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이 무리 1,000여 인을 이끌고 망명을 하지 않습니까?
서쪽 끝 100여리 정도 크기의 땅을 하사 받고 그곳을 지키는 직책도 받고,
그 이후에도 전란을 피해 넘어오는 이들이 많아서 위만이 그들을 규합해 세를 불리고 결국 혁명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들 위만세력은 연(진)에서 넘어온 이들인데 이들의 물질문화도 당연히 연(진)계가 아니었을까요?
무기류며 토기, 갑옷, 제기, 무덤양식 등등 말이죠.
또 위만조선이 된 이후에도 위만조선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가는데 기존의 토착 무기를 계속 사용했을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위만과 그 무리는 연나라에서 전문적 군인이었고 조선에 망명한 이후에는 그들의 그러한 장기(군사적 경험, 무기 등)를 백분 활용해 혁명을 한 것일텐데
이들 위만무리가 조선을 접수한 후 군사체계, 무기체계를 저들 식으로 새롭게 정비하지 않고 기존의 토착의 것을 그대로, 오히려 연(진)에서 배워오고(군사기술, 무기제작술, 야금술) 가지고 온(무구) 것들을 버리고 토착의 것을 채택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 시기가 비록 초기 철기시대입니다만 무기, 갑옷 등도 모두 철제를 사용했을까요? 아직 청동제 무구가 중심이던 때가 아닙니까?
또 한-위만조선 전쟁을 다루는 글에서 왕왕 조선의 패배를 한나라보다 무기와 전술 등 군사적 열세, 또는 문화적
후진성이 원인인 것처럼 기술되는 경향이 있고 이곳 게시판에도 종종 그런식으로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는 한나라 군대가 전투에서 번번이 패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