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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23 00:11
[기타] 기자조선 관련 질문입니다.
 글쓴이 : 진이
조회 : 2,356  

(아무래도 가생이에 전문가가 더 많은 것 같아서요..)

기자조선설에 대해 우리나라 학계는 인정하지 않고 있고 저도 기자조선이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의문이 드는 것이 허구라면 우리 나라 문헌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이 맞을텐데 고려, 조선시대 서적들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이런 내용들이 자주 발견되어 의문이 드네요.

단순히 중국 사서를 빌려썼기 때문일까요? (사기에도 기자조선설이 있다고 압니다.)


시조는 기자(箕子), 비조(鼻祖)는 선우정(鮮于靖), 중조는 선우협(鮮于浹)으로 구분한다. 기자가 주나라 무왕 때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우고 그의 맏아들 기송(箕松)이 2대 장혜왕(莊惠王)으로 즉위하면서 아우인 기중(箕仲)을 우산국(于山國)에 봉하여 나라를 세웠으므로 조선의 선(鮮)자와 우(于)자를 따서 선우씨(鮮于氏)로 삼았다고 하며, 기자가 식읍(食邑)을 하사받은 태원(太原)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기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천하여 금마군(金馬郡)에 나라를 세워 마한(馬韓)이라 칭했으나 백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8대 원왕(元王)의 아들 기양(箕諒)이 평안남도 용강군 오석산(烏石山)으로 들어가 성을 쌓고 창도(創都)하여 나라를 황룡(黃龍)이라 하며 세계를 이어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원선우씨 [太原鮮于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
요런 내용도 있고요...내가 자다 일어났는데 세상이 바뀐건지 얼마전까지만해도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쪽이 많았던 것 같은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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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밥c 14-11-23 00:30
   
제가 확인해 본 결과 그 기록에있는 태원은 산서성 중부에 있는 태원입니다.
 즉, 원래 기자조선은 한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서성에 있었습니다.
 현 산서성(태행산맥 서쪽)을 당시에는 기주라고 했으며, 태원은 기주의 중심입니다.
 옛날기록(공자)을 보면 애초에 하나라가 기주의 태원에 수도를 두었다고 나옵니다. 즉, 이전 하나라의 수도
 에 기자조선의 수도가 들어선 겁니다.  이런이유로 공자의 책에서 주나라 무왕이 기자에게서 하나라철학을
 배워갔다고 나오는 겁니다. 이 이후로 기자조선의 영역은 따로 바뀐적이 없습니다.
 그곳이 기자조선이고, 이후에 마한이고 , 그다음이 황룡국입니다.
 사서에서는 중산국, 산융, 북융,흉노등 여러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삼국사기에서도 황룡국으로 나오는데,
 같은장소입니다.  이 사서에서는 마읍(태원군)으로 나옵니다.
 실제 태원에 기산(기자의 산)이 있는데 삼국사기에서는 유리왕편에서 나옵니다.
     
진이 14-11-23 10:44
   
마한이 옛날 삼한 할 때 그 마한인가요? 또한 조선이라는 같은 국호를 썼다는 게 단군조선-기자조선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agengi 14-11-23 00:43
   
기자는 은나라출신이고 은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동이족국가입니다.  또한 위만조선의 위만은 연나라로 역시 중국이 아니라 선비 동이족나라입니다.  이 동이족 국가들을 한국사로 편입함이 마땅한데 내팽겨쳐놓고 중국사인 것처럼 인정하니까 기자조선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은나라와 연나라 모두 홍산문화의 후예로 동이족일 뿐 중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홍산문화를 기점으로 한국 고대사를 다시 써야합니다. 동이족 국가들을 중국사로 인정한 식민빠들 때문에 은나라 연나라로 시작해서 고조선까지 중국사로 빼앗길 상황입니다.

은나라와 기자조선 한국사로 편입해야: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6220
밥밥c 14-11-23 00:51
   
지금 확인하신것이 원래 족보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보학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개인(문중)이 가지고 있어서 위조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너무 방대하고, 개인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강제로 가져가면 날리나죠 ;;;;
 실제로 그곳이 집촌(오래동안 살았던 곳)이 아니면 이런 기록이 남을 수 없습니다.
꼬마러브 14-11-23 01:15
   
기자조선은 난하와 요하사이에 있었던 여러 고조선의 제후국들 중 하나입니다. 후에 위만조선이되죠. 위만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하고 위만조선 유민들은 요하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이 유민들로 생긴 대표적인 나라가 동예, 동옥저 등이 있겠네요. 신라의 시초가되는 박혁거세집단도 이 유민들 중 하나고요.
진이 14-11-23 10:43
   
그렇다면 우산국은 어떻게 되나요? 정사에는 우산국은 지증왕때 복속되었다 나오는데 기자조선 때 이미 기중을 우산국에 봉했다는데...이사부가 기중이 봉해진 우산국을 복속시킨건가요?
밥밥c 14-11-23 13:08
   
학계 기준으로 본다면 그 우산국은 울릉도, 독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어떻게보면 독도와 기자조선의 수도가 동일지명 다른장소죠. 삼국사기지리에서도 그렇게 설명하니...

 그런데, 고려시절 김부식은 기자조선의 수도가 우산국인줄 몰랐다는점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죠.
 그리고 하필 그게 왜 독도로 표기돼는지도 .....

 지금 위의 내용은 은나라말때의 이야기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이전 이야기이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주나라의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나라(진시황)이후 , 다시 한나라말기 시절입니다.
 즉, 기자가 태원에 수도를 둔것(기중)은 은나라말기이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한나라 말기입니다.
 몇백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내물왕까지는 천년가깝겠네요.

 삼국사기 내용상 우산국은 이름만 같은 다른곳입니다. 문제는 기자조선의 수도이름은 전혀 모른다는겁니다.
 그리고 그 우산국이 하필 독도라는점.
콜라캔 14-11-23 20:05
   
은나라 동이는 그 동이가 아니라 그 저 산동반도 일대의 용산문화와 연관이 있어서 그런 건데 언제부터 그게 한국과 연관이 되었는지 어휴;;

선진시대의 기산(箕山) 지명은 산서성 태원이 아니라 하남성 등봉현 일대를 의미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리고 태원이라 하여도 삼국사기 유리왕 3년조에 나오는 기산(箕山)이 그 기산이 될 수가 있는건지;;?
그럼 고구려의 위치가 현재의 환인 일대가 아니라 중국 대륙 중간에 있어야 한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군요.

산융은 산서성 일대가 아니라 북경 북쪽의 연산산지 이북인 군도산 일대로 알고 있는데, 그럼 사기 흉노열전에 "산융이 연을 넘어(越) 제를 쳤다山戎越燕而伐齊"는 기록은 애초 성립이 되지 않는군요.

기자조선은 잘 모르겠고, 기후라고 하는 세력이 산서성 태원 일대의 분하 유역에 위치한다고 보는 학자가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기후라는 세력이 자성(子性)의 기(箕)세력 즉 기자와 관련이 있는 것은 맞지만은, 그게 기자조선인지는 잘 모르겠고, 애초 관련이 있는지 의문

후에 적(狄) 계통의 선우국(鮮于國)이 이 일대에서 기자의 후손을 자칭하며 나라를 세우긴 했는데,  이거랑 관련이 있겠군요.
밥밥c 14-11-23 21:44
   
태원은 원래 기주의 태원이지요. 기주는 하나라의 가운데주이고, 이 기주의 중심에 있는곳이 태원입니다.
 즉, 기주의 태원은 하나라의 수도였는데 오늘날에도 이 지명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산서성(기주)의 태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곳(산서성 중부)에 기자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대명여지도를 보면 산서성 중부에
 기산(箕山)이 있습니다. 물론 한자이름만 같고 뜻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기자의 산인지를 다시 확인해 봐야합니다.

  그럼 산서성지리지에 이 기산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기산이 존재했다면 기자의 산이라는 의미와 동일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확인가능한데, 산서지집요의 요주편에 기산이 나오며
 이 기산은 기자의 산이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다음 중산국에대한 자료를 확인해보면 바로뜨죠 ;;;;;
 중산국은 우산국에서 나온것이며 선우씨의 왕조가 있었다고 나옵니다. 이것만 본다면 꼭 주나라 제후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조나라에 의해 망했다고 친절하게 적혀있구여 ;;;;;

  하지만 태원선우씨기록을 보면, 선우라는 이름 자체가 애시당초 조선이라는 의미라고 나오죠.
 그리고, 이 조선은 기자를 시조로하는 조선이므로 당연히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게 올바르지요.
 게다가 놀랍게도 이 지역이 마한이며, 황룡국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록보다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 하는데, 흔히 금석문 또는 비문이라고 하죠. 이는
  실제로 산서성에서 중산국에대한 비석이 발견되었으며, 기자의 나라라고 적혀있습니다.

  즉  사서 ,지도 , 지리지 , 족보자료 ,금석문이 일치합니다.
밥밥c 14-11-23 21:57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을 보면, 흉노가 "낙읍"에서 난동부렸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흉노를 "태원"에서 몰아내고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때 "낙읍"은 현 하남성 낙양이며, "태원"은 현 산서성 태원이어야겠죠. 그래야 태원에서 낙양을 공격가능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진시황은 장수 진개를 시켜서 "하남"에서 북방민족을 몰아냈다는 말과 일치하게 됩니다.
콜라캔 14-11-24 11:19
   
대명여지도나 산서지집요가 뭔지 몰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각각 명대와 청대의 지도와 지리지군요.......
명대와 청대라면 이미 2000년은 더 지난 이야기를 책에 수록하고 있는데 그것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당대 원사료인 좌전이나 춘추 등의 사료나 또는 좀 더 시대가 지난 진한시대의 사료가 있음에도 2000년이나 훨씬 지난 시대의 사료를 인용하여 논증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마치 대한민국 전도를 펴놓고 고구려 지명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요

태원선우씨 기록이 족보를 얘기하는건가요? 선우협이라는 사람이 16~17세기 사람인 걸 보니 저 기록도 빨라봐야 조선시대 후기에 성립된 거겠군요;;

중산국도 기자의 후손을 자칭한 건 아는데, 2000년 뒤의 기록과 당대 금석문을 조합해서 일치했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사기 흉노열전 기록을 몇개를 짬뽕 하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그 낙읍 난동 기사는 주양왕시기의 그 융적(戎狄)이 낙읍으로 쳐들어와 주양왕을 내쫓아냈다는 기사를 말씀하시는 거면....... 흉노와의 시기 차도 시기 차지만, 애초 얘들은 적족이지 흉노와는 하등 관계도 없을 뿐더러 얘들은 당연 산서성 태원에 있었으니 낙읍 공격이 가능한 거겠죠......  흉노와의 시기차도 300~400년 정도 나는 것도 뭐.......

장수 진개는 연나라 소왕대의 인물이고, 진시황이 시킨 건 장수 몽염입니다.......
기록을 보면 "시황제(始皇帝)는 몽염(蒙恬)에게 10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북쪽의 흉노를 치게 했다. 몽염은 하남(河南) 땅을 모두 손에 넣었다." 고 나와있죠.
밥밥c 14-11-24 22:35
   
몽염장군을 진개장수로 잘못적었네요 ^^;

  그런데, 그 백적의 중산국은 이전에 왜 선우국(鮮于國) 인지 설명이 없지요.
  사실 백적이라고 적은것은 단지 북방민족을 북적,산융,흉노로 적는것과 크게 다를바 없지요.
  애초에 춘추좌전같은 사서에서 선우국이 조선선우국이라고 적었다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일 없지요.
 
  중산국이 선우국이고, 기자를 시조로 하는 국가라는 금석문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021738135&code=210000
콜라캔 14-11-24 23:05
   
금석문을 부정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 저 2000년 후의 사서를 가지고 2000년 전의 역사를 논증하는 것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품는 것이지요.
밥밥c 14-11-25 00:39
   
이 자료로서 완벽할 수 없지요.  하지만 나름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것은 사실입니다.
 이보다 신뢰도가 높은 자료는 솔직히 찾는것 자체가 어렵지요. 실제 산서성( 우공의 기주)에는 놀라울정도로 많은 원하는 지명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지명 전부 동일지명일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묻혀있지요.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면 한반도나 한반도주위에 이만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나요?
  이런자료는 커녕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자료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또 찾지도 않지요. 그러면서
 고조선에대한 정보는 곰과호랑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자료제공도 못하면서 위치비정은 또 잘만하지요. 그래서 다들
 산서성(우공의 기주) 찾아보는 것입니다. 더 많은 정보가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밥밥c 14-11-25 01:39
   
1.      평주(平州)
생각컨대 우공(禹貢)에서 기록하기를 평주는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국(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국(漢)때에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는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병합하고 그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국(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이를) 나누어 요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1] 2년 10월에 나누어 창려(昌黎) 요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의 군국(郡國) 5으로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현은 26이고 가구수는 1,8100이다.
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及其子康 康子文懿竝擅㩀遼東, 東夷九種皆服事焉. 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莵 帯方 樂浪 五郡為平州, 後還合為幽州. 及文懿滅後, 有䕶東夷校尉, 居襄平. 咸寧二年十月, 分 昌黎 遼東 玄莵 帯方 樂浪 等郡國五置平州. 統縣二十六, 戶一萬八千一百.

 사서 기록입니다. 산서성(우공의 기주)의 지명이 한반도지명으로 비정한 위치와 동일지명이 나옵니다.
 우연의 일치인가요.
콜라캔 14-11-25 23:29
   
고조선에 대한 정보가 곰과 호랑이 밖게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제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서진 시대의 평주기록과 산서성의 지명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저는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밥밥c 14-11-27 01:34
   
고조선 블로그 운영하시는 분이 딱히 돌려 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

    그냥 본인이 알고있는대로 여기에서 글 다시면 되죠 .;;;
콜라캔 14-11-28 11:47
   
헠? 제가 어떤 블로그를 운영하시는지 아셨군요 허허허;;
그런데 산서성 지명이 한반도의 지명과 일치한다는 건 정말로 뭔지 모르겠습니다.
밥밥c 14-11-28 22:46
   
잘 아셔서 ;;;;
  여기서는 원래 더이상 요구는 안하거든요 ;;;
  그래도 ...아마도... 고조선 저렇게 쉽게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겠죠 ;;;

  위의 내용이 전혀들어오지 않는다면 하나더 위 주제와 같은 사례로 설명할께요.

  사마천 사기의 항우와 유방이야기에서,

  고조는 한왕(韓王) 신을 태원군(太原郡)으로 옮기게 하였다.
  한(漢) 7년, 흉노가 마읍(馬邑)을 공격해 오자 한왕(韓王) 신은 흉노와 결탁하여 태원(太原)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위 내용을 그대로 해석하면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
  그에 곁들여진 한신의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저 한(韓)에 마(馬)자만 더하면 전혀 다른이야기로 바뀝니다.
 
  마한왕(馬韓王) 신을 태원군(太原郡)으로 옮기게 하였다.
  한 7년, 흉노가 마읍(馬邑)을 공격해 오자 마한(馬韓)왕 신은 흉노(부여)와 결탁하여 태원(太原)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놓으면 위 내용은 구라죠 ;;;

  맨위 족보내용과 일치합니다.  조선우산국(기자조선)의 수도가 태원이고 , 기준의 마한의
 수도가 마읍이기 때문이죠. 원래 거꾸로 태원에서 마읍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죠.
 
  다시 이전에 설명했던 유리왕의 기산, 인연스님의 고구려가 마읍에 있다는 이야기,
  황룡국왕과 유리왕아들이야기까지 설명가능하죠.

  사서가 원래 이런 구조입니다.
  이렇게 풀면 사서내용이 서로간에 제대로 일치하게 됩니다.

 현재처럼 괜히 말갈족과 마한이 한반도 남부에 있는것과는 다르게되죠 .솔직히 말갈족은 이렇게 북조입니다. 마한도 말갈과 이름도 비슷하고 .....

 역으로 풀어내면 됩니다 . 이 방법자체를 쉽게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구여.
 어지간히 풀면 현 사학계는 조금 긴장해야 할지도 ;;;
밥밥c 14-11-28 23:02
   
이것은 교치보정을 한번 해본것입니다.

  이것이 원래의 조선.한나라 전쟁과 가깝죠. 이 뒤에 다시 이 전쟁을 이어서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밥밥c 14-11-29 01:00
   
혹시 지명이 이동하는 것 아닌가 하신다면 ,
 이동하는 지명도 있지만 이동하지 않는 지명도 존재 합니다. 솔직히 이동하는경우가 오히려 제한적이죠 ...

 특히 유명 지명은 이동하기도 힘들지요. 거의 그 주변정도.
 공자의 서경에 나오는 지명은 상식적으로라도 이동하기 거의 불가능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도 읽는 책인고, 예전 이라면 더더욱 힘들겠지요.

 여기에 나오는 "우공의 유주"또한 너무나 유명한 지명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지명을 인용한 것이죠.
 지리지에서 인용하는 경우는 바뀌지 않았을것을 가정하는것은 상식이죠,
 바뀐지명을 인용한 사람 자체가 좀 이상한 것이죠.

 그러면 누가 그 지리서를 이해할 수 있나요.
콜라캔 14-11-29 21:39
   
1. 너무 오래전에 읽어 족보가 언제 만들어진지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 족보가 임란 이후던가 어쨌든 조선시대 안동 김씨에서 만든 게 최초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족보는 16세기 17세기 이후에나 만들어지던 그런 사료. 이미 이 점에서도 인용할 가치가 떨어집니다.

2. 사료 이름을 그런 식으로 바꿔놓으면 어느 사료나 본인이 마음대로 조작이 가능해집니다. 즉 그런 식이면 일부러 주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예 그 시대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건 역사를 보는 데에 있어서 절대로 옳은 방법론이 아닙니다.

3. 삼한에 대해서 최초 기록이 나오는 삼국지나 후한서에서는 준왕이 도망하여 한지(韓地)에 갔다거나 마한을 공격했다고 하지 구체적으로 어디에 가서 정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즉 그런 게 후대 사료에 나온다는 건 조작 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고, 그게 조선시대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면 더더욱 신뢰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준은 위만에게 패하고 바다로 달아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서성은 중국 안에서도 내륙에 속합니다.
즉 바다로 통해 달아났다는 기록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 삼국지의 기록을 보면 한(韓)은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끝이 났고, 남쪽으로는 왜와 국경을 접한다라고 하는 기록을 봐서는 한이 산서성이 아닌 바다와 막힌 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옵니다. 또한 삼국지 변진조의 기록을 보면 나라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한(韓), 예(濊), 왜(倭)에서 모두가 좇아 취한다는 기록, 여기서 예의 경우 경북 영일군 신광면 마조리에서 출토된 진솔선예백장인(晉率善穢佰長銅印)과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차차웅 16년조의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주웠다는 기록을 취합해 볼 때 예가 대충 어디에 있었는지 나오죠.

또한 삼국지 왜조의 " 군으로부터 왜에 이르려면 해안을 빙 돌아 물길로 한국을 거치는데, 남으로 갔다가 동으로 가서 구야한국의 북쪽 해안에 이르니 7천여 리이다. 그리고 비로소 바다를 건너 1천여 리면 대마국에 이른다" 라는 기록과 후한서 왜조의 "한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 기록 그리고 같은 기록에서 "건무중원 2년 왜나국(倭奴國)'이 받들어 조공하고 하례하였다. 사자는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니 왜국 제일 남쪽지역이다. 원무 가 인수를 주어 하례하였다."는 기록에서 인수를 주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저 인수 즉 도장이 에도 시대인 1784년 후쿠오카에서 '한위나국왕(漢委奴國王)' 이란 금인(金印)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왜도 움직일 수 없는 고고학적 근거가 출토된 것이죠. 그렇게 단순하게 사료에 馬자를 붙여서 이해하는 건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4. 흉노에 왜 괄호해서 부여가 붙는지요? 흉노와 부여는 엄연히 다른 세력입니다. 그건 굳이 사료적 근거를 대지 않아도 아는 상식입니다.
콜라캔 14-11-29 22:52
   
5. 설마 삼국유사의 마읍 기록은;; "당 고종 7년 임술(서기 662)에 소정방을 요동도(遼東道) 행군대총관(行軍大摠官)으로 삼았다가 곧 평양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았다. 소정방은 고구려 군사를 패강(浿江)에서 격파하고 마읍산(馬邑山)을 빼앗아 군영으로 만들었다. 드디어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마침 큰 눈이 내렸기 때문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은 아니죠? 삼국유사 마읍 기록 찾아보니 이거 밖게 나오질 않는데 ㄷㄷ 이건 7세기대 기록일 뿐더러 저기서 나오는 마읍산은 평양성 일대의 마읍산이니 산서성과 아무 관련이 없고, 애초 삼국유사 고구려조에 보면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卒本扶餘)이다. 혹은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라고 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었다." 라고 하여 고구려가 요동 경계에 있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또한 황룡성 기록도 삼국사기 유리왕본기 유리왕 27년 3월조를 보면 '황룡왕이 사신을 보내 태자와 만나기를 요청하였다. 태자가 가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간하여 말하였다. “지금 이웃나라가 이유 없이 만나기를 바라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라고 하여 황룡국이 이웃나라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위치는 현재의 환인 일대나 집안 일대인데 산서성과는 절대로 이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밥밥c 14-11-30 23:14
   
여기서 다 사서의 원리(?)를 설명할 수 없어요.

  아까 적은 마읍현은 사실 태원 바로 윗부분인 안문이지요. 즉, 태원에서 안문으로 옮겨진 겁니다.
  즉  아래에서 밀고 올라가니 기준은 안문으로 도망가고 그자리에 흉노가 들어온것입니다.
  안문위 음산까지 치고 올라간듯 하기도 합니다.

  금석문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것을  사서가 일일히 정직하게 적지 않고 있다는 점이죠.

  솔직히 이것 알아내는데 좀 오래걸렸죠. (나름 본전생각이 ;;;  )

  사서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다 맞아떨어집니다. 심지어 환단고기까지. 열쇠로 열면 열리듯.
  그냥 연다고 열지지 않죠.
  그것이 맞아떨어질때 이야기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맨 앞부터 설명할 수 있는 것이죠.

  이제는 관자의 8천리 떨어져있다는게 무슨소리인지 알아야 하죠 ;;;;

  여기까지하죠.
콜라캔 14-12-01 21:56
   
이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한 거 같습니다.
사서 원리 운운하시는데, 사서 원리 운운하기 전에 위와 같은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러한 주장을 하신다는 건 듣지 않는다는 말 밖게 더 안 돼겠죠. 고생하셨습니다.
밥밥c 14-12-01 22:14
   
이것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를 설명하면 애시당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명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냥 이곳주위로 남아야 해요.

    솔직히 이것이 가장크죠.

  왜 같은지명이 동시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그럼 이만.
구름위하늘 14-12-17 14:35
   
밥밥C 의 논리는
지명이 이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동하지 않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같은 지명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도시에 남산이 있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심지어 남쪽에 있는 산이 아닌데도요.

뉴욕은 새로운 "욕"입니다. 아마도 그 당시 사람 스스로는 그냥 "욕"으로 불렀을 수도..
그럼 영국의 욕과 북미의 욕이 동시에 있는거죠.
말하고 나니 좀 이상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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