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평등만이라면,
공산주의가 가장 정의로운 이념이고 자유시장 경제는 가장 정의롭지 못한 이념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인민의 행복을 가져왔는지, 소득을 증가시켰는지, 국가를 건강하게 지켜왔는지를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이상적 이론입니다.
자유시장 경제도 아담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분배 문제에 정부가 일정수준 개입하는 수정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의 이념이 공산주의보다는 훨씬 효과적이고 우수한 것이라는 것은 이제 모두 인식하고 있지 않나요?
토마 피케티의 r>g는 논란이 많은 이론이고 자본세에 의한 불평등 해소, 빈부격차해소는 이론적으로 맞습니다만 토마 피케티는 자신의 이론을 프랑스에 시행하려다 프랑스 경제를 말아먹은 사람입니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이론은 세계적 공조가 있어야 되는 이론인데 무한경쟁의 세계 경제 상황에서 적용이 불가능한 이론입니다. 그의 저서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21세기를 덧붙여 "21세기의자본주의"라고 한 것과 국제적 공조를 주장한 것은 마치 레닌이 코민테른에서 국제적 형제애를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네요.
부의 불평등 해소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제질서를 붕괴시킬 정도의 인위적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자유시장경제에서 부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것이고 전체가 손상되지 안는 선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처방을 할 수 뿐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도 불평등은 존재할 수 뿐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같이 한국에서의 평등 욕구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빈부격차는 너무 커서 손 볼 필요가 있는 수준에 이르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평등의 정의만으로 사회, 경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좌파/우파는 평등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지만 진보는 레닌의 주장대로 완전한 평등이 될 때까지 무한정 전진하자입니다. 그래서 과격한 진보주의자들이 이석기처럼 공산주의에 경도되고 친북적이고 혁명적이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들러엎어 버리자는 혁명적 주장은 나라를 붕괴시켜버리자는 것과 같습니다. 적정수준의 평등은 시대상황이 정하는 것이지 무한정 평등으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