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만 답하자면,
별로 왜곡되지 않았습니다.
식민사관 식민사관 말은 쉽게 하는데 식민사관은 별로 고대국가들의 북방영역를 왜곡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남방은 임나일본부설이 있었습니다만 일본이 영토적으로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었다는 이론은 이미 일본학계에서도 주류에서 밀려났습니다. 북방영역은 오히려 일제가 만주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단군도 높이 쳐주고 그랬습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권 같은걸 생각하면 좋겠네요. 식민사관은 주로 타율성론, 사대론, 당파성론, 정체성론 등이 주요 테마였습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한국에서는 오히려 반식민사관적, 민족주의적 사관이 대세가 되었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식민사관은 아직도 저희의 의식 속에 뿌리내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저런 왜곡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몽골유적이라면 내몽골의 성터인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고구려 유민들이나 세웠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좋아보여서 따라 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원나라때 고려 사람들이 지어줬...이건 아니겠다. 뭐, 주변 국가에 교차검증할 수 있는 기록이 있어야 뭔말을 할텐데 잘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내몽골을 의미있게 행정적으로 통치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다고 말은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가서 살거나 거기서 세금을 거두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통치를 어떻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고구려의 직접적인 영토는 현재 우리가 배우는것과 비슷합니다. 단지 주변국과의 관계를 왜곡시켜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낮게 보는거죠.
말갈뿐만 아니라, 거란, 몽골이 고구려의 속국으로 군사행동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들 이민족의 영토까지 합쳐서 본다면 영토가 더 방대해지겠죠.
고구려가 나당연합에 의해 멸망하면서 고구려와 중국사에 관한 많은 역사서가 중국쪽의 입장에서 날조되거나 왜곡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사기의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백제의 역사를 통채로 훔치다보니 일어나는 오류입니다. 백제의 역사를 그대로 자기네꺼로 차용한겁니다. 그리고 4C당시 일본은 청동기문명권이었는데, 강력한 철기로 무장한 한반도 국가들의 군사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죠. 당시의 일본은 움집에서 사는 원시인들이었습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는 초기단계였습니다. 사용하던 철기는 가야나 백제로부터 수입하던게 전부였죠.
천재 사학가 단재 신채호선생께서도 현재의 지명과 과거의 지명이 너무나 차이가 심해서 북방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많이 난감하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의 강릉이란 지명도 중국 고지도를 보면 양자강 근처에 표기되어 있는걸로 나오는데 즉 중국 고지도에 있던 지명들과 현재 우리 나라의 여러 지명들이 서로 동일한 것이 많다는 것이 의아스러운 점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축소시키기 위해 그러니까 우리 선조님들의 중원지배 역사를 삭제시키고 이른바 공구필법이라고 할까 지나의 치욕스런 부분을 감추기 위해 고지도나 사서에 기록된 지나의 지명들을 한반도 쪽으로 옮겼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조차도 일본애들이 자기들과 관련된 치욕스런 부분을 감추기 위해 글자를 훼손하고 그 자리에 석회질을 해댔으니 말 다한겁니다 고구려가 망했기 때문에 그 역사를 지키지 못한것이고 우린 잘못된 인쇄물을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권위 앞에서 마냥 사실의 역사로서 무조건 암기하고 배우며 자라온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