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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07 15:44
[기타] 빗살무늬 토기는 한민족 발명품이다!!
 글쓴이 : 정의의사도
조회 : 3,945  

"이건 빗살무늬 아닌가요? 아! 여기 덧띠무늬(토기)도 있네."

차하이(사해·査海)와 싱룽와(흥륭와·興隆窪) 마을은 물론 신러(신락·新樂),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유적을 둘러본 기자는 깜짝깜짝 놀랐다. 싼줘뎬(삼좌점·三座店)과 청쯔산(성자산·城子山)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길에 부딪히는 토기편을 주우면 어김없이 관찰되는 빗살무늬와 덧띠무늬….

두 말 할 것도 없다. 기자가 금방 다녀온 차하이와 지금 서있는 이 싱룽와는 8000년 전 동이의 마을. 랴오둥(遼東) 선양시의 신러유적과 동이의 문화가 꽃피운 훙산문화의 본거지 뉴허량 유적도 마찬가지다. 이미 탐사단이 살펴봤던 싼줘뎬과 청쯔산은 BC 2000년 고조선의 영역일 가능성이 짙은 곳이 아닌가.

↑ 츠펑대 유물관리실에 전시된 싱룽와 마을 출토 빗살무늬 토기들. 덧띠-현문-덧띠-현문-빗살문-사격문-편직문 등 다양한 문양을 차례로 새겨넣었다. (츠펑/김문석기자)

↑ 갈짓자 문양을 새기는 방법.

↑ 싱룽와(왼쪽)와 함북 서포항에서 나온 빗살무늬 통형관. 기형과 아가리 모양과 문양이 비슷하다.

↑ 네이멍구 츠펑 싱룽와(맨 위)와 강원 고성 문암리(가운데), 함북 굴포리 서포항(밑)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들. 기형과 문양의 토기들이 매우 흡사하다.

기자는 이제서야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그토록 "우리 신석기 문화의 고향은 발해연안이며, 시베리아가 절대 아니다"라면서 가슴을 치며 끈질지게 주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빗살무늬는 과연 무엇이고, 시베리아 설은 또 무엇인가.

신석기 문화의 상징

빗살무늬 토기. 고고학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빗살무늬 토기'라 하면 금방 알 것이다. 초기 동북아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지표유물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수렵 및 채집생활로 이리저리 떠돌던 구석기시대를 지나(약 1만년 전)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을 창조해낸다. 바로 토기이다. 토기의 발명은 빙하기를 극복한 인류가 정착 및 농경생활을 시작했으며, 비로소 문명의 새벽을 열어젖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무리를 이루고, 씨족을 형성했으며, 훗날에는 부족, 그리고 더 나중에는 국가를 이뤘다.

물론 동북아인들이 창조한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만은 아니다. 토기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민무늬 토기와 덧띠무늬 토기(토기 겉면에 덧띠를 두른 토기) 등도 있다. 요즘들어 한반도에서 잇달아 확인되는 덧띠무늬 토기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빗살무늬 토기가 단연 각광을 받아왔다. 빗살무늬 토기는 토기의 표면을 머리빗 같은 시문구(施紋具)로 긋거나 찍어 무늬를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형구 교수에 따르면 빗살무늬 기법에는 빗점무늬와 좁은 의미의 빗살무늬가 있다. 빗점무늬는 빗살로 그릇의 표면을 점점이 찍는 것이며, 좁은 의미의 빗살무늬는 빗살로 사선, 평행선, 곡선 등 갖가지 기하문을 그릇 표면에 그린 토기를 말한다. 빗살무늬의 종류로는 이른바 '지(之)자문', 즉 지그재그형 빗살무늬와 '사람 인(人)자문' 등이 있다.

철옹성, 시베리아 기원설

"빗살무늬를 쓰던 사람들은 시베리아, 몽고의 신석기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각지의 문화를 발전시켰다."(1983년판 국사교과서)

"빗살무늬 토기와 함께 빗살무늬 토기를 쓰던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한국고고학개설' 73년판)

최근까지도 빗살무늬 토기의 기원은 유럽이며, 시베리아~몽골·만주~한반도로 건너왔다는 설이 우리 학계를 지배해왔다. 가히 철옹성 같았다. 불과 5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도록(2002년간)을 보면 극명해진다.

"한반도 신석기문화는 기원전 8000년 시베리아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고아시아족(고 시베리아족)들이 중국 동북지방과 연해주 지역을 거쳐 한반도로 이주해오면서부터다. 빗살무늬를 비롯한 출토 유물은 내몽고, 바이칼호 주변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연관 관계를 갖고 있고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뿌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데 시베리아 기원설의 근거가 된 토기 유형은 이른바 오목점 빗점무늬 토기문화였다. 이 문화는 주로 동부 유럽과 시베리아 삼림지대, 즉 볼가-올가지방에서 유행했다. (6400~4500년 전)

시베리아 전래설을 처음 주장한 것은 일본인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 였다. 이형구 교수는 "후지다가 1930년대 한반도에서 출토된 새김무늬(선무늬의 일종)를 유럽과 시베리아에서 보이는 토기와 연결시켜 즐목문(櫛目文) 토기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견해가 70여년간 줄곧 정설로 굳어진 것이다.

일제관학의 퇴출

그런데 2005년 용산시대를 맞아 새롭게 펴낸 국립중앙박물관의 도록은 180도 바뀐다.

"신석기인들은 처음엔 가까운 지역과 필요한 물자를 교류하다가 점차 일본 열도,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빗살무늬 토기는 약 6500년 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포탄 모양이다."(2005년판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이형구 교수는 "그 영역을 여전히 '한반도'로 묶어두었지만 일단 시베리아 기원설을 완전히 삭제한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일제시대 후지다가 제기한 견해를 엎고, 민족문화의 자생설을 강조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역사 인식의 전환이라는 평가다.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물, 즉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이 일제관학에서 유래된 외래전래설을 떨쳐낸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죠."(이형구 교수)

사실 1970년대 후반부터 발해문명을 연구해온 이교수는 줄기차게 '신석기 문화의 본향은 발해연안'이라고 주장해왔다. 1970년대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발해유역의 신석기 시대 자료를 토대로 '시베리아설의 허구'를 논증해온 것이다.

"시베리아 빗살무늬 토기의 연대는 빨라봐야 BC 4500년이지만, 싱룽와와 차하이에서 보듯 발해연안 빗살무늬 연대는 BC 6000년까지 올라가잖아요. 1000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무슨…."

동이의 영역에서 속출한 빗살무늬

발해만 유역에서 빗살무늬 토기 문화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73년 신러유적에서 BC 5300~BC 4400년으로 편년되는 지(之)자형 토기가 확인된 것이다. 이후 76년 황허 하류인 허베이(河北)성 우안(武安)의 츠산(磁山)유적과 77년 페이리강(裴李崗) 유적에서 잇달아 之자와 人자 토기가 확인됐다. 연대는 BC 6000~BC 5500년이었다. 이런 형태의 토기들은 훙산문화의 본거지인 둥산쭈이(동산취·東山嘴·1979년)와 링위안(凌源)현 뉴허량 유적(1984·85년)에서도 잇달아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80년대 초반 동이의 본향인 차하이-싱룽와 마을에서 8000년 전 사람들이 새긴 정교한 빗살무늬 토기들이 확인되자 중국 학계도 깜짝 놀란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랴오둥 반도 최남단 섬인 샤오주산(小珠山)과 다롄(大連)시 뤼순(旅順)의 궈자춘(郭家村)에서도 之자, 人자형 토기들이 속출했다.

빗살무늬 토기들이 나온 곳들을 살피면 이른바 발해문명권, 다시 말해 중국인들이 말하는 동이족의 영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人)자형은 한반도 압록강·대동강·재령강·한강유역은 물론 두만강과 동해안, 그리고 남해안 등 전국적으로 분포되고 있어요. 지(之)자형은 평북 의주읍 미송리 동굴유적, 경남 통영 상노대도, 김해 수가리 유적에서 보이고…. 빗점무늬는 대동강의 궁산·남경유적, 재령강의 지탑리 유적, 한강유역의 암사동 유적, 동북부의 서포항 유적 등에서 확인됩니다. 한반도 전역을 포함한 발해연안이 바로 빗살무늬 토기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이형구 교수)

또한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옥결(옥귀고리)이 나온 강원 고성 문암리(BC 6000년)와, 양양 오산리(BC 5000년)에서는 초기 신석기 문화의 양대토기인 덧띠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가 함께 나오기도 했다. 문암리 유적을 발굴한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차하이-싱룽와에서 나온 유물을 본 결과 문양을 그려넣은 기법이나 토기의 기형이 문암리와 상당히 유사하다"면서 "발해연안과 한반도가 같은 문화권임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보았다.

8000년 예술의 정수

또하나 강조할 부분은 빗살무늬 토기의 예술성. 이형구 교수는 빗살무늬 토기를 "8000년 전 예술의 정수"라고 극찬한다.

"신석기인들은 토기를 요즘으로 치면 화폭으로 여기고 빼어난 예술감각을 자랑했어요. 크게 상·중·하로 화폭(토기표면)을 나눠 3~7단까지 구성하여 갖가지 문양을 새겼어요. 상부는 빗금, 배부분은 갈지자, 밑바닥은 선무늬…. 뭐 이런 식으로 예술적인 욕구를 정교하게 표출한 거죠."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토기 하나에 눌러찍은 압인무늬와 빗살무늬와 덧띠무늬를 동시에 표현했으며, 무늬 자체도 직선 혹은 활무늬, 之자무늬, 마름모무늬, 교차무늬, 그물무늬, 번개무늬, 꽃무늬 등 매우 다채롭다"고 극찬했다. 이런 예술적 감수성은 한반도 출토 토기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차하이-싱룽와에서 확인된 계획도시를 방불케 하는 주거지와 빼어난 예술감각을 표현한 빗살무늬토기, 그리고 신앙의 상징인 용과 옥결까지….

저명한 중국 고고학자인 쑤빙치가 "(차하이-싱룽와 문화는) 문명의 시작을 알린 표지이며, 중화문명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던 이유다.

한반도를 극복하라

7월27일 저녁 6시20분. 싱룽와를 떠나는 기자는 동이의 본향을 짙게 물들인 석양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이제. 우리 역사를 살필 때 '한반도 신석기 문화' '한반도 청동기 문화'라 해서 '한반도'라는 좁은 틀로 가두면 안되지 않을까. 올해 초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시작'과 관련된 개정 국사교과서 논쟁도 역시 '한반도'라는 좁은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빚어진 것은 아닐까.

8000년 전 동이는 결코 한반도라는 좁은 영역에서만 살지 않았을 것인데…. 발해연안에서 출발해서 황허유역을 포함한 산둥반도, 지금의 만주 일대와 한반도까지를 누볐을 것인데….

〈싱룽와|이기환 선임기자〉

〈동영상|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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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 14-04-07 21:13
   
인류의 시원은 아프리카라지요. 한반도까지 오려면 긴 여정이 있었을 것이고, 오다가 살기 좋은 곳을 만나면 오래 머물렀을 터이고 또 기후변화 나 주변 민족과 갈등이 있어 피치 못하게 이동해야만 한다면 또 이동하고 그랬을 터인 데...누볐다는 표현도 그렇고, 이땅에서만 몇천년동안 살았다고 보는 이들도 상상력이 과한 것이겠지요.
     
나와나 14-04-07 22:16
   
인류의 시원이 아프리카라는 건 하나의 '가설'일 뿐 진실은 아니죠
오히려 다지역시원론이 더 신빙성과 근거가 있죠
          
백학 14-04-08 06:43
   
뭐 시원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한반도가 아닌 어딘가에선가 공동체를 이루고 한반도로이주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가설이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굿잡스 14-04-08 12:42
   
우리가 한반도가 아닌 어딘가에선가 공동체를 이루고 한반도로이주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가설이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

이건 님이 고대사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남북한의 지형을 마치 저 대륙과 동떨어진

열도같은 지형으로 갇힌 고립된 공간마냥 잘못된 고정관념과 소위 잽이 심어논

희한한 반도적 사관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식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왜 잽의 극우학자에 의해 섬나라에선 구석기 유적이나 청동기문화등 일련의 날조사건들이 나

올까요?(우리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할까 하고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구석기하면 무슨 동굴에 돌들고 살던 원시적 개념만을 생각하지만

만주와 남북한에 이른시기의 구석기 유적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이곳에 현생인류가

오랜시간 정착해서 토착재지화되어 살고 있었다는 말임. 그리고 그런 재지인들의

기반위에서 스스로의 발명과 교류 자극속에서

신석기 이후 청동,철기문화들이 싹텄다는 부정할 수 없는 실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이미 자신만의 독자적 문화 형성의 토대가 있었다는 것임.)

그러나 잽은 이런 식으로 내재적 토대의 문명을 이야기 할 수 없고

고조선말기부터 점차 서열도를 통해 우리 선조 즉 외세신진세력의 이동에 의해

인적, 물적 문명이 전파되다 보니 이런 열등감을 조작하기 위해 구석기 유적등 날조사

건들이 나온것이죠(즉 잽강점기때 잽이 우리 대한제국사람들에 날조 강요한

내재성이 아닌 지리성에 타율적 종속적 어쩌고 하는 건 전형적 잽의 고대사 그들의

열등감을 뻔뻔하게 우리에게 도리어 뒤집어 왜곡 전파한 해괴한 논리와 시각임.)


님이 말하는 바는 저 열도에 해당하는 것이지

이미 아래에서도 지적한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며 문명이라는 말을,

의식의 고도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부터 만주와 남북한지형은 거의

단일 생활문화권이였음이 수많은 고고학적 자료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런 빗살무늬토

기도 그런 지역적 색깔이 있을지라도 만주와 한반도에도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아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민족의 문화 형성과정은 이런 요하 발해만일대를 축으로 하는 서해라인과

흑수말갈등이 활동했다는 아무르(남시베리아 아래쪽)일대에서 연해주 두만강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문화 벨트의 두축을 바탕으로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상호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이후 고도의 정치체화된 사회로

국가의 단계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문명을 성장시켜 나갔음.(최근 새로운 이른 철기문

화 루트도 이 만주 동북방에서 연해주 두만강과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벨트가 확인

된)  이해되시나요?


그리고 정상적 우리 교육과정의 기초 국사 정도를  배운분은 아시겠지만

(서토의 하한족은 전형적 농경문화라서 이동의 폭이 협소하고 영향력이

고작 수백리에 거치다 도리어 사해의 이민족에게 소멸된 허구의 족명일 뿐이고)

우리의 문명은 반농반목적 성격이라는 단어속에는

정착, 정주도시문명을 이른시기에 이루어내면서도(문명의 집적도와 질이 높으면서)

기마문화권으로서 교류의 이동과 세력의 확대, 공간의 활동범위는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대단히 넓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간파해야

할 것입니다.
     
굿잡스 14-04-07 22:30
   
ㅋㅋ

인류의 시원과 저 내용의 토기가 뜬금없이 무슨 상관인지??

토기의 사용이란 현생인류가 구석기 시대에서 완연한 신석기시대 즉 토기 사용을 이룩한

일대 혁명적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임.

당시의 두개골속이 보존되어 있어 어쩌고 지능의 발달은 모르는 것이고 증명 가능한

눈에 보이는 소위 도구의 발달과정인 이른바 타제 마제석기에서

토기의 출현을 통해서 인류의 혁명적 진화와 문명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인류에게 본격적으로 문명이라는 진입을 최소한 말할 수 있게

하는게 저 토기의 출현들임.

(4대문명 어쩌고 황하문명도 보면 별단것 없습니다. 도리어 만주일대

요하 발해문명보다 수준이 한참 낮은 토기생활권 정도임. 요하 발해문명은 이미 신석기

후기에 고국의 형태를 갖춘 전문 분업화 정치체화되는 원시적 국가체가 등장하고 있을

만큼 빠른 양상)

이 토기의 사용을 통해 인류의 두뇌발전과 도구의 디데일한 사용 그기에 기존의 단순

수렵활동에서 저장에 대한 개념으로 일대 생활사가 바뀌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증표들

인 것이죠.

그리고 각 문명 생활권에서는 그 주거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토기에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 저기 보이는 빗살무늬같은 어떤 자신들만의 세계관

을 나타내는 표식을 통해 다른 생활권과 구변되는 그들만의 정체성이 점차 뚜럿해지는

발달 과정을 보이는 것임. 이를 통해 좀더 정교한 토기형태부터 다양한 색상과 무늬들이

붙여지고 더욱 예술화되는 고등 문화로 발전해가며

토기를 굽는 불의 온도를 높여나가면서 이과정에서 금속무기의 발달도 나오는데

청동에서 철기로 이행되는 일련의 중요한 과정도 이런 토기의 사용 토대를

기반으로 나온 산물임.

상당히 중요한 의미에요.

왜 빗살무늬토기를 강조하는냐 하면 이 토기는 서토의 화한족과는 상당히 이질적이고

그 토기를 사용한 사람간의 교류와 생활공간, 직접적 생활상을 통한 공유의식

그와는 다른 이질적 문화권과의 구분을 알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라는 것임.이런 문화 생활권속에서 점차 잉여저장에 따라 부의 차이가 나타나고 전문

화,권력화되는 신분질서가 출현하면서 정치화되는 사회가 등장.

그런 공간에서 상업적 활동이나 관공, 종교적 공공기관 시설물을 중심으로하는

도시문명이 출현하고 성읍국가(도시국가)등 소국이 나타나는데 다시 이들을 아우르는

본격적인 왕국들이 탄생하는 것이죠.
천군치우k 14-04-07 22:07
   
인류의 시원이 아프리카가 아닐수 있다고
이번에 발표가 났어요!
아프리카서 발견된 원인보다 더 오래된게 발견 됬다 던데요!
gaevew 14-04-08 07:57
   
인류의 시원은 전 세계적 동시다발적으로 생긴거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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