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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17 20:16
[중국] 간도에 대한 다양한 주장 (중국주장을 '소개'하는 형식. 필자와 관련 X)
 글쓴이 : ㅎㅈㅅ
조회 : 5,497  

*아래 주장은 필자와 무관하며, 필자는 여러주장을 소개하는 역할만 한다는 점을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1. 간도는 한국땅이다 - 지금 당장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학생이면 한국사 책피면 바로 나옵니다.
2. 간도는 중국땅이다. (출처 : 엔하위키)
조선 숙종 때, 몇몇 조선인들이 백두산 일대의 무인지역에 넘어가 살던 것이 청과 조선 양국간의 문제가 되었다. 이에 청과 조선은 관리를 파견해 두 나라의 국경을 확실하게 정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두만강이 두 나라의 국경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파견된 조선측의 주요 관리들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고, 결국 청의 관리 목극동이 혼자서 현장 답사를 하고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목극동은 물의 지류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저게 두만강이겠거니 하고 대충 눈여김만 하고 비석을 세웠다. 

접반사 박권이 치계하기를,
“총관(목극등)이 백산(백두산)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로 삼았으며,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의 뜻이다. 도신과 빈신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 숙종실록 51권, 38년(1712) 5월 23일 1번째 기사


즉 목극등은 '토문강 = 두만강'으로 파악하고, 압록강 - 두만강 선을 국경선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조선 정부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조선에서 국경선 푯말을 박던 중, 목극동이 본 토문강은 두만강으로 흘러가지 않고 점점 내륙 동북쪽으로 흘러가는 다른 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당황해 논의가 벌어졌는데, 이 때의 인식을 보면 국경선을 두만강으로 보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때 함경 감사 이선부가 백두산에 푯말 세우는 역사를 거의 다 끝냈다는 뜻으로 계문하였다. 겸문학 홍치중이 일찍이 북평사로서 푯말을 세우던 초기에 가서 살펴보고, 상소하여 그 곡절을 진달하기를,
“신이 북관에 있을 때 백두산의 푯말 세우는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저 백두산의 동쪽 진장산(眞長山)안에서 나와 합쳐져 두만강이 되는 물이 무릇 4갈래인데, … (중략) … 그 가장 북쪽의 첫번째 갈래는 수원이 조금 짧고 두 번째 갈래와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하류에서 두번째 갈래로 흘러 들어 두만강의 최초의 원류가 된 것이고, 청차가 가리키며 ‘강의 원류가 땅속으로 들어가 속으로 흐르다가 도로 솟아나는 물이라.’고 한 것은 첫번째 갈래의 북쪽 10여 리 밖 사봉(沙峰)밑에 있는 것입니다. 당초 청차가 백두산에서 내려와 수원을 두루 찾을 때 이 지역에 당도하자 말을 멈추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토문강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지 않고 육지로 해서 길을 갔습니다. 두 번째 갈래에 당도하자, 첫번째 갈래가 흘러와 합쳐지는 것을 보고 ‘그 물이 과연 여기서 합쳐지니, 그것이 토문강의 근원임이 명백하고 확실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이것으로 경계를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이 여러 수원의 갈래로 경계를 정하게 된 곡절의 대략입니다. - 숙종실록 52권, 38년(1712) 12월 7일(병진) 3번째 기사


즉 가장 북쪽의 첫번째 갈래 = 두만강의 최초의 원류과 달리, 강의 원류가 땅속으로 들어가 속으로 흐르다가 도로 솟아나는 물은 첫번째 갈래의 북쪽 10여 리 밖 사봉(沙峰)밑에 있어 두만강의 원류와 다른 물이었다. 근데 목극등이 ‘이것이 곧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지 않고 육지로 해서 길을 갔기 때문에 마치 두 지류가 같은 지류인 양 취급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정계비가 세워졌다.

이에 따라 조선은 경계를 알리는 푯말을 세웠는데, 재확인 차원에서 이번에는 하류까지 내려가는 답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신이 여러 차사원들을 데리고 청차가 이른바 강의 수원이 도로 들어가는 곳이란 곳에 도착하자, 감역(監役)과 차원(差員) 모두가 하는 말이 ‘이 물이 비록 총관이 정한 바 강의 수원이지만, 그때는 일이 급박하여 미처 그 하류를 두루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푯말을 세우게 되었으니 한 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허(許)와 박(朴)【거산 찰방 허양과 나난 만호 박도상이다.】 두 차원을 시켜 함께 가서 살펴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고하기를,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목극등)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 (중략) … 대저 목책이 끝나는 곳은 바로 국경의 한계가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두 나라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한 두 차원의 뜻만으로 조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물에다 강역을 제멋대로 정했으니, 이는 마땅히 징치하여 강토에 관한 일을 중히 여김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강의 수원에 관한 한 가지 일은 또한 묘당(廟堂, 의정부)으로 하여금 보다 좋은 대로 잘 처리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이유가 연석에서 아뢰기를,
목차(목극등)가 정한 수원은 이미 잘못된 것인데, 차원들이 감사에게 말하지도 않고 평사의 지휘도 듣지 아니한 채 멋대로 푯말을 세웠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청컨대 잡아다 추문하고, 감사도 또한 추고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같은 기사


다시 말해 목극등이 잘못 잡은 물길이 멀리서 두만강으로 합해지는 것도 아니고 두만강과는 전혀 상관 없이 저 멀리 만주인들의 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도 송화강 상류 별개의 토문강이라고 한국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강이 이 강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조선 정부에서는 분명히 이 상황을 국경선이 잘못 정해진 상황으로 파악하고, 청과의 외교 마찰도 우려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섣불리 푯말을 박았던 차원들이 취조당하는 등 사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데 실록에는 이 기사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취조당하는 사람이건 조선 조정이건 일관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목극등이 정한 (두만강이 아닌) 수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의 수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두만강으로 들어가는 지류 중 어느 것을 국경으로 정해야 하나' 정도만이 추가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이는 파견 이전 강희제가 국경에 대해 남긴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백산(백두산)의 서쪽은 중국과 조선이 압록강을 경계로 하고, 토문강은 장백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나와 동남 방향으로 바다로 들어가, 토문강의 서남은 조선에 속하고 동북은 중국에 속하니, 역시 강으로 경계를 삼고 있다. 단지, 압록강과 토문강 등 두 강 사이 지방은 다 알 수 없다." - 청사고 526권 속국 1

사료에 따르면 이미 국경이 압록강 ~ 토문강을 경계로 하고 있음은 일찍이 알려져 있던 바이지만, 그 사이 구간이 명확하지 않아 재조사를 명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 어전회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정 중신들은 두만강이 국경이라고 인지하고 있었고, 당시 불법 침입 한 조선인들을 강제 송환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연히 조선의 행정력이 간도에 미친 적도 없다. 게다가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등, 한국에서 보유한 대다수의 지도에는 간도가 누락되어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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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비 13-07-17 20:29
   
엔하위키 여기 병 신집합체 입니다
이병도를 민족사학자 일제에 맞서 싸운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며
진짜 민족사학자들은 저주하며 혐오하고 폄하하는 곳이죠
초록불 광신도들이 24시간 대기하면서 지들 조꼴린 글만 잔뜩 채우고 있죠
gagengi 13-07-17 20:54
   
청나라는 중국이 아닙니다. 청나라와의 국경분쟁을 마치 중국과의 국경분쟁인 것처럼 꾸민 것이 잘 못입니다.
간도와 만주는 20세기중반까지 중국땅인 적 조차없습니다. 한민족이 갈라져 중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배했던 시절 금나라 청나라시절을 중국역사라고 잘 못알고 있으니까 이런 엉터리 역사의식이 생기는겁니다.  만주는 고조선때부터 20세기까지 우리민족의 역사무대였습니다.

조선-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한민족의 남북조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6450
busuza33 13-07-17 21:30
   
제가들은바로는 중국과 조선사이에.. 불가침영역이랄까요.. 완충지대라고 할까요...
두국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영역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중국땅이 되었다고..
mymiky 13-07-17 21:30
   
참고)-중국인들은 간도분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글

http://blog.daum.net/shanghaicrab/11146821
귀환자 13-07-18 05:47
   
엔하위키는 일반인들도 들어와서 자기가 말하고픈것을 써서 뜻을 바꿀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 여러면 고용해서 언제든지 바꿀수 있으니 참고용은 할게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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