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5f.biglobe.ne.jp/~sans-culotte/topics297.html
藤井教授は「日本の子どもと遊んだり、鶏を一緒に追いかける朝鮮人の姿が活き活きと描写され、日本の民衆と交流していた様子がわかる」と話している。(読売新聞2004-05-04)
와타나베(渡邊)씨는 「오랜 세월, 소재를 모르고 걱정하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놓였다」라고 기뻐하고 있다. 후지이(藤井) 교수는 「일본의 아이와 놀거나, 닭을 함께 쫓아가는 조선인의 모습이 싱싱하게 묘사되어, 일본의 민중과 교류하고 있었던 모양을 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2004-05-04)
아오이(葵) 에도(江戶) 중기에 요도(淀) 번사가 그리고, 번사의 자손택에서 쇼와(昭和) 초기에 반출된 채 행방을 몰라져 있었던 「조선 통신사」의 그림이, 금년이 되어서 교토(京都)대의 수장 고에서 발견되고, 약70년만에 자손에게 반환되었다.
결국 아이와 놀고 있었던 것인가!
통신사 「닭도둑」누명?
넷에서 화제, 후시미 내방의 그림 공개
「일부만 보지 않고 판단을」
넷에서 화제, 후시미 내방의 그림 공개
「일부만 보지 않고 판단을」
그림은, 1748(연향 5) 년에 조선 통신사가 요도번(후시미구 요도)의 성벽아래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접대역을 맡은 번사 와타나베 젠우에몬이 그렸다.사절을 보려고 구경꾼이 모인 번화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노상에서 닭을 가진 사절이 주위의 일본인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일부에 그려지고 있어 넷상에서는 「닭을 훔쳤다」라고 하고, 당시의 조선을 비난 하는 재료로서 채택하고 있는 개인 브로그도 있다.
그러나 동자료관에 의하면, 젠우에몬이 동시기에, 당시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한 「조선인 와 빙기」에는, 닭이 도망간 기록은 있지만, 절도의 기술은 없고, 그림의 작자에게 사절을 비난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그림 전체를 보면, 닭을 손에 넣은 사절 위에는, 사절의 식품 재료등을 준비한 건물 「하행소」가 있어, 닭이 민가에서 길러지고 있던 것이 아니고, 사절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었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림에는, 날뛰는 말을 사절이 붙잡는 모습도 그려지고 있어 하행소로부터 도망친 닭을 사절이 잡으려고 했다는 견해도 할 수 있다고 한다.
--------------------------------------------------------------------------------------
말하자면...원래 통신사한테 대접하려던 닭이 도망치자 일본인들과 통신사들이 같이 사이좋게 잡으려고 뛰어다닌 모습이거나 일본 아이와 같이 놀아주던것.
닭을 훔치긴 무슨...
조선 통신사가 교육도 잘받은 상위층 인물인데 닭을 뭐하러 훔치려다가 두들겨 맞습니까?
하여간 일뽕 조선까들이란...
**이해가 안되신다면 일뽕, 조서까들이 맨날 들고 나오는 저그림은 사실 큰 그림의 일부입니다. 전체 그림에선 조선 통신사들 접대용 물품들, 음식들을 저장해놓는 장소도 나오고하여 저 달기 조선 통신사 대접용이면 대접용이지 통신사들이 닭을 훔치는게 아닌데 일뽕들은 그림의 일부분만 들고와서 왜곡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