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고 재미없으니 고려하세요^^
과제 끝자락에 넣을건데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올립니다
숙제가 자기가 왕이 되기 싫다며 백이에게 왕의 자리를 넘기려고 할 때에 그저 극구 사양하면 될 것을 왜 주나라로 도망가기까지 했는지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으므로 다만 짐작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숙제와 그의 신하들이 하도 간곡하게 백이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간청하므로 도저히 말로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던 백이는 몸을 빼서 도망갔을 것이다.
그가 왕이 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유언이 숙제를 왕으로 임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범부들은 백이가 거저 굴러들어온 왕 자리를 내팽개친 것이 어리석다고 말했을 것이고 백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르는 것이 인간답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허나 후에 그의 동생인 숙제마저 왕위를 내팽겨 쳤을 때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간 건 어떠한가? 왕이 없는 나라가 당시 어찌될지 백이는 정말 알지 못했는가? 그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절하기 힘들다 는걸 알고 몸을 빼서 도망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 나라를 돌보지 않고 그의 동생과 망명간 것은 어찌 보면 제 몸만 챙겼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이건 그의 어리석음과 융통성 없음을 보여준다.
후일 그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려 하자 몸소 나아가 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전쟁을 말린다. 그런데 전쟁을 말리는 이유가 효(孝)니 인(仁)이니 하는 이유였으니 듣고 있던 신하들이 어이가 없어서 칼을 뽑았을 만하다. 무릇 전쟁은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손자가 누누이 강조한 바 있으니, 장례가 끝나지 않았다 하여 전쟁을 미루는 것은 군주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게다가 은나라가 주군의 나라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녕 역사적이나 혈연적인 형제의 국가가 아닌 이상 나라가 강성해지면 주변국에 세력을 행사 하는 건 당연하다. 또한 당시 은의 왕이 폭군으로 유명한 주왕이었으니 무왕은 천하의 민심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간의 은나라 태도를 보면 주는 은에 억압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즉 무왕은 자국의 국익과 천하의 민심을 따르는 거사를 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허나 백이는 당시의 이러한 시대를 읽지 못하며 백성과 제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도의적 명분에만 집착한 주장을 왕의 앞에서까지 간하였으니 오히려 그를 살려준 태공망의 아량이 넓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신하의 나라가 주군의 나라를 치는 것이 인(仁)이 아니므로 행하여서는 안 된다 하면 한 번 주군의 나라가 된 나라는 영원히 주군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주나라의 관점으로 백이의 융통성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알 수 있다.
주가 천하를 평정하였을 때에 주의 곡식은 먹을 수 없다 하여 굶어 죽은 것 또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백이는 제 나라를 떠난 이후 주의 문왕과 무왕의 덕을 입어 살아왔는데 주군의 뜻을 이루게 돕지는 못할망정 주가 주군의 나라인 은을 쳤다며 천하가 기뻐한 일을 부정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은의 신하도 아니고 주의 덕을 입어왔던 자가 이것을 올바른 일이라 한 것인가? 제 나라 백성을 살피지 않고 또다시 민심을 읽지 못한 그의 또 다른 어리석음이다.
난 사마천이 백이를 어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위의 생각과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백이를 "백이와 숙제는 과거의 원한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인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 라고 평하였는데 사마천이 위의 백이 열전에서 “공자의 기록을 얻어야 이름이 더욱 드러나고” 라는 구절을 넣은 까닭은 순전히 백이가 공자의 명성 덕분에 유명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이는 마지막 구절인 “청운의 뜻을 이룬 성비에게 붙지 않고야 어찌 후세에 이름을 베풀 수 있겠는가” 에서 더욱 드러난다. 또한 공자의 제자인 안회는 평생을 인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았으나 그는 굶어 죽고 사람을 살인하고 회쳐먹었다고 써져 있는 살인마 도척은 천수를 누렸다고 하니 사마천이 공자의 생각에 대해 어찌 생각하였는지는 백이열전에 이를 넣은 건만으로도 알 수 있다. 즉 단순히 인(仁)을 구하며 백운의 뜻을 이룬 백이나 숙제와 같은 존재는 하늘의 도를 행하여 이름을 알리고 군자로서 그 뜻을 마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들이 구한 인(仁)은 개인적이며 천하를 보지 못한 인(仁)이며 단순히 공자와 같은 청운의 뜻을 이룬 선비 덕분에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라 하겠다.
백이는 확실히 인(仁)을 이루고 효(孝)를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제 나라 백성과 신하를 버리고 망명한 것은 과연 아버지에 대한 효(孝)를 이룬 것이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엉뚱한 이유로 무왕을 막은 것은 인(仁)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개인의 시점에 맞추어 천하와 백성을 보고자 하였고 이것은 그가 개인의 인(仁), 효(孝)는 행하였지만 천하의 인(仁), 효(孝)는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후세에 백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이 많은 이유는 어쩌면 단순히 공자가 그를 좋게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