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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음말
지금까지 필자는 遼寧省 錦西市 連山區 女兒街 邰集屯 小荒地에 위치한 옛 성터에서 수습된 '臨屯太守章' 封泥와 동반유물 및 그것이 수습된 유적과 그 주변 유적의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臨屯郡을 포함한 漢四郡의 遼西지역 설치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臨屯太守章' 封泥는 그 규격과 서체 및 문장이 西漢에서 제정한 규격 및 규정과 일치한 것으로 보아 중앙에서 만들어 보낸 것이 분명하였다. 이것은 臨屯郡이 실존했음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臨屯郡이었을 가능성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封泥가 수습된 小荒地 유적의 문화층을 검토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원래 이 지역 토착인들이 거주하면서 黃河 유역 문화와는 다른 고조선 문화의 성격을 지닌 토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戰國시대에 이르러 黃河 유역의 문화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西漢시대에 이르면 黃河 유역 문화 요소가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西漢시대의 문화층에서는 中國의 지배층 문화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小荒地 유적 주변의 여러 유적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妖書 지역은 원래 고조선의 영토였으나 戰國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이주민이 많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燕나라 秦開의 고조선 침략 등으로 인하여 中國 문화가 이 지역에 전달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西漢 초에 이르러서는 衛滿이 西漢으로부터 이곳으로 망명하여 衛滿朝鮮을 세우게 됨에 따라 西漢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고 西漢 중기에 이르러 衛滿朝鮮이 멸망되고 그 지역에 漢四郡이 설치됨에 따라 西漢의 관리들이 이 지역에 많이 와서 거주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西漢의 지배층 문화가 강하게 자리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漢四郡은 지금의 遼西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지금의 錦西 지역이 臨屯郡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에 의한 고증결과는 그간 논란을 빚어온 漢四郡에 관한 문헌 기록들의 해석을 재검토하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지난날 漢四郡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와 지금의 요동 지역으로 본 통설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한국 고대사의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