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증거로 칠지도의 문구가 많이들 거론되고 있지만,
하지만 야마토가 무진장 강력한 국가였다는 정확적 증거가 너무 많고,
특히 고구려가 남부에서 가장 짜증나게 생각하는 라이벌이 야마토였고,
남부 국가들은 야마토한테 이리 저리 휘둘리고, 쳐맞고 그런 역사 뿐입니다.
칠지도의 문구로 국력을 가늠하고, 그 국가의 위치까지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봤을 때에는 왕국 간의 결혼을 통한, 가족 간 서열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보입니다.
백제와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가야와 매우 밀접해보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가야가 개털리면서, 야마토의 한반도 남부 영향력이 매우 강력해지고,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한 기록들이 있고, 대부분 그 피해자는 가야의 적이였던 신라였습니다.
4세기 이후부터 야마토와 백제간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시작된 관계는 대부분 왕가간의 결혼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왕이라는 문구는 국가간 국력이 아니라, 가족 간 서열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에서 깝치는게 영 짜증나고, 그래서 한번 출동해서, 쭉 정리해주고 돌아왔다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