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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30 20:53
[중국] 고조선, 고구려, 발해 논란의 쟁점들.
 글쓴이 : 오쌍
조회 : 3,429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올리네요,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던 저로서는 가생이닷컴을 보면서 참,,, 역사적으로 모르는 분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대체 근거도 불확실하고, 논리도 없고 사료에 근거한 비판이 아니라 우기기식으로
내생각은 이렇기 떄문에 이렇다, 이런 토론이 대체 어디있습니까....
제가 쓸 것은 가장 쟁점이 되는 고조선-고구려-발해사의 검토입니다.
전제를 깔겠습니다. 저는 민족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민족에 관해서 궁금해하시니 참고하겠습니다.

먼저 고조선입니다.

1. 발생연도

고조선은 요령성에 있는 국가이지요,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원전 800년경부터 중국 사서에 나옵니다.
(요청하시면 사료 그대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요령성의 문화는 황하 문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문화이지요,
그러나 고조선의 발생년도를 삼국유사의 기원전 2333년으로 잡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잡아야 기원전 800년 -100오차입니다.

2. 고조선의 한국사문제

고조선은 맨 처음은 요하 유역에서 시작한 국가라는 것이 현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곳에서 발굴된 비파형 동검과 큰 집터 등은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유물-유적이지요.
그러나 전국시대의 연나라와 싸워 서방 2000리땅을 빼앗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 학계에서는 그 때부터 고조선은 한반도로 내려와서 평양 부근에 도읍을 잡고 망할때까지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지요, 비파형동검이 여기서 엄청나게 발굴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조선의 민족을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그 시절은 민족의 개념, 더구나 국가의 개념도 안 잡힌
국가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국 사서에는 고조선을 중국으로 끌어들인 사료가 전혀 없습니다.
단, 한국에는 구전으로 계속 고조선을 최초로 치다가 결국 구전으로 엮인 삼국유사에 의해
기록화되고, (그 전에도 고조선에 관한 사료는 있었으나 소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고조선을 본따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는 고조선은 우리역사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역사학을 할 때에 사료도 물론 중요하고, 유물-유적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가? 라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3. 위만은 한국사람이었는가?

위만 집단은 철기를 가진 이주집단입니다.
위만의 혈통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요.
그러나, 중요한 점은 당시는 민족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위만이 '어느민족'인가는 그 시대에서 중요치 않았습니다.
다 섞여사는 사회고 비슷비슷하게 생긴사람들끼리 민족구분지은 것은
다 현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게 아니라 위만이 한국사회로 들어와서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문화를 창조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고조선과 중국은 가까운데
영향을 안받을리가 없지요. 위만의 한국 진입은 신 문화의 한국전파. 정도로 이해를 하고
민족에 관한 점은 접어두는 편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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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고구려입니다.

고구려 논쟁이 되지요. 그러나 이 나라를 중국이 무슨자신감으로
왜 동북공정에 포함시키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중국사라는 근거가 전혀 없어요.
고구려는 엄연한 우리역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뇌리에 예전부터 고구려는 우리나라. 삼국중 일원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은 고구려를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인식을 강화시켜주고
후삼국시대 역시 고구려를 당연히 우리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삼국을 다룬 역사서마다 삼국을 다 다룹니다.
특히 김부식은 사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나라역사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왕건이 발해유민을 받은 명분도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명분입니다.
특히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하면서 한반도역사에 적극적으로 진입한 그 순간 그 인식은 훨씬 강해졌습니다.
고구려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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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발해는 우리역사라고 하기는 좀 많이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발해는 그러나 중국사도 더더욱 전혀 아닙니다.
<그 외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나라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분쇄되야합니다.

1. 지배층이 대부분 고구려인이었다.
발해는 다민족국가이고 국가의 중요한 구성원은 전부 말갈인이었습니다.
발해는 주변국에 자신이 고구려의 후손임을 알리고자 했으나, 거란도 고구려의 후손을 칭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구려는 만주지방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나라였다는 이야기이지요.
중국본토는 한나라를 정통으로 잡듯이 말입니다.
고구려의 후손을 칭하는 것은 국가의 정통성확보에 큰 역할을 합니다.

2. 중요합니다. 발해 이후 전혀 사람들의 인식속에 '발해'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떤 사서에도 발해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며,
발해는 신라에서도 그냥 북국으로 칭해질 뿐 신라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발해에 대해서 최초로 조명한 사람은 조선후기 실학자 유득공입니다.
그러나 이미 발해멸망후 1000년에 가까운 격차이지요.
그 전에 몰랐다가 유득공이 우겼다고 그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후세사람들의 인식이 어떤가? 라는 점. 절대로 간과할수없이 중요합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왕건의 발해유민포섭. 왕건은 전쟁을 치룬 후라
노동력이 필요했고 발해유민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명분은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나 왕건이후 발해에 대해서 신경쓴사람은 아쉽게도 아무도 없습니다.

3. 발해의 무덤양식은 고구려스타일이다.
정혜공주, 정효공주묘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명은 중국양식무덤, 한명은 고구려양식무덤을 쓰고있지요.
고구려양식은 당연합니다. 뭐 무덤양식이 나라가 바뀐다고 달라질리 없죠.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무덤을 그렇게 쓰는게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중국양식무덤은. 일종의 유행이었습니다.
당나라는 당시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주변국들, 특히 지배층들은 당나라문화를 유행처럼 누립니다.
상경용천부도 장안성을 본따만든 것이지요.
발해는 중국사에 이 이유(중국양식)로 포함시켜야된다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한족은 발해에 거의 살고있지 않았고, 고대 만주의 국가들을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전부 배격되야하고 동북공정 자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발해를 우리민족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위험한 생각입니다.
몇가지 반박이 가능한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중국과 똑같은게 되는겁니다.
물론 중국사보다는 한국사에 가깝겠지요.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발해는 <그 외의 역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반론이나 질문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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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짜증나 12-05-30 21:01
   
잘봤어 오쌍ㅋㅋㅋㅋㅋ
이렇게 써주니깐 속 시원하다ㅋㅋㅋㅋㅋㅋ
     
오쌍 12-05-30 21:02
   
뭘... -_-;;
다다다다다 12-05-31 00:04
   
사료를 부정하시나요? 엄연히 기록이 있는데 이를 부정하려 하다니?
그리고 발해의 구성원은 대부분 고구려인이었다고 생각되고 발해국 문왕은 일본에 국서를 보낼때 고려국왕이라고까지 칭했는데 한국사가 아니다?
     
오쌍 12-05-31 09:35
   
사료를 있는그대로 믿으시나요? 사료에 나와있는 글자를 해석하여 이것이 어떤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더 심도있게 들어가세요.
그리고 대부분 고구려인이라는 것은 어디나와있는것입니까.
발해 문왕 국서문제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고구려는 만주지방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발해 뿐 아니라 거란조차 고구려의 후예를 칭했다구요.
          
다다다다다 12-05-31 12:16
   
사료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게 가장 정확하겠죠. 사견이 들어가게되면 원 의미와는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발해 구성원의 대부분이 말갈이라는 팩트는 어느 사료에서 나타나는지.
거란도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관계가 아주 없지 않았으니 후예를 칭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발해가 한국사에 속하지 못 하는 이유가 되나요?
               
오쌍 12-05-31 13:22
   
1. 민족 구성 문제로 들어간다면
사료가 아니라 민족통계학적으로 접근해야합니다.
만주 - 연해주지방은 말갈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발해의 판도는 다다 님께서도 그림으로 많이 알고 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말갈족은 당시 주로 산지를 근거로 강원도지역까지 퍼져살고있었지요.
고구려인을 예맥족의 후예라 한다면
예족과 맥족은 압록강부근, 요하부근에 살고있었습니다.
발해는 압록강에 대한 지배력은 낮았고, (중심지와 많이 멀어서)
요하까지는 접근도 못했지요.
게다가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도 상당수였고,
현학계의 정설 또한 그것을 근거로 고구려인과 말갈인의 비율을
말갈인이 훨씬 많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구나 민족사학에다 발해를 우리영토라고 명시해놓은 국사책에도 나올것입니다.

2. 그리고 사료는 사가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역사학자가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반대로 역사학자의 사견이 들어가야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발해가 고려국왕을 칭했다' 라는 사료에 대해
'그렇구나 그래서 발해가 한국사구나' 라는 인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것이죠, 그것은 역사연구의 기본입니다.
왜 발해 지배층이 하필 고려국왕을 칭했을까, 고려가 어떤위치인데,
무엇을 위해서 국서에 고려국왕이라 했을까. 라는 연구가 필요한것이지요.
그것을 파악해서 충분한 논의와 추론을 통해 본질을 알아내는 작업이 중요하지요.
현재 역사 연구의 기본 전제를 제공하고 있는 E.H카아를 아실겁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대화"라고 했죠.
그런 작업이 필요한겁니다.

3. 그리고 거란문제는 반박을 위한 반박이 아닐까 싶습니다. 충분히 설명 드렸는데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시길 요청합니다. 고구려는 만주에서 정통성을 확보한 나라이고 고구려 이후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를 칭했습니다. 그것은 '자칭'이지요. 요지는 거란이 고구려를 칭했다고 거란을 한국사로 칠 수 없는 것처럼, 발해가 고구려를 칭한 것은 발해를 한국사로 넣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말씀드린 겁니다.
                    
다다다다다 12-05-31 15:41
   
발해 민족 구성에 대해 학계의 주장은 말 그대로 설일 뿐이지요.
그러나 저는 발해 민족 구성이 고구려인들이 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의 영역과 발해의 영역은 현재 잡고 있는 영역으로 비교를 해도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30여년 사이에 민족구성이 고구려인에서 말갈인으로 바꼇다는 주장이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구분이 가능했고 말갈이 피지배층이었는데 고구려인이 소수였다면 어떻게 말갈을 복속시키고 지배가 가능했겠습니까.
그리고 기록에는 발해가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찾았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고구려인이었을겁니다.
또한 발해가 한국사에 속하는 이유라면 동시대의 신라도 그렇고 이후의 고려도 그렇고 같은 민족이라는걸 인정하고 있고 고려는 이후의 거란을 한민족과 구분짓고 있습니다. 유물로 얘기하자면 발해 역시 온돌을 썼는데 세계에서 온돌을 쓰는 유일한 민족이 한민족입니다.
발해를 한국사에서 분리시켜 생각하는 님의 근거라면 말갈족의 여부밖에 없습니다. 근데 이 말갈족이라는게 고구려시대에도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고구려 역사도 한국사가 아닌가요?
                         
오쌍 12-05-31 17:01
   
민족사학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국사책도 인정해버린 학계의 정설을 오직 아무런 근거도 사료도 없이 다다님 생각으로 뒤엎다니 굉장하군요. 제가 지금은 회사인지라 통계자료는 못드리지만, 조만간 통계자료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정설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통계자료와 사료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의 수많은 논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라가 언제 발해를 같은민족이라고 인정했나요. 처음듣는군요.
고려가 같은민족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면 왜 역사서에 더이상 발해는 등장하지도 않을까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인식에 '발해'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게 문제의 요지입니다.
고려가 인정했다는 예는 왕건이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발해유민의 유입시 왕건이 한 멘트는 후삼국시대로 피폐해진 한반도에 유민들이 오니까 그 유민을 받는 명분이지요.

온돌은 한국뿐아니라 중국동북부(만주죠), 몽골까지 쓰고있습니다.
고로 거란이고 여진이고 할것없이 다 썼던 북방문화지요.
온돌은 전혀 근거가 못되고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말갈족의 여부로만 발해를 분리시켰나요? 반대를 위한 반대 하지 마시고
본문 다읽고 반박해주세요.

고구려역사도 본문에서 말씀드렸지않습니까. 고구려역사를 한국사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 시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사람들의 인식수준에서 고구려는 항상 '삼국'에 포함되어있다구요.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역사서도 이것을 뒷받침해주고요. 반면 '남북국시대'라는 명칭은 고려-조선까지 계속 안쓰다가 민족사학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명칭입니다. 민족사학에서 고려이전의 만주를 계속 우리의 역사로 붙이기 위해 억지로 끌어다붙였지요,

근데 본질적으로 그럴필요가 뭐있습니까. 옛날 영토의 크기가 뭐 중요하다고 무리하게 그러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상당히 역사학에서 지양해야될 부분이며 이 점을 유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mymiky 12-05-31 00:39
   
님.. -.-
이미, 발해는 신라와 함께 남북조시대-남북국 시대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국사영역에서 다루고 있죠.
금나라부터는 세계사의 중국사 파트에 있지만요.. 한국학생들이  민족사 영역에서 배우고 있는 마당에 ㅋㅋ
무슨 그외의 역사라느니, 뚱딴지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도 중국과 같이 똑같이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은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다는거죠. 이런 정신머리와 태도면, 중국이 발해사 잡아먹어도 한국은 아닥하고 있어야 하고, 국사에서도 빼야 합니다.

저번에, 가생이에 놀러오던 조선족 어느분이 말씀하시길.. 중국도 고구려나 발해 자기꺼 아니라는거 안답니다.-
여기서는 한족들을 뜻함..) 하지만, 소수민족에 만주족, 조선족이 있기 때문에, 자기들꺼라고 한다고 하는거죠.
거기다 분열되는거 막으려고 동북공정 하는거구요. 다 알고 있기에 더이상 새로울것도 없는 내용이죠.
     
오쌍 12-05-31 09:44
   
그게 민족사학의 무리수입니다.
국사영역 자체가 민감한부분이라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수밖에 없는데
현 정부에서는 민족사학을 추구하지요. 왜? 민족사학은 국민들의 충성도를 고취시키니까요.
그러나, 현 학계에서는 발해를 우리 나라 역사로 규정하는 데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교수진들이 발해사를 뺀다? 그러면 정부에서 커트시켜버립니다.
게다가 국민들도 난리나죠. '미쳤냐?' '짱깨냐?' 이런 식으로요.
특히 국사책은 정부의 심의가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죠.

그리고 이런 정신머리와 태도라뇨. 저는 사실이 그것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겁니다.
님이야말로, [한국]이라는 국가에 사로잡혀 대국적인 안목을 잃고있는게 아니신지요?
제가 본문에 올린 의견에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단지 국사책에 나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다] 라고 우기기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도저히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는군요.
호로록호롱 12-05-31 05:36
   
발해는 다민족국가였다... 그래서 애매하다는 의견이신가요?
그렇다면 고구려도 다민족국가아닌가요? 왜 고구려는 한민족국가로 치시는지?

아무튼 개인적으로 역사는 현재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주류적인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 고대국가는 우리의 역사에 포섭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대국가를 놓고 이 것은 내 것, 또는 아닌 것이라고 이분법적인 시각을 버리고 만주지역 역사를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해석하여야 합니다.

실제 북한때문에 적극적인 북방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몽고,러시아와 연계하여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남한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소극적인 수준에 있지만 북한이 대한민국에 합쳐진다면 보다 적극적인 해석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중국또한 중국 북방민족의 역사로서 연구되겠지요.
     
오쌍 12-05-31 09:48
   
글 읽으셨나요..... 고구려문제 제가 말씀드렸지않습니까.
그 당시사람들의 인식수준이 중요하다고.
고구려는 분명히 계속 우리역사에서 다루어지면서 삼국중하나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가장 확실한 한국사이죠. 그러나 발해는 그게 고구려와 다릅니다.
사람들이 [몰랐죠]
전제를 드렸습니다 저는, 가생이닷컴 자체가 민족에 민감하고 이분법적인시각을 띄고 있어서
그런 시각을 참고해서 말씀드린다고.
저는 만주사는 만주사로 그쳐야지 중국사나 한국사에 포섭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죠, 만주의 문제는 우리역사와도 관계가 깊으니 연구를 많이 진행해야겠지요
(중국이 다 조작하기전에) 그 점은 동감합니다.
Player 12-05-31 06:17
   
역사 전공자님,

우선 발생연도부터 빨라야 800년이 아니라 늦어도 800년 입니다.

사실을 떠나서 문맥적으로라도  후자가 맞습니다.

그래서 나머지는 읽지 않았네요.
     
오쌍 12-05-31 09:50
   
빨라야 800년. (-100오차)이라고 썼잖아요,

읽기싫으니까 안읽었다고 하세요 그냥...

글이 맘에 안드니까 말꼬리하나로 트집잡지마시고
다다다다다 12-05-31 20:18
   
오쌍/ 역사관의 차이가 크군요. 제 의견은 쓸데없다는 식이니 뭐 더 이상은 얘기안하겠습니다.
칼리 12-06-02 01:10
   
국사학계는 민족사학이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다.

국사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실증사학을 표방한 친일사학이 주류를 이뤘다는 겁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했고, 지배층도 고구려였으며, 말갈이라는 족속도 고구려때부터 고구려에 복속되어있었습니다. 발해를 한국사에서 제외한다면 고구려또한 제외되야 합니다.

중국사만 보더라도 잡탕의 역사지만 그래도 중국사로 인정해줍니다. 오쌍님같은 논리면 중국의 역사는 그냥 없다고 보면 됩니다. 황하유역에서 시작한 조그만 국가에서 시작된 중국의 역사는 그럼 어떻게 설명하실겁니까?

세상에 그 외의 역사라는 건 없습니다. 발해사는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인게 당연한 것이고, 이걸 부정하면 어떤나라도 국사를 쓰는거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칼리 12-06-02 01:33
   
중국사, 만주사, 한국사 이렇게 분류하는 인간들의 대표적인 게 쪽발 사학자들임.

짱개들은 고구려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고구려는 제외하고 만주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생각합니다. 고로 오쌍군의 역사인식은 쪽발사학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발해 세자 대광현도 발해가 멸망하자 고려에 귀순하고 순차적으로 발해유민들이 고려로 귀부합니다. 즉 발해인들은 고려와 동질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고려 왕건 또한 이들을 맞아들이고 거란을 적대시합니다.

도대체 발해를 그외의 역사로 인식하려는 쪽바리 사학을 들이대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오쌍 12-06-02 12:03
   
이번엔 친일인가요,,,,,
왕건, 너무 위에서 많이썼는데 글도 다 안읽고 쓰니
뭐 다시한번 말씀해드리지요,
왕건, 이후 발해를 다룬 사람이 있긴있습니까? 조선후기 유득공까지말이에요,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에 '발해'는 없는데 한번 증명해보시죠,
그리고 왕건도 발해유민이 귀부하는데 굳이 거절할이유는 없습니다.
명분도 같이 고구려를 표방했다는 명분이고,

친일, 이런것을 다 떠나서 한번 객관적으로 보시죠,
그리고 주류가 친일사학이 이뤘다는것은 무슨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 이후 중국은 계속 같은 천하 아래서 동질의식을 가지고있었고,
한족의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이정도만해도 설명될거라 생각합니다.

고구려, 본문에서, 그리고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제발 글좀 읽고 쓰세요.

엄한사람 친일로 몰아가지말고,
          
칼리 12-06-02 14:58
   
님 진짜 사학 전공입니까?
현 사학계의 주류가 친일사학이 아니라고 하시다니, 대표적으로 이병도만 해도 스승이 쪽바리였습니다. 경성제대 즉 서울대 사학과 자체가 친일사학의 원산인데 말 다했죠.

한 이후 중국이 계속 같은 천하 아래 동질의식이라니요. 말이 됩니까?

그러면 금사, 요사, 청사는 만주사이고, 원사는 몽고사이고, 중국사에 속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님의 자국 역사의 근거는 영역입니까? 종족입니까? 발해를 기타역사로 치부하면 결국 만주사라는건데, 그러면 중국사는 왜곡될수밖에 없습니다.
푸헐헐 12-06-04 17:26
   
역사를 전공하신 분의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발해에 관한 본문 내용도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그래서 몇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기저기 본건 있지만 많이 부족하여 님의 답변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보충하고자 합니다^^

먼저 발해 역사에 관해 쓰신 말씀을 보자면 발해사가 중국사인 것은 말이 더욱 안되지만 우리역사에 포함 시키는 것 역시 무리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맞죠?^^(본문 정독 했습니다ㅋ)
후에 유득공의 발해고 이전까지 1000년의 시간동안 발해의 언급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제 의견을 말씀 드리자면
본문 내용대로 거란 말갈등 예맥계열의 만주지방 국가들 또한 발해처럼 고구려의 계승을 자처 했다지만
님 말씀대로 고구려 평양성 천도후 더 강해진'우리역사' 의식 +
발해가 고구려 영토 모두를 가지고 있던 점 등을 따져보았을때 유득공 이전부터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가로 보고 우리역사로 인식이 되고 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님과 같은 이유이지만 정반대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요
발해 이후부터 조선 말까지 여러 일중 고토회복의 명분을 걸었던 최영과 정도전의 요동정벌이나
원나라에 고려가 항복할때도 고구려의 태자가 나에게 항복을 해왔다고 기뻐했던 쿠빌라이의 멘트, 북벌에도 고토회복이라는 명분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고구려가 만주지방에서 유일하게 (님말씀대로) 정통성을 확립한 국가였는데 그 고구려의 후계가 고려,조선이라는 인식이 대내외적으로 충분한 것이라면 본문에서 언급된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란 점, 고구려때도 말갈이 피지배층이였다는 점(그래서 발해가 말갈족을 끝까지 복속하려고 했던거 아닌가요?) 을 가벼운 사료로 보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전 그래서 더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깊은 지식의 댓글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댓글랠리중에서 친일파사학계가 메인이라고 나오고 본문게시자께서는 어이없어 하셨는데
이같은 오해가 일본 사학의 주류인 객관주의 사학이 일제시대때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쳐서 그런 것 아니였나요?
그리고 국사편찬위가 가장 파워가 강하다 들었는데 굉장히 민족주의적이지 않습니까?
제가 잘못알고 있는게 있다면 날카로운 지적 부탁드릴께요ㅎㅎ
6시내고환 12-12-29 01:04
   
발해는 다민족국가이고 국가의 중요한 구성원은 전부 말갈인이었습니다
-이부분은 공감할수없네요 피지배층이 말갈인이고 그 말갈인들도 자신들의 의식속에 우리는 고구려의 백성이다 라는 의식이 강했던걸로 알고있고 고구려의 토착세력이 있는데 대부분이 말갈이라고는 볼수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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