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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분들이 잘못알고계신게.. 혁명,반란의 기준을 내용으로 판단하는거에 올인한다는겁니다.
실상은 성공여부로 판단합니다.
지금 혁명이란 수식어가 붙은 프랑스, 명예, 권리, 볼세비키, 10.10, 그과정을 보면 폭동과
다를게 하나도 없습니다. 수많은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운명이 뒤바꼈죠, 그러나 성공하면
혁명입니다,, 실패하면 반란, 구데타,폭동이 되는거죠
근데 516의 가장놀라운점은 강력한폭력을가진집단(군인)이 주도했슴에도 누구도피를 흘리
지 않았다는거죠..이건 증말 인류사에 보기드문형태입니다.
516을 부정하는 세력이 아직 집권할가능성이 있기에 516이 혁명으로 안착하렴 20~30년간
옹호세력이 집권해야할겁니다. 아님 반대파에의해 격하될가능성도 충분하구요..
항상 말하지만 평가는 역사의승자몫이지 정의,진실 이런건 20~30%의 양념일뿐입니다.
4.19 의거가 터지지 않았다면 1960년 5.13 혁명(5.13 군사쿠데타)가 되었을 것임.
원래는 디데이가 1960년 5월 13일 이었음.
신생 독립국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타락, 민주당 정권의 허약함으로 인해
민의가 왜곡됨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봄.
당시 군부(정확하게는 중령급 이상의 고급 장교들과 장성들)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족주의적인 집단이면서 가장 현대화된 엘리트 계층이었음.
일반인들은 미국 한번 가는게 달나라 가기보다도 힘들던 시대에
그들은 미국 유학을 우습게 갔음. 세계관부터가 달랐음.
1961년 5.16 쿠데타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당시 군 장성들이나 고급장교들이
5.16 전야의 사회 혼란과 절망적인 국가 상태를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님.
5.16 이전, 미국무장관이 한국을 가리켜 "미국의 피를 빠는 거머리"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자국 기자회견 석상에서 하던 시절임.
이런 굴욕을 민족주의적인 우리나라 엘리트 고급장교들이 참을 수는 없었을 것임.
물론 세월은 흘러흘러 지금은 미국대통령들이 한국에 대해서 자국산 상품 좀 더 사달라고 알랑방귀 뀌지만.
5.16, 그 공과는 역사적으로 평가 받고 단죄될 것이나..
개인적으로는 5.16을 높게 평가함.
왜냐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고 보기 때문임.
그마나 그 동기가 순수했고...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이후 경제개발 성과를 통한
국민적 단합과 도전의식 고취와 자심감을 심어 준 것은
오늘날 실력 있고, 자존심 있는 한국/한국인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봄.
다만, 사족으로
물론 군사쿠데타 없이 오늘날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이룰 수 있었다면 더 바랄 나위는 없겠지만.
한 300년 지나고 대한민국이 존속하고 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초기 냉전의 혼란정국을 수습하고 공산주의 박멸에 노력하여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경제성장의 초석을 마련한 대통령.'이라고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을 겁니다.
지금 독재운운 하는건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비판하는 것이니, 후에 역사가들이 5.16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제대로 평가해줄 겁니다. 지금은 그냥 혁명이니, 정변이니, 쿠데타니 그냥 신나게 논쟁하면 됩니다.
혁명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 중 하나는 지배층이 교체되었느냐 하는 것이죠.. 사실상 민주당이나 자유당 시절이나 지배층은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둔 지주 계층입니다. 실제적으로 전문적인 테크노랏트가 국가를 지배하게 된 건 5.16이후죠.. 그럼으로써 공업화가 시작된 것이구요..
단순히 정권을 어느 당이 가지고 있느냐 정도의 시각은 탈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