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술을 마시고 자느라 조금 전에 일어나서 질문글을 보았기에 인제서야 답변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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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감방친구님 글을 보고나니 몇가지 의문이 드는데요...
1. 위만조선 당시 고조선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다면 이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관계는? 고조선은 언제 멸망했을지?
2. 한군현 설치 후 고조선의 대응은 없을지? 고구려가 낙랑군 회복전까지 상호 공존의 관계였을까요?
3. 고조선과 부여/읍루/옥저가 동시대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국가들간의 관계는?
님의 가설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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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가 수년 동안 동아게에서 주장해온 것은 고조선을 말하지 않고 고조선으로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즉 후기구석기ㅡ신석기ㅡ청동기ㅡ철기 문화의 지역단위(하북/대흥안령/연산/칠로도산ㅡ내몽골 동부ㅡ요녕성ㅡ만주ㅡ연해주ㅡ한반도ㅡ규슈)로서의 고유성ㆍ배타성ㆍ시대적 연계성에 집중하여 우리 시원사와 상고사에 있어서 고조선이라는 천장에 갇히지 말고 그보다 위에서 고조선으로 접근하고 이어서 그 후대의 이 지역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요서-만주-한반도-규슈 일대에 동일한 문화권이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연속성ㆍ계승성을 지니고 고유하게 발전하면서 외타의 문화권에 대하여 배타성과 함께 선택적 교류를 해왔고 이 거대 권역이 초기국가적 기반을 갖추어 나라라 규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고)조선이라는 이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본인의 2017년 11월 2일 댓글 발언)"
전국연계 물질문화가 난하/칠로도산 동북쪽으로 점차 나타나는 BC 4~3세기 이전까지 수천 년 난하/칠로도산뿐만 아니라 영정하(현 북경 서남쪽)는 비교적 견고한 문화구분선이었습니다
상ㆍ주ㆍ춘추천국시대 중국문화의 바탕은 북적/서융/동이/남만의 문화가 바탕
춘추전국시대 청동기는 북적과 남만의 것
2) 홍산문화(신석기/초기국가단계)와 하가점하층문화(청동기)에 많은 우리 고대 문화원형이 나타나는데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해서 한중 사학계의 일반설은 동호ㅡ선비/오환 등의 계보로 보는 것입니다
하가점하층문화는 현 시라무룬허 유역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옛 홍산문화 지역까지 파급하였다가 일시에 쇠락하고 하가점상층문화가 나타나는데
재야사학계 일부에서는 이 하가점하층문화를 단군조선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황당한 주장이라 무시하지 말고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3) 현 요서지역(로합하와 대릉하 유역)의 십이대영자문화(BC 8세기)의 주역을 20세기 말까지는 동호로 보는 견해가 통설로 유통됐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적 성격으로 인하여 맥(발)으로 보는 견해가 자리 잡았고 대신 그 북쪽의 하가점상층문화를 동호, 또는 동호의 전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학계 통설에서는 현 심양 일대의 정가와자문화(BC 6세기)를 고조선으로 보고 고조선 성립 연대를 BC 6~5세기로 보는 것을 기조로 삼았는데 정가와자문화는 십이대영자문화와 관련이 있으므로 다시 BC 8세기 무렵을 고조선 성립연대로 보는 견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관자에 나타난 고조선 기록이 대체로 이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 또한 주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4) 저는 신채호의 삼조선 설을 바탕한 진왕과 예왕 가설을 통해서 현 시라무룬허-로합하 지역의 이른 바 동호 세력이 BC 4세기 전후의 어떤 내외부의 갈등으로 인하여 와해/교체 되면서 이 세력이 조아하-눈강 지역으로 북상한 후에 선비족과 부여족으로 나뉘었다고 보고
부여족이 BC 3세기 무렵 현 송원시-장춘시-길림시-하얼빈시 일대의 진한(진조선) 세력을 몰아내고 부여를 세웠으며
여기에서 밀려난 진한 세력이 현 요하 동쪽-천산산맥 서쪽에 진국을 형성했다가 다시 준왕조선/위만조선 교체기, 또는 한사군 설치를 전후하여 파괴되어 남쪽과 동쪽 루트를 통해 한반도로 흘러들어서 경상도 진한을 형성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진한이 낙랑을 '아잔'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뜻 그대로 보면 '우리의 남은 무리'이고, 한편으로는 우리말에서 친척을 뜻하는 '아잠'을 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5) 위만조선 당시 고조선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다면 이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관계는?
ㅡ 이 당시는 이미 열국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ㅡ 여러 작은 나라들이 서로 단군의 후예를 자처(송양왕과 고주몽의 고사) 했고
ㅡ 북쪽은 부여가 헤게모니를 장악
ㅡ 남쪽은 마한에 진한과 변한이 들어오면서 진왕체제로 마한이 헤게모니 장악
6) 고조선은 언제 멸망했을지?
ㅡ 부여 성립 시기인 Bc 3~2 세기에 이미 와해 시작
7) 한군현 설치 후 고조선의 대응은 없을지?
ㅡ 고조선은 이미 사라짐(열국시대)
ㅡ 한사군 성립 직후 토착세력의 활동으로 현도군과 요동군 후퇴, 임둔군과 진번군 통폐합
8) 고구려가 낙랑군 회복전까지 상호 공존의 관계였을까요?
ㅡ 저는 낙랑군이 현 요동지역 태자하 남쪽에 있다가 대릉하 지역으로 옮겨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9) 고조선과 부여/읍루/옥저가 동시대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국가들간의 관계는?
ㅡ 부여는 한나라 건국을 도운 '북맥'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ㅡ 부여는 한-위-진 등의 중국계 정권과 친했습니다
10) 저의 통시적 사관은 다기원론입니다 동일문화, 동일혈족의 바운더리인 대흥안령 동쪽~만주/연해주/한반도~규슈의 판도에서
ㅡ 전라도
ㅡ 평안도
ㅡ 현 요동
ㅡ 남연해주
ㅡ 동요하/길림합달령 북쪽~송화강 남쪽
ㅡ 홍산(로합하~대릉하)
ㅡ 시라무룬허
고조선을 비로소 회복한 때는 광개토대왕 때로서
고구려는 후연을 멸망시키고
부여를 제압하고
거란을 복속하고
신라와 백제를 속국으로 삼음으로써
다물을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