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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26 23:58
[기타] 일본을 가장 무시할수 없는 나라가 일본을 가장 무시하는 기이한 현상
 글쓴이 : 호랑총각
조회 : 4,689  

일본을 무시하고 아래로 보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하더군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왜놈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삼국시대의 빈번한 침략, 노략질, 고려때 왜구, 조선때 임진왜란, 일제시대를 겪어왔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의 아래이고 '왜놈'입니다.

그러나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다하죠,,,,항시 일본에게 당해오면서 그들을 무시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허세스럽고 같잖아 보이기도 하겠죠,,이런 분들중 균형감각을 심하게 잃은 분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들이 바로 일뽕이나 역센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런분들 눈에는 우리가 참 추하게 보이겠죠,

역사를 바로아는 것의 중요성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배우는 역사에서는 도저히 우리가 일본을 아래로 보는 이 현상을 설명할수가 없죠. 오히려 일본이라면 위축되고 벌벌떨어야 정상이 아닐까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몇천년을 일본에게 당하고만 산 국민이 일본을 한수 아래로 보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저는 일뽕이나 역센징 같은 기형적인 행태에 대한 대응보다 역사를 정확히 아는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로부터 근세에까지 한일관계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일이 중요할것 같구요,,,그 바탕에서 일본과의 관계회복이나 우리의 균형감각을 되찾을수 있다고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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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bawi 15-06-27 00:03
   
고대로 부터 몇천년을 당해여어??
일본에서 역사공부 하고 오셨나?
햄돌 15-06-27 00:10
   
?? 몇천년을 일본에 당함? ㅋㅋㅋ

저기요, 어디에서 오셨음?
     
호랑총각 15-06-27 00:28
   
일본에서 역사공부 하지 않았구요,,,,우리집에서 왔습니다만,,,,저도 당해왔다고는  생각히지는 않지만 주류학계에서 가르치는 우리 역사를 배우다보면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님들의 한일관계사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견문이 짧아서요,,,,
굿잡스 15-06-27 00:23
   
칠지도 (七枝刀)

백제 어라하(황제)가 열도 제후 왜왕에게 하사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국립부여박물관 전시 내용)

<앞>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굿잡스 15-06-27 00:24
   
“이나리야마”에 새겨진 백제의 열도 지배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68467§ion=sc1§ion2
굿잡스 15-06-27 00:27
   
벡제가 열도를 지배하기 위해 오사카에 건설한 사야마이케 저수지

사야마이케(狹山池)는 오사카부 사야마시에 위치한 관개용 저수지로 전체 둘레 약 3㎞, 전체면적 약 36
 
㏊ 축조연대는 일반적으로 616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저수지는 에도시대까지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매우 오랫

동안 오사카의 중요한 젖줄이며 이곳을 개척하기 위해서 건설된 것으로 물에 관한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서 선행된 저수지 건설. 당시 백제의 앞선 고도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9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0%80%EC%88%98%EC%A7%80&sop=and
굿잡스 15-06-27 00:29
   
열도내 우리 유적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고고이시산성)

사가현(佐賀縣) : 오츠보산성(おつぼ山城, 1.87km)
사가현(佐賀縣) : 쿠마산성(帯隈山城, 2.4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코우라산성(高良山城, 2.8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녀산성(女山城, 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라이산성(雷山城, 2.3km)
후쿠오카현(福岡縣) : 하키성(肥木城, 2.63~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카케노우마성(鹿毛馬城, 2.3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고쇼카다니성(御所ヶ谷城, 2.5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도바루성(唐原城, 2.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미야지다케성(宮地岳城, 2.5km)
야마구치현(山口縣) : 이와키산성(石城山城, 4.0km)
에히메현(愛媛縣) : 에이누산성(永納山城, 2.8km)
카가와현(香川県) : 키산성(城山城)
오카야마현(岡山縣) : 키노산성(鬼ノ山城, 3.2km)
오카야마현(岡山縣) : 오메구리고메구리산성(大廻小廻山城, 3.0km)
효고현(兵庫縣) : 시로산성(城山城)

평균 2~3km, 최대 4km의 산성.
 

 
 
고대 열도에서 성곽이라는 방어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은 삼국시대 우리 가야 백제 세력들이 서열도
 
즉 후쿠오카 일대를 근거지로 하면서 본격화됩니다.
 
 
열도에 있던 소위 원주 조몬인들은 기본 동열도를
 
본거지로 에도시대까지 수렵생활을 지속할 정도로 미개했던
 
종족이였고 열도에서의 본격적 문명은 기원전 3세기경을
 
전후로 야요인들이라는 고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마도와 이끼섬을
 
징검다리로 후쿠오카에 터를 잡으면서 벼농사와 청동문화를
 
퍼뜨리게 됩니다.(우리 남부지역의 고인돌이나 청동기 밀집
 
주거등을 보면 이미 이때 상당한 인구수를 보이는데
 
신석기시대 세계에서도 가장 이른 고래 포경등 해양 문화까
 
지 향유하다 보니 늘어난 잉여 인구들에 의해 이런
 
해양개척 역사가 이른 시기에 이미 본격화)
 
 
그리고 이런 가운데 열도에서 나타나는 우리성곽은
 
전체적으로 3단계의 양상을 거칩니다.
 
백제가 패망하기 전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일명 조선식 산성(혹은 신롱석산성)과 이후 백제가 패망하자
 
이를 구원하기 위해 663년 400여척 약 3만에 이르는 열도의 백
 
제 지원세력이 백촌강에서 전투를 벌리다 신라와 당 연합세력에
 
캐털리고 나자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열도에 다시금 대대적 산성들이 등장하는데
 
이게 2차의 백제식 산성입니다.
 
 
그리고 이후 우리나라할때 나라헤이안 백제계 유민의
 
극소수 귀족시대가 열리면서 기존 사찰 위주의 아스카 도시
 
문명에서 본격적 도성체재가 급격히 등장하고 중소형 위주로
 
동열도 일대 에조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재정 여력등이 여의치 않아서 성곽이 석성이나 토성도
 
아니고 목책형임 ㅋ(이것만 봐도 삼국시대 이후 남북국시대이고
 
우리와 열도의 문화나 국력의 역량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겠죠. 잽 극우들은 우리의 남북국 시대에 등장하는 열도내
 
의 풍을 무슨 당풍 어쩌고로 변색,희석시키려고 애써지만 이때에
 
도 우리 신라 발해의 정치적 문화 영향력이 더 직접적이고 지속
 
적으로 열도에 미치면서 기본 뼈대의 우리식 성곽들은 여전히 이
 
어짐. 당연히도 나라 헤이안 시대의 극소수 귀족이 다름아닌 우
 
리 옷과 언어 문화를 향유하던 우리 백제계나 고구려계 기타 신
 
라계들이니 )
 
BC 3세기 ~ AD 2세기경에 산자락에 우리 선조들이
 
이주하면서 발생한 고지성집락(高地性集落)이 발견되는
 
데 이 일대에 잽어로 '신이 깃든 돌'이라는 고고이시산
 
성 즉 신롱석산성도 발견됩니다. 이게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식 산성이라고 해서 조선식 산성으로 불리게 된
 
거죠.
 
 
이당시의 미개했던 이런 열악한 열도공간에서도 울 선조
 
들은 일찍히 저런 수킬로의 산성을 구축해내면서 이후 점
 
차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동열도로 세력을 확장.
 
가야 이후 백제가 본격적으로 열도를 담로체재로 지배하면
 
서 외치영토로 군림, 문명을 꽃피워 나가게 됩니다.
굿잡스 15-06-27 00:31
   
(조선)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경극전(京極殿) 경조윤(京兆尹) 좌좌목씨(佐佐木氏)와 강기운 삼주 태수(江岐雲三州太守) 태선 대부(太膳大夫) 입도(入道)2907) 생관(生觀)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908)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909)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910)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911)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912)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913)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62414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D%99%A9%EC%A0%9C&sop=and
호랑총각 15-06-27 00:32
   
굿잡스>저도 동의하는바이나  우리 주류학계에서 소위 자기들만의 '정설'외에는  인정하지 않아 우리 국민들이나 학생들이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고 논의조차 되지 않으니 안타깝죠
     
굿잡스 15-06-27 00:34
   
?? 주류 학계에선 인정 안한다?? 뭔 소리인지요. 이거 다 학계에서 밝혀진 것들인데 ㅋ.

(뭐 교과서에 직접지배보다 희석해서 열도에 특정 정치체가 있는 것 마냥 교류 어쩌고 하는

식의 부분도 있긴 하지만)
          
호랑총각 15-06-27 00:36
   
그래요? 백제가 일본열도를 지배했다는것을 주류학계에서 인정한다구요??
               
굿잡스 15-06-27 00:41
   
누가 아니라고 하든가요? (왜그로들은 아래 글도 그렇지만

그냥 본인 아는 지식 자체가 없고 애초에 관심도 없다고 봐야지요.  진짜 진실의

유무를 알려는 것보다 그냥 어그로놀이처럼 본인 보고 싶은 조작된 정보로

희덕거리는 부류들.)
굿잡스 15-06-27 00:41
   
-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제대로 된 교류가 끊긴 통일신라와 일본.
『삼국사기』를 보면, 일본은 통일 신라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서기 698년, 사신을 파견한다.

효소왕(孝昭王) 7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므로, 왕이 숭례전(崇禮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三月, 日本國使至, 王引見於崇禮殿.)

- 방문 이후, 통일신라의 선진문화와 발전상에 경악한 일본은 이를 배우기 위하여 서기 703년 대규모 사절단 파견을 결심-실행에 옮기는데...

성덕왕(聖德王) 2년,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모두 204명이었다. (日本國使至, 摠二百四人)

- 그러나… 통일신라의 수준을 견신라사(遣新羅使) 파견만으로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선진적임을 깨달은 일본. 결국 서기 731년 신라 침공을 통해 강제로 뺏으려고 하는데...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경덕왕(景德王) 원년,
겨울 10월에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元年冬十月, 日本國使至, 不納. )

- 완전히 무시당한 일본, 그러나 자존심은 있어서 허세를 부리면서 다시 사과하려고 하지만..

경덕왕(景德王) 12년,
가을 8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으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 (十二年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廻.)

- 재차 무시당한 불쌍한 일본. 결국 서기 804년, 통일신라의 속국이 되기로 결심, 조공을 바친다.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통일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 이후 한반도의 정세는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어,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왕건의 고려가 건국된다. 애석하게도 고려와 일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대단히 적어서, 제 3자의 자료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측의 자료를 보자.

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旣恥其名. 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 - 郭若虛.『圖畵見聞志』 卷6. 高麗國
왜국은 일본국이다. 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
바람노래방 15-06-27 00:48
   
보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일본 찬양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는것 같네요..
굿잡스 15-06-27 00:51
   
기본적으로 님의 우려나 걱정에 대해서도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합니다.

그럴수록 흔들림 없는 정심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역사 지식과 공부를 통해서 하나 하나 쌓아 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되군요. 사불범정(邪不犯正)의 마음으로 어그로들에게는 때론 적당히 장단 맞

추는 유연함이나 무시가 답이겠지요. 그리고 꾸준히 정심을 쌓는 공부가 더욱 필요해지는.

님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너무졸려 15-06-27 01:06
   
호랑총각님 글 잘 읽엇습니다 딱히 일본을 무시하거나 만만하게 보는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과거로 인하여 일본을 보면 벌벌떨고 위축되는건 전혀 없을거 같은...'-';; 말씀대로 역사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왜곡 된것이나 잘못된거를 바로 잡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해 할수 있다면 좋을거 같네요...
호랑총각 15-06-27 01:07
   
참고로 제가 일전에 글로 소개해드린 구순의 고려대 최재석 교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1/29/20150129019645.html?OutUrl=naver
sejong 15-06-27 01:59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그들의 언행이 무시당할만 하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간적으로 멸시할만한 하다고 생각하여 멸시하는 분들도 있고요.
다른 나라를 사대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지요.

일본이 우리의 아래이고 왜놈으로 보는 관점이 꼭 허세가 아니지요. 그렇게 보는 사람은 그렇게 보는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그렇게 보는 것에 대해 다른 기준으로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좀 우습지 않나요?

경제적으로 우리 보다 뛰어나니 사상적으로 심정적으로 멸시하고 싶은 사람이 잘못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뭐가 다른지. 일본을 우리 아래로 보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서, 우리의 문화적 관점에서 일리가 있는 것이지요. 사촌 간에 결혼하는 풍습이나 성적인 부분, 권력에 굽신거리는 국민성, 혼네와 다떼마에라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이런 것을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잘못된건가요? 멸시할만하다고 느껴 멸시하는데, 다른 이유를 들어 멸시하지 말자고 하는 것도 우습지요.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사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잘 아는 것이 우선일 수가 없지요. 한일관계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는다, 역사적 사실을 밝힌다? 그 표현이 과연 가치중립적 표현인가 모르겠네요?

님의 그러한 표현에는 님만이 양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일종의 오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사를 잘못 보는 점이 있겠지만, 일본 역시 그 정도는 우리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편이지요.

역사는 사관(史觀)입니다. 있는 그 자체를 보는 것은 고고학이고 역사는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해석에서 과연 누가 정확한 역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일본과의 관계회복이나 균형감각을 찾자는 말을 좋지만, 이러한 말은 일본의 우익 사이트에서 주장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요. 원인제공자를 놔두고, 피해자 내지 최소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왜곡된 사실, 균형감각을 얘기한다는 것이 좀 우습지 않나요?
     
호랑총각 15-06-27 02:38
   
제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죠,,, 답변은 드리고 싶은데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셔서 뭐라 드릴말씀이 없네요... 말씀자체도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하여 무식한 제가 이해하기 힘드네요,,
Windrider 15-06-27 10:19
   
일본이 식민지배할수 있었던것도 당시 강대국사이에 껴서 국력이 급속도록 약해진고 일본에게 영국 미국 포르투갈이 힘을 실어줬기에 가능했던거죠. 어떻겐 이런 무식한 주장이 나올수가 있을까요? 신기하네. 그리고 일본은 이미 방사능 샤워로 망했습니다.카운트다운 들어갔죠.
     
호랑총각 15-06-27 10:37
   
일본이 조만간 망한다는 주장이 더 무식해보이네요,, 무슨 근거로 멀쩡한 나라를 곧 망할것 처럼  말하는지..일본 망하면 우리는 더 잘살거 같나요? 일본이랑 우리랑 서로 욕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연관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항상 남때문에우리가 잘못됐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분들이 있는데 '국뽕'이라는 용어가 왜 나오는지 알겠네요,,
          
아비요 15-06-27 13:05
   
우리는 큰 잘못없는데 꼭 우리만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Windrider 15-06-29 17:01
   
체르노빌의 10배의 방사능인데. 이분 방사능을 너무 우습게보는군요.
               
호랑총각 15-07-02 17:47
   
그래서요,,,일본 언제 망한답니까??  어떤 조짐들이 있어요??
제발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막하지 마세요,,, 그러니 국뽕소리 듣죠,,
     
yabawi 15-06-27 12:34
   
방사능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당할 뿐이지 일본 망하지 않습니다.
사실 요새는 엔저 효과를 봐서 확실히 몇년전 보다 경기는 좋아졌습니다.
일본 망한다고 우리가 더 잘살거 같진 않은데.. 더 못살거 같지도 않네요.
서로 의존하는 부분은 있지만 없어진다고 같이 망할정도도 아니에요.
딴 나라하고 교역하면서 어떻게 다 해결됨..
아비요 15-06-27 13:00
   
"일본을 무시하고 아래로 보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하더군요" 이 말 자체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하는 말이죠. 헛소리는 집에서 혼자 하이소~
     
호랑총각 15-06-27 21:15
   
그런말이 있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우리가 일본을 아래로 보는 현상은 분명히 있는거죠,,
그 현상을  부정하시면 그것에 대한 이유나 근거나 설명을 하시면 되구요,,,근거없이 다른사람 글을 헛소리라 하고싶으면  그냥 님 머리속에서만 하심이,,,,
멍하니 15-06-28 20:41
   
과거의 일본을 아래로 보지요 전쟁 끝나고 일본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네요 넘어야할 나라로 보지요
Windrider 15-06-29 17:01
   
일뽕들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듯.
     
호랑총각 15-07-02 17:35
   
일본 조만간 망한다는 헛소리나 해대는 분이... 일뽕들 정신 걱정하기전에 본인 정신이나 찾으시길,,.,
지나가던이 15-07-12 16:56
   
일뽕 쩌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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