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3]에서 검은 글자는 [그림 1]에 나온, 가죽 혁에 획 하나가 더 추가된 모양의 글자인데 거기서 빛날 화가 될려면 빨간색 막대기 6개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즉, 빛날 화에서 6개의 줄을 빼먹었다는 말입니다. 고로 위 주소에서 주장하는, 강화도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증거인 [그림2]의 江 바로 다음에 나오는 글자는 華를 표현했다고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 革으로 보는 편이 훨씬 신빙성이 높은데 그럼 江革이 뭘 뜻하는 말이냐면 중원 한나라 시대의 인물입니다. 도적마저도 감동시킨 효자로서 근세 조선시대에도 찬양을 받아 행실도에 실리기도 했습니다(http://db.sejongkorea.org/front/detail.do?bkCode=P11_OR_v005&recordId=P11_OR_e04_v006_0050)
애초에 [그림 1]의 지도는 중원도 아니고 근세 조선 중기인 1666년에 만들어졌으니 많은 위인들 중에서 굳이 효자를 고른 점이 납득이 됩니다(https://museum.seoul.go.kr/www/relic/RelicView.do?mcsjgbnc=PS01003026001&mcseqno1=013124&mcseqno2=00000&cdLanguage=KOR). 근세 조선은 유학을 신봉하는 나라였으니 말입니다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摠便覽圖)는 특징이 있는데 [그림 1]에서 보면 빨간 원에 약간 가려져서 江革의 바로 서쪽에 있는 인명이 보다 널리 알려진 인물인 당나라의 재상인 방현령입니다. 여기서는 房玄齡의 齡(령)이 간소화되어 㱓로 나타났습니다. 강혁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산동성 치박(淄博)시에 소속된 림치(臨淄) 출신 인물이라 저렇게 붙어서 나옵니다. 즉, 아무런 표시가 없이 등장하는 단어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입니다
또 사례를 보면 강혁의 바로 위에 逢萌이 있는데 봉맹은 한나라의 인물로 현 창읍시(昌邑)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창읍이란 말이 근처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