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족은 원래 지금의 연해주 지방과 만주일대, 한반도 북부에 널리 퍼져 있는 종족입니다.
이들은 7개의 부족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윗분의 글처럼 속말, 백산, 흑수, 불녈, 호실, 안차골, 백돌로 나눌수 있습니다. 부족의 이름은 대대로 살던 곳의 특징적인 지명에서 따온 겁니다. 예를 들어 흑수말갈이 대대로 살던 곳은 문자 그대로 물빛이 검은 곳이었다는 겁니다. 석유가 났던 곳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고 살던 지형의 특성상 강바닥의 색이 검은색이거나 깊은 강이라 검게 보였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속말과 백산은 예맥족으로 나중에는 수렵이 아니라 농경을 주로 하게 됩니다.
속말과 백산은 한반도의 현재 함경도 지방과 함흥에서 강원도 일대로 터전을 잡고 농사를 지으며 정착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옥저와 동예입니다.
반면에 옛날의 숙신족의 풍습을 그대로 이어받은(숙신족은 고조선때부터있던 부족으로 수렵과 약탈을 하던 사람들이고 매우 용맹하고 거칠며 특히 독화살을 잘쓰기로 유명한 부족입니다. 그들의 후예가 말갈입니다.) 부족이 나머지 다섯부족인데,
이중에 속말, 백산, 불녈, 호실, 안차골, 백돌은 부여에 밀려서 점차 만주 일대에서 한반도로 오게 되었고 흑수말갈은 부여보다 더 북쪽으로 가거나 연해주 지역으로 쫒기게 됩니다.
이중에 속말을 비롯한 다섯부족은 고구려가 건국하면서 힘을 떨치자 다시 밀려서 한반도의 평안도, 황해도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백제와 잦은 마찰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옥저와 동예가 고구려에 평정된 다음엔 동예의 아랫쪽 땅(지금의 강원도 남부)까지 진출합니다.
거의 약탈만을 일삼다가 때때로 백제와 신라에 심각한 타격도 주기도 했습니다.
말갈족은 점차 고구려의 힘이 커지자 부족 내부적으로 고구려에 복종하는 시스템으로 갔고 고구려의 의도에 따라 백제, 신라를 적당히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광개토대왕이 백제, 왜, 가야의 연합군과 싸우면서 아예 말갈의 땅을 전초기지로 삼으면서 한반도에 있는 말갈족은 고구려에 완전히 예속됩니다.
즉, 한반도 말갈은 완전 예속되기 전에는 고구려의 사주를 받는 행동대원격이었고,
광개토대왕 이후 예속된 후에는 전방의 백성으로 자연스럽게 전방부대의 역할도 겸하게 된겁니다.
나중에 신라의 당항성을 공격할때는 말갈군대 1만명이 전위부대 역할을 합니다.
참고로 고구려는 주변 부족들을 차례로 제압한 다음에 그 부족들의 생활터전 가까운 곳에서 전쟁이 나면 고구려 중앙군과 더불어 전위부대로 활용을 많이 했습니다. 당태종이 침공했을때도 고연수, 고혜진의 부대에는 다수의 말갈, 거란족이 있었습니다.
다만, 흑수말갈은 예속을 거부하고 계속 수렵과 약탈을 하면서 복종과 반항을 번갈아 하게 됩니다.
나중에 흑수말갈은 지금의 연해주와 옛 북부여 지역에 있으면서 발해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발해 멸망후엔 여진족이 되는 겁니다. 결국 이들은 청나라를 세우면서 길고 긴 역사만에 중원을 정복하는 개가를 올리게 됩니다.
고구려 멸망 후의 한반도 말갈부족들(속말부 백산부)은 대조영과 발해를 세우는데 참가해서 큰 역할을 담당하지요. 대조영과 함께 전장에 섰던 한반도 말갈의 우두머리인 걸걸중상(대조영)은 고구려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대조영의 아버지가 대조영 입니다. 말갈을 이끈 사람이 대중상인 겁니다
말갈이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유목민족, 수렵민족의 특성상 일망타진의 토벌이 쉽지 않았고
그들이 그만큼, 기동력과 용맹함, 사나움을 겸비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국경지역의 백제, 신라 고을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