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6대 마지막왕 경순왕(릉) / 경주 외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의 무덤
그 아들 마의태자는 산 곧 만주로 가서 후에 금나라, 청나라의 조상이 됨
금나라는 만주를 정복 / 이후 국호를 청으로 바꿈 / 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함
휴전선 부근이라 철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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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이 마셨다고~유래~어수정(왕이 마신 우물물)이란 명칭이 붙음
물이 아주 맑고 시원함
조상들이 있는 사당이라 여기서부터는 하마 즉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서 가야함 (심지어 왕도~)
지금의 주차장 :)
홍살문 : 귀신들이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왕 또는 높은귀신류?만 붉은색을 쓴다함
조선왕릉 대부분에 이런 홍살문이 있고 열녀문 같은 곳에서도~!
한탄강(궁예가 왕건에게 도망할때 붙여졌다는 전설이~)과 임진강이 있는 연천
조선은 문종 원년(1451년) 이곳에 숭의전이라는 이름을 사액(賜額)한 이후
역대 시조의 사당에 차례로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신 평양의 숭령전과
신라의 혁거세왕을 제사하는 경주의 숭덕전,
백제의 온조왕을 추모하는 경기 광주 남한산성의 숭렬전
이 그것이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왕후 허씨의 신위를 모신 김해의 숭선전
도 그렇다.
모두 숭(崇)자 돌림으로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는 지난 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돼 세계 고고학계의 이목을 끌었고 그 뒤 일대 23만여 평이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됐다.
구석기 초기의 석기는 한쪽면 만을 가공하여 만든 찍개가 주류지만 150만년(프랑스를 기준으로)이후에는 석기 제작 기술이 발전하여 양날 도끼가 나타난다.
이것이 아슐리안형 즉 이제는 전곡리형 주먹도끼이다.
서구에서는 아시아는 외날 도끼에 의존한 문화였다고 단정지어 왔다.
즉 모비우스 학설이 있는데 주된 요점은 양날도끼의 구석기 문화는
아프리카-유럽으로 양분한다는 것이고, 동아시아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은 발전한 반면 동아시아는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기분 나빠 하겠지만
모비우스 학설이 지구상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핵 폭탄과 같았을 것이다.
토층전시관 안의 영상관 / 공룡시대 구석기 신석기 사람들의 삶을 보여줌
전곡박물관
-0- 대략 이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