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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09 12:49
[한국사] 단군조선 도읍 변천ㅡ결론
 글쓴이 : 하이시윤
조회 : 1,652  


일연이 “삼국유사”에 인용한 “古記(고기)”에 의하면 고조선은 평양성. 백악산아사달. 장당경. 아사달 등에 도읍하였는데 마지막 도읍지였던 아사달은 그전에도 도읍을 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고조선의 도읍지는 세 곳이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고조선이 백악산아사달로부터 장당경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중국 商王室(상왕실)의 후예인 箕子(기자)가 조선 지역으로 이동해 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문헌에서는 고조선이 위치했던 지역에 고조선 또는 위만조선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險瀆(험독)과 王險城(왕험성)이 있었음을 전하는 기록들이 보인다. 필자는 이들의 위치를 고증하고 그 위치의 상호관계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 하였다. 즉 험독은 지금의 요하 동부연안인 심양의 동남지역, 대능하 중류 동부연안에 위치한 북진, 하북성 창려 부근 등 세 곳에 존재하였는데 이곳들이 고조선의 도읍지였다. 심양의 동남에 있었던 험독은 “삼국유사”에서 말한 고조선의 첫 번째와 마지막 도읍지였던 평양성과 아사달이었으며, 창려 부근의 험독은 두 번째 도읍지였던 백악산아사달 이었고, 북진의 험독은 세 번째 도읍지였던 장당경 이었다.

그리고 고조선의 서쪽 변경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난하의 중하류 동부연안에는 조선이라는 명칭을 가진 지역이 있었는데 그 지역에는 기자국 말기의 도읍지였다가 후에 위만조선의 도읍이 된 왕험성이 있었다.


원래 중국의 동북부 변경(지금의 난하 서부연안)에 있었던 기자국이 秦(진)시대에 중국의 통일세력에 밀려 고조선의 서부 변경에 위치한 조선지역으로 이주하여 왕험성에 도읍을 하게되자 고조선은 당시의 도읍인 백악산아사달이 너무 서쪽에 치우쳐 있어 기자국과 인접하게 되었으므로 그보다 동쪽인 장당경으로 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위만이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하고 세력을 키워 고조선의 서부 영역을 잠식하여 지금의 요하 부근까지 차지하게 되자 요하의 동부에 위치한 아사달로 다시 도읍을 옮겼는데 그곳은 고조선의 첫 번째 도읍지였던 평양성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고조선이 백악산아사달로부터 장당경으로 천도한 시기는 秦國(진국)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경이 될 것이며, 장당경으로부터 아사달로 다시 도읍을 옮긴 시기는 위만이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한 기원전 194년경보다 조금 늦을 것이다.

고조선의 첫 번째 도읍지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었고, 두 번째 도읍지가 그보다 훨씬 서쪽인 지금의 난하 동부연안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조선족은 원래 지금의 요하 동쪽에서 일어나 서쪽으로 진출하였을 가능성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인용된 “古記(고기)”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 도읍지인 평양성으로부터 두 번째 도읍지인 백악산아사달로 옮긴 것을 “또 옮겼다”(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우이도어백악산아사달)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조선족이 평양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朝鮮(조선)”이라고 정하기 이전에는 평양성 즉 심양의 동남이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였을 것임을 알게 된다.

이상과 같은 고조선의 도읍지가 확인됨으로써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가 전하는 고조선의 천도에 관한 내용이 매우 정확한 것임도 입증되었다.

그리고 고조선과 기자국의 관계가 한층 분명해짐으로써 기자국을 한국고대사의 주변 맥락 위에서 인식하지 않았던 일연의 견해가 매우 옳은 것임도 확인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제후국으로써 서족 변경에 있었던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한 후 고조선의 서부 영역을 잠식하여 성립되었으므로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일시에 교체된 정치세력이 될수 없음도 알 수 있다.

PS. 지도는 차후 첨부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이상으로 윤내현교수의 단군조선 도읍 천이고를 소개하였습니다. 흔한 착각중 하나가 유적과 유물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않습니다. 무령왕릉 묘지석처럼 명백한 명문이 나오지 않는한 사료분석을 통한 위치비정이 우선입니다.

윤교수는 중국사 전문가답게 중국사료 전부를 동원하여 세밀하게 단군조선의 수도를 비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정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순없겠지만 그건 학계에서 논의할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고대역사학계는 그런 논의 대신 정치적 재단으로 윤교수의 학설을 매장시키려는 비열한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윤교수의 논문수준을 따라오지도 못하면서도 매도해왔죠.

아무튼 지금은 복기대교수의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에서 고고학을 동원해 한층 더 가다듬어진 윤교수의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정상적인 과학하는 태도가 우리 고대역사학계에도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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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2-10-09 13:06
   
윤교수님 가설 관련 제,갠적 생각과 다른점이 있습니다. 먼저 저는 고조선이 대릉하와 요하 사이에서 발원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청동기연대를 보면 이 지역 청동기가 만주와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빠른 기원전24~30세기입니다. 즉 청동기가 국가출현의 중요한 지표이기에 전 본문에 나온 북진 지역이 최초의 단군조선의 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나서 단군조선은 동과 서로 확장해갔는데 동쪽으로 가면서 심양인근과 평양에 대읍ㅡ즉 수도를 건설했고 서쪽으로는 난하까지 확장하면서 하북성 창려에 대읍을 건설했다고 봅니다.
즉 일연이 전한 천도과정에서 제가 보는 관점은
북진ㅡ>심양인근/창려인근ㅡ>북진ㅡ>심양인근ㅡ>평양인근으로 정치적 군사적 변동에,따라 천도했다는 것입니다
위구르 22-10-10 18:52
   
저도 윤내현 교수의 주장처럼 패수가 난하였다고 생각하고 당시 요동군의 기준인 료수는 지금의 영정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수도인 왕험성이 지금의 창려라고 보기에는 애매하고 보다 북동쪽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최동환 선생이 주장한 흥성시(興城市)가 가능성이 높아보였는데 그 시가 속한 호로도시에 임둔군이 있었으니 낙랑군의 조선현이나 요동군의 험독현이 있을 수가 없고 머리 아픕니다
     
하이시윤 22-10-12 12:51
   
제생각엔 상주교체기 시대에 조선은 북경서남쪽으로 확장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요서전체를 점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2수도를 난하인근 창려에다 쌓았다는거죠. 당시는 읍중심체제라 만흔 군사를 동원하려면 거점을 여러곳에 세웠을겁니다. 그 증거로 생각되는 문헌이  한후가 쌓은 성을 찬양하는 시경입니다.
     
하이시윤 22-10-12 12:58
   
그런데 기자일족이 북경인근 고죽국으로 망명해오자 그를 이용해 완충지대를 만들고자 가칭 기자국을 세워주고 괴뢰국으로 이용했던거죠. 아마도 조선성을 도읍으로 주었던거 같은데요. 거기가 바로 사기에 나오는 왕검성이자 위만정권의 도읍지라고 봅니다.

따라서 창려에 있던 검독과 왕검성은 다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구르 22-10-12 22:26
   
수도가 2개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네요. 이북의 리지린이란 학자는 지금의 개주시를 왕검성으로 비정했는데 타당하다고 여기면서도 창려현 등의 료녕성 서부 지역이 걸렸는데 2개라면 의문이 일단 해결됩니다. 다만 위만조선이 망할 때 둘 다 함락됐는지 아닌지는 따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시윤 22-10-14 13:21
   
제생각엔 검독으로 불리던 대읍이 여러개가 있었고 이게 한자화되면서 왕검성이라고 불리운것같습니다. 난하검독과 창려검독은 모두 위만에게 함락되었다고 봅니다. 위만조선 동변이 지금의 요수까지 였슴을 윤교수가 논증했기 때문이죠. 북진도 함락되었을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심양남쪽검독으로 천도해 진국으로 재출발했을것으로 보입니다
구르뫼 22-10-11 11:13
   
고조선...
중요한 점은 적봉시의 홍산문명과 연관성입니다...
이 지역에서 크게 세 루트로 이동이 가능한데
하나는 서남방향으로 장가구, 대동시를 걸쳐 태원으로 이동하는 루트
두번째는 남쪽으로 대령을 걸쳐 노룡현과 베이징, 보정시,산동성으로 이동하는 루트
세번째는 조양시를 걸쳐 심양과 요양으로 이동하는 루트입니다.

제 사견은 이 세 루트가 궁극적으로 삼한과 관련이 있으며
북송,요,남송,금, 원나라 시기 작성된 고지도의 감춰진 지명을 고찰하고 보이는 루트입니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에 연나라 남쪽에 갈석산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북성 노룡현에 있는 갈석산은 누가 보아도 동쪽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연히 난하가 요수라는 가설은 폐기되어야 하는 이론입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호타하(滹沱河)라는 강줄기입니다.
하북 평산을 걸쳐 진정부 남쪽, 고성을 걸쳐 안평,요양으로 흐르는 물줄기로 아는데 이는 크나큰 오판입니다.
명청시기 호타하는 고성에서 동남쪽으로 진주 서쪽, 동록 서쪽으로  흘려
형수시에서 지금의 부양하(호로하)와 합해져 동북쪽으로 흐르던 강물입니다.
그러나 이는 명나라가 지명이동을 위해 바꿔친 이름이며 고려시기에는 사하라 불리우던 강입니다.
고려시대 호타하는 지금의 호타하 아래에서 동남쪽으로 지수(고려시대 민수)와 영진박 근처에서 합해져
동북쪽으로 흐르던 강물이며 구하의 하나로 주해하라 불리었다고 해당 지역의 군현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기 역수는 두 물줄기로 나누어져 하나는 옹노로 흐르고
하나는 호타하를 만나 동쪽으로 역하가 되는 것이며 이 두 물줄기 북쪽에 유주 즉 연경이 있습니다.
요사 지리지에 지금은 요령성을 설명하는 글이지만
요수는 산 입구를 나와 범수가 되며 수경주에서는 범수는 범양 남쪽을 흐른다 하였습니다.
즉 범수가 곧 소요수를 말하며 이는 오늘날의 역수(계조하 부근)와 일치하는 기록이며
역수는 소위 말하는 연남장성을 뚫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참조하셨으면 합니다.
호타하를 얘기한 것은 冀州夾右碣石圖에 북송시기의 갈석산이 잘나타나 있으며
지금의 노룡현 갈석산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하이시윤 22-10-12 12:44
   
먼저 윤교수의 한국고대사신론 읽으셨나요
부록에 있는 갈석고 읽으셨나요.
     
하이시윤 22-10-12 12:59
   
이미 70년대에 갈석산은 노룡현 갈석산이라고 판명났습니다.  비석도 발견되었구여
          
구르뫼 22-10-12 18:09
   
사기 및 서경 등 관련자료 원문 읽어 보았으며
양수경의 갈석고와 고금도서집성 산천고의 갈석산고 등 웬만한 자료는 읽어 보았네요...

노룡현 갈석산이 가짜인 이유는
상기 댓글에도 썼지만 연나라 남쪽(혹은 동남)에 있어야 하며
갈석산 근처에는 碣石지역이 없다는 점이며
원문]今枕海有石如甬道數十里,當山頂有大石如柱形,往往而見,立於巨海之中
갈석산은 순임금의 수도로 조공을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이기에 河口와 逆河에
있어야 한 다는 점입니다....
원문] 冀之北貢 自沽易涿遼水入海而後 西向以上大河 永達冀都 此時九河未熟於海而 碣石正在河口 於其遡河西上則 碣石在右故 曰夾右碣石
결정적으로 고수 역수 탁수  요수를 타고 바다로 나온 후 갈석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노룡현에 갈석산이 있을 수 있나요?
(윤내현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난하타고 바다로 나와 다시 돌아가
짝퉁 갈석산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 하구가 나온다...??? 유구무언이로세)

碣石이라 함은 甬道와 같은 형태로 수십리에 걸쳐 형성된 지역이라는 점이며
이것이 없는 곳은 갈석산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제 글에 쓰신 글처럼 저 역시 아이의 학번을 통해 모대학에서 부족한 점과
최근 동향을 알아보려 논문과 학술지 등을 읽어봄니다만
기본적으로 원문을 먼저 고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사서와 부합하지 아니하는 자료는 취하지 아니하길 바랍니다.
               
하이시윤 22-10-15 16:50
   
윤교수책에 원문이 충실하게 나왔으니 걱정말고 읽어보시고 반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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