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면심(麵心) - Monologue of Angel Hair Noodle
인스턴트 먹거리가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오래전에 샐러리맨들에게 점심으로 무엇이 좋은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기억한다. 1990년대에는 두 가지 메뉴가 대세였다, 짜장면과 설렁탕. 물론 곰탕도 있을 것이고 다른 메뉴도 있겠지만, 그 당시 이 두 가지 메뉴는 일이 바쁜 샐러리맨들의 접근이 가장 쉽고 인스턴트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라 언론에 의하여 선정되었을 것이다.
90년대 냉면의 위치는 어땠을까. 공급이 충분치는 않았던 쌀의 수요를 대체하려고 포만을 위하여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라 배가 쉽게 꺼지는 함흥식의 농마(녹말-전분)면이나 평양식의 메밀면이 보편화되었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서민들은 살아남아 일하기 위해서 포만식을 먹던 시절이 였다. 지금처럼 맛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던 시기였다.
나와 냉면이 깊은 사이가 된 것은 그때 부터이다. 나는 물냉과 비냉 두 냉면을 모두 다 좋아한다. 둘 다 예뻐서 하나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누가 작은 마눌인지는 절대 비밀이다. 그러니 저기서 막국수가 째려본다. 막국수야 사실 너도 좋아해. 얘가 세째 마눌이다.
함흥식 냉면은 강력하다. 면위에 얹어진 양념의 붉은 빗깔은 양손에 캐스터넷을 끼고 붉은 치마를 좌우로 흔드는 플라밍고의 댄서처럼 현란하다. 숙성시켜 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마늘의 자태는 늠름하다. 붉은색의 고춧가루는 본인의 고향이 충남 청양임을 숨기지 않는다. 본고장 이탈리아의 참맛이라는 발사믹을 찜쪄먹는 신맛은 본연의 속살을 시드루 자태로 보여준다.
함냉은 가늘게 뽑은 농마면 위에 콤콤히 잘 삭혀진 홍어회를 얹어 놓은 꾸미가 일품이다. 적당히 무른 홍어 뼈의 식감과 살의 탄력은 회냉면 시식의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홍어가 비쌀 땐 서해안에서 나오는 간재미 등이 쓰였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던 꾸미(고명)로 올려졌을 때 에는 그 집 주방 사령관의 솜씨에 따라 생물 분류학에서 어느 집안 자식인지 계문강목과속 그리고 종(種)은 상관이 없다. 물론 혀로 느끼는 면의 탄력과 양념의 감칠맛도 있겠지만, 톡쏘며 코로 나오는 식초의 부드러운 자극은 냉면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젓가락을 두 절음만 떼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함흥냉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마니아 축에는 들지 않는 냉면엔 초짜라는 아주 간단한 신호이다.
매운 것에 익숙치 않은 사람의 경우 세 절음 이면 코에 송송 땀이 밴다. 그리고는 그 냉면은 혀와 입술 둘레에 행복한 고문을 시작한다. 혀와 입술이 매워 그 통증에 연신 웃기는 하지만 젓가락은 포기를 모른다. 남은 한손은 얼굴에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다 먹고 나서는 빈 냉면 그릇에 붙어있는 남은 양념을 사골육수(또는 면수)로 휘휘 둘러서 설거지를 해 주어야 진정한 함흥냉면의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이 육수에 준비된 겨자와 식초의 첨가 여부는 당신에게 허용된 자유로운 영역이다. 한여름 매운 음식을 먹어 땀을 그렇게 흘리고서도 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이리라.
가끔 보면 평양냉면집에 가서 비빔면을 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함흥냉면집의 물냉면이 짝퉁이 되듯, 평양냉면집의 비빔면은 당연히 짝퉁이 된다. 그것은 면의 출신성분과 충성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짝퉁 냉면이라면 함흥냉면집에서는 농마국수에 육수를 말아줄 것이며, 평양냉면집에서는 당연히 메밀면을 비벼줄 것이다. 나이든 한국인에게 익숙한 말인 전향자(轉向者)가된 것이다.
면과 양념 그리고 육수의 Mismatch는 서로 좋아하지 않는 집안 끼리 맺어진 사둔간의 두 번째 상견례처럼 어색하다. 저 사둔은 분명 빌려 입음이 확실해 보이는 치마 저고리 그리고 자주 안해본 화장의 들뜬 낯설음 같이, 매니아는 그것을 안다.
함냉의 면이 평냉면을 보고 뭐던지 순수함이 좋은 것이라며 자기는 순수한 전분 가문(家門)이라며 "너 평냉면은 색깔부터 회색 분자야"라고 하며 평냉면을 깔보면, 평냉은 차분히 이렇게 답을 한다. 농마면 넌 뻘건 화장빨이야. 넌 화장 안하면 향도 맛도 없어, 그냥 질기기만 하지, 오죽 지 승질이 질기면 사람들이 가위로 요절을 낼까.
반면에 평냉은 면 자체로만 해도 향이 그득해. 메밀을 빻을 때 거피(去皮-탈피)를 다하지 않고 남겨둬. 그럼 거친 메밀향이 섬유소에 남아 있거든. 이 향을 살리려고 육수의 간도 슴슴하게하고 색깔도 우아하게 만들지. 은은한 메밀향과 육수의 육향은 수준급 입문자만 그 깊음을 알 수 있어. 첨엔 대부분 엥??? 이게 뭔 맛이야 그래. 그런데 먹고 또 먹어보고 그리고 또 먹고 하다보면 맛을 알게 돼. 한번 빠지면 콜롬비아의 나르코스보다 더한 마약이 되거든, 너도 빠질라, 조심해.
평냉과 함냉의 가상 싸움이지만 면의 개성은 양자간에 추구함이 확실히 다르다. 함냉의 맵고 달고 짠 맛의 강렬함은 윤도현의 노래나 퀸의 We will rock you 같이 강하고 힘있는 롹이다.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라면 We will, we will tongue you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평냉은 김범수 백지영 같은 발라드 또는 G-선상의 아리아나 쇼팽의 야상곡 녹턴 처럼 섬세하고 민감하며 골수팬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평냉은 아는 만큼만 맛있다. 앎이 깊어질 수록 오묘하다. 맛을 더 깊이 알게됨으로 지가 "냉면 바리스타"라도 된양 조금만 달라져도 만든 사람에게 투덜대고 삐지고 밴댕이 속알찌 처럼 평가가 가혹해진다. 이런때 하는 말 이 있다. "넌 혈액형이 뭐니?".
꾸미에 있어서도 할말이 좀 있다. 왜 달걀은 항상 반쪽이며 편육은 어느 집이나 꼭 두절음만 주는지. 그리고 이 반쪽과 두절음에 더는 안주는 전국 카르텔이 언제 부터 형성 되었는지. 면 곱배기는 있어도 달걀 또는 편육 곱배기는 없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은 꾸미로 대부분 편육을 둬절음 올리지만 경험상 물냉에 꿩고기 완자는 정말 환상적인 궁합이다. 먹어본지 오래됐고 요즘엔 꿩고기 완자 하는 집은 못봤다.
사실은 함냉이던 평냉이던 면이 반절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면이 부실하면 면도 안서고 내게는 지각(知覺) 변동을 일으킨다.
가끔은 한국말을 당최 모르는 사람을 접대하려고 고깃집에 갈때가 있었다. 고기를 다 먹고는 당연하고 으레히 냉면을 시킨다. 그 때 냉면의 이름은 Cold Noodle이 아니고 Angel Hair Noodle이 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근데 그 친구가 내게 묻더군 넌 한국음식 중에 김치말고 뭐가 젤 좋더냐고. 난 숨쉴 틈도 없이 말했어 “냉면!”
여러분 즐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