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통령 선거도 간선이든 직선이든 꾸준히 행해졌다.
이 점이 전 세계 개도국과 뚜렷이 구별된다. 개도국 중 한국과 비슷한 곳은 인도밖에 없다.
또한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가 선진국 못지않게 공정했다.
유신시절에도 국회의원 선거는 꼬박꼬박 치러졌다
1978년 총선에서 박정희의 공화당은 득표율에서 31.7% 대 32.5%로 김영삼의 신민당에 졌다. 그 당시 사실상 야당이었던 무소속 표도 28.1%나 차지했다. 여당의 완패였던 것이다. 그 여파인지 그 다음 해에 박정희는 암살당했다.
만약 박정희가 대만의 장개석이나 싱가포르의 이광요처럼 국회까지 완벽히 장악하고 야당 지도자를 원천봉쇄했다면 과연 김대중과 김영삼 같은 인물이 설 자리가 있었을까.
이승만은 건국과 동시에 투표권과 거주이전과 직업선택과 교육과 언론과 선거의 자유를
부여하며 전쟁중에 이를 중단시키지 않았으며
또 농지유상몰수를 단행해 지주들에 예속된 소작농들을 해방시켜
일제시대에도 엄연히 남아있던 신분제를 실질적으로 폐지시켰다
4.19또한 이승만덕분에 성공한것
전쟁동안 대학생은 징집못하도록 했고 꾸준히 대학교육을 육성하며
민주주의교육을 이수하며
이승만이 마련한 언론자유덕분에 신문들은 3.15폭로를 마음껏 알렸고
이걸읽고 학교에서 배운거하고 다르다며 일어선게 단초
100년 200년 동안 혁명과 전쟁, 제국주의 등으로 피를 흘리고 자본을 축적하며 기나긴 민주주의 실험을 거친 선진국의 민주주의로 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댄다면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도 1920년 이전에는 모조리 독재 국가다. 그 때까지는 어떤 나라도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8년부터 바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었다. 미국 덕분이긴 하지만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만 해도 영국에서는 선거구의 의원보다 투표권을 가진 자가 더 많았다. 3명이 5명의 의원을 뽑곤 했다. 보통선거의 길은 그렇게 험난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영국이 민주국가가 아니었던가.
비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한 나라의 발전에 비추어 보고 이웃 나라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비교하면 영국은 19세기에도 심지어 18세기에도 민주국가였다. 한국만은 왜 예외인가. 박정희는 그 당시 한국보다 모든 여건에서 나았던 공산국가나 개도국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 따라서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고 링컨을 독재자라고 하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다.
박정희는 무엇보다 법치를 뿌리내렸다. 한국에는 그 당시만 해도 말만 민주주의지 달랑 헌법 하나만 있었지 그 헌법을 구현할 법률이 거의 제정되지 않았다. 국회는 권력투쟁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법률은 일어로 된 조선총독부의 법령과 영어로 된 미군정청의 법령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불과 6개월 만에 법률을 완비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대부분 법률의 모체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30년이 지나도 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국의 국회는 이제나 저제나 권력 투쟁하는 곳일 따름이니까.
박정희에 의해서 전 국민은 법 아래서 평등한 자유시민이 되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구속할 수 없었고 구금할 수 없었고
벌금을 물릴 수 없었고 세금을 부과할 수 없게 되었다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애덤 쉐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는 1950년에서 199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조사했다 (1985년 달러화 기준).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의 정권 평균수명은 8년으로 나타났다. 1500달러에서 3000달러 사이는 18년 정도 지속되었고, 6000달러 이상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탄력적으로 나타났다.
1인당 6000달러 이상을 버는 국가에서 민주 정권이 붕괴될 확률은 1/500이었다. 일단 부유해지면 민주주의는 불멸하는 것이다. 대략 9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32개의 민주정권들의 지속연수는 총 736년이다. 단 한 곳도 붕괴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69개 빈국 중 56%인 39개 민주 정부는 실패하고 말았다.>
국가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분파(민간기업과 광범위한 부르주아지)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획득하도록 하고, 둘째, 이 분파들과의 협상에서 국가는 덜 폭압적이고 덜 변덕스러워지며, 규칙 지향적으로 사회의 요구(최소한 사회 엘리트 집단의 요구)에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 과정에 자유화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폭력으로 찍어내리는것이 손쉬어지는반면에
사회가 부유로워지면 국가는 폭력으로 하는것에는 한계가있고 설득으로 풀어나가야한다
<자유의 미래>
결론
김머중 땡삼이는 그래도 어느정도 자유가 보장된 조건 덕분에 투옥 반복하며
정치 지속할수있었고 학생들또한 시위할수있도록 공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음
이들이 순전히 엄청 억압된 독재에 맞섰다는건 순전히 좌빨과 이들이 합작한 왜곡
이들이 싸우고 피해받은것만으로도 기여한건 맞지만 다된밥상에 숟가락 얹은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