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 작자미상, 1905년
성애적인 것을 다룬 위대한 이론가들 중 하나인 조르쥬 바타이유는 1905년 중국의 한 죄수가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던 광경을 찍은 사진 한장을, 매일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책상속에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이 사진은 1961년 바타이유가 살아 생전에 출판한 맨 마지막 책 <에로스의 눈물>에 실렸다.). 바타이유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 사진은 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홀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이미지,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 이미지는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 바타이유의 말에 따르면, 이 이미지를 관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자 금기시된 성애적 지식을 해방시키는 일이다(보통사람이라면 도저히 이런 복잡한 반응을 보일 수 없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참고 볼 수 없다. 분주히 휘둘러진 칼날에 의해서 이미 양쪽 팔이 모두 떨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온 몸의 가죽이 벗겨질 최종 단계에 놓인 산 제물의 이미지. 이 이미지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며, 신화 속의 마르시아스가 아니라 현실의 마르시아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속의 이 희생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성 세바스티안이 그랬듯이,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이 고개를 위로 젖혀 눈을 치뜬 채 아직도 살아 있다. 관조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면, 이렇듯 잔악한 이미지들은 몇 가지 상이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된다. 나약함에 맞서 자신을 단련하기, 자신을 좀더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기, 도저히 구제받지 못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같은 요구 말이다.
1905년 4월 10일 북경에서 찍힌 이 사진의 주인공 푸추리(Fou-Tchou-Li, 1887~1905)는 몽고 왕족의 왕자 아오한우안을 암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타이유는 1925년 프랑스 최초의 정신분석가 중에 하나였던 보렐(Adrien Borrel, 1886~1966)에게서 이 사진을 받았는데, 그가 '백조각으로 찢겨죽는 형벌 cent morceaux'이라고 소개한 이 형벌은 능지(凌遲)를 말한다. 능지는 죄인의 살갗이나 살점을 칼로 도려내는 형벌로서, 가능한 한 죄인을 살려둔 채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써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다(능숙한 집행자는 한 사람에게서 2만점까지 도려낸다고 한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