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17 10:50
어느 386의 회고 "김일성에 충성맹세한 나, 달라진 이유는…"
|
|
조회 : 258
|
민경우(오른쪽)씨가 2005년 8월 전주교도소에 출소하던 당시 모습. 왼쪽은 고 이종린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민경우씨 제공 수십년을 주체사상, 민족의식에 매몰돼 운동하는 동안 세상에는 스마트폰이 나왔고, 인공지능이 개발됐고, 드론이 날았다. 정의를 외치던 동지들은 어느덧 우리가 저항하던 기득권으로 변신해 있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자랑하는 정치인들은 내가 보기엔 수박 겉핥기로 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둘러싼 진영논리를 고집하는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당원으로 활동했던 민주노동당에서 ‘NL(National Liberationㆍ민족해방)’ 자정 운동을 벌이고, 청년들에게 공천을 주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밥그릇을 뺐긴다고 느낀 기성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내가 몸 바친 운동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의대까지 포기하며 학생운동에 모든 걸 바쳤던 내가, 30년이 지나서야 과학과 수학이 그리워졌다. 아이들에게 민족주의나 진영논리 대신 과학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는 일부러 서울에서 평균 소득이 가장 낮다는 금천구에 수학연구소를 차렸다. 신기루 같은 이념에 묻혀 살던 나의 삶을 반추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며칠 전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내 펜을 가리키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일본 펜쓰면 친일파래요” 나는 빙긋 웃으며 책을 덮고 아이들에게 로봇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다. 일본 펜을 쓰는 사람을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것보다, 우리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진정 일본이 두려워할 일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운동이란 운동을 다 해본 그 시절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운동에 뛰어들어 도피 생활과 교도소 신세를 당연하게 여기며 사회 운동에 투신했다. 불길에 그슬려진 ‘불나방’이 돼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쟁에 매몰돼 훌쩍 지나쳐버린 것들도 많았다. 나는 요즘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