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잡록] 처음 적병이 한 방향으로 거제를 향하였다. 경상 우수사 원균이 우후(虞侯)를 시켜 병영을 지키게 하고 백천사(白川寺)에 달려가서 관망하다가 우리나라 어선을 적선인 줄 알고 당황하여 노량(露梁)으로 물러났다. 우후가 그 소문을 듣고 성중 노약자(老弱者)를 나가라고 독촉하니 죽은 자가 많았다. 어느 섬의 군사가 그 형세를 보고 모두 흩어졌다. 해남 현령 기효근(奇孝謹)은 창고를 불태우고 달아났다. 원균은 적이 여러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는 말을 듣고 주사(舟師)를 인솔하고 가덕도(加德島)로 향하다가 적선이 바다를 뒤덮으며 오는 것을 보고 퇴각하여 돌아오니 여러 장수도 차차 흩어져 갔다. 원균이 육지에 올라 적의 칼날을 피하려 했다. 기문(記問)에는 전선 백여 척과 화포와 군기를 다 바다에 빠뜨리고 홀로 비장(裨將)을 데리고 곤양으로 달아났다 했다 [연려실기술] ○ 삼도(三道)의 해군 함대[舟師]가 가덕도(加德島) 앞바다까지 왜적을 추격하여 크게 이기다. 이에 앞서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왜적들이 여러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해군 함대를 이끌고 가덕도로 향했는데, 왜적의 배가 바다를 덮고 있는 것을 보자 마침내 퇴각하여 돌아오고, 여러 장수들도 점점 흩어져 가버렸다. 원균은 아군의 전함을 다 침몰시키고는 육지에 올라가서 왜적을 피하려 하였으나, 옥포만호(玉浦萬戶)이운룡(李雲龍)이 안 된다고 하여 마침내 중지하였다. 원균이 이운룡 등의 몇 척의 배와 함께 노량(露梁)에 퇴각해 있는데 적병이 뒤따라 좇아오자, 이운룡이 전라도의 해군에 구원을 청하고자 곧 작은 배 하나를 타고 달려갔다.
왜군 보이자 말자 배수몰시키고 수군 해산시키고 도망갔다는 이야기
《 선조 084 30/01/22(계축) / 전라도 병마 절도사 원균의 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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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중요한 임무를 위임받아 남번(南藩)을 지키고 있으면서 노둔하나마 힘을 다하여 만세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도 몸이 이미 매우 쇠약하여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많지 못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임금을 우러르면서 단지 통곡만 할 뿐입니다. 지금 변방 일에 어려움이 많아 군사를 일으키고 대중을 움직이기에 겨를이 없습니다. 여러 고을에 신칙하여 군마를 정제하여 신이 사졸에 앞장서서 일거에 섬멸하려 합니다.
다만 수륙(水陸)의 일을 헤아려 말한다면, 임진년 초기에 육지의 적이 기세를 떨쳐 순월(旬月) 사이에 평양까지 침입했으나 해상의 적은 해를 보내도록 패하여 끝내 남해(南海) 이서(以西)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니, 우리 나라의 위무(威武)는 오로지 수군에 달려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수백 명의 수군으로 영등포(永登浦) 앞으로 나가 몰래 가덕도(加德島) 뒤에 주둔하면서 경선(輕船)을 가려 뽑아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절영도(絶影島) 밖에서 무위를 떨치고, 1백 여 명이나 2백 명씩 대해(大海)에서 위세를 떨치면, 청정(淸正)은 평소 수전(水戰)이 불리한 것에 겁을 먹고 있었으니,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하건대 조정에서 수군으로써 바다 밖에서 맞아 공격해 적으로 하여금 상륙하지 못하게 한다면 반드시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이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바다를 지키고 있어서 이런 일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감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우러러 아룁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이순신탄핵의 주체는 아니나 장계를 올려 탄핵을 거들고 수군통제사가 됨.
[은봉전서]
원균은 나의 중부(仲父) 동암공(東巖公)【안중홍(安重洪)으로 세상사람들이 동암처사라 불렀다. 후에 효행으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다】의 처 원씨의 친족이다. 그가 통제사로 부임하던 날, 중부를 찾아와 인사하고 말하기를,
『나는 이 직책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직 이순신에게 치욕을 갚은 것이 통쾌합니다.』
이 천하의 개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