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서 음슴체로 쓰니 양해해 주세요)
(창 14: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1. 아브라함은 전쟁의 전리품의 10분의 1을 준것임.
자기 재산도 아니고 수입도 아님.
십일조라 부르지도 않았음.
이건 후에 율법으로 정립된 십일조랑은 차원이 다름.
그러니 아브라함의 헌금을 예로 들려면 십일조라 부르면 안됨.
그냥 "수입의 10분의 1 감사헌금"이라 불러야함.
2. 아브라함은 이 한번만 했음.
버는 것의 10분의 1을 계속 했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음.
3. 20절의 한국어 번역은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라고 써있음.
근데 이게 개구라 번역임. 히브리 원문엔 그 어느곳에도 아브라함이란 말이 없음.
그저 "그리곤 10분의 1을 주었다"라고만 써있음.
וּבָרוּךְ אֵל עֶלְיֹון אֲשֶׁר־מִגֵּן צָרֶיךָ בְּיָדֶךָ וַיִּתֶּן־לֹו מַעֲשֵׂר מִכֹּֽל׃
And blessed be the most high God, which hath delivered thine enemies into thy hand. And he gave him tithes of all.
그래서 신학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이게 맬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준건지 아브라함이 맬기세덱에게 준건지
논쟁이 되고 있음.
하지만 그 일부러 거짓으로 집어넣은 "아브라함"이란 단어를 빼고 읽어보면
문맥상 맬기세덱이 가져온 음식의 10분의 1을 아브라함에게 준 것이란게 더 신빙성이 있음.
레바논인 신학자인 카말 살리비에 의하면 그 10분의 1이라는 히브리어 מַעֲשֵׂר 는
그저 "일부분"이였단 뜻일 수도 있음으로 맬기세덱이 가져온 음식의 일부분을
아브라함에게 준것일 가능성이 크다 말함.
(우리말에도 "십시일반 해서..." 이렇게 말할 때 이게 딱 열숫가락이란 뜻이 아니듯이.)
만약 이게 아브라함이 준 것이라 쳐도 이후 정립된 십일조와는 개념이 너무 다름.
그렇기에 십일조가 정해지기 전에 아브라함이 준건 십일조가 아닌 그저 감사헌금과 더 가까움.
십일조는 율법이고 율법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방식이 있음.
그런 율법을 아브라함의 감사헌금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임.
또 십일조는 돈으로 내는 것이 아님.
그때는 돈이 없어서 요즘은 돈으로 내는 거라고 개구라 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 전에도 성경엔 돈이란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옴.
즉, 돈이 없어서 십일조를 작물이나 가축으로 낸 것이 아님.
그러니 요즘 돈으로 내야한다는 건 구라임.
또 십일조는 성전의 레위인(제사장)들에게 내야함.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님.
(교회는 성전이 아님. 목사들이 맨날 무슨 성전건립헌금 하며 모아대니
교회가 성전이라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절대 교회는 성전이아님.
그리고 목사 또한 제사장이 아님.)
근데 예루살렘 성전은 이제 파괴되어 없음.
그래서 유대인들도 십일조를 내고 싶어도 못 냄.
그럼 기독교인들에게 성전은 어디 있는가?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기독교인 하나 하나의 몸이 성전임.
그리고 누가 제사장인가?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바로 기독교인 하나 하나가 다 제사장임.
줘도 자기 자신한테 줘야한다는 말임.
이게 무슨 뜻이냐.
바로 각자 제사장으로서 이웃을 사랑하는 뜻으로 쓰여졌던 십일조를 몸과 마음으로 직접 행하란 말임.
교회에 갖다 바치란 말이 아니라.
이건 히브리서에서 더더욱 잘 볼 수 있음.
(히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히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개혁, 즉 예수가 온 이후로 옛법은 모두 쓸대 없는 짓이란 것임.
근데도 목사들은 헌금에 옛법인 십일조란 이름을 붙혀서 반강제로 받아 먹고 있음.
수많은 600여개의 다른 율법은 다 버려도 십일조는 못버리겠단 것임.
그래서 멍청한 기독교인은 그게 구약의 아브라함이 어쩌니 하면 내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됨.
다시 말하지만 감사의 뜻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고 싶으면
10분의 1을 내던 10분의 9를 내던 그건 내는 사람 자유임.
하지만 거기다가 옛율법인 십일조의 이름을 붙혀서 받거나 내는 건 죄임.
왜냐면 십일조란 이름을 붙히는 순간 신도들에게 그건
성경에 기반을 둔 헌금이 되어버림.
이 말은 이게 신도들의 머리에 반강제적인 것으로 각인된다는 것임.
교회는 또한 그것을 노린 것이고.
아무 근거 없는 "수익의 10분의 1 헌금"을 낼 신도는 많지 않음.
하지만 십일조란 이름을 붙혀 놓으면 "강제 아니예요~"라고 말해도
은근한 부담으로 오고 내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김.
이게 헌금에 십일조란 이름을 붙히면 안되고 십일조가 죄악인 이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