후의 그 미화빨 왕유 ㅋㅋㅋㅋㅋ
우리 나라 역사상 최고의 폭군으로, 폐위되자 고려 백성들이 동정은 커녕 만세를 불렸다는-.-

이분은 전혀 불쌍하지 않아서 패스하렵니다 ㅋㅋㅋㅋ

조선시대 왕의 인준은, 추인형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형식이 바뀐적은 없습니다.
고려말, 원나라에 위해 즉위, 퇴위를 반복해야 했던 상황보다는 정상적이였고요.
추인- 일이 다 끝난후, 사후(事後) 인정을 받는 형식이죠.
중국이 고명을 안해준 적도 없고요.

어렵게 받은 예는 조선사상 광해군이 거의 유일한거 같은데?

근데, 광해군때는 명나라 조정도 비슷하게
만력제가 장자보다 애첩인 정귀비 소생의 서자를 총애하고 있던 상황이라;;
묘하게 맞물려서 받기 어려웠던건 맞음. 

인조와 서인의 패기? 는 글쎄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조정권도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청나라에 대화를 다시 하자고 사신을 보내고 있었구요.
근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청군이 내려왔죠.

병자호란 자체가, 홍타이지가 강경노선이였던데다
명나라와 국교가 끊겨 경제파탄 지경이던 청나라가
자기들의 경제문제를 조선에서 타개할 목적으로, 그리고 중원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후방도 정리할겸 조선을 털어먹기로 작정하고 내려온거라;;

조선이 빨아줬으면 전쟁이 없을꺼다고? 순진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떤 명분이든지 만들어서라도 걔들은 내려왔을 놈들이구요.
          
한량011 15-10-12 21:07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시군요.
 
저는 오래전에 몇줄 읽은거 기억으로 더듬는 수준이라 부정확한게 좀 많습니다.

그런데 고명의 문제에 있어 명나라 청나라로부터 받는게 사후 인준 형식이었다쳐도
조선 태조이성계로부터 줄곧 명나라의 고명을 받는것이 조선조정의 막중지대사였음은 부인할수 없습니다.

 명나라의 고명을 받아야 세자책봉의 정통성이 서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이 섰기에 조선조정은 고명을 받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노심초사하죠.

 그러나  원나라 침공이전 고려가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에 대하여 왕위계승의 정통성확보를 위해 고명을 받는데 혈안이 되지는 않았죠

 물론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라부터 외교관례상 왕의 등극을 전후하여 이들의 인준을 받는게 중요한 가치가 있었겠으나 원침공이후 고려말 조선시대의 그것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몽골트라우마로 인해 강대국에 대한 저자세.
               
mymiky 15-10-12 21:15
   
고려가 있었을때, 중국대륙은 여러 나라로 난립되어져 있었습니다.
5대10국, 송, 금, 요, 서하, 대리, 등등..
서로간에 세력이 비등비등해서, 균형을 맞추고 있던 시점입니다.

조선은 다릅니다.
명청. 두 왕조 모두 중국의 중앙집정제가 충만했던 통일왕조입니다.
그런 나라가 턱하니, 바로 우리 코앞에 들어서 있던 상황이죠.

그런 차이도 있을겁니다.
                    
한량011 15-10-12 21:18
   
난립이라고 하기엔 그당시 요나라와 금나라의 국력은 막강했고 모두 송을 압박하여 금나라는 화북을 차지했으니 이걸 난립이라고 보면 어폐겠죠.

난립이란 춘추전국시대 오호십육국시대 오대십국시대처럼 크고작은 수많은 세력이 혼전을 거듭하는 난세를 일컫는 말.

 그런 국제정세를 두고 봤을때 몽골침공이전 고려의 대요 대금 외교관계와 14세기 이후 고려, 조선의 대원 대명 외교를 비교해 봐야겠죠?ㅎ
                         
mymiky 15-10-12 21:30
   
난립으로 왜 보면 안됩니까?

남송을 너무 무시하시는데-.-

남명이 지리멸렬하게 끝난것과 달리 남송은 150여년간 버텼고

고려가 원에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도,
고려는 이를테면 곁저리?지만

몽골주력 군대는 남송(중원의 남부지방 대부분)을 먹는데
주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려는 중국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고,
조선은 그렇치가 않았습니다.

사실상, 고려말부터 중국은 원-명-청 시대인데
어느 왕조라도 결코 호락호락한 왕조가 아니죠.
                         
막걸리한잔 15-10-12 21:35
   
아무래도 고려시대엔 동맹관계를 중요시하던 시기였죠..
독불장군을 자처할수 없었던 시기입니다.
송나라가 요나라와 맞서기 위해선 고려가 필요했던 시기이고요..

또 요나라 또한 고려를 단기 속결전으로 복속시키려고 쳐들어왔다가 포위되어서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되었고..
비어있는 요나라가 송나라에 침공당할것을 우려해서 서희의 담판으로 고구려 옛영토를 주고 물러난겁니다.
                         
한량011 15-10-12 21:39
   
ㅎㅎㅎ-_- 그럼 어휘선택을 잘 하세요

국어사전에 난립이란 

난립 (亂立) [날ː립] [명사] 질서 없이 여기저기서 나섬.

<= 요렇게 나옵니다.
 
요 북송, 금 남송 시대가 질서없이 여기저기 나서던 시대였나요?

 역사지식은 해박하신듯한데 어휘력은 좀 부족하신가보네요.

 그리고 또 님이 위에 원 명 청은 고려 코앞에까지 이런 표현을 썼는데

당시 요나라 금나라도 고려 코앞에 있던 나랍니다.

물론 슈퍼파워 원나라와 이들 요,금 두나라를 동일선상에 올려놓을순 없겠으나
10~12세기 고려가 요,금,송에 보여준 것과  이후 원,명에 보여준 외교자세는 상당히 비교되죠.

그런데 여기서 자칫 몽골침략 이전까지의 고려는 칭찬하고 그 이후 고려 조선은 비난하냐고 엉뚱한 소리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 미리 말하지만

 내말의 핵심은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의 기본적인 자주적 외교노선이 무너져 버렸다는 겁니다. 

 몽골 트라우마가 이후 고려말 조선시대의 외교 기저에 쭈욱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죠

다시말하지만 그러한 외교를 할수 밖에 없었던 고려말 조선시대를 비난하는게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ㅇㅋ? ㅎ
                         
mymiky 15-10-12 21:47
   
님이 이해를 못 하시는걸, 남탓으로 돌리면 안되죠-

그럼, 땅을 뺏고, 뺏기던 시대인데,
난립이라고 안하면 무어라 쓸까요?

왠 질서 타령입니까? -.-
쟈. 여기서 부터 니땅이고, 저기서부터 내땅이다?
선 넘어오기 없기?
뭐 이런건줄 아시나요?

황당하네요-.-

송이 연운 16주를 거란에 뺏기고, 또 금한테 뺏기고, 서쪽으로 도망가고
그와중에 몽골이 남진해 금나라 처먹고, 얼마나 난세였던 시대인데;;

그게 난립이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함?

고려전기는 이런 시대 상황속에, 외교카드가 많았고, 별로 아쉬울게 없었다면
본격적으로 중원이 정리가 되는 시점에선 다른 상황이라는거죠.
                         
막걸리한잔 15-10-12 21:48
   
한량// 아니 이분 너무 모르시네.. ㅋ

금나라시기에 고려는요.. 초기 금나라때 신라후예들이 발해후손들을 데리고 금나라를 만들고 여진족들을 귀합시킵니다.
발해여진동본일가 하면서요..

그리고 그땐 금나라와 고려와 동족지간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금나라가 세력이 커지니까..
고려는 여진정벌을 해서 부모지국으로 모시게 항복을 받아내죠..
그리고 난 뒤 금나라가 커져서 요나라를 점령하고 북송까지 점령하고 난뒤에는
고려를 아우의 나라로 칭하고 상국 노릇을 하죠..
                         
한량011 15-10-12 22:02
   
미미키// 이런데 자존심걸꺼까지는 없어요

 다만 난립이라는 표현의 기초적인 용례조차도 제대로 모르는건 문제가 많네요


요 북송, 금 남송, 대치상황을 난립이라 표현하는 님의 어휘력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는건 어쩔수가 없네요.

 너무 기분나빠만 하지마시고 한번 국어사전 찾아보세요

그리고 국사학자든 동아시아 전공 세계사 학자든 10~13세기 요 북송, 금 남송의 관계를 난립이라고 주장하다간 진짜 무시당할수 있습니다.

요 북송, 금 남송의 대치관계는 무질서적인 난립이 아니라 엄연히 힘의 우열관계는 존재하나 팽팽하게 대립하던 시기였고. 이때문에 학자들은 이시기 동아시아가 요 송 고려 서하, 금 남송 고려를 중심으로 팽팽한 대치상태속에서 나름 질서를 잡은 시기로 봅니다.
     
막걸리한잔 15-10-12 21:12
   
공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몽골도 고려에 공녀를 보내고..
고려도 몽골에 공녀를 보냈습니다..
무슨 고려만 보낸것처럼 왜곡합니까..
그리고 무슨 공녀가 창녀입니까??
그거 일본인들 중국인들이 왜곡해서 한국 비난할때 쓰는 주장 그대로 하는군요..

현실은 전세계가 모두 몽골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몽골에게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끝~
고려가 부패했다 뭐했다..
역사상 모든 나라들은 단점들 투성이고요..
그래서 그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 하지 못하고 망하고 정복당하고 하는것이죠..
그런데 모든 나라들이 역사를 가르칠때 장점을 배재한체 단점만을 부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역사를 단점만 확대해석하고 왜곡하고 그래서 민족주의를 말살하자 이런 논리로 역사를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죠..
          
mymiky 15-10-12 21:33
   
몽골이 고려에 보낸 공녀들은, 몽골인들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원 지배하에 여진족이나 한족 여자들을 보내준 겁니다.

애초에, 몽골인들은 인구가 적었고,
지배계급인 몽골여인들을 대규모로 타국에 보내줄리가 없죠;;
물론, 상류층의 경우엔 서로간에 정략적인 통혼은 있어왔지만요.
               
막걸리한잔 15-10-12 21:40
   
과연 그럴까요??
그런데 어머니의 나라라고 할까요??
몽골에선 몽골여성들이 갔다고 가르치는데요..
그리고 당시의 궁녀는 즉 궁중여성은 신분상승으로 출세한것으로 간주될 시기입니다.
아무나 궁녀를 못해요..
특히 몽골공주를 보필하는 궁녀들을 보내야는데요..
어디까지나 한족은 궁녀를 할수 없었다는데 한표를 주고 싶네요..
노예민족을 궁녀로 써서 자신들의 공주를 보필시킨다???? 이상하죠 ㅋ
그 당시의 궁녀는 엄연히 지배계층의 고위층이되는겁니다.
                    
성시리 15-10-12 22:05
   
어이쿠 그래요? 님말대로나면 공민왕은 개후레자식이겠네요...
                         
막걸리한잔 15-10-12 22:10
   
님은 님네 나라 역사나 배우시죠..
말하는것 보아하니 한국인은 아니신듯 한데요..
                    
mymiky 15-10-12 22:22
   
몽골의 전문가인 바트술해 (몽골 뭉크하누대 학장) 교수에 따르면, 원나라 당시 무려 20만 명 넘는 몽골 여성이 원나라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바트술해 (몽골 뭉크하누대 학장) 「한국-몽골의 역사적 관계와 향후 전망」『한몽국가연합의 의의 세미나』 ; <신동아>(2007.6월호)

우리나라에선, 주로 고려에서 원으로 간 공녀에 대한 연구를 주로하지.
반대로, 원에서 고려로 온 원나라인들에 대한 연구는 적은 편이라

저도 자세하겐 모르겠지만
어떤 몽골교수가 저렇게 주장하는데, 20만이 어디서 나온 소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양국의 교류가 많았던 시절이라,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님말처럼, 몽골공주들의 보좌진으로 고려에 온 부류도 있겠지만.
20만이나 왔다는건 과장이 심한거고;;

이런 경우엔, 몽골인뿐만 아니라, 원나라 하에 여진이나 한족여인들도
다양한 이유로 들어온것이라 생각합니다.
                         
막걸리한잔 15-10-12 22:28
   
그건 장기간에 걸쳐서 합산한 숫자이지..
한방에 그렇게 오갈수는 없죠..
하지만 몽골은 고려보다 공녀를 더 보낸것은 확실하죠..
                    
성시리 15-10-12 22:23
   
막말은 삼가하시죠!!!니네 나라?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지 몽골이 아닙니다.
                         
막걸리한잔 15-10-12 22:29
   
그런데 왜 몽골의 노예가 안되었다고 하니까 기분 상해하죠???
뭐가 문제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면서 몽골이 아니라고 하면서 노예운운합니까????
장난치나요???
몽골의 노예가 되었다 이렇게 말해야는데 안하니까 기분 나빠요???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이라고요??
화교인가요???

본인부터 막말은 삼가하시죠..
mymiky 15-10-12 20:32
   
이승한의
<고려 무인 이야기>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 <혼혈왕, 충선왕>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등을 추천합니다.

마지막 <고려왕조의 위기 >편은 나온지 얼마안된 신간인데,
충숙-충혜왕 시기의 부원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민왕과 이성계까지 나올 시리즈인데,
고려말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세요.
KilLoB 15-10-14 11:26
   
인간의 본성이란 관점서 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쿠빌라이 칸이 몽골연합 대칸이 될때 보면... 다른 후보(서열상 위에 있었던거 같던)와 전쟁을 통해 집권을 하게되는데. 그때 고려가 수십년 항쟁을 끝내고 항복을 하려함에 "줄을 잘선"것.

쿠빌라이가 훗날 말하길
고려=고구려... 당시 당태종도 함락을 못시켰던 강한나라. 몽골도 수십년 도륙을 했으나 여전히 저항하는 나라가 제발로 나에게 항복하러 오니... 그것 자체가 내가 대칸되는 정당성을 주는것이다...라고 전체 몽골연합에 말할 껀수가 됬던것.

그게 고려를 우대?한 원인

마침 고려가 항복하려할때 전몽골황제가 죽어서 쿠빌라이(약한세력)와 다른 한세력중 어디갈지 고민하다 쿠빌라이에 간것.

쿠빌라이는 묘호가 "세조"..로써 동양 전제군주에 세조명칭은 아무나 주는게 아님...후세왕도 교지에 따라야 되는 쿠빌라이가 고려에 대해 고유의 풍속허용하게 했다고.

그리고... 몽골침입은  황룡사 탑등... 거의 모든 문화제가 소실될정도로, 피폐해지게 된다고. 그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요동에 심양왕을 만들정도로 많은 고려인이 강제이주한것에 대한 이유가 된다고.


또 심양왕 같은경우.... 그게... 원나라 내부사정이 있다고....
몽골이 애초 부족민 연합이다 보니... 그쪽 요동지방에 쿠빌라이에 대항하던 강력한 몽골세력이 있었다고(이것도 훗날 고려에 불똥이 튄다고... 여기서 약해진 세력이 고려를 침입(카다안 인지).., 그들을 없애고 난뒤에 견제하려는 내부목적으로 만든게 심양왕... 겉으로야 고려유민들 관리목적이다..라고 하지만... 고려는 부마국임으로 믿을수 있으니

또 고려왕하려했지... 심양왕은 쿠빌라이때나 바로뒤의 딱 한왕만 실권자였고. 나머지는 뭐...
또 애시당초 원간섭기 고려왕은 몽골황제가 형식상이 아니고 진짜로 임명하던 왕임... 고려 신하가 몽골황제나 왕후나 유력자에 고려왕 바꿔라고 로비하던게 많았던 시절.

또 훗날 이성계 요동정벌시도가... 이 심양왕때의 것과 아주 무관하진 않을것

또 잘은 모르겠지만 청나라도 그렇고  북방유목민계가... 한족을 다스림에 자신들 숫자가 부족하니 다른 북방계열을 우대하는 그런게 있는듯... 청나라경우는 몽골을 우대했다고. 조선은 당연하겠지만 무시모드..

또 원시기 고려양은... 훗날 명나라 초까지도 이어지던걸로 알고있슴. 어떤 초창기 명황제가 바꾸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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