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황제들-청 황실의 사회사』
이블린 S. 로스키 저, 구범진 역
까치, 510p, 25,000원
지금으로부터 일 백 년 전 이웃 중국에서는 청(淸)제국이 무너지고 이 천여년 이어진 황제지배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수립한 신해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중국의 굴곡진 공화정의 역사가 100년째에 접어 들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병자로 불리던 중국은 이제 세계 패권을 이야기할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은 역사적 전환기다. 바로 이 때 공화정 직전의 중국 최후의 왕조 청 제국을 내부자의 시각으로 해부한 이블린 S. 로스키의 역작 『최후의 황제들-청 황실의 사회사』와 함께 신묘년 한 해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구룬(부족, 국가)에는 원래 만주, 하다, 울라, 여허, 호이파 등의 이름이 있었다. 이전에 무식한 자들이 종종 [우리를] 주션이라고 불렀다. 주션이라는 말은 곧 시버와 차오머르건의 야만인을 가리키며, 우리 구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 구룬은 만주라는 이름을 정한다. 우리 구룬의 통치는 무궁할 것이며 많은 세대동안 전해질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우리 구룬을 원래 이름인 만주로 불러야 하며, 과거의 천박한 이름을 써서는 안 된다.”(p.62)
1635년 청 태종 홍타이지가 한 말이다. 그는 중원 대륙을 정복하기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만주’라는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저자는 베이징 자금성에 있는 제1역사당안관에서 잠자고 있던 만주문 사료를 통해 ‘만주족 한화(漢化)론’을 조목조목 해체한다. 만주족 한화론이란 무엇인가? '신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은 일찍이 중국의 통치자인 만주족이 외래 민족이었기 때문에 중국이 구미의 침략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인들을 봉기에 동원해 만주족을 무너뜨리고 한족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중국 인민은 공통의 피, 공통의 언어, 공통의 종교, 공통의 관습을 가진 한(漢), 즉 중화민족-단일하고 순수한 종족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을 침공했거나 중국으로 이주해온 여러 민족들은 수백년에 걸쳐 한인 인구 속에 융합됐다는 논리였다. 이것이 쑨원의 ‘한화론’이다. 이것이 과연 역사적 팩트일까? 로스키는 ‘뿌(不, NO)’라고 말한다.
“모든 사회에서 치자(治者)의 시각은 피치자(被治者)의 시각과 크게 다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국민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왕조국가에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 아니라 임금이었다. 따라서 한 왕조의 역사적 실체를 이해하려면 그 왕조의 주인이 누구였느냐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대중에게 공개할 의도가 없었던 만주어로 작성된 황실 내부의 당안 자료를 통해 ‘내부자의 시각’으로 청 황실을 해부한다. 논거는 다양하다. 우선 다중수도체제. 한인 신민의 천자가 머무는 중국 본토의 베이징, 만주인-몽골인의 칸의 거처인 만주의 성징(盛京, 지금의 선양),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 신도들이 숭배하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내몽골의 청더(承德)까지 총 세 개의 수도를 운용했다. 1762년 건륭제가 일 년 중 자금성에서 머문 시간은 1/3에 불과했다.
다음은 언어. 홍타이지는 앞에서 인용한 말과 같이 부족 아이덴티티 위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만주문자를 창제한다. 건륭제는 이에 덧붙여 사신들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몽골어와 티베트어, 위구르어 까지 익힐 정도로 코스모폴리탄형 군주였다. 특히 청이 러시아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은 한자로 씌여진 문건을 남기지 않았다. 만주어와 러시아어만으로 기록을 남겼다. 러시아와의 외교는 한인들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었다. 따라서 한자 사료만 보아서는 청나라 치자의 속내를 읽을 수 없다.
또 다른 에피소드. 어느날 건륭제는 너무 많은 한어가 만주어 상주문에 스며들었다고 불평했다. 대학사 나친을 우두머리로 태스크 포스팀을 만들었다. 낡은 한자 차용어를 대체할 새로운 만주어 단어의 목록을 만들었다. 이로써 한어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만주어에서 대거 사라졌다. 대신 1,700개가 넘는 새로운 만주어 단어가 생겼다. 이를 통해볼 때 한국이 서울의 표기로 한청(漢城)을 버리고 서우얼(首爾)을 택한 것은 나쁘지 않은 시도다. 한족의 중국을 이웃한 민족의 현명한 ‘생존 노하우’인 셈이다. 자주 해볼 일이다. 한글이 영향을 끼친 한자어를 국어학자 이기문박사가 연구해 모시(毛施)와 삼(蔘) 정도를 찾아냈지만 그 조차 근거는 불분명하다.
저자는 이 밖에도 청 황실의 의복, 음식, 혼인제도, 기우제 등을 통해 한인왕조와 달리 청만의 독특한 제국통치술을 세세하게 논증한다. 한족의 왕조였던 송(宋), 명(明) 등의 왕조에서 빈번했던 황실의 반란, 외척의 발호 등을 어떻게 예방했으며, 광대한 이민족의 땅을 어떻게 아울렀던가에 대한 해법이 나온다.
이렇게 보면 청 황제들에게 유교는 제국의 일부분을 이루는 한족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청 제국은 몽골과 위구르, 티베트 등을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와 방법론을 갖췄다. 천자이면서도 칸이며 문수보살의 화신이었던 황제는 만주족이었기에 전체 제국의 통치가 가능했던 것이다. 시점을 현재로 옮겨 과거 청 제국의 영토를 물려받은 지금의 중국 공산당의 현실을 살펴보자. 그들은 효용이 다한 사회주의 대신 애국주의로 내부를 결속하고 ‘한족의 이데올로기’인 유교사상을 설파한다. ‘공자학원’이란 간판을 걸어 전세계에 중국어를 ‘선교’중이다. 얼마나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청황실보다 발전된 전략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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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입니다. 한국최초 국사교과서에 금청사는 한국사로 편입되어 있습니다(김구임시정부발간). 원래 한국사였던 금청사를 원래대로 한국사로 복원해야합니다.
한국최초 국사교과서 목차 (김구임시정부 발간) http://www.yes24.com/24/goods/1978304: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신라 김함보후손이 중국을 정복해":
여진-고려는 공통의 언어/문화를 가진 민족공동체:
여진족 초기 언어는 신라어:
조선-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한민족의 남북조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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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쳐:
금나라가 중국사면 함경도는 역사적 중국영토:
오랜식민지배 끝에 중국인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뀌어: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1: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2:
하도 멍청해서 1초만에 반박당하는 김함보 식민빠들주장:
만주족이 생존해있으니까 금청사가 중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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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금 남북조시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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