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제가 나오면 으래 진보쪽을 물고늘어 지고 종북주의를 물고늘어지는 데요, 두 양자중에 그나마 어느 하나 좋다 하지 않았습니다 다 안좋은 거에요 !
뒤늦게 '친일문제'를 거론되는 것도 작금의 우파의 '친일근대화론'으로 불거진 그들 우파의 정체성의 대한 의구심이 증폭 된데에서 따는거라 생각합니다.
친일의 문제는 이미 시대가 지났으며 누구를 사법 처리하는 시기가 훨씬 지났다고 봐요, 그러나 문제는"부정적인 그것은 부정으로 남는다 지양되지 않는다" 것 처럼 친일문제는 현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 오른것은 확실하다 봐요.
박정희의 '친일론'을 옹호하다 보면 '일제식민지배'가 '정당성'을 가저야하고,그래야 박정희 친일이 시대적 상황에 유리하게 돌아가니까요.
따라서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요구했던 것이다"라는 일본극우가 망발을 했던 것처럼 박정희의 "다까끼 마사오'개명은 시대적 상황의 따른 것이였다 '한국 우파 주장'과 '일본 우파' 주장이 서로 자동적으로 맞물리게 되요.
일본 극우민족주의자와 적절히 맞아 떨어진다는 거에요.
박정희의 '쿠테타'를 합리화 하기위해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끌어와야 해요,봉건적 낡은 관습과 문화 정치적 환경을 뒤 엎고 결단과 피의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근대 일본을 만들어 놓은것 처럼 박정희에 쿠테타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논리적 지원이 필수라 봐요! 그래서 한국 보수들은 박정희를 '근대개혁' 사상의 아버지 더나가 종교로 나가는 이상 야리꾸리로 간다는 것이에요.
당시 조선인들은 독자적으로 홀로 설수없었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 준것이고 "강제병합"이 아니라 "국제법상 옳은 것이었다"주장하는 것 처럼 박정희 친일 옹호론자들은 "조선인이 열등하고 서세동점 시절에 내부적 권력 싸움이 횡횡하고 조선 민중이 비탄에 빠젔으니,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먹고 근대화를 단행했다"주장해요.
앞서 일본이 주장했던 일제식민지배는 "당시 국제법상 옳은 결정이였다" 주장과 한국 보수 우파의 "일제식민지배는 "강제"였다는 것만 다르지 나머지는 다 같아요.
당시 시대를 볼때는 강대국은 이미 포를 쏘고 다른 국가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라 협박하고 영토를 침범하고 자기들 멋데로 영토를 획정하는 지금의 합리적이고, 법리적 토대의 국제법상이 아닌 강자들의 국제법이 난무한 '제국주의' 시대였다 봐요..."힘의 논리로 조선을 먹었다"하는데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옹호해주고 변호해 주면 힘의 논리가 힘을 받아서 "법을 두려워 하는 도둑한테 집주인이 병약하니 강제로 집을 압수하라"는 신호를 보낼줄수 있다는데 문제라는 거에요.
일본이 병원을 지어주고 철도를 건설해주고 농지를 근대적으로 분배했다는데, 수탈의 용이함과 친일 신흥부호들만 갈수있는 병원을 근대 조선민중의 현대적 기반 시설로 대표하는 것은 무리라고 봐요.
'철도'도 마찬가지에요 대륙으로 향하는 '군수물자'를 운반 하기위한 철도를 마치 근대화가 늦은 조선에 측은지심이 발동한 일본이 철도를 놔 주었다.'하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하여 여자가 바라지도 않는데 강제로 겁탈하여 아이를 갖게했다면 그것은 옳고 선한 방법인가요" 그 목적과 과정이 옳지 못하면 아닌것이죠!
농지를 근대적으로 평민들에게 분배 했다는데 말만 그렇지 친일 지주들이나 시대를 잘만났 새로운 부농들이 대지를 사들이고 거기에 다수의 소작농들이 쌀 농사를 한것이죠 또 전쟁기간에 수탈도 어머 어마 하게했어요 태평양 전쟁기간에 일본의 수확량 보다 전쟁에 들어가는 식량이 쪼들리자, 부산에 엄청 쌀을 날랐어요 남의 전쟁에 가난은 조선민중이 다 겪어야 했던 것이에요.다만 핵폭탄은 면한 것이라면 자그마한 축복이겠네요.
"때로는 악마의 의도에 따라 좋은 선의 결과물이 나올수는 있다고 봐요 악마와 악마의 싸움뒤엔 항상 천사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