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법관이 한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이찬형이였으며
와세다대 법대를 나온 그는 한국인 최초의 일본의 법관이였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목숨을 잃고
조선인들 또한 법정에서 불합리한 판결로 고통을 받던차 이 찬형 판사 또한 법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자신의 모습과 법이라는 것에 번민을 느끼던 차에 하루는 이 찬형 판사가 한 사건을 판결하게 되었는데 그 판결이 사형이였다 그 죄인은 독립군이였으며 조선인이 였지만 국적을 떠나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하는것에 큰 번민이 있었던 법관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죄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단 그 소식을 들은 판사는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고 한다 이 후 판사는 법복을 벗고 처와 아이들과 미래가 보장된 속세를 떠나 3년간 엿장수를 하며 전국 팔도를 돌며 만행 아닌 만행을 하게 된다 그러다 만행 중 느낌바가 있어 선지식을 참문하러 유점사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금강산 석두선사를 언급해 금강산으로 향하게 된다
신계사에서
엿장수 한명이 두 노승에게 참문 하니 그 중 한분이 바로 석두선사였으며 한분은 선사의 도반이였다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고?
엿장수 이르길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
석두 다시 말하길ᆢ
"몇 걸음에 왔는고 ?
엿장수 답하길
방에서 일어나 석두를 중심으로 한바퀴 돌며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하니
그 모습을 본 석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한분의 도장은
"10 년 공부한 수좌보다 낫구나 " 하시더라
그리하여 엿장수는 석두선사를 은사로 운봉이란 법명으로 출가를 하게된다
이 분이 바로 효봉선사이시다
이후 화두를 받게 되는데 화두가 조주의 "무"자였다
부처는 모든생명에게 불성이 있다 그랬는데 조주조사는
"무" 라고 했다 왜 없다고 했느냐?
"무자 화두를 들되 참으로 없다고 생각을 하지 말것이며
"있다 없다 하는 상대적인 생각도 하지 말것이며 따져 보고 아하 ! 이런 도리구나 라는 생각도 하지 말것이며
앉고 서고 밥 먹고 옷입고 화두 생각하는 이 몸이 그것이로구나 ! 이것이 깨달은 것인가 라고도 생각하지 말라 "
효봉은 엉덩이가 진물러 터져 방석이 달라붙어도 모를 정도로 피눈물 나는 수행을 멈추지않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절구통수좌다.
효봉은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법기암 뒷산에 한 칸 남짓한 토굴을 팠다. 밖에서 흙벽을 치도록 했다. 앞뒤로 공양그릇이 들고 날 수 있는 입구와 용변을 처리할 구멍만 냈다. 이제 나올 문은 없다. 일생일대의 싸움은 무려 1년6개월이나 계속됐다. 마침내 부처와 조사들이 간 길을 찾게 된다.
1년 6개월만에 흙벽을 스스로 허물고 나와서 무자화두를 타파하고 깨달음을 읆었는데 그 오도송은 이렇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海底燕巢鹿抱卵ㆍ해저연소녹포란)
타는 불속 거미집에선 물고기가 차를 달이네
(火中蛛室魚煎茶ㆍ화중주실어전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此家消息誰能識ㆍ차가소식수능식)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白雲西飛月東走ㆍ백운서비월동주)
제자가 토굴을 박차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석두 화상은 운봉이 큰 일을 이루었음을 짐작하고 크게 기뻐하여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오도송을 다시 읊게 한 후 즉석에서 사자전승의 게송을 내렸으니 이러하다.
춘실백화위수개(春室百花爲誰開)“
봄이 오니 온갖 꽃 누굴 위해 피는고.
동행불견서행리(東行不見西行利)
동으로 가면서 서쪽으로 가는 이익 보지 못하네.
백두자취흑두부(白頭子就黑頭父)
흰 머리의 아들이 검은 머리 아버지에게 나아가니
양개니우전인해(兩個泥牛戰人海)〉
두 마리 진흙소가 싸우다가 바다에 들어 가도다.
이후 경허 대선사의 막내제자인 한암선사에게 법을 참문하고 효봉의 그릇을 본 한암선사는 전법게를 내려 법의 인가를 내린다
茫茫大海水中泡 망망대해수중포
寂寂深山峰頂雲 적적심산봉정운
此是吾家無盡寶 차시오가무진보
灑然今日持贈君 쇄연금일지증군
망망한 큰 바다의 물거품이요
적적한 깊은 산꼭대기 구름이네.
이것이 우리 집의 다함없는 보배거니
시원스레 오늘 그대에게 주노라.
이후 경허 선사의 셋째인 만공선사를 참문하고 만공 또한 효봉의 깨달음을 깨쳐보시고 선옹이란 법호와 법의 인가를 내린다
“치우치지 않은 바른 도리를 이제 선옹자에게 부촉하노니 밑이 없는 그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미묘한 법을 드러내라.
〈무편정도리(無偏正道理)
금부선옹자(今付船翁子)
가무저선(駕無底船)
수류득묘야(隨流得妙也)〉”
효봉선사께세 제자들과 같이 주석할때 이런일이 있었다
절의 중책을 맡아 소임을 해야하는 인물을 뽑아야하는데
한 인물이 거론되었지만 제자하나가 극구 만류하며 그 인물은 자질이 되지 않으니 반대를 하는것이였다
그 이유를 효봉선사가 물어보니 답은 이러했다
"그는 술을 마시지요 또한 여색을 밝히니다요 또한
담배도 핍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습니다요
"여색을 밝혀서 안된다?
"그러습죠"
"술을 먹어서 안된다?"
"그러습죠"
담배를 펴서 안된다?
"그러습죠!
"계율을 지키지 않아서 안된다?
그러습지요
"그걸 잘 안다면 너나 잘해라 인석아!
(이미 마음속에 너는 나쁜놈이다란 상을 버려라 란 뜻이였다)
이후 효봉선사는 이승만과의 만남도 그의 법력이 드러나다 생일이 언제냐라는 이승만의 물음에
생불생(生不生) 사불사(死不死)라, 살아도 산 것이 아니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거늘 이 늙은 중에게 무슨 생일이 따로 있겠소이까.
이처럼 선사께서는 많은 후학을 들을 남겼는데 상좌인 구산선와 얼마전 타계하신 법정스님을 수좌로 두시고 많은 후학들을 교화하셨다
이후 열반에 드시기 전 상좌인 구산스님와 제자들에게
열반송 게송을 읆었는데
吾說 一切法 오설 일체법
내가 말한 모든 법
都是 早騈拇 도시 조병무
그게 다 군더더기
若間 今日事 약간 금일사
오늘 일을 묻는가
月印於 千江 월인어 천강
달빛은 일천강에 비추이리
게송을 들은 법제자 상좌인 구산 스님이 답하길ᆞ
"달이 바다를 뚫어도 흔적이 없고
연꽃은 진흙속에 피어나 물들지 않네
적멸한 성품 가운데 그 무엇이 있으랴
진흙소가 물위를 가니 모든것이 새롭도다"
다음날 법제자 구산스님을 불러 "나 이제 갈란다 "
라고 말씀하시고 좌선에서 선정에 들어 "無라 無라
하시면서 좌탈입망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