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또한 헌병대에 체포되어
징역 살이와 함께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유관순이 받은 고문 기록>
1)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냄
2)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음
3) 위와 호스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뜨거운 물, 변, 다수의 칼날들을 강제로 투입
6)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짐
7) 다른 독립 열사들 앞에서 칼로 양쪽 가슴을 도려냄
8) 물이 든 독 안에 알몸으로 가둔 후 미꾸라지를 풀어 놓음
(미꾸라지는 구멍을 찾아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음)
9) 사람이 간신히 틀어갈 수 있는 나무 상자에에 긴 대못을 박아놓고 3일간 가둬놓음
10) 상채를 벗겨 채찍으로 후려침
11) 많은 일본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개줄을 묶은 채 네 발로 기어가게 함
이 밖에도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당시 고문으로 부어있던 그녀의 얼굴을
3D 입체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
<다만 내 조국, 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소녀>
그녀가 고문으로 병을 얻자 새로 묵게 된 독방
제대로 누울 수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18살의 곷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당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자궁과 방광이 파여되어 중상을 입었으며
머리와 몸통, 사지 등이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다
또한 고문의 흔적으로 코와 귀도 없었다
이화학당 교장이었던 미스 프라이스와 미스 월터가
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했을 때에도,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어 시신을 넘겨줄 뿐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