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기독교 국가란 것이 어떤 국가일까요?
1.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국가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나라가 기독교 국가라면,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 기독교 국가는 찾기 힘듭니다.
2. 기독교인이 다수인 국가
한국은 전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교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숫자가 불교로 23%입니다. 그 다음이 개신교이고, 18%를 차지합니다. 뒤따라오는 것이 천주교이고 7%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묶어서 25%라고 해도 과반수에 한참 미달이고, 개신교의 21%란 숫자마저도 뻥튀기가 된 숫자입니다.
개신교회는 개교회주의로 천주교회처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지 않고, 교회들이 정보를 교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적부를 보면 예전에 다니다가 안나오는 사람도 지우지 않는 경우도 대다수이고, 여러 교회에 이중등록된 교인들도 많습니다. 부모가 기독교인인 집안은 교회를 안나가는 자식들도 기독교인으로 교적부에 등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오류들을 수정하고 않고, 취합해서 뽑은 교인의 숫자가 800만명이고, 18%입니다.
게다가 800만명 중 200만명은 그들이 기독교인으로 쳐주지도 않는 이단 종파입니다.
원체 머릿수만 가지고도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없고, 무교의 국가라고 해야 하며, 실질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계수하면 천주교회를 포함해도 15~20% 정도 밖에 안될 것입니다.
3.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보내면 기독교 국가
크리스마스 때 교회가 붐빌까요? 모텔이 붐빌까요?
교회는 어떤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모텔들은 방 잡기 힘듭니다.ㅋㅋㅋ
어떤 동남아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전통문화를 해친다고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를 제재한다는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깁니다.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꽃이자 연인들의 기념일로 크리스마스를 즐깁니다. 그렇다면 그 동남아 국가는 기독교 국가입니까?
4. 기독교가 자생적으로 유입된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이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교도 삼국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수입해서 발전시켜왔고, 신라를 제외하고, 고구려, 백제는 지배계급이 먼저 나서서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의 역사는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서학(천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서양학문들과 함께 유입되었고, 학문으로 들어온 서학이 하층민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종교 본연의 색채를 띄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일본은 기독교 교세가 흥하다가, 도쿠가와 막부의 탄압으로 열기가 사그러지게 되고, 중국은 워낙 문화적으로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했지만, 조선은 17세기에 처음 서학으로 소개되고, 18세기에 종교의 색채를 띄며, 1791년 신해박해(신해통공과 같은 해)에 최초로 종교적 탄압을 받게 됩니다. 이후로 교세가 정체기에 머물며 일본과 같은 케이스로 가나 싶었는데, 세도 정치를 겪으며 정부가 힘을 잃고, 고종 대에 서양열강들이 개신교와 함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독교가 흥하게 됩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기독교가 지금처럼 흥하진 않았고, 기독교가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된 것은 군사정권에 기생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에 사회복지를 펼 여력이 없었던 박정희 군사정권은 개신교에 힘을 불어넣어주며,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복지 정책을 종교세력에게 떠넘기며, 여러 이권을 챙겨준 것이 기독교가 불붙게 된 계기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개신교의 시작을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개신교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역사를 조금이라도 훑어본 사람들은 제너럴 셔먼호가 어떤 배인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는 통역사의 자격으로 배에 올라탔었고, 선교보다는 교역에 중점을 두고 조선에 입항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한 제너럴 셔먼호의 선장 및 선원들이 조선땅에서 무슨 짓을 했고, 결말이 어떠했는지는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회측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한국 개신교는 그렇게 더럽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인들이 자주 말하는 역사적 사건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인데, 말이 근사해서 대부흥운동이지, 실상은 당시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끼리의 종교모임이었습니다.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의 수는 성인남성만 2000명이었고, 남녀노소를 다 포함해서 1만명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대한제국의 인구가 2000만명이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이 100만인 구령운동이었습니다. 원래 목표는 현재 상태보다 높은 목표를 내세우기 마련인데, 목표를 100만명으로 내걸었다면, 당시 개신교인의 숫자가 얼마였는지는 대강 어림짐작이 가능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다보니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본래 내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5. 한국은 교회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으니 기독교 국가
실질적으로 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위에 거론한 몇백만명 정도이고, 신도 수가 100명도 되지 않는 개척교회가 대다수인데, 단지 교회 숫자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꿩이 수풀에 머리 쳐박고 현실도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개신교회들이 많은 이유는 쓸데없이 넘쳐나는 신학대학교 졸업생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지, 국민들이 교회 숫자만큼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론은 어떻게 봐도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현재에는 유럽국가들도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기독교 문화권이라고 하고, 일요일에 교회나 성당에 가는 사람들도 급감하는 추세인데, 유교, 불교 문화권인데다가 기독교인의 숫자가 과반수에 한참 미달하는 한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