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완안씨, 청 애신각라씨가 신라 김씨의 후예라는 것은 아래와 같이 KBS 역사스페셜에서 현지 취재 답사를 통해서 문헌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증적으로도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입증한 사실입니다.
그렇지않다고 식민빠들이 물증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주장하는 것에 넘어가지 마시고 역사스페셜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다시보기로 보세요.
역사의 진실은 궤변과 망상으로 덮어질수 없습니다.
완안씨, 애신각라씨는 전부 김씨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신라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말갈, 여진을 숙신, 읍루 계통으로만 보는 것은 짱개나 식민빠같이 역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왜곡이나 해대는 부류들이 해대는 어처구니없는 짓입니다.
말갈은 경성대 한규철 교수도 지적했듯이 특정 종족명이 아니라 고구려 시대에 피지배층, 변방민들을 낮춰부르던 일종의 비칭으로 결국은 다 고구려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백제등을 공격하던 말갈이 다 고구려 변방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말갈이 숙신, 읍루라면 저 멀리 연해주에서 한반도 백제까지 쳐들어왔단 말입니까?
말이 안되지요.
그리고 여진족도 상식적으로 숙신, 읍루 그러니까 흑수 말갈로만 이뤄질리가 있습니까?
그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구려, 발해 유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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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특별기획 만주대탐사 제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였다.'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황제.
그의 본명은 '아이신줘러 푸이'이다.
1100년경 만주는 거란이 세운 요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얼빈 인근 송화강 유역에서 유목과 농경을 하던 완안여진도 생여진의 일부였다.
옛 부터 북방에선 '여진족이 1만명 뭉치면 대적하자 말라'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란은 철저히 여진족을 뭉치지 못하게 경계했다.
하지만 완안여진족은 거란의 통치속에서도 힘을 키워 나갔다.
중국의 '팔천리로의 雲月'라는 드라마를 보면 완안 올출의 한자표기를 '김올출(金兀朮)'이라 했다.
감숙성 경안현에는 완안성씨의 여진족들이 동족촌을 만들어 살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계조상을 완안 올출 즉, 김올출이라고 했다.
이들은 1140년대 완안 울출의 아들이 황실 정쟁에 휘말려 살해되자 이 곳으로 탈출했다고 했다.
완안 올출의 후손들도 완안 올출을 김올출이라 부르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