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대륙에는 아직 통일된 국가가 출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당시 중국인들은 외부세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고조선시대에 중국은 夏,商,西周,춘추전국,秦제국 등의 시대를 거처 西漢 초에 이르게 되는데, 秦제국시대에 들어 와서야 비로소 통일국가의 출현을 보게 된다. 夏와 商시대는 아직 초기국가로서 영역이 황하 중류 유역에 머물러 있었고, 商 말기부터 西周시대는 그전보다 영역이 확장되기는 했지만 동북쪽은 하북성 중부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남쪽은 장강 유역에 그쳤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그보다 영역이 다소 확장되기는 했지만 西周시대의 제후국들이 독립해 전쟁을 계속함으로써 중국은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후 고조선 말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을 통일한 秦제국이 출현했으나 불과 15년 후에 농민봉기로 무너지고 西漢제국이 출현했다. 따라서 고조선 전 기간 동안 중국은 외부세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고, 내부적으로 국가경영의 경험을 쌓아 가면서 중국대륙을 점차 확보해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외부세계에 관심을 갖고 기록에 남기기 시작한 것은 고조선이 붕괴된 훨씬 후 그들의 사회가 안정된 이후부터였다. 그러한 사실은 <후한서> 동이열전에 夏시대부터 東漢시대까지의 복잡다단했던 중국의 상황을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 것에서 확인된다.
"漢안제(107~113)에 이르러 다난하니 드디어 東夷가 들어와 노략질했다. 환제와 영제가 失政하니 점점 만연했다. 중국이 중흥한 후로부터 四夷가 손님으로 찾아오니 때로는 배반함이 있기는 했으나 사신과 역마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법속과 풍토에 대해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해 간략하게나마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 <후한서> 동이열전.
중국이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대한 지식을 얻어 간략하게나마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은 중국이 중흥한 이후에 속한다. 중국의 정사 가운데 東漢의 역사서인 <후한서>부터 비로소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관한 기록인 동이열전이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연 때문이었던 것이다.
출처, 윤내현 고선연구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