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후 후퇴했음은 당시 연국의 정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여진다.
"위략“의 기록을 ”사기 조선열전“과 연결시켜 보면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 시기는 연국의 전성기 였음을 알게된다. 연국의 전성기는 召王(소왕) 때로서 기원전 311년부터 기원전 279년 사이였으니 진개의 고조선 침략은 이 기간에 있었을 것이다.
연국은 기원전 284년에 秦國(진국), 楚國(초국), 趙國(조국), 魏國(위국), 韓國(한국) 등과 연합하여 강국인 齊國(제국)을 치고 70여개의 성과 제국의 도읍인 臨淄(임치)까지 점령 하였었다. 이 시기에 진개가 箕子國(기자국)과 고조선을 친 것인데 당시의 연국의 국력으로 보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5년 후인 기원전 279년에는 연국의 소왕이 사망하고 혜왕이 즉위하였는데 혜왕은 용렬한 군주여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래서 연군은 제군에게 크게 패하고 철수 하여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원전 273년에는 한국.위국.초국이 연합하여 연국을 정벌한 사태까지 일어났다 . 그후 연국은 멸망될 때까지 국력이 크게 쇠퇴되었다.
실제로 전국시대에 연국시대에 연국보다는 제국이 강대국이었는데 제국은 지금의 산동성지역이었다. 그런데 종래의 통설처럼 연국이 압록강을 고조선과의 국경으로 삼고있었다면 연국은 제국의 두 배 정도의 대국 이어야 한다. 이것은 전국시대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연국은 북쪽으로 蠻貊(만맥)의 압력을 받았고, 안으로는 제국. 진국과 국경을 함께하여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던 변방의 가장 약하고 작은 나라로서 여러번 멸망할 위험을 겪었다“고 말하여 연국을 약소국으로만 표현하고 진개의 고조선 침략은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점도 참고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전국시대에 진개의 고조선 침략으로 연국에 복속되었다는 진번과 조선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던 지명일 수밖에 없게된다. 그리고 “염철론 주진”편에서 언급된 진국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패수(지금의 난하)를 건너 토벌하였다는 조선도 그 기록이 옳다면 지금의 난하 동부연안에 있어야 한다.
출처. 윤내현,한국고대사신론