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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4 11:28
[중국] 역사 다큐를 보다가 여진족과 한족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글쓴이 : HWI
조회 : 4,465  

우선 질문하기 앞서 여진이 우리나라 후손이니 연관이 있니하는 이야기는 각설하고 넘어갔으면 하구요.

역사 지식이 짧아서 잘 모르는 부분도 있으니 제 질문에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바랍니다.

제가 궁금한 건, 왜 여진(만주족)은 중국(한족)과 분리가 되지 못 했던걸까... 하는 겁니다.

세계사를 배우기로는 여진과 한족은 민족성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여진은 기마, 유목을 주로 하는 북방민족에 가깝고, 한족은 농경이 주가 되는 남방민족에 가깝잖아요?

그리고 청을 지배할 때도 만주어와 문자를 그대로 쓰고, 한족들에게는 변발을 강요하며 서로를 구분했죠. 

마지막으로 신해혁명 때도 쑨원이 삼민주의를 내세우며 만주족(여진)이 세운 청을 무너뜨리자며 

한족과 만주족을 구분한 걸보면 서로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라고 봐도 무방하다 봅니다.

그런데 정작 멸망하고 나서는 오히려 몽골하고는 다르게 한족에 흡수가 되어버리고 결국은 

중국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지금은 한족이주정책으로 만주족의 개념이 사라져가는 신세가 됐잖아요. 

보통 이렇게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이 구분되는 국가가 갈등이 생기거나 멸망하게 되면 

서로 분리되어서 다른 세력을 형성하거나 각자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정상일 것 같은데,

왜 여진과 같은 만주족들은 몽골(원나라)과는 다르게 중국과 따로 분리되지 못 했던건지 궁금하네요.

인구 수의 차이 때문인가요? 아니면 한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을 등용시켰던 포용력 때문인가요?

여담으로 북방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나라가 현재 우리나라와 몽골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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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15-02-14 11:36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진족의 지배기간은 상당히 길었고 큰 차별대우가 없었고 그들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쫒겨나는것보단 다스리는것이나 함께 살아가는걸 선택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되돌아가려고해도 러시아가 이미 터를 많이 잡아놔서 땅도 반토막...
     
HWI 15-02-14 11:40
   
역시 그런 것 때문일까요...
진실게임 15-02-14 13:22
   
몽고가 금방 쫓겨났죠.

워낙 민족 구분을 확실히 하고 중국인을 천시했기 때문에 중간 계층이 없었거든요.

몽고가 쫓겨날 때 보면 각처의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지역의 토호이고
그걸 제압하는 것도 현지의 토호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 토호들을 받아들이지 못한게 엄격한 신분 구분 때문.

근데, 이렇게 현지 한족들을 위무하고 받아들이면
결국 섞이는 것을 피할 수 없죠.
정헌대부 15-02-14 16:51
   
모든 북방 유목민족은 한족을 지배하고 나라가 망하면 자신들이 돌아갈 땅을 마련해 놓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시작이 선비족에서 시작하죠.
다만 선비족의 한족 지배가 오래 되면서
수와 당은 선비족과 한족 혼혈이 많이 되다 보니 이러한 정책이 필요가 없어지지만
이후 몽골이나 만주에 이 전통이 내려 옵니다.

만주족이 몽골족과 다르게 소수민족으로 되어 버린 이유가
몽골족은 몽골 고원이라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만주족은 만주라는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또 하나는 정치적 집단이 유지된 몽골족과 다르게 만주족은 유지 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즉 외부 요인인 러시아와 일본에 영향이 크다 하겠네요.
내부 요인으로는 러시아 동진정책으로 인한 한족의 만주이주를 들 수 있어요.

처음에 만주족은 몽골족과 같이 나중에 청이 무너지면 만주로 돌아가기 위해 한족은 만주에 출입도 못하게 막았어요.
그런데 러시아의 동진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족이주를 허가한 겁니다.
그 바람에 만주족은 청이 망하고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거죠.
자신들의 고향 만주에 한족들이 들어와 있다보니 구별성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몽골족은 한족과의 영토적 구별성을 유지해 원이 망하고 고향 몽골고원에 북원을 세워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만주족은 한족과 영토적 구별성이 없어져 고향 만주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유지할 수 없었던 겁니다.

또 하나는 몽골족은 원이 망하더라도 정치적 구성원이 그대로 존재해
몽골인들을 이끌고 북원을 세우며 자신들을 유지하지만
만주족은 일본에 의해 정치적 구성원을 유지를 못한 상태로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이 들어 섭니다.
이미 만주족 정치적 구성원들은 일본에 의해 와해되버리죠.

만주족과 한족이 서로 융화하는 쪽으로 갔다면 한족이 멸만흥한이라는 구호를 쓰지는 않았겠죠.
요즘 중국인들이 중화인이라면서 청나라 후기에 만주족과 한족이 융화를 잘해서
청나라가 중화인 나라라고 개지랄 떠는데 그렇게 융화를 잘 했으면
청나라 망하고 나서 만주족 죽이고 다니지도 않았고
한국전쟁에 만주족들 총알받이로 보내지도 않죠.
     
HWI 15-02-14 17:45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군요.
mymiky 15-02-14 19:12
   
윗분 말씀처럼, 외세때문입니다.

청나라 말기 상황을 보자면 8국연합군이 털러오고, 만주쪽으로 러시아가 남하하고,
동쪽으로 일본이 관동주를 떼갈 정도로 진퇴양난이였습니다.

그러니, 청나라 조정은 찬밥 더운밥 따질 처지도 아니였고,
지배층인 만주집단은 소수다보니, 물량빨이 개쩌는 한족의 힘을 빌려서라도
일단 눈앞에 다가오는 외세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런, 무능한 만주조정에 불만을 가지던 많은 한족들은
오랑캐 내쫒고,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자고 신해혁명을 일으키죠.

어쨎거나, 당시 상황이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그 동안에 쌓인 두 민족간에 차이와 차별이 있었으나,
당장 눈앞에 다가온 외세앞에선,
만주족도 자기 나라(청국)
한족도 자기 땅(중원) 지켜야 한다는 목적은 일단, 부분적으론 같았습니다.

어찌보면, 만주족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오랜기간 중국문화에 익숙해진데다가,
19세기 근대무렵에,
다른 나라가 [민족주의]가 발흥할 시점에, 만주족은 도리어, 민족주의를 버려야 살아남을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거죠.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물론, 일부 만주족들이 자기 민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만주를 봉금령으로 정해, 출입하는 한족은 사형하는 정책을 썼지만.
러시아가 남하하자, 이번엔 정책을 바꿔서 청나라 백성들의 이주를 허가합니다.
그래서, 산동성에 대기근으로 굶주리던 한족들이 떼지어 몰려가게 되죠.

신해혁명이후,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는데, 그때도 이에 반발한 개념있는 일부 만주족 황족들이
만주로 돌아가서 황실을 보존하자고 하는 부류가 있었습니다만 대세론이 되지 못했습니다.

(즉, 평생 고생도 안하고 기득권과 부귀영화 누리던 많은 황족들이, 손에 물 뭍히기 싫단거죠-.-;;
만주로 돌아가면, 그동안 여기서 벌어논 재산, 토지, 집들은 어찌하며, 그 촌구석(만주)에서  다시 시작 해야한다는게 엄두가 안난다고, 걍 여기서 편히 살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분들이 많았음)

결국, 만주는 이미 한족들이 드글드글한데다가, 러시아와 일본이 나눠먹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죠.
나중에, 일본이 마지막 황제를 얼굴마담으로 세워놓고 만주국이란 괴뢰국까지 만들어
지들 맘대로 요리합니다.

(만주국은 간판만 만주국이지, 만주족들이 주권을 생사하는 민족국가가 아닙니다)

일본이 패망하자, 당연히 만주국은 붕괴되었고,
잠시 소련의 영향에 들어갔다가 결국, 중국 공산당 정부가 최종적으로 가져가게 되죠.
굿잡스 15-02-14 23:13
   
만주라는게 단순히 현짱국땅만이 아니라 저기 연해주고 아무르일대의 러샤에도

만주족들이 살고 있군요.(몽골부족도 이런 만주족의 한 일파로 활동했고)

그기에 여진족이라는게 애초에 발해민 대다수와 신라계 완안부를 범칭해서 발해 멸망후에

일부에서 사용하다 확대해서 나온 명칭으로 우리 경내로 지속적으로 내투,내항해왔던 부류이고.


여진족명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아래 논문관련해서 올린 글을 참조하시길.


왜 여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mb_id%2C1&stx=eogkseo
굿잡스 15-02-14 23:40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병 신 19년(936), 후진(後晉) 고조(高祖) 천복(天福) 원년ㆍ거란 천현 11년

  명주(溟州) 대광(大匡) 왕순식(王順式)과 대상 긍준(兢俊)ㆍ왕렴(王廉)ㆍ왕예(王乂)와 원보 인일(仁一) 등이 마군(馬軍) 2만 명을 거느리고, 대상 유금필(庾黔弼)과 원윤 관무(官茂)ㆍ관헌(官憲) 등이 흑수(黑水)ㆍ달고(達姑)ㆍ철륵(鐵勒) 등 제번(諸蕃)의 강한 기병 9천 5백 명을 거느리며, 우천군 대장군(佑天軍大將軍) 원윤 정순(貞順)과 정조 애진(哀珍) 등이 보군(步軍) 1천 명을 거느리고, 천무군 대장군(天武軍大將軍) 원윤 종희(宗熙)와 정조 견훤(見萱) 등이 보군 1천 명을 거느리며, 간천군 대장군(杆天軍大將軍) 김극종(金克宗)과 원보 조간(助杆) 등이 보군 1천 명을 거느려서 중군(中軍)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고려사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후삼국 통일의 일리천(一利川)전투에서 이미 왕건은 숙신등

제번의 대규모 기병을 함께 동원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는 이미 고려가 그의 윗대 송악집안부터 이런

숙신등 동서의 제번들을 아우러는 천하관을 가지고 있는게 확인되는데 이런 제번(番)에 대한

포괄적 동일체적 의식은 팔관회나 이후 고요전쟁에서 3차대전에서 10만 요나라 정예를 궤멸시키면서

더욱 여진족(대다수 발해민과 신라계 완안부의 범칭)에 대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서토사서나 고구려인의 인식에도 중후기로 갈수록 삼한 즉 마한의 후예를 자처하고

발해 멸망후의 엄연한 압록강 넘어 집안 일대의 정안국이나 상경용천부 일대의 후발해등이

고 송사등에서 마한으로 표현을 합니다.

이게 뭘 말하냐 하면 천년사직 고구려가 길림집안일대에서 초기 수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만

주일대를 석권하지만 정작 남북한 일대의 삼한계승의식으로 중요기준을 어디에 두고 확대,

활동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요동일대나 동북삼성이 이런 한반도권내의 일종의 자동 부

속도서처럼 인식하에 놓이게 되는 역사지리인식으로 변천,강화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사고는 이후 발해 후신인 정안국에서도 나타나며 요를 견제하기 위한 동서중

서쪽의 송과 동의 핵심인 고려를 축으로 이런 세력권은 더욱 가속화 내왕내투에 직접 군현으

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 되어 왔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인식은 이후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두만강 넘어 북방을 아우르는 동서 간도의 인식으로 재생되어져 이어옵니다.
굿잡스 15-02-14 23:49
   
오늘날 허구의 한족은 정치적 족명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서토가 지금의 지방군벌과 중앙

군벌간의 서로의 이해와 이권이 맞아 있을때는 이런 광역의 정치적 족명이 유효하지만 지방과 중앙의

이해가 충돌하고 분열되어진다면 이런 대다수를 아우르던 정치적 허구의 족명이 각 국가별

이 또하나의 정치적 새로운 족명으로 언제든 등장할 수 도 있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매번 하는 말이지만 고대의 중국이랑 하남 낙양일대의 협소한 수백리를 지칭하던

지역, 문화명사이군요. 현재의 특정 국가명과는 전혀 개념이 다른)
HWI 15-02-15 09:40
   
답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ㅎㅎ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가네요
영웅문 15-02-15 15:33
   
불과 100여년전까지 쑨원이 만주족과 한족을 구분한 것을 보면 분명 서로 다름을 인지 하고 있었다 봅니다.
다만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고 푸이를 그곳의 황제로 세웠지만....
중국은 일본과의 분열로 그쪽에 힘을 쏟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민족차별이란 이슈가 그리 큰 것이 못됐죠.
더욱이 국공내전까지 겹치면서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민족간의 차별성이 이슈가 되지 못하겠죠.
만주족을 대표하는 푸이가 공동의 적이었던 일본의 앞잡이었다는 것 또한 민족간의 차별성이 부곽되지 못한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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