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제국 간도성의 초대성장 이범익은 1938년 9월 15일에 조선총독부에 조선청년들로 결성된 특설부대를 간도에 조직할 것을 제의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안도현 치안대, 훈춘국경감시대, 연길청년훈련소, 봉천육군군관학교와 기타 만주국군 부대에서 일본인 군관 7명, 조선인 위급군관과 사관 각각 3명을 선발하여 안도현 명월구에 조선인 특설부대 본부와 분부를 설치했는데 후에 이 부대를 간도성특별설치부대(간도특설대)라고 불렀다.
간도특설대는 우리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치부의 하나다. 일제 패망으로 팔로군과 소련군에 의해 해산돼 감옥 터만 남기고 사라진 간도특설대는 소수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곤(연인원 2,100여명) 조선인 사병들에 의존해 운영됐다. 일제가 조선인을 앞세워 조선인 항일무장단체를 제압하겠다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으로 만들었으며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조선인 출신 장교가 해방 후 반공을 방패 삼아 한국 정부의 요직으로 스며들었고 이후 친일 청산의 소낙비를 피해 역사의 저울 위에 서지 않았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1년여 동안 항일 조선인의 전초기지와 같았던 중국 간도 지�,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 안투현 밍위에진 등을 오가며 간도특설대의 자취와 이야기들을 취재해 오랜 베일을 들춰냈다. 더불어 옌볜 조선족자치주 차원에서 특설부대 복무자들을 조사해 기록한 부대 조직, 구성원, 토벌 실태와 일본에 남아있는 토벌대 작전 명령서, 친일 신문기사 그리고 이 부대 출신인 신현준 장군, 백선엽 장군의 자서전 등을 토대로 특설대의 자취를 밟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