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휘였노라 굽은 솔 웃지마라
춘풍(春風)에 픠온 꽃이 매양에 고와시랴
풍표표(風飄飄) 설분분(雪紛紛)할 제 네야 나를 부러리라.
조선 16대 임금 인조(仁祖)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이 지은 시(詩)인 데, 마치 오늘날의 우리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소나무는 동양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되고 있다.
지구에는 약 120여종의 소나무가 있는 데, 침이 두 개 달린 우리 소나무는 학명이 피누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로 한•중•일에 모두 분포하고 있으며 공히 송(松)으로 쓰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나무의 분포비율이 전세계 그 어떤 곳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우리가 고대로부터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살아온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보여진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 소나무 가지로 금줄을 쳐서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마을에 있는 큰 소나무 옆에 서낭당을 지어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이승을 떠날 때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히며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어 신의 보호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과연 소나무가 우리와 어떤 관계이길래 이토록 애지중지하며 한 몸처럼 살아가는 걸까?
이는 아주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 전해 내려오는 우리 역사의 큰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옛말은 풋소나무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풋'은 풋과일이나 풋사랑 등에서 보듯이 아직 여물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이고 있기에 이를 같은 뜻으로 알고 풋을 생략하여 소나무로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면 풋소나무는 부소(扶蘇)나무를 강하게 발음한 까닭으로 그리 불리게 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4년 양세환(梁世煥) 선생이 백양한민(白陽桓民)이란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7월 11일부터 7월16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연재한 구월산순례기(九月山巡禮記)에는 부소(扶蘇)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분은 동 순례기에서 비서(匪西), 부소(扶蘇), 부소(扶疎), 부사(扶斯)를 서로 같은 말로 보고 있으며 또한 "부소(扶蘇)를 훈역(訓譯)하여 송(松)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풋소나무는 부소나무에서 나온 것임을 알수 있다.
어떤 이는 풋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로 오해하여 청송(靑松)으로 풀고 있는 데, 이런 기록을 보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이는 고구려의 부소갑(扶蘇岬)이 고려의 송악(松岳)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소(扶蘇)에 관한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시경(詩經)이다.
山有扶蘇(산유부소)
隰有荷華(습유하화)
不見子都(불견자도)
乃見狂且(내견광차)
山有喬松(산유고송)
隰有游龍(습유유룡)
不見子充(불견자충)
乃見狡童(내견교동)
시경(詩經)은 풍(風), 아(雅), 송(頌)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풍(風)은 달리 국풍(國風)이라 한다.
이 시는 국풍(國風)중 정(鄭)나라의 풍습을 노래한 정풍(鄭風)편에 실려 있다.
사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 시에 대한 해석은 전부 엉터리라고 할수 있기에 따로 풀이는 생략한다.
이 시에서 보듯이 산유부소(山有扶蘇)의 댓구로 산유교송(山有喬松)을 쓰고 있으니 부소(扶蘇)는 교송(喬松) 즉, 큰 소나무를 뜻함을 알수 있다.
그런데 부소(扶蘇)를 온전히 소나무를 가리키는 말로만 인식 하기에는 같은 뜻으로 쓰이는 비서(匪西)나 부사(扶斯) 등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비서(非西), 부소(扶蘇), 부사(扶斯), 아사(阿斯) 등을 이두(吏讀)로 읽으면 '아스'로 소리난다고 하였다.
그럼 시경에 쓰인 부소(扶蘇)는 아스로 읽어야 함을 알수 있다.
우리는 이두(吏讀)가 삼국시대말에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 때 꽃을 피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시경에 이미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두를 사용한 시기를 최소한 시경이 등장하기 전부터로 소급하여야 함을 깨우쳐주고 있다 할 것이다.
또한 이두는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민족만이 쓰는 고유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로 쓰여진 것이 바로 시경(詩經)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시경을 지은 사람이 공자(孔子)가 될수 있단 말인가?
시경은 한민족이 부르던 노래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공자 또한 그 뜻을 알기 위해 특별히 이아(爾雅)라는 자서(字書)를 편찬했는 데, 우리말 이두를 모르니 궁여지책으로 취한 조치로 보여진다.
그렇기에 시중에 나와있는 시경의 풀이가 온통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리라.
공자는 그렇게 하고도 도저히 풀수 없는 90%의 노래는 버려버리고 나머지 10%만으로 지금의 시경을 편찬하였으니 우리의 역사는 대게가 이런 식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경은 공자의 작품이라고 인구에 회자되며 널리 칭송받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비극의 한 장면이다.
영화 <직지코드>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할수 없었다고 나온다.
유럽인들은 우리의 직지심경이 현존하는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과 그들 또한 우리 인쇄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버젓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한 장면이다.
한 쪽은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에 빠져 살고, 다른 쪽은 중화중심주의에 미쳐 돌아가 마치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인냥 행세하니 가짜가 진짜가 되는 흑백혼효(黑白混淆)의 세상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뒤집힌 세상을 바르게 잡아나갈 목표를 세울수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부소(扶蘇)의 본디 발음이 아스라면 아스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라틴어로 국명을 지을 때는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의 이름을 접미사로 써서 국명의 끝에 -a나 -ia를 붙이니 아시아(Asia)는 아스(As)의 땅이라는 뜻인 데, 정확히는 아스가 모셔진 땅을 의미한다.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Avesta)에서 아스만(Asman)은 아스에서 나온 분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신을 말한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Veda)에서 아스만(Asman)은 하늘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란인들과 인도인들은 하늘을 공히 아스만(Asman)이라고 부른다.
북유럽의 켈트족 신화에서 최고신인 오딘(Odin)은 아스(As) 신족으로 불린다.
이를 보면 아스(As)는 하느님이 태어난 곳을 상징하는 말임을 알수 있다.
아스는 약 15,000년전 지구 북반구에 수 백미터 높이의 해일이 밀어닥칠 때 우리 선조들이 타고 온 방주를 말한다.
그래서 그 형상으로 글자를 만들어 조(朝)라고 하였으니 조(朝)의 처음 뜻은 아침이 아니라 아스였다.
이는 조(朝)의 갑골문이 배(舟) 위에 사람(人)이 타고 있는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아도 알수 있는 것이다.
또한 조(朝)의 뜻을 글자로 만들어 비서(非西, 匪西), 부소(扶蘇, 扶疎), 부사(扶斯), 아사(阿斯) 등으로 썼으니 이를 이두로 읽으면 전부 아스로 소리가 난다.
아스(朝)는 배 위에 커다란 알이 올려져 있으니 본디 이름은 아스알이다.
아스알은 비서갑(非西岬)이나 부소갑(扶蘇甲) 등으로 전해오는 데, 이를 이두로 읽으면 공히 아스알로 소리가 난다.
노아의 방주는 앍(Ark)이라고 부르니 아스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조(朝)의 앞에 글자는 알을 상형한 것인 데, 이는 알(斡)이라는 글자에 그 소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럼 조(朝)는 방주 위에 올려진 알을 통하여 신(十)의 뜻이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임을 알수 있는 것이다.
약 15,000년전 대홍수 시대에 아스알(朝)은 오악(五岳)으로 이루어진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코룸(崑崙)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스알에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이 되는 것이다.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의지를 온 천지에 드러내 보이고자 방주의 형상으로 갓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등장하니 사람들은 이 분을 일러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한알(天)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천(天)의 가장 오래된 글자는 옥으로 만든 그릇인 옥기(玉器)에 보이는 데, 바로 방주 형상의 갓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부터 이러한 전통이 후대로 계속 이어지니 한민족의 지도자는 모두 하늘의 아들이거나, 알에서 태어나는 등 천강신화(天降神話)와 난생신화(卵生神話)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의 최고신인 오시리스(Osiris)는 달리 아스알(Asar)이라 하니 이는 기원전 약 3,000년경 이집트로 건너 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토착신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이맥(李陌) 선생이 쓴 태백일사(太白逸史) 마한세가편에는 23대 임금이 아사지(阿斯智)로 나오는 데, 이를 이두로 읽으면 아사(阿斯)는 아스이고 지(智)의 본 글자는 알 지(知)이니 아스알의 전통을 이었음을 알수 있다.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된 환두대도의 칼집 앞면에 새겨진 이사지(尔斯智)왕 역시 아스알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아스알에서 태어난 한알(天)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과 귀를 거쳐 세계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되니 그 흔적이 아직까지도 오롯이 남아 있다.
한알(天)이 처음 등장할 때 머리에는 방주형상의 갓을 쓰고 양쪽 어깨에 까마귀 모양의 수를 놓은 하얀 옷을 입었는 데,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옷흰님이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가 유럽의 켈트(Celt)족에게 전해져 오딘(Odin)이라는 최고신으로 등장하니 오딘은 옷흰의 소리를 받은 것임을 알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한알(天)이 쓴 방주형상의 갓을 보고 마치 황소의 뿔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여 황소를 최고신으로 섬기는 어이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유대교에서 아알(la)은 알렙(aleph)과 라메드(lamed)의 결합형으로 하느님과 동시에 황소의 뜻을 갖고 있다.
알렙(aleph)은 그 자체로 황소를 뜻하며 집의 뜻을 가진 베트(bet)와 합하여 알파벳(Alphabet)이 된다.
우리말에 '하'와 '아'는 같은 목구멍 소리이고 여린 히읗(ㆆ)은 소리는 낼수 있어도 현대 국어로 쓸수는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알과 안알은 소리를 구분하기 어렵다.
또 우리말은 앞말의 받침이 탈락하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안알의 소리는 아알로 쉬이 바뀔수가 있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90%는 하자르(Khazar)족이고 이들은 남부 러시아 지금의 조지아(Georgia)지역에 살았는 데, 이 지역은 주로 만주에 살던 투르크족이 이동하여 살던 곳이고 하늘의 고대 투르크어는 안알(Anar)이었다.
그렇기에 안알(天)의 소리가 아알(la)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만주지역에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참고로 신라 김씨의 시조인 알지(閼智)는 이두로 읽으면 알알로 소리나는 데, 이 역시 앞말의 받침이 탈락되면 아알이 되니 한알(天)의 정통성을 이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 엘(El)은 하느님과 동시에 황소의 뜻을 가지며 이후 엘로힘(Elohim)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슬람교에서 일(Il)은 하느님과 동시에 황소의 뜻을 가지며 이후 정관사 알(Al)을 붙여 알일라(Al Ilah)로 발전하는 데 이를 줄여서 알라(Allah)로 부르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인 제우스(Zeus)가 황소로 변하여 에우로페(Europe)를 태우고 다닌 지역이 지금의 유럽이 되었다고 하는 것도 한알(天)의 이야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한알이 갓을 쓰고 있다는 소리만 전해 듣고 하느님을 갓(God)으로 새겼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아스알에서 한알이 태어나는 이야기는 이미 온 천지에 널리 퍼졌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은 누구나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이고 싶어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한알이 태어나는 정통성을 그들의 거주지로 옮기고자 하는 욕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아스알(朝)은 오악(五岳)으로 이루어진 코룸(崑崙)의 정상에 있었다.
코룸은 그 높이가 삼천장이 넘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기에 정상은 항상 눈으로 덮혀 있었다.
그래서 코룸을 달리 흰두(白頭)라고 부르고, 거기에서 한알이 태어나기에 알밴 터라고도 하였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높은 산을 곤륜산(崑崙山)이라 한 것이나 인도인들이 가장 높은 산을 카라코룸(Kara Korum)이라 한 것과 몽골의 징기스칸이 그들의 수도를 카라코룸(喀喇崑崙)이라 한 것 등이 모두 이러한 욕심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인더스강가에 살던 아리안(Arian)을 보고 힌두(Sindhu)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이 이 소리를 듣고 인두(Indhu)라 하였는 데, 그들은 흐(h) 발음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 인도를 라틴어로 인디아(India)라 하니 인도는 흰두(白頭)를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알프스(Alps)는 독일어로 알펜(Alpen), 이탈리아어로 알피(Alpi), 프랑스어로 알프(Alpes)라 하는 데, 이는 산을 의미하는 켈트어 알브(Alb)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켈트어 알브(Alb)는 산 또는 희다는 뜻이라고 하니 이는 흰두(白頭)의 의미와 알밴 터의 소리가 전해진 것임을 알수 있다.
백색증을 뜻하는 알비노(Albino)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영국을 뜻하는 가장 오래된 말인 알비온(Albion)은 알밴 터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볼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최고지도자를 아서(Arthur)라 하였으니 Arthur는 Aser로 볼수 있고 이는 아스(As)에서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같은 이치로 아쉐르(Asher) 역시 아스(As)에서 태어난 분으로 해석할수 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Ehyeh Asher Ehyeh)"를 "I Am That I Am"으로 옮기고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나"로 번역하는 데, 이는 "여호와, 아스에서 태어난 여호와"로 해석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더 쉽지 않나 싶다.
한편 한알(天)은 아스알(朝)에서 태어났기에 방주형상의 갓을 쓴 반면 다른 무리의 지도자들은 아스알을 받치고 있는 코룸(崑崙)의 형상으로 만든 갓을 썼는 데, 이는 아스알과 코룸의 관계처럼 한알을 받들어 모시기 위함이었다.
흔히 신문의 사설 등에서 칼럼이나 컬럼으로 쓰이는 코룸(Column)은 라틴어 코룸나(Columna)에서 나왔고 기둥의 뜻을 갖고 있다 하니 유럽에서는 코룸(崑崙)의 이미지가 받들어 모신다는 뜻으로 전승되어 온 것임을 알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악(五岳)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코룸(崑崙)을 닮은 갓을 쓰게 되었으니 왕관을 뚯하는 코로나(Corona)나 크라운(Crown)은 바로 코룸의 모습과 소리를 받은 것이다.
이를 보면 동양과 서양의 관계는 처음부터 군주와 신하의 신분체계로 형성되었음을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둘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른 기록은 없는지 한 번 살펴보자.
천(天)의 가장 오래된 발음을 알수 있는 기록은 당(唐)나라 시대 때 편찬된 운서(韻書)인 당운(唐韻)이다.
당운(唐韻)에서 천(天)의 발음은 타전절(他前切)이라 하였으니 반절법(反切法)에 따라 타(他)의 초성과 전(前)의 중성 및 종성을 합하여 '턴'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턴 이전의 발음은 무엇이었는 지 알수 없으니 다른 글자와 비교해 보아 유추할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석가(釋迦)를 앞말의 받침을 탈락하여 서가로 부르는 데, 이는 샤카(Sakya)를 소리나는 대로 옮겼다는 것을 알수 있다.
석가를 서가로 부르게 된 이유는 농경을 할 때와 목축을 할 때의 의사소통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목축을 할 때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크게 소리쳐야 비로소 의사가 전달되는 데, 이 때 받침이 있는 말 보다 받침이 없는 말이 더 쉽게 전달이 된다.
그래서 점차 이렇게 말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습관으로 굳어지면 나중에는 받침을 탈락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된다.
초기 불경을 번역한 구마라집(鳩摩羅什)은 투르크족으로서 이미 이런 습관에 길들어졌기에 샤카(Sakya)를 석가(釋迦)로 옮기더라도 서가로 읽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붇다(Buddha) 역시도 불타(佛陀)로 번역하였는 데, 이 또한 앞말의 받침을 탈락하여 부타로 읽어야 본음에 가깝게 소리낼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어떤 것이 있다가 없어지면 양모음이 음모음으로 바뀌는 경향을 종종 보이는 데, 대표적으로는 알이 얼로 바뀐 것 등이 있다.
그러니 부타는 부터로 모음이 바뀌게 되고 구개음화를 거쳐 지금은 부처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경(佛經)이 한민족의 발음을 따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준용하여 천(天)을 풀어보면, 천은 턴이 구개음화로 바뀐 것이고, 턴은 탄의 모음이 변한 것임을 알아낼수 있는 것이다.
1만년전 원시언어인 노스트라틱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은 천(天)의 고대 발음이 탄이었다고 하니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탄(天)은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로서 아홉 무리로 이루어진 구리(九黎, 九夷)를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탄(天)을 달리 탄구리로 불렀으니 이 말이 지금은 투르크족에게 탱그리로, 우리에게는 단군(檀君)이나 탄군(天君) 등으로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아스알(朝)과 코룸(崑崙)의 모습이 서로가 쓴 갓의 형태로 진화되었다면 탄(天)을 받들고 따르는 자들은 술탄(述天)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술탄(述天)은 방위의 이치에 따라 모두 네 명을 두게되는 데, 이들을 합하여 흔히들 사탄(四天)이라 부르게 되니 본래의 탄(天)은 이들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본탄(本天)이라 칭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말은 앞말의 받침이 탈락되는 현상때문에 본탄(本天)의 발음은 보탄이 되었을 것이다.
북유럽의 최고신인 오딘(Odin)은 우리의 한알(天)이 전해진 것이고, 오딘을 달리 보탄(Wotan)으로 부르고 있으니 보탄(本天)의 소리가 그렇게 전해진 것이리라.
술탄(述天)은 아랍에서 통치자의 뜻인 술탄(Sultan)으로 쓰이고 있고, 사탄(四天)은 수메르(Sumer)를 다스렸던 소호금천(小昊金天)이 교황의 서기였던 제롬(Jerome)에 의해 악의 상징인 사탄(Satan)으로 바뀌게 되는 데, 주제와 다른 얘기라 나중에 따로 다루어 드리겠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홍수 이후 인류의 역사는 한민족에 의해 비로소 새롭게 시작이 되었으며, 역사의 전개과정마다 새로 잉태되고 생산된 것들이 전인류에게 속속들이 스며들어 종교나 문화와 생활습관 등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이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있기에 어떤 불순한 무리가 인위적으로 바꾸려 들어도 절대 불가능한 것이고 설사 일부를 그럴듯하게 바꿔치기 하더라도 결국은 들통이 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짓을 서슴치 않고 벌이는 무리들이 지금도 우리의 양 옆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한족(漢族)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그 존재 자체도 입증할수 없는 허구의 족명(族名)이지만 그들 손으로 만들어 낸 문화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그래도 굳이 언급하자면 대륙의 동남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하모도(河姆渡)문화 하나뿐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그럼 대륙에 남아있는 나머지 문화는 전부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오랫동안 그 땅의 주인으로 살았던 한민족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속성인 자기중심주의에 의해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는 마치 주인과 종이 서로의 역사를 쓸 경우, 주인은 살아온 사실만 나열하면 되지만 종은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빠져 거짓으로 역사를 꾸미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들 손으로 만든 역사가 아님에도 자기들 땅에 있으니 제 것이라고 우기는 뻔뻔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어찌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흑백혼효(黑白混淆)의 세상이 아니라고 할수 있겠는가?
그들이 처음으로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우리가 신봉하는 신을 악신(惡神)으로 만들고 그 자리에 허구의 신을 앉힌 것이었다.
고대에 우리가 믿던 신은 마라(麻羅)였다.
마라(麻羅)는 자웅동체(雌雄同體)의 형상으로 여신으로 불릴 때는 마(麻) 또는 마고(麻姑)라고 하고, 남신으로 불릴 때는 라(羅) 또는 라후(羅侯)라고 하였다.
마라(麻羅)에 관한 역사적 유적이나 유물, 기록 등은 전세계 도처에 넘쳐나서 다 언급하자면 A4용지로 수 십장은 써야 하기에 모두 생략하고 아주 간략하게만 살펴 본다.
마라(麻羅)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수메르(Sumer)어에 남아 있다.
수메르어 연구의 권위자인 Dr. John Halloran이 쓴 Sumerian Lexicon에는 수메르의 주신 마르둑(Marduk)을 달리 마라(Mara)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메르의 주신 마라(Mara)는 기독교 문명에서 마라(Marah)로 전해지고 이후 성모 마리아(Maria)를 거쳐 프랑스에서 자유의 여신인 마리안(Mariane)으로 바뀌게 되며 지금은 미국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으로 서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마라나타(Maranatha)는 성서학자들이 "주께서 오신다"로 번역하는 데, 이는 "마라께서 나타나신다"로 풀어야 본뜻에 가까울 것이다.
발트해 연안의 라트비아에서는 마라(Mara)가 건국의 신으로 불리는 데, 이에 관한 노래가 가수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로 번안되어 전해오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의 신 마라(麻羅)는 아직까지도 세계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족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러 놓았는 지 한 번 보자.
그들은 마라(麻羅)에 귀신(鬼)을 씌워 마라(魔羅)라는 글자를 만들고 최고의 악신(惡神)으로 가르치고 있다.
또 악귀(惡鬼)라는 글자에 마(魔)를 집어 넣고 이를 악마(惡魔)와 마귀(魔鬼)로 분리하여 악의 대명사로 세뇌시키고 있다.
나아가 색마(色魔), 살인마(殺人魔) 등과 같이 온갖 나쁜 말에는 반드시 마(魔)를 집어 넣어 우리들 곁에서 마라(麻羅)를 영원히 매장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도교(道敎)에서 믿는 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끌어다 앉히니 이는 그들 역사의 정체성을 도교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재하는 역사가 없기에 모든 역사를 허구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허구로 만들어진 역사를 사람들이 믿게하는 이론적 토대를 도교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왜냐하면 도교의 가르침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데도 인간의 상상속에서 마치 그것이 실재하였던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렇게 한 번 거짓으로 역사를 만들기 시작하니 그 다음부터는 어떤 것도 거치를 것이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바로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25사(史)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그것을 정사(正史) 즉, 바른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서 이런 거짓말이 먹히기 시작하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그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치도 그들이 원조이고, 한복도 그들이 먼저 입기 시작했으며, 아리랑도 그들 소수민족의 문화이니 당연히 그들 것이라 한다.
심지어는 대한민국도 그들이 만들었으니 영원히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 한다.
종이 주인을 몰아내고 주인행세를 하니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렇게 된 모든 이유가 그동안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도 밀어부칠수 있는 당당한 힘을 갖기 시작했다.
전 국민이 똘똘뭉쳐 그들의 횡포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우리 국회에서도 동북공정방지법을 준비중이다.
더 이상 그들의 횡포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우리의 역사를 찾아서 전국민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주제인 소나무를 가져와 봤다.
소나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으면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긴 글 읽어주신 회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 카톡에 올린 글을 옮긴 것이라 존칭어가 생략되었으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